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은 2012년 8월 공직자가 돈을 받았으면 무조건 처벌하도록 하는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을 입법 예고했지만 법무부가 반대했다. 2013년 8월 국회에 보낸 정부안은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후퇴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제공
“재단법인 남해마늘연구소 행정실 직원인 A씨는 서울에 사는 여동생이 있다. 이 여동생이 남자친구에게 커플링을 선물로 받았다고 치자. A씨가 사후에 이를 알게 되면 반드시 소속 기관장에게 신고한 후 여동생에게 반환하도록 요구해 관철해야 한다. 반환이 아니 되면 2~5배에 해당하는 과태료를 받게 된다.”
‘스폰서 검사’ 무죄 받을 길 열려
김용태 새누리당 의원은 6월2일치 <머니투데이>에 쓴 기고문 ‘김영란법, 제2의 금주법 안 되려면’에서 이렇게 주장했다. 지난 5월28일 국회 정무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김영란법’ 처리가 무산돼 비판 여론이 거셀 때였다. 김 의원은 법안소위 위원장으로 김영란법 심사를 이끌었다. “국무회의를 통과할 때 빈껍데기만 남았다고 해서 법안에 이런 내용이 담겨져 있다는 것을 전혀 몰랐다. 심사를 하다보니 하나하나 나왔다. 사례를 보고 황당했다.”(5월28일 국회 기자회견) 김 의원의 ‘참회’에 주호영 새누리당 정책위의장이 맞장구쳤다. “참으로 용기 있는 말을 했다. 김영란법 원안이 통과되면 최대 1500만 명이 커피 한 잔도 얻어먹을 수 없게 된다.”(5월29일 라디오 인터뷰) 김영란법의 적용을 받을 공직자가 186만여 명인데 그 가족을 포함하면 적게는 550만 명, 많게는 1786만 명이 영향을 받는다면서 말이다.
정말 그럴까, 궁금해졌다. 김영란법은 애초에 공직자가 돈을 받으면 무조건 처벌하는 내용의 법안에서 출발했다. 2012년 8월 입법 예고한 ‘부정청탁 금지 및 이해충돌 방지 법안’(원안)이 그랬다. 100만원 이상의 금품을 받으면 형사처벌하고 그 이하라면 과태료를 물도록 돼 있었다. 하지만 법무부가 “과잉 처벌”이라며 반발했다. 2013년 8월 국회에 보낸 법안(정부안)은 직무 관련성이 없으면 형사처벌하지 않는 것으로 후퇴했다. ‘스폰서 검사’가 무죄를 받을 수 있는 길이 다시 열린 셈이다. 결국 세월호 참사 이후 여론에 밀려 여야는 원안으로 되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헌법이 천명한 연좌제 금지에 저촉될 위험이 있다” “국민의 직업 선택의 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다” 따위의 주장을 펴며 국회는 전반기를 넘겨버렸다.
<한겨레21>은 후반기 쟁점 법안으로 떠오른 김영란법을 문답으로 풀어봤다. 질문은 5월23일과 27일 정무위 법안 소위 때 여야 의원들이 제기한 사례로 구성했다. 국민권익위원회와 김영란 전 국민권익위원장(현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에게 자문을 구해 답안을 썼다.
남자친구에게서 받은 선물이 금품 수수?
우선 김용태 의원이 사례로 든 A씨의 경우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았다. 원안이든, 정부안이든 A씨는 커플링을 돌려주지 않아도 된다. 공직자와 상관없이 가족이 고유한 사회적·경제적 관계에서 받은 금품은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아니기 때문이다(제8조 3항). 사회적 관계란 학교 동창, 회사 동료, 고향 친구의 선물을, 경제적 관계란 협력업체에서 받은 경조사비를 뜻한다. 따라서 여동생이 남자친구에게 받은 선물은 ‘공직자의 금품 수수’가 아니다. 신고도, 반환도, 과태료도 필요 없다.
‘커피 한 잔 얻어먹을 수 없게 된다’는 주호영 정책위의장의 주장도 옳지 않다. 사교·의례적으로 주고받는 음식물·경조사비·선물 등은 허용돼 있다. 기준액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데 3만원이 유력하다. 현재 공무원 행동강령의 접대 상한선이 3만원이다. 이는 터무니없이 낮은 기준이 아니다. 미국은 1회에 20달러(1년에 50달러), 캐나다는 1회에 50달러(1년에 200달러)를 공직자의 금품 수수 한도액으로 정하고 있다.
처제가 김 의원과 같이 살지 않는다면 아니다. 김영란법은 민법상 가족 범위를 사용하는데, 배우자의 형제자매는 생계를 같이하는 경우에만 가족으로 인정한다. 함께 살더라도 무조건 스카프를 받을 수 없는 게 아니다. 처제가 형부와 관련 없는 자신의 지인에게서 스카프를 받았다면 문제가 없다. 만일 그 스카프가 형부에게 청탁해달라고 건네졌고 이를 나중에 김 의원이 알았다면 당연히 신고해야 한다. 신고하면 김 의원은 처벌받지 않는다. 처제도 그렇다(정부안 제31조 2항 2호).
