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성혼 합법화는 증오의 결과다. 차별금지법 논란이 한창이던 4월의 끝자락, 미국 프로농구(NBA) 선수 제이슨 콜린스가 커밍아웃을 했다. 현역 선수가 동성애자라고 밝힌 일은 거의 없어서, 커밍아웃은 태평양 건너 한국에도 전해졌다. 그의 등번호는 98번, 1998년을 기억하겠다는 뜻이다. 1998년 10월, 미국의 와이오밍주에서 21살 청년 매슈 셰퍼드가 동네 사람들에게 살해당했다. 단지 동성애자라는 이유만으로. 이 증오범죄는 미국 사회에 큰 충격을 주었다. 마침 4월28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인 ‘아이다호 데이’였다. 한국에서도 이날 남성동성애자 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를 중심으로 서울 용산문화체육센터에서 ‘아이다호 캠페인’을 벌였다. 콜린스의 커밍아웃이 마침 이때 나온 이유도 거기에 있다.
지금, 지구의 대세는 동성결혼 합법화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지만,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것이 너무 많은 세상에서, 지난 10년 동안 가장 ‘드라마틱’하게 변화한 여론 지형을 꼽자면, 그것은 동성결혼에 대한 지지율이다. 불과 10여 년 전, 지구촌 어디에서도 동성결혼 지지율은 40%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미국 등에서 동성결혼 지지 여론은 반대를 넘어섰다. 이런 변화의 뒤에는 역설적이게도 끊이지 않는 증오범죄 발생이 있다. 미국 등에서는 성소수자라는 이유로 집단폭행을 당하거나 살해당하는 일이 드물지 않게 벌어지는 것이다. 한국에서도 몇 해 전, 남성동성애자 커뮤니티인 서울 종로 뒷골목에서 느닷없이 게이들이 폭행당하는 증오범죄가 벌어진 적이 있지만, 서구에 비해 물리적 폭력은 덜 알려진 편이다.
그런데 증오의 역설은 증오를 증오하는 사람들을 만든다는 것이다. 동성결혼 등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심해질수록 증오범죄는 기승을 부리고, 증오범죄를 통해 비로소 성소수자는 피해자로 각인된다. 어렵게 쟁취한 행복할 권리 앞에서 마냥 행복한 표정을 지을 수 없는 이유다. 다수를 설득하기 위해 소수자는 피해자의 이미지로 등장해야 하고, 더욱 설득력을 높이려면 사건의 피해자로 울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차별은 도무지 가시화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피와 살이 뒤섞이고, 웃음과 눈물이 교차하는 소수자들의 삶은 생략되기 십상이다.
이런 상황에서 소수자들의 낮은 목소리를 담은 책이 나왔다. 인권운동사랑방 등이 쓴 (이하 ·오월의봄 펴냄)는 성소수자, 장애인, 비혼모, 비정규노동자 등 우리 시대 소수자 10명의 삶을 9개 이야기에 담았다. 책 뒤편에는 이런 당부가 나온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차별’이라고 이름 붙여 기억하는 경험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그 경험들을 조각 맞추듯 이어보면 우리가 사는 세상이 보인다. 변두리스토리의 주인공들이 각자 ‘차별’로 지목하는 것과 변두리스토리를 읽는 독자들이 ‘차별’로 읽어내는 것이 다를 수 있는 이유는, 오히려 차별이 우리 모두의 삶에 일관되게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봐야 한다.”
그러니까, 필자들은 ‘창조적 오독’을 권장하는 것일까. 책을 쓰고 엮은 인권운동사랑방 활동가 나영정, 미류, 훈창을 만났다. 미류는 “책을 읽고 나도 뭔가 하고 싶은 얘기가 생기면 좋겠다”고 말했고, 훈창은 “이런 삶이 있었지 하면서 나의 이야기를 더하고, 그렇게 이야기가 다단계로 퍼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것이 이들이 생각하는 ‘수신확인’이다. 읽은 이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차별을 말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원래 인터뷰는 2011년 ‘변두리프로젝트’로 시작해 보고서로 발간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녹취를 자꾸 들으며 ‘이 사람 정말 이랬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녹취와 대화할” 지경에 이른 이들은, 인터뷰의 간극을 메우고 이야기로 엮어서 책을 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1년 넘게, 차별반대운동을 하는 이들이 모여 “10번은 글을 엎으며” 완성한 책이, 하필 차별금지법 논란이 뜨거운 시기에 나왔다. 미류는 “보수 개신교만 아니었어도 책에 대해 한마디도 안 했을 것”이라며 웃었다. 돌아보기도 싫을 만큼 힘겨운 과정이었단 것이다.
