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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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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교조, 공안의 잔칫상에 오르다

조합원 집단행동 땐 공안 정국 조성 호재로 활용할 듯… 단협 효력 사라지면 학생인권·학교민주화 후퇴 불가피
등록 2013-10-29 18:31 수정 2020-05-03 04:27

사반세기의 시간을 되돌린 건 종이 한 장이다. 10월24일 낮 1시57분, 고용노동부는 결국 서울 영등포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 본부에 공문을 보냈다. “노동조합으로 보지 아니함.” 지난 한 달 새 벌어진 ‘(해고 조합원 인정) 규약 시정명령’ 논란에 마침표를 찍는 일이었다. 노동부는 “공문을 받음과 동시에 노동조합으로서 전교조의 모든 권리는 사라진다”고 밝혔다. 1989년 설립된 전교조가 합법을 인정받기까지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합법노조인 전교조가 임의단체로 추락하는 것은 순식간이었다.

사반세기의 시간을 되돌린 종이 한 장

“오늘은 교사의 인권을 유린한 날로 우리나라 교과서에 기록될 것이다.” 전교조와 시민사회의 반발은 거셌다. 노동부로부터 ‘법외노조’임을 고지받은 직후 전교조는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1998년 노사정을 통한 사회적 합의에 대한 파기이며 국제적 약속 위반이자 단결권과 결사의 자유를 부정한 헌법 유린 행위”라고 주장했다. 방하남 노동부 장관은 “법을 지키지 않겠다는 단체에게 더 이상 법에 의한 보호는 맞지 않다고 판단해 노조 아님을 통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어느 시민사회 관계자는 “이것은 법의 이름을 빌린, 적나라한 폭력”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0월24일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노조’를 통보했다. 1999년 합법화 뒤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는 노동부의 통보 직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규탄했다.한겨레 김태형

지난 10월24일 고용노동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에 ‘법외노조’를 통보했다. 1999년 합법화 뒤 14년 만에 다시 법외노조가 된 전교조는 노동부의 통보 직후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정부를 규탄했다.한겨레 김태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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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의 ‘비합 시절’을 거친 전교조에게, 다시 닥쳐올 겨울을 가늠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당장 정부와 시·도교육청에 본부, 17개 시·도지부 사무실 임대료 52억원을 돌려줘야 한다. 노동위원회에 부당노동행위 구제와 쟁의조정을 신청할 수도 없을뿐더러 정상적인 조합 활동 자체가 어려워진다. 시·도교육감으로부터 휴직 허가를 받은 노조 전임자 77명도 학교로 복귀해야 한다. 거부하면, 직권면직도 가능하다.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이미 지난 10월15일 전교조 전임자가 속한 학교에 “전교조가 법외노조가 되면 노조 전임으로 휴직 중인 교사를 복귀시켜야 하니 기간제 교사에게 해고 예정 통지를 하라”고 지침을 내린 터다.

파장은 전교조 차원의 불이익에서 그치지 않는다. 학교 현장도 얼어붙을 전망이다. 무엇보다 지난 24년 동안 쌓아온 교육 개혁의 결실들이 시계 제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교육민주화 운동을 통한 전교조의 성과가 녹아든 각 지부의 단체협약이 무력화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변화는 학생들의 일상과 밀접하다. 전교조는 두발·복장 규정과 같은 학생 인권 보장 조처, ‘학습준비물’ 예산 전용 금지 등 학교 투명화 방안을 단협에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일부 지부는 학급 내 행사 진행비를 별도 예산으로 마련하도록 단협으로 약속받고 있지만, 이 또한 효력을 잃을 것으로 보인다. 교육청의 독주를 막고 현장의 의견을 반영하기 위한 정책협의회(노사협의회)를 보장하고 있는 것도 단협이다. 서울·경기 등 9개 지부의 단협에 해당 조항이 포함돼 있다. 지난해 전북도교육청은 전교조 전북지부와의 정책협의회를 통해 일선 학교의 교무회의를 의결기구화하는 방안을 추진했다. ‘교장님 지시사항 전달을 위한 시간에 지나지 않는다’는 지적을 들어온 교무회의에 좀더 민주적인 참여와 소통을 담보하기 위한 것이었다.