일차적으로 가족이란 배우자와 직계혈족(부모·자녀), 형제자매를 뜻한다. 이들은 어디에서, 어떻게 살든 가족이다. 하지만 직계혈족의 배우자(며느리·사위)나 배우자의 직계혈족(시부모·장인·장모), 배우자의 형제자매(시동생·처제)는 생계를 같이해야만 법률상 가족이다. 형부는 형제자매의 배우자다. 그 어떤 경우에도 법률상 가족이 아니다. 당연히 김영란법의 가족 범위에서 벗어난다. 만약 오빠라면 같이 살지 않더라도 공직자인 여동생과 관련해 금품을 받아선 안 된다. 하지만 역시 오빠의 고유한 사회적·경제적 관계로 주고받는 금품은 괜찮다. “개인적 이유로” “교사하고 관계없는 일”로 받은 것이라면 당연히 처벌되지 않는다.
9급 직원이 110만원 받았다면
정부안에선 형사처벌 대상이 아니다. 직무 관련성을 입증해야 한다. ‘스폰서 검사’가 또다시 면죄부를 받을 수 있다는 얘기다. 부산·경남 지역 건설업자인 정아무개씨는 2008년 12월과 2009년 3월 “아는 검사를 통해 사건을 무마해주겠다”며 경찰 수사를 받은 이아무개씨 등 2명에게 2400만원을 받았다. 실제 그는 2003년부터 인맥을 쌓아온 검사 4명을 만나 식사와 술 등 향응을 제공했다. 정씨가 브로커 노릇을 하다가 사기와 변호사법 위반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되자 검사들이 나섰다. “내가 아는 사람이 지금 잡혀간다는데 도대체 무슨 사건이야?” “기록을 잘 검토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법원은 검사들에게 전부 무죄를 선고했다. 향응을 받았지만 그 자리에서 구체적 청탁이 없었기 때문에 뇌물이 아니라고 판단했다. 김영란 전 위원장은 <한겨레21>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스폰서, 떡값, 촌지 같은 연고·온정주의 사회 관행을 부패로 보지만 형법상으로는 대가성이 없어 처벌받지 않는다. 공직사회 전체가 신뢰를 잃게 되는 주된 요인이다.” 직무 관련성을 따지지 않고 공직자가 돈을 받았으면 무조건 처벌하는 원안이 필요한 이유다.
‘공직자의 이해충돌 방지’ 규정은 ‘금품 등 수수 금지’보다 가족의 대상을 좁혔다. 특히 직무 관련자와의 사적 거래를 제한하는 공직자의 가족은 배우자와 생계를 같이하는 직계존비속(부모·자녀)으로 정했다. 따라서 B씨의 오빠는 애초에 김영란법의 대상이 아니었다. 당연히 B씨의 오빠는 학부모와 부동산 거래를 해도 된다. 대상이 B씨의 배우자라 하더라도 거래 자체를 금지하는 것이 아니다. 알게 된 즉시 학교장에게 서면 신고만 하면 된다. 부동산 거래를 취소해달라고 요구하지 않아도 된다.
저축은행 피해자 ‘보상 요구’, 부정청탁?
‘가족이 공직자와 직무 관련이 있는 법인·단체의 임직원으로 재직하더라도, 그 가족이 하는 일이 공직자의 직무에 직접 영향을 미치지 않으면 상관없다(정부안 제11조 1항). 따라서 국무총리 등 고위 공직자의 가족이 직업을 가질 수 없다는 주장은 얼토당토않다. 공직자 직무와 공직자 가족의 업무가 이해 충돌한다고 하더라도 곧바로 공직자를 업무에서 배제하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소속 기관장이 △직무참여 일시 중지 △직무대리자 지정 △전보 등 조처를 취할 수 있다. 그 밖에 대통령령으로 적절한 조치를 규정하면 된다(제11조 4항, 제7조 7항).
부정청탁이란 공직자에게 법령을 위반하게 하거나 지위·권한을 남용하게 하는 행위를 뜻한다. 하지만 고충 민원 등의 해결을 요구하는 것은 부정청탁에 해당하지 않는다(정부안 제5조 2항). 또 이해관계자 본인이 청탁하는 것은 처벌하지 않는다. 민원을 제기할 통로를 막지 않기 위해서다. 따라서 저축은행 피해자는 어디서든 의견을 표명할 수 있다. 연고관계나 사회적 영향 등을 이용해 ‘은밀하게’ 청탁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그러나 이해관계자가 아닌 제3자가 공직자에게 부정청탁을 하면 과태료를 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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