차별금지법제정연대에서 일하는 나영정은 “오늘도 언론은 사례를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사례가 있어야 차별이 드러나고, 차별이 입증돼야 법안의 필요성도 증명되는, 사회화의 관례가 있다. 더구나 무슨 사건이든 생기면 달려가야 하고, 피해자 입장을 명료한 언어로 대변해야 하는 이들로서는 ‘말해지지 않은 진실’에 대한 갈증이 컸을 것이다. “사례는 자체로 의미가 있는 것이기도 하고, 없는 것이기도 하다”는 나영정의 말처럼, “사건을 읽을 때도 그 사람의 개인적 경험, 사회적 조건을 좇아가야 사건의 핵심을 읽을 수 있다”는 미류의 표현처럼, ‘사건화되지 않은 소수자’의 삶을 책에 담으려 애썼다.
트랜스젠더가 아니라 혜숙의 이야기그러니까 여기에 파란만장은 있으나 드라마는 없다. 극적인 사건은 없다는 말이다. 아니, 극적인 사건이 있어도 극적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다만 9개의 이야기가 조용히 말을 걸어온다. 형식이 판사에게 보내는 편지가 되든, 딸에게 하는 이야기가 되든, 단편소설 같은 구성이 되든, 인물들은 그저 자신이 겪어온 소수자로서의 삶을 담담하게 들려준다. 예컨대 트랜스젠더 혜숙의 이야기는 사건화된 문법이라면, 교도소에서 차별을 당한 피해자로 재현됐을 것이다. 호르몬 치료제와 여성 속옷을 요구하다 독방에 갇힌 그는 무딘 가위로 자신의 성기를 자르는 자해를 했다. 교도행정이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 나온 절망적인 행위였다. 은 사건에 시선을 고정시키지 않고, 혜숙의 생애사 안에서 이 사건을 보려고 한다. 이렇게 태어나서 가족에게 박대당하고 살아남기 위해 식당에서 일하는 과정을 담은 이야기를 읽다보면, 혜숙의 인생은 비참하기보다는 당당하다는 느낌에 이른다. 이렇게 은 소수자라는 이름으로 ‘분류’되는 이들의 이야기지만, 이들의 한 생애를 소수자라는 정체성에 가두지 않으려 한다. 트랜스젠더의 이야기로 읽었던 것이 혜숙의 이름으로 남기를 바라는 것이다.
여기에는 짐작과는 다른 이야기도 담겨 있다. 평범하지만 전형적이지 않은 이들의 삶이다. 유학생으로 왔다가 1991년부터 이주노동을 시작한 네팔인 타파가 어떻게 공장에서 일하고 결혼을 하고 빈곤하게 살다가 결국은 의료보험 사각지대에서 숨을 거두었는지, ‘라이따이한’으로 한국에 대한 부푼 기대를 품고 이곳에 시집온 베트남 이주여성 수민은 왜 한국인 남편과 헤어지고 외국인 남성과 살게 되었는지, 임대아파트에 사는 인간면역결핍바이러스(HIV) 감염인 민우는 왜 행복하다고 말하는지…. 미류는 “매일 친구들에게 듣는 이야기와 다를까, 심심하지 않을까” 걱정했다지만, 사건이 터지고 피해가 잇따르지 않아도 사연은 하나하나가 귀하다.
