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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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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곡동에서 마저 파헤치지 못한 진실

등록 2012-11-20 22:17 수정 2020-05-03 04:27

“아들의 장래를 생각해 사저 부지를 아들 이시형의 명의로 구입했으며, (중략) 이시형이 빌린 돈을 갚지 못할 경우 제 소유의 서울 논현동 부동산을 팔아 갚아줄 생각도 있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서울 내곡동 사저 터 매입 의혹 사건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검사의 수사 결과 발표를 하루 앞둔 11월13일. 특검팀에 도착한 이명박 대통령의 부인 김윤옥(65)씨의 서면답변서는 놀라움 그 자체였다. 김씨 스스로 아들 이시형(34)씨를 위해 사저 터를 아들 명의로 매입했다고 인정했을 뿐 아니라, 매입 비용을 대신 내줄 의사까지 있었다고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동안 청와대는 “사저 터가 들어선다는 게 알려지면 땅값이 오를 것을 염려해 시형씨의 명의를 잠깐 빌렸으며, 이후 이 대통령이 되사려 했다”고 설명해왔다. 사저 터를 한 푼이라도 싸게 매입해 국가 예산을 아끼기 위한 것이었지 개인의 이익을 추구한 게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김씨의 ‘양심고백’(?)으로 사저 터 차명 매입은 대통령의 ‘나라 사랑’이 아닌 대통령 내외의 ‘아들 사랑’의 결과로 밝혀졌다.
시형씨는 이 대통령과 김씨가 세 명의 딸을 낳은 뒤 어렵게 얻은 막내아들이다. 귀한 아들이다 보니 이 대통령 내외의 아들 사랑은 극진했다. 하지만 미국 줄리아드음대 등에 입학한 세 명의 누나들과 달리 시형씨는 한 사립대 지방캠퍼스에 입학하는 등 다소 부진했고, 그럴수록 이 대통령 내외는 아들을 챙길 수밖에 없었다. 이후 세 명의 누나는 삼성전자 임원, 서울대 의대 교수, (주)한국타이어 사장 등과 결혼하며 경제적으로도 안정된 길을 걸었다. 반면 시형씨는 큰아버지 이상은(79)씨가 회장으로 있는 (주)다스에 입사하는 손쉬운 길을 택했다. 경영기획팀장인 그가 받는 연봉은 5천만원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명박 대통령 일가가 구입했던 서울 서초동 내곡동 사저 터 입구.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이명박 대통령 일가가 구입했던 서울 서초동 내곡동 사저 터 입구. 한겨레21 박승화 기자

 

고무줄에 묶인 현금은 어디서?

34살. 경제적으로 독립할 나이였음에도 시형씨는 김윤옥씨로부터 꾸준히 지원을 받아왔다. 김씨가 특검팀에 제출한 서면진술서를 보면, 시형씨는 2천만원 상당의 차량 구입비와 용돈, 생활비 등을 지원받았다. 2010년 5월 시형씨가 서울 강남의 한 아파트를 전세로 얻을 때도 그 비용을 김씨에게서 받았다. 현재 142m²의 이 아파트 전셋값은 7억4천만원이다. 수억원을 증여받았지만, 시형씨는 한 푼의 증여세도 내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내곡동 사저 터 역시 증여세를 아끼기 위해 시형씨 이름으로 매입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대통령 명의로 사저를 매입했다가 시형씨에게 상속 또는 증여할 경우 수억원의 세금을 내야 하지만, 처음부터 시형씨 이름으로 매입하면 국가에 내야 할 세금을 아낄 수 있기 때문이다.

