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핵은 북한 내 가장 심각한 보건의료 문제 중 하나다. 남한은 괜찮은가? 그렇지 않다. 한국은 자살률, 노동시간, 성차별 정도 등 여러 분야에서 1위를 하는 게 꽤 된다. 결핵도 그중 하나다. 선진국 그룹으로 불리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 가운데 한국은 결핵 발생률, 유병률, 사망률에서 1위다.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는 부끄러운 결핵 후진국이라며 결핵 퇴치를 강조합니다. 그러나 이는 부끄러운 일도, 후진국이라고 할 일도 아닙니다.”
북한 결핵 환자 10만 명… 남한의 2.5배지난 6월26일 통일부의 후원을 받아 유진벨재단(회장 스티븐 린턴·한국명 인세반)이 주최한 ‘북한 다제내성 결핵의 위험성과 그 해법’을 모색하는 세미나가 열렸다. 다제내성 결핵 분야의 최고 전문가로 꼽히는 승권준(44) 박사는 이렇게 말문을 열었다. 그가 보기에 북한의 결핵은 ‘다른 시급한 문제가 많은데 어쩔 수 없는 거 아니냐’라고 한다면, 남한의 결핵은 ‘후진국도 아니고 선진 의료시스템이 있으니 치료만 잘하면 되는 것 아니냐’고 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앞의 질병관리본부가 인용한 ‘결핵 후진국’은 2012년 세계보건기구(WHO)의 보고서에 근거한 것이다. OECD 30개국의 2007년 통계를 비교한 이 보고서를 보면, 남한은 인구 10만 명을 기준으로 발생률 100명, 유병률 149명(신규+기존 환자), 사망률 4.9명으로 1위다. 그것도 다른 나라들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압도적 1위다. 2위가 에스토니아인데 각각 25명, 29명, 2.7명이다. 7위인 일본을 보더라도 각각 20명, 26명, 1.7명으로 에스토니아와 비교해 큰 차이가 나지 않는다.
게다가 이런 상태가 크게 개선되지 않고 있다. 가장 최신 통계인 2011년의 경우, 사망률은 여전히 4.7명으로 2007년의 4.9명보다는 낮다. 그러나 신고 환자 수는 2007년에 비해 5천여 명 더 늘어 3만9557명을 기록했다. 물론 북한의 사정이 더 열악하다. WHO가 지난 3월 발표한 2011년 북한의 결핵 신고 환자 수는 9만9074명으로 사망률은 6.4명이었다. 환자 수로는 남쪽의 2.5배, 사망률로는 1.4배다.
일반 결핵보다 위험한 다제내성 결핵승권준 박사가 우려하는 것은 그냥 결핵이 아니라 다제내성 결핵이다. 다제내성 결핵은 기존 처방으로는 치료가 불가능하다. 그래서 같은 결핵이지만 차원이 다른 문제가 된다. 약값이 비싸고 엄청난 고통을 수반한다. 이 때문에 중도에 치료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치료 기간도 일반 결핵이 6개월 정도인 데 비해 최소 2년은 필요하다. 부작용이 심해 입원 치료를 해야 한다. 완치율도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 일반 결핵이 90~95%인 반면 다제내성은 50~60%다. 그러다보니 치료 자체가 불가능한 광범위내성 결핵인 ‘슈퍼결핵’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
그는 먼저 남한 내 다제내성 환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그 심각성을 전했다. “농담조로 하는 말이, 내 몸을 짜면 피보다 항생제가 더 많이 나올 거라 합니다. 친구? 사람들과 밥을 같이 먹지 못합니다. 도중에 약을 먹어야 하니까요. 자살? 항상 생각합니다. 웃으면서 말할 정도가 됐습니다.” 영양 상태가 나쁘고 의료 시설 및 장비가 부족한 북한의 상황이 더 심각하리라는 건 굳이 말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가장 심각한 건 전염이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에게서 감염된 환자는 바로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되기 때문이다.
