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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편할 진실 한국판 ‘불평등 연구보고서’

‘피케티 비율’ 산출 방식을 한국 사회에 적용해보았더니…

‘부/소득비율’ 등 불평등 정도, 토마 피케티가 분석한 주요 국가들보다 훨씬 높아
등록 2014-06-26 15:31 수정 2020-05-03 04:27
한겨레 이정용

한겨레 이정용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의 저서 이 출간된 이후, 불평등 문제를 둘러싼 논의가 세계 곳곳에서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최근 한국은행은 한 사회가 벌어들인 (실질) 국민총소득에 견줘 민간 자본에 돌아가는 몫이 얼마나 되는지를 뜻하는 자본수익률 등 이른바 ‘피케티 비율’을 추정해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과연 한국 사회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한국판 피케티 비율은 어느 정도이며 어떤 추세를 띠고 있을까? 특히 피케티의 연구 작업은 전통적인 마르크스주의자들의 자본주의 불평등 연구와 어떻게 연결될 수 있을까? 은 국내 연구자들의 한국판 ‘불평등 연구보고서’를 앞으로 네 차례에 걸쳐 독자들에게 소개한다. _편집자


때로는 하나의 단순한 물음이 그 어떤 복잡한 이론으로도 설명하기 어려운 삶의 진실을 담고 있는 법이다. 토마 피케티의 화제작 이 가져온 충격은, 사람들이 일상에서는 직면하지만 현대경제학은 애써 외면해왔던 ‘불평등’이라는 문제를 단도직입적으로 다루고 있다는 데서 비롯된다. ‘피케티 쇼크’는 오른쪽으로 치우쳤던 경제학의 물줄기를 바꿔놓은 것은 물론이려니와, 각국의 경제통계 작성 방식마저 바꿔나갈 것으로 보인다(이미 변화는 시작되었다!). 그러나 피케티가 다룬 여러 나라의 장기통계에서 정작 한국 사례는 찾아볼 수 없다. 관련 통계가 미비한 탓이다. 불행 중 다행으로 때마침 한국은행은 유엔의 지침에 맞춘 국민대차대조표(잠정)를 작성·발표했다. 비록 2000년대 이후의 자료밖에 없다는 한계를 지니지만, 피케티의 문제의식에 따라 급한 대로 한국 경제 불평등 실태의 희미한 윤곽이나마 그려볼 수 있게 되었다.

왼쪽으로 물줄기를 바꿔놓은 피케티 쇼크

피케티가 거의 300년에 걸친 불평등의 역동적인 모습을 정리해낼 수 있도록 만든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모델은 과연 어떤 것인가? 피케티 모델은 다섯 가지 경제변수들, 즉 자본소득분배율(α), 부/소득비율(β), 자본수익률(r), 저축성향(s), 국민소득증가율(g)로부터 출발한다.

‘피케티 비율’이라 부를 이 변수들에 대해 좀더 알기 쉽게 설명해보자. 생산된 소득은 자본 소유자와 노동자가 나눠 갖는다. 자본 소유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은 자본소득분배율, 노동자가 가져가는 몫의 비율은 노동소득분배율이다. 만약 당신의 연봉이 4천만원인데 재산(부)은 2억원이라면, 부/소득비율은 5가 된다. 즉, 연봉의 5배에 해당하는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 2억원의 재산을 1년 동안 굴려 1천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면 자본수익률은 5%다. 연봉 4천만원 중에서 사용하지 않고 남은 돈이 400만원이라면 당신의 저축성향은 10%다. 만약 내년에 연봉이 4100만원으로 오른다면 소득증가율은 2.5%다.

이들 변수 사이에는 피케티가 ‘자본주의의 첫 번째 기본법칙’과 ‘두 번째 기본법칙’이라 부른 두 가지 관계가 성립한다.