험난함 예고된 ‘생존 투쟁’

박진보 전교조 정책교섭국장은 “단체협약의 효력은 법적인 다툼의 소지가 있다. 협약의 주체가 법적으로 사라졌다고 보면 무효라고 주장할 수 있고, 민간 차원의 계약으로 보거나 노동자의 당연한 법적 권리로 보면 유효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전례가 없는 일이어서 정부도 고민 중인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당장 전교조의 운명은 단협 상대방인 교육부나 시·도교육청의 재량에 달려 있다. 경기·강원·광주·전남·전북 등 진보 성향 교육감들은 ‘전교조를 교원단체로 존중하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교육부와의 마찰이 예상된다.

이런 상황은 전교조의 미래가 다시 한번 정치 게임 국면으로 넘어간다는 것을 뜻한다. 전교조는 교육 현안 투쟁을 더 거세게 밀어붙인다는 방침이지만 ‘생존 투쟁’의 부담은 그보다 무겁게 전교조를 짓누를 것이다. 교원노조법이 엄연한 상황에서도 노조 설립 취소를 강행한 정부의 독단이, 1500명의 교사가 해직됐던 비합법 시절만 못하진 않으리란 전망이 우세하다. 서울 지역의 한 조합원은 “교육 관련 현안이 많은데 우리 코가 석 자다보니 손도 못 대지 않겠나. 학교 운영이 팍팍해지겠고 일제고사도 다시 시행될지 모른다”라고 안타까워했다.

공은 일단 사법부로 넘어갔다. 전교조는 정부의 법외노조 통보 뒤 곧바로 서울행정법원에 노조취소 행정집행정지 신청과 취소 소송을 냈다. 정부의 주장처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시행령 규정으로 상위법이 인정한 노조의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 타당한지를 묻는 것이 쟁점이다. 46명의 변호사가 ‘전교조 설립취소 대응 법률지원단’(단장 김선수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에 참여했다. 해당 시행령을 두고 전교조가 제기한 헌법소원 결과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이같은 ‘사태의 장기화’야말로 정권의 노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국가정보원과 군의 대선 개입 의혹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정부가 전교조를 제물 삼아 정국의 주도권을 쥘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법학)는 “전교조를 법외노조화한 것보다는, 그로부터 파생될 다툼이 노동계와 시민사회, 정계에 두루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전교조가 집단행동에 나서면 그때마다 정부가 ‘교육 현장이 망가진다’며 진보 진영의 민주적인 요구들을 탄압하고 공안 정국을 조성해나갈 여지가 생겼다. 전교조 법외노조화는 현 정부가 그린 아주 큰 정치적 그림의 단초로 보인다.”

10년의 비합법 시절, 14년의 합법 시절을 거친 전교조에 ‘법외노조’는 또 다른 시작이다. ‘필사즉생 필생즉사’. 김정훈 전교조 위원장은 노동부의 법외노조 통보에 이같은 손팻말을 들고 “오늘은 유신 부활의 신호탄이다.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이영주 전교조 수석부위원장은 “14년 합법노조를 마치지만 새로운 자유, 민주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다. 전교조에 제3의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노동계는 다시 가장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전교조의 ‘쇄신’을 환영하고 지지하는 분위기다.

“이건 아니다” 새로 조합원이 된 교사들

전교조의 싸움이 쓸쓸하지만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의 눈길이 한국 정부에 쏠리고 있다. 12월 하순에는 한국의 노동기본권 탄압 상황을 조사하기 위해 국제공동조사단이 한국에 온다. 세계교원단체총연맹(EI), 국제노동조합총연맹(ITUC) 등 교육·노동 관련 국제단체가 참여한다.

조합원이 이탈할 것이라는 우려와 반대로, 새로 가입하는 조합원도 늘고 있다. 이현웅(29) 전북 금과초교 교사는 지난달 정부의 법외노조 방침이 보도된 뒤 전교조에 새로 가입했다. “이미 인권위나 국제 노동단체 등에서도 개선해야 한다고 한 법 조항을 들어 새삼스럽게 문제 삼는다는 게 말이 안 된다고 생각돼 힘을 보태고 싶었다”고 이 교사는 말했다. 탈퇴했던 전교조에 지난 9월 재가입한 서울 지역 조합원 ㄴ(37) 교사도 마찬가지다. “정권의 입맛에 맞지 않는다고 30년 역사의 노조를 꼬투리 잡아 없애려 하는 걸 보고 참을 수 없었다.” 지난 한 달, 법외노조의 부담을 무릅쓰고 전교조에 새로 가입하거나 재가입한 조합원은 모두 128명이다. 전교조를 상대로 다시 한번 ‘손해 본 적 없는 장사’를 시작한 정부의 손익계산서가 나오기까지, 결과는 아직 지켜볼 일이다.

엄지원 기자 umkija@hani.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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