강남 아파트와 달리 내곡동 사저는 국가 예산이 투입됐다는 점에서 큰 차이가 있다. 11월14일 특별검사팀의 수사 결과 발표를 보면, 이 대통령 일가의 부담을 줄이려고 같은 땅을 경호처가 시형씨보다 비싸게 매입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 대통령 쪽이 내야 할 수억원의 돈을 나랏돈으로 대신 내준 것이다. 이 대통령은 국가 예산으로 아들의 재산을 늘리려 했다는 비판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 대통령 내외는 경제적으로 독립하지 못한 시형씨가 무슨 돈으로 사저 터 매입대금 11억2천만원을 냈는지 설명해야 했다. 2008년 4월 공개된 시형씨의 재산은 신한은행 예금 758만5천원, 우리은행 예금 497만7천원, 대한생명보험 보험금 2400만원 등 총 3656만2천원에 불과했다. 청와대는 시형씨가 김윤옥씨의 서울 논현동 부동산을 담보로 은행에서 6억원을 대출받고, 이상은 회장에게서 6억원을 빌렸다고 설명했다. 이후 시형씨가 이 회장에게서 받은 6억원을 ‘현금’으로 직접 가방에 넣어 왔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또 일부 현금은 은행용 띠지가 아닌 고무줄로 묶여 있었던 사실이 드러나, 6억원의 출처에 대한 의문이 증폭되기 시작했다.

앞서 시형씨는 1차 수사를 맡은 서울중앙지검에 서면답변서를 제출하며 ‘2011년 5월23일 이상은 회장의 서울 구의동 자택에 직접 차를 몰고 가 현금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그러나 특검에 출석한 시형씨는 돌연 진술을 바꾼다. 돈을 가져온 날이 5월23일이 아닌 5월24일이라는 것이었다. “검찰에 제출한 서면진술서는 청와대 행정관이 대신 작성하는 과정에 착오가 있었다”는 게 이유였다.

 

23일에서 24일로 진술을 바꾼 진짜 이유는?

2011년 5월23일과 5월24일 시형씨의 행적을 살펴보면, 시형씨가 왜 특검에서 말을 바꿨는지가 명확해진다. 시형씨는 평소 경북 경주의 다스 사무실로 출근한다. 특검은 지난 10월17일 다스 사무실 압수수색으로 시형씨의 출퇴근 기록을 확보했고, 돈을 가져왔다는 23일 경주에 머물렀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반면 24일은 시간적 여유가 있었다. 시형씨는 특검에서 “오후 4시 이 회장의 집에 찾아가 돈을 가져왔고, 저녁을 청와대에서 먹었다”고 진술했지만, 그날 저녁 서울 압구정동에서 시형씨가 저녁 식사와 일본식 단란주점 비용을 계산한 흔적이 발견됐다. 진술대로라면 시형씨는 이날 저녁에만 두 끼 식사를 한 셈이다. 특검 관계자는 “일반인의 동선을 생각해보면 강한 의심이 든다. 하지만 완전히 불가능한 것은 아니었다”고 밝혔다.

시형씨가 그날 6억원을 가지고 오지 않았다면, 6억원은 어디서 나타난 것일까? 5년 전인 2008년 BBK 특검으로 거슬러 올라가보자.

2007년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는 투명하지 못한 재산으로 의혹을 키우고 있었다. 특히 논란이 된 것은 다스와 서울 도곡동 땅의 실소유 여부였다. 이명박 후보가 실소유자였다는 증언이 나왔고, 이 사건을 수사한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는 당시 이상은씨의 도곡동 땅 매입 대금이 ‘제3자의 것으로 보인다’는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제3자가 누구인지 등을 밝히려고 정호영 특별검사팀이 출범했지만, 특검은 검찰의 수사 결과마저 뒤집고 이 후보에게 모두 무혐의 결론을 내렸다.

5년 뒤인 지난 11월9일, 의 보도로 묻혀 있던 사실이 드러났다. 정호영 특별검사팀이 당시 130억~150억원가량의 다스 비자금을 발견했음에도 검찰에 고발하지 않고 사건을 덮었다는 것이다. 몇 년 뒤 다스의 오너인 이상은 회장이 조카인 시형씨에게 고무줄로 묶인 의문스런 현금을 빌려줬다. 결국 시형씨가 가져왔다는 6억원의 출처가 5년 전 덮었다는 다스의 비자금이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질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다스는 도곡동 땅 매입 대금이 투자된 회사다. 의혹대로 실소유주가 이 대통령이라면, 이 대통령은 비자금을 아들에게 증여한 셈이 된다. 이광범 특검팀은 “다스 수사 기록에 비자금과 관련된 내용이 있다는 기사가 났고 상당히 구체적으로 문제제기가 됐기 때문에 수사 기록 열람의 필요성에 대해 검토해보겠다”고 했다. 법으로 정해진 1차 수사 기간 만료를 5일 남겨놓은 상태였다.