먼저 α=r×β 이다. 즉, 자본소득분배율은 자본수익률에다 부/소득비율을 곱한 값이다. 이 관계는 언제나 성립한다. 자본소득/자본=(자본소득/국민소득)×(국민소득/자본). 예를 들어 자본수익률이 연간 5%이고 부/소득비율이 6이라면, 자본소득분배율은 5%×6=30%가 된다. 쉽게 말해 자본총량이 국민소득의 6배이고 자본의 평균수익률이 5%라면, 국민소득 가운데 30% 정도가 자본(가)에 돌아간다는 뜻이다. 피케티는 보통 경제학에서 자본이라고 부르지 않는 것들, 즉 개인이나 법인, 정부가 가지고 있는 금융자산 등은 물론 재화나 서비스 생산에 이용되지 않는 주거용 토지까지 ‘자본’에 포함시킨다. 한마디로 어떤 형태로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모든 자산을 가리키는 것이니, 전통적인 경제학적 개념으로는 오히려 부(wealth)에 가깝다. (그래서 β를 자본/소득비율이라고도 부/소득비율이라고도 부른다).

다음은 β=s/g이다. 이것은 ‘첫 번째 기본법칙’처럼 항상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경제학에서 말하는 ‘균제상태’(steady-state)에서만 성립한다. 만약 어느 경제가 성장률 4%인 상태를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하고, 또 전체 소득 중에서 소비하지 않고 저축하는 비율 또한 20%로 안정적으로 유지된다면, 부/소득비율(β)은 20/4=5이다. 즉, 부가 소득의 5배 정도 되는 수준이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뜻이다. 경제가 항상 균제상태에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일단 균제상태에 도달하면 이 비율은 변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단순화해 올해 국민소득이 100이고 자본총량(부)이 500이라고 가정하자. 이때 부/소득비율은 5이다. 만약 국민소득 증가율이 4%이면 내년 소득은 104가 된다. 만약 저축률이 20%이면 올해의 자본총량 500에 20이 보태져 내년의 자본총량은 520으로 늘어난다. 따라서 내년의 부/소득비율(β)은 520/104=5가 되는데, 이것은 s/g=20/4=5와 같다. 부/소득비율이 계속 5로 유지됨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피케티의 모델을 완성시키는 것은 r>g라는 부등식, 즉 자본수익률이 성장률을 웃돈다는 것이다. 사실 이 관계는 이론적으로 항상 성립하지는 않는다(물론 피케티는 대부분의 경제모델에서는 이 관계가 성립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지난 300년의 통계자료를 분석한 피케티에 따르면, 20세기의 예외적인 기간을 제외하곤 이 부등호가 오래전부터 성립해왔다. 자본수익률이 국민소득증가율보다 크다는 것은, 자본의 소유자들이 경제 전체의 평균보다 더 빠른 속도로 이윤을 챙긴다는 것을 뜻한다. 현실적으로 자본은 소수에 집중돼 있다. 그렇다면, 쉽게 말해 부자들은 경제성장률보다 더 높은 수익률을 실현하며, 그 결과 매년 일해서 버는 소득보다는, 기존에 쌓아놓은 소득, 즉 부(재산)가 차지하는 영향력이 더 커진다. ‘땀 흘려 일해 양식을 취하는’것보다는 ‘은수저를 물고 태어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해지는 셈이다. 피케티 자신은 거듭해서 부인하지만, 서구의 보수주의자들이 그의 저서 에서 마르크스의 유령을 떠올리는 것은 이 때문이다.

성립할 수 없는데 성립하는 ‘자본수익률>성장률’

