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한국은 분명히 악성 위험사회이다. 악성 위험사회는 정부와 기업과 개인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고를 적극 유발하는 ‘사고사회’이다. 이런 사회에서는 법을 우롱하는 비리가 횡행한다. 박정희·전두환·노태우 정권의 군사-개발독재를 통해 한국은 악성 위험사회가 되었다. 김영삼·김대중·노무현 정권의 민주화 과정에서도 이 문제는 별로 개선되지 않았다. 그리고 군사-개발독재에 뿌리를 두고 있는 이명박 정권은 재벌이 대표하는 ‘토건족’과 ‘핵전족’에게 막대한 혈세를 퍼주며 사고사회의 문제를 극도로 악화시켰다.
4대강은 이미 킬링필드
금강에서 지난 10월17일부터 보름 사이에 60만 마리가 넘는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다. 길이가 136cm에 이르는 초대형 메기도 죽었다. 낙동강에서도 수만 마리의 물고기가 죽어 떠올랐다. 영산강에서도 벌써 물고기 떼죽음 현상이 발생했다. ‘4대강 살리기’ 사업의 결과로 4대강은 ‘녹조 곤죽’에 이어 물고기 떼죽음이라는 무서운 사태 속으로 빠져들게 된 모양이다. 조만간 한강에서도 물고기 떼죽음이 발생해서 4대강이 모두 참담한 ‘킬링필드’로 변할 것 같다. 사실 원래 모습을 잃어버리고 기괴한 보, 제방, 엉터리 공원, 자전거도로 등으로 뒤덮인 4대강은 이미 킬링필드이었다.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30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 막대한 혈세를 토건족에게 퍼주고 이런 엄청난 사고를 저지른 것이다.
위험천만한 원자력발전소의 확대는 더욱 심각하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수명연한이 다 된 원자로를 연장 운행하는 것이다. 이명박-새누리 정권은 2008년 4월에 수명연한이 다 된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연장 운행하고 있고, 오는 11월20일이면 수명연한이 다 되는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를 연장 운행하려 한다. 원자로는 두꺼운 강철로 만들어지지만 핵연료에서 발생하는 강력한 방사선과 중성자를 오랫동안 쬐면 작은 온도 차에도 유리처럼 깨지는 금속의 취성화 문제가 심각해진다. 고리 원자력발전소 1호기와 월성 원자력발전소 1호기는 즉각 폐기해야 한다. 두 곳에서 폭발사고가 발생하면 부산과 울산은 물론이고, 이 나라는 그냥 망하고 말 것이다. 원자력발전소의 부품 납품조차 비리로 얼룩져 있다. ‘핵전족’을 위한 원자력발전소 건설을 서둘러 중단해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야권 후보들은 이명박-새누리 정권의 문제를 열심히 지적하고, 새로운 희망을 열심히 제시하고 있다. 정말 새로운 희망이 필요하다. 그리고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려면 복지국가의 구축과 함께 사고사회의 개혁에 초점을 맞춰서 희망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사고를 유발하는 황당한 사고사회의 문제를 시급히 전면적으로 개혁하지 않는다면 경제파국은 물론이고 훨씬 더 무서운 생태파국을 맞게 될 것이다. 서둘러 제도 개선을 넘어 구조 개혁을 이루어야 한다. 무엇을 해야 할까?
각종 위험 지도 제작·공개해야첫째, 각종 위험 정책을 정비해야 한다. 위험에 대한 평가와 대응을 위한 행정기구도 신설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조직의 개편이나 신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확한 정보를 정리해서 투명하게 공개하는 것이다. 예컨대 홍수 지도, 해일 지도, 사태 지도, 침식 지도, 불산 지도, 매연 지도, 전자파 지도, 방사능 지도 등의 각종 위험 지도를 제작해서 공개하면 국민들이 위험에 적극 대비할 수 있다. 현재는 위험에 대한 조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이루어진 조사 결과도 제대로 공개되지 않고 있다. 정부주도형 위험 대응을 시민자율형 위험 대응으로 바꾸어야 한다.
둘째, 각종 개발보상금을 정비해야 한다. 커다란 사고가 일어날 것이 명백한 개발사업도 주민들의 동의를 받으면 추진할 수 있다. 상당한 보상금으로 주민들을 분열시키고 동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발이 정말 아무런 위험이 없고, 개발을 통해 정말 지역이 발전된다면 상당한 보상금을 지급해야 할 이유가 없다. 현재 개발보상금은 지역을 파괴하는 개발을 강행하려고 주민들을 매수하는 수단으로 악용된다. 오랫동안 함께 살아온 이웃들이 원수 사이가 되거나 강제로 이별하게 된다. 이런 식으로 수많은 지역이 파괴되었으며, 이것은 국가 차원의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셋째, 정책 사기를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정책 사기는 사고사회의 원천이다. 엄청난 파괴, 오염, 손실의 문제를 안고 있는 나쁜 개발계획을 공약으로 내걸어 선거에서 당선되고 그것을 강행해, 결국 엄청난 혈세를 지지자들에게 퍼주고 커다란 문제를 일으키는 잘못된 상황이 수십 년째 개혁되지 않은 채 계속되고 있다. 나쁜 개발계획이 애초에 공약으로 제시되지 못하게 하거나, 그것을 실행한 것에 대해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이 과제는 잘못을 저질러놓고 떠나버리는 후진적 ‘먹튀’식 정치를 종식시키는 것과 직결된다. ‘먹튀’식 정치의 정책 사기는 국가를 사유화하고 망치는 중대한 문제이다.
넷째, 과학 사기를 엄정하게 심판해야 한다. 과학 사기는 사고사회의 동력이다. 사실상 모든 나쁜 개발들이 과학과 기술을 통해 합리화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능력과 위험은 전문가에 의해 평가될 수밖에 없다. 이 점을 악용해 정치가와 과학자, 기술자 등이 야합해서 나쁜 개발을 합리화해서 강행하는 것이다. 과학자와 기술자가 전문성의 성벽 안에서 면죄부를 팔 듯이 자신의 지식을 팔지 않고, 전문가로서 제 역할을 올바로 수행하면 나쁜 개발은 거의 사라질 것이다. 이익을 위해 영혼을 팔아서 세상을 망치는 과학자와 기술자는 엄정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정책 사기·과학 사기 엄정하게 심판다섯째, 가장 중요한 것은 올바른 정치 개혁을 이루는 것이다. 사고사회의 개혁은 무엇보다 권력과 결합되어 있는 비리의 혁파로 시작될 수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에서 처참하게 드러났듯이 조작자의 실수가 아니라 권력에 의해 조장된 비리가 사고의 가장 중대한 원인이다. 식민과 독재의 역사에 뿌리를 두고 있는 비리 세력이 권력을 농단하는 곳에서는 당연히 각종 비리가 만연될 수밖에 없고, 사고사회의 문제가 악화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에서 ‘박정희 시스템’을 혁파하는 것은 과거를 청산하는 것을 넘어서, 현재를 개혁하고 미래를 구축하는 것이다. 비리 세력의 포위 속에서 이루어진 취약한 민주화를 극복하고 정치·경제·생태 등의 모든 면에서 민주화의 민주화를 이룬다면 사고사회의 문제는 밝은 햇살 아래서 좀비가 사라지듯이 사라지게 될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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