책을 읽다가 사연과 사연을 종단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이주노동자 남성 민우의 사연은 공장에서의 경험을 중심으로 서술되는 반면, 이주여성 수민의 삶은 왜 가족과의 관계를 통해 이야기될까. 이렇게 이주민 안에서도 서술의 차이가 생기는 이유를 생각해볼 수 있겠다. 4명의 성소수자 이야기 가운데, 게이인 정현의 성장담은 ‘세 번의 키스’를 통해 드러나고 19살 레즈비언 서윤의 이야기는 학교에서의 왕따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 이런 차이가 책을 덮은 다음에도 생각할 거리로 남는다.
을 만든 이들이 소수자의 삶에서 새삼 발견한 것은 ‘타협의 기술’ 혹은 ‘협상의 서사’였다. 소수자는 끝없이 타협하지 않으면 살아가지 못하는 존재다. 남들과 다른 정체성 탓에 타인의 시선과 주변의 공기에 민감해야 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수의 의견과 조율해야 하는 상황에 자주 부딪힌다. 이것이 이들의 생애다. 나영정은 “누구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해결하기도 하고, 누구는 일부러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으면서 차별 문제를 해결하기도 한다”고 전한다. HIV 감염인 민우의 이야기는 이것이 차별이라는 건지 아니라는 건지 “끊임없이 흔들리고”, 정현은 ‘어쩌다가’ 동성 친구들과 키스를 하게 됐다고 말한다. 가끔은 무엇을 말하려는지 불명확한 이야기를 좇아가다보면 차별이 어떻게 한 인간의 생애에 침입하고 해석되고 극복되는지가 보인다. 나영정은 “사람들은 이미 일상에서 싸우고 있었다”고 전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을 ‘생존자’라 부르듯, 차별을 헤치고 살아남은 이들을 소수자 ‘생존자’라 부를 수 있을까.
그렇다고 결코 우울한 이야기는 아니다. 미혼모 승민은 “왜곡되지 않기를 바라며 말하는데, 저는 미혼모라서 좋았어요”라고 말하고, 트랜스젠더 혜숙은 “저는 병원에서 얘기하는 ‘성별주체성장애’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저는 제 주체성을 상실한 적이 없거든요”라고 얘기한다. 이렇게 정체성의 그물에 갇히지 않고, 주체성의 의지를 잃지 않는 소수자들의 삶이 책에 자연스레 녹아 있다. 나아가 이들이 차별의 경험을 통해 얻게 되는 남다른 시선도 담는다. 시각장애인으로 외모콤플렉스를 느끼며 살아온 이숙은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아이를 보며 “걱정하지 마. 너는 예뻐. 너는 건강해. 너는 그냥 다를 뿐이야. 내가 예쁘다는 말을 기다렸던 그때처럼 그 아이에게 반가운 말을 건네고 싶다”고 생각한다. 혹시 정체성 앞에 주눅이 들거나 단정을 하는 ‘증세’가 있다면, 트랜스젠더 혜숙의 이야기 뒤에 나오는 김준우 퀴어 이론가의 말을 참조할 필요가 있다. “정체성은 얽히고설킨 차별의 맥락이라는 미로 속에서 만나는 안내판이자 힌트일 뿐 전부를 설명하는 ‘근본적이고 단일한 원인’이 될 수는 없다.”
“시리즈 내겠죠, 수신확인한 사람이”책에는 간단하게 끊어서 요약하기 어려운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짧은 따옴표 안에 끊어 넣어서는 좀체 드러나지 않는 복잡한 맥락 말이다. 지금 여기서, 차별이 어디에 있느냐고 묻는다면, 차별이 드러나지 않으니 잘 모르겠다고 한다면, 의 수신처는 당신이다. 훈창은 시각장애인 이숙의 이야기 ‘평범함으로 돌아가는 시간’ 뒤에 이렇게 덧붙였다. “누군가는 평범함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살았다면 이숙은 평범함을 찾기 위해서 살아왔다. 누군가에게 벗어나고 싶은 곳, 누군가는 찾아가고 싶은 곳, 이숙의 이야기를 쓰며 다시 평범함에 대해 생각해본다.” 타리는 “평등해지고 싶다는 말은 평범해지고 싶다는 말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미류에게 물었다. “앞으로 시리즈 내시죠.” 그가 답했다. “또 누군가 하겠죠. 수신확인한 사람이.”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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