이제 한국 경제에서 피케티 비율의 추정치를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α, 즉 자본소득분배율의 추이는 과 같다. 한국의 경우 자영업 인구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 고용인구의 30% 가까이나 돼 대체로 선진국 수준(10%)의 3배에 이른다. 자영업자의 소득을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으로 적절하게 나누어 계산하지 않으면 현실과는 동떨어진 결과가 나오기 쉽다. 만약 어느 치킨가게 주인이 한 달에 200만원을 벌었다면, 한국은행이 작성해 발표하는 전통적인 통계에서는 200만원 전체를 자본소득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자영업자는 자본을 소유하는 동시에 스스로 일해야 하는 노동자이기도 하다. 따라서 200만원 중 일부는 노동소득으로 계산해주어야 한다. 이렇게 자영업자의 소득을 부분적으로 보정해준 결과, 한국의 자본소득분배율은 지난 10여 년간 상승세를 보였음을 확인할 수 있다. 바꿔 말해 노동이 가져가는 몫은 꾸준히 줄어들었다. 2010년 이후 그 추세가 약간 꺾이기는 했지만, 예전에 국민소득의 25% 내외를 자본이 가져갔다면 현재는 30% 이상을 자본이 가져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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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은 한국의 부/소득비율을 살펴보자. 피케티의 방식에 따라 ‘자본’에 비생산자산인 토지와 자원까지 포함하는 부(wealth) 개념을 적용했다. 한국은행이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토지가 전체 부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데, 이는 주요 선진국과 비교할 때 매우 높은 것이다(한국 사람의 땅에 대한 애착을 떠올려도 좋다. 게다가 재벌그룹이 업무용·비업무용으로 보유하고 있는 엄청난 양의 토지를 떠올려보라!). 또한 한국은 선진국에 비해 정부가 소유한 자산의 비중도 상당히 높으므로 민간의 부뿐만 아니라 국부에 대해서도 이 비율을 적용해볼 필요가 있다. 에서 보듯이, 한국의 부/소득비율(β)은 민간 부만 계산하는 경우 2005년 6.5에서 2012년 7.5로 상승했으며, 국부를 기준으로 계산하면 같은 기간에 8.2에서 9.5로 높아졌다. 현재 1인당 국민소득(국내총생산(GDP)보다 작음)이 2만달러를 조금 넘는 수준이라고 한다면, 평균적으로 국민 1인당 20만달러 정도의 재산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물론 많은 부분이 부자들과 기업(을 소유한 사람들)의 몫이다. 한국의 부/소득 비율은 피케티가 분석한 주요 국가들 중 가장 높게 나온 일본(6.16), 이탈리아(6.09), 프랑스(6.05)보다도 훨씬 높다.

이미 지나치게 높은 부/소득비율

이제 피케티의 ‘첫 번째 기본법칙’으로부터 자본소득분배율(α)을 부/소득비율(β)로 나눠주면 자본수익률(r)을 얻을 수 있다. 이를 피케티가 정의한 개념의 소득증가율, 즉 성장률(g)과 비교한 것이 이다. 한국의 자본수익률은 민간 부 기준으로 4%대 초반, 국부 기준으로 3%대로 주요국의 자본수익률과 엇비슷한 수준이지만, 성장률이 높았기 때문에 양자의 격차(r-g)는 상대적으로 작은 편이다. 물론 2012년과 2013년에 소득증가율이 각각 2.3%, 1.98%로 예전보다 낮아졌기 때문에 앞으로 양자의 격차가 어떻게 변할지는 섣불리 예단하기 어렵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저축률(s)을 보자. 국부를 기준으로 하는 방식에 맞게 국민저축 개념을 이용하되, 피케티의 방식대로 고정자본소모(감가상각)를 제외한 ‘순저축’ 개념을 이용한다. 분석 결과 2000년에서 2012년까지 국민순저축률은 평균 19% 정도였다. 물론 2000년대 초반에 나타난 경향이 그대로 이어진다고 볼 수는 없다. 앞으로 성장률과 저축률은 과거에 비해 떨어질 것이다. 실제로 2013년에 순저축률이 18%로 하락했으므로 앞으로도 이 수준이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소득증가율을 연평균 3%로 잡는다면 ‘균제상태’의 β는 18/3=6이 된다. 소득증가율을 2.5%로 낮춰 잡는다면 β는 18/2.5=7.2이다. 국부 기준으로 2012년의 ‘실제’ β는 9.54나 되니, 한국의 부/소득 비율은 이미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다.

피케티 비율의 추정 그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이제 우리가 설명해야 할 것은 한국의 부/소득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은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그리고 부/소득비율의 증가와 자본소득분배율의 상승(노동소득분배율의 하락)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다.

주상영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류동민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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