“잘못된 치료는 안 하느니만 못합니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를 만들어내면 그다음엔 호흡기 감염을 통해 확산되기 때문입니다. 결핵 치료에 실패해 다제내성 결핵 환자가 되었는데도 기존 일반 결핵 치료만 하면 다제내성 환자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결핵 여부를 진단하는 시점부터 비용이 비싸고 복잡해도 다제내성 결핵을 판정할 수 있는 결핵 신속 진단법을 도입해야 한다. 일단 치료에 들어가면 추가 감염의 확산을 막을 수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결핵 고위험 국가 가운데 ‘러시아형’으로 갈 위험성이 큽니다. 결핵 고위험 국가로 분류된 나라들 가운데 환자 수로 보면 인도(13만1천 명), 중국(11만2천 명), 러시아(4만3천 명) 순입니다. 그러나 다제내성 결핵 환자의 비율은 거꾸로입니다. 러시아가 20%, 중국은 8%, 인도는 4%입니다. 러시아가 인도의 5배나 되는 건 다제내성 결핵 치료 없이 오랜 기간 일반 결핵 치료만 했기 때문입니다. 일반 결핵 치료의 기간이 길수록 더 위험합니다. 북한의 의료체계가 옛 소련과 유사한데다 북한도 다제내성 결핵 치료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지 못한 채 일반 결핵 치료만 해왔습니다.”
대표적 대북 민간지원단체인 유진벨재단은 1997년부터 북한 결핵 치료 지원 사업을 벌여왔다. 그러나 2008년부터는 다제내성 결핵 치료로 방침을 바꿨다. 현장을 다녀보니 일반 결핵만 치료하다간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게 보였다. 유진벨재단의 인세반 회장은 승권준 박사를 만난 게 ‘행운’이라고 말했다.
미국 하버드대를 거쳐 1998년 스탠퍼드대 의과대학을 졸업한 승 박사는 2001년까지 캘리포니아의 하버-UCLA 병원에서 내과 인턴 과정을 마쳤다. 이후 페루로 가서 2004년까지 3년 동안 ‘파트너스 인 헬스’(PIH)에서 벌이는 빈민지역 의료보건사업에 참여했다. 이 단체는 전세계의 가난한 자들을 위한 예방 치료를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적 비정부기구(NGO)다. 미국 뉴욕과 스위스 제네바에 본부를 둔 ‘더 글로벌 저널’이 세계 100대 NGO 중 두 번째로 꼽을 정도다. 우리와도 인연이 깊다. 현 세계은행 총재인 김용 박사가 설립자 가운데 한 명이다.
승 박사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둘러싸인 작은 나라 레소토의 진료 담당 책임자로 있는데, 페루와 레소토에서의 다제내성 결핵 치료 경험이 유진벨재단에 큰 힘이 됐다. 2009년 겨울부터 그는 결핵 신속검사 장비인 ‘진엑스퍼트’를 비롯해 북한의 다제내성 결핵 치료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유진벨재단, 결핵 전담기관 8곳 운영 중유진벨재단은 지난해 다제내성 결핵 치료 전담 센터를 2곳 늘려 모두 8곳을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역부족이다. 한 해 500명 정도의 환자를 치료하는 수준이다. 그것도 평안남·북도에만 한정돼 있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수천 명의 다제내성 환자가 발생할 것으로 추정됩니다. 효과적인 치료를 위해선 치료 규모의 확대가 필수적입니다.”
지난 3월 남북관계가 극도로 악화된 상태임에도, 통일부는 유진벨재단의 53만달러어치 다제내성 결핵 치료약의 반출을 승인했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첫 대북지원 사업이라며 모든 언론이 주요하게 다뤘다. 그러나 정부는 반출만 승인했을 뿐, 한 푼도 지원한 게 없다. 4월 중순에서 5월 초까지 북한을 다녀온 승 박사에게는 바람이 있다.
“환자의 객담(가래)을 채취해 정밀검사를 하려면 남쪽으로 가져와 결핵연구원에서 검사를 해야 합니다. 다제내성 결핵 환자는 약만으로 안 될 때가 있습니다. 10% 정도는 폐 절제 수술이 필요합니다. 개성 같은 곳에 다제내성 결핵에 대한 상시적 진단과 검사, 수술 등의 치료가 가능한 종합적인 결핵센터를 만들었으면 합니다.”
강태호 기자 한겨레 정치부 kankan1@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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