‘티끌’만 한 거짓말이 ‘눈덩이’가 됐다. 이 대통령 내외가 실수를 인정하고 사과했으면 됐을 일이 5년을 거슬러 덮어놓았던 비자금으로까지 확대된 것이다. 특검이 청와대에 수사 기간 연장(15일)을 요청했지만, 청와대는 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지난 10월25일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서초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이명박 대통령의 아들 이시형씨가 지난 10월25일 조사를 받으려고 서울 서초동 특별검사 사무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명진 기자

 

서서히 윤곽 드러내는 돈의 흐름

수사 기간이 연장된다면 비자금과 관련한 수사 기록이 드러날 가능성이 컸다. 시형씨의 강남 아파트 전셋값과 유사한 새로운 증여 목록이 계속 발견될 수도 있다. 실제 시형씨는 이 대통령 임기 첫해인 2008년에만 재산 신고를 한 차례 한 뒤 ‘독립생계를 유지한다’는 명목으로 해마다 재산 신고 고지를 거부해왔다. 시형씨가 김윤옥씨의 경제적 지원을 계속 받는 상황임에도 독립생계 주장을 편 것은, 시형씨에게 편법 증여를 계속하기 위한 ‘꼼수’가 아니냐는 논란도 불러올 수 있다. 반면 수사 기간 연장을 거부할 경우에는 ‘대통령이 자신과 가족의 비리를 덮기 위해 수사를 방해한다’는 정치적 비난만 감수하면 될 뿐이었다. 청와대는 특검의 수사 기간 연장 요청을 거부하며 이렇게 밝혔다. “이번 사건의 결론을 내리기에 필요한 수사가 충분히 이뤄졌다고 판단된다. 더구나 사저 터는 근래 국가에 매각돼 사실상 원상회복이 이뤄졌다. 수사가 길어지면 임기 말 국정 운영에 차질이 우려된다.”

한 달이라는 짧은 수사 기간 동안 청와대는 완전히 ‘밑바닥’을 드러냈다. 시형씨와 이상은 회장 사이에 작성된 6억원의 차용증 원본 파일에 대해선 “삭제돼 없다”고 버텼다. 삭제 여부를 확인하려는 특검에 “차용증은 관저 대통령방 대통령 컴퓨터로 작성했다”며 가져갈 테면 가져가보라는 태도로 일관했다. 경호처가 시형씨의 부동산 중개 수수료까지 대신 내준 데 대해서는 “경호처 돈이 아닌 직원의 개인 돈을 빌린 것”이라는 궁색한 답변을 내놨다. 게다가 직원의 개인 돈은 “죽은 장인이 준 것”이라고 주장했다. 청와대는 수사 과정에서 공식 문서까지 조작해 특검에 증거로 제출했고, 공문서 변조 혐의만 추가돼 청와대 직원이 기소되는 지경에 이르렀다.

 

‘아들 사랑’의 끝은 어디일까

특검팀은 이 대통령 일가에 사저 터를 헐값에 넘긴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의 배임)로 김인종(67) 전 청와대 경호처장과 김태환(56) 청와대 경호처 행정관을 불구속 기소했다. ‘공소권 없음’을 이유로 이 대통령은 사법 처리를 받지 않지만, 사실상 이 대통령을 기소한 것과 다름없는 결과였다.

30일. 역대 최단기 특검의 짧고 굵은 수사는 이렇게 일단락됐다. 반면 다스 비자금과 이 대통령 내외의 시형씨에 대한 편법 증여 논란은 끝나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임기는 2013년 2월까지다. 3개월 뒤면 ‘청와대’라는 보호막마저 사라진다.

황춘화 기자 한겨레 법조팀 sflow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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