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17일 오후 서울중앙지법, 서울남부지법, 서울서부지법의 단독판사들이 각자의 법원에서 판사회의를 열었다. 법원조직법 개정 뒤 외부 인사가 참여한 사실상 첫 번째 법관 연임 심사에서 서기호(42·사법연수원 29기) 판사가 탈락하자, 법관 근무평정제도와 연임 심사의 투명성을 논의하려고 열린 자리다. 앞서 서울북부지법의 변민선(47·사법연수원 28기) 판사는 “대부분의 판사들이 3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은 법원조직법 개정과 법관인사위원회 설치를 몰랐다. 평가의 공정성을 수긍하기 어렵다”는 글을 법원 내부통신망에 올렸다.
정치권이 법원조직법 개정 주도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 70명은 이날 과반수의 동의를 얻어 “이번 연임 심사 과정에서 나타난 문제점이 재판 독립성을 해칠 우려가 있다는 점에 인식을 같이한다”는 결의문을 채택했다. 법원장 재량인 근무평정 자료를 공개하지 않도록 규정한 대법원 규칙으로 인해 판사들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통로가 차단됐고, 결국 재판 독립성 침해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데 의견을 같이한 것이다. 이들은 “현행 근무평정제도를 근간으로 하는 연임심사제도는 객관성·투명성이 담보되고 방어권이 보장되도록 개선되어야 한다”는 내용을 결의문에 담았다. 서울남부지법 단독판사들도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공개, 위원의 중립성·공정성 담보 등의 개선 방안을 요구했다. 서울서부지법 단독판사들 역시 법관인사위원회에 제출된 모든 자료를 관련 판사에게도 제공할 것 등을 결의했다. 법관 근무평정과 연임 심사, 도대체 어디서부터 꼬이기 시작한 것일까.
2011년 6월22일 국회 사법제도개혁특별위원회 마지막 전체회의 장면이다.
주성영 위원장 대리 그다음 법관인사위원회 관련 조문을 토론하겠습니다.
송훈석 민주당 의원 처장님, 지금 심의 대상에 현행은 보직·전보까지 포함되어 있지요?
박일환 법원행정처장 …법관 개개인에 대한 보직·전보는 하지 않습니다.
송훈석 의원 예, 좋습니다. …판사도 (검찰인사위원회와) 똑같이 ‘상급심에서 파기된 사건 및 사회적 이목을 끈 사건으로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3분의 1 이상이 심의를 요청한 사건’ 이것을 좀 추가해야 되지 않느냐 그런 의견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박일환 처장 그것은 법관평정에서 하면 되는 것이지 위원회에서 하기는 상당히 부적당하다는 그런 생각이 듭니다. …법관의 재판의 독립성을 침해하기 때문에….
송훈석 의원 독립성 침해하고 관계됩니까, 이게?
박일환 처장 예, 법관의 재판을 누가 심사한다면 아주….
법관인사위원회와 관련한 그날 토론은 사실상 이것으로 끝났다. 한 달 뒤인 7월18일 법원조직법 제25조의 2는 이렇게 바뀌었다. ‘법관의 인사에 관한 중요 사항을 심의하기 위하여 대법원에 법관인사위원회를 둔다. 인사위원회는 인사 기본계획 수립, 판사 임명, 판사 연임, 판사 퇴직에 관한 사항을 심의한다. 인사위원은 법관 3명, 법무부 장관이 추천하는 검사 2명(판사 신규 임명 심의에만 참여), 대한변호사협회장 추천 변호사 2명, 사단법인 한국법학교수회 회장·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 이사장이 각각 1명씩 추천하는 법학교수 2명, 학식과 덕망이 있고 각계 전문 분야에서 경험이 풍부한 사람으로 변호사 자격이 없는 사람 2명(1명은 여성). 위원장은 위원 중에서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개정 전 해당 조항은 이랬다. ‘법관의 인사에 관한 기본 계획의 수립 및 인사 운영을 위하여 대법원장의 자문기관으로 법관인사위원회를 둔다. 인사위원회는 대법원장이 지명하거나 위촉하는 위원으로 구성한다.’ 달라진 핵심은 법관인사위원회에 외부 위원 참여를 법으로 못박고, 외부 위원 구성을 구체화하고, 자문기구를 심의기구로 격상하고, 인사에 해당하는 법관의 임명·연임·퇴직을 심의하게 됐다는 점이다.
‘문제적 판사’ 수하에 둬도 ‘빅엿’?
2010년 3월18일 대법원 법원행정처 브리핑실 장면이다. 박일환 법원행정처장이 하루 전 발표된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의 사법제도 개선안에 대해 “사법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와 존중심마저 잃은 처사”라며 강하게 반발했다. 전날 한나라당이 대법관 증원, 대법관 추천 및 판사 재임용과 보직·전보 심사에 외부 인사가 참여하는 안을 발표하자 나온 반응이었다. 대법관 신분으로 국회·정부 관계에서 사법부를 대표하는 법원행정처장의 공식 발표로는 전례가 없을 정도로 강도가 셌다. 한나라당의 사법제도 개혁안은 당시 주요 시국사건에서 무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나왔다. ‘입맛에 맞지 않는 문제 판사’들을 솎아내려는 의도를 굳이 숨기지도 않았다. 한나라당은 판사 재임용·보직·전보에 간여할 수 있는 법관인사위원회 위원 9명 가운데 6명을 외부 인사가 맡는 안을 확정했다. 법무부 장관과 대한변협 회장, 법학전문대학원협의회장이 각각 2명씩 추천하는 안이었다. 지난해 7월에 개정된 현행 법관인사위원회 외부 인사 구성과 별반 차이가 없다. 법관인사위원회 권한에서도 판사 재임용·보직·전보를 심의하자는 애초 한나라당 안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재임용(연임) 심의권은 살아남았다.
“3권분립의 대원칙과 헌법이 보장한 사법부의 자율성을 침해”하는 것은 동일했지만 2010년 3월과 2011년 6월, 15개월 사이에 사법부의 ‘결기’는 순치됐고 ‘온순’해졌다. 이에 대해 대법원 관계자는 “당시 여야의 사법제도 개혁을 모두 내칠 수는 없었다. 사법부도 양보할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입법을 통한 것이라고 해도 과도하게 사법부 독립을 침해할 수 있는 부분은 걷어냈다. 다만, 연임 심사 강화 필요성은 예전부터 제기돼왔던 문제고 사법부도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만큼, 이왕 할 거면 법으로 정하기로 한 것이다.”
지난 2월7일 박삼봉(55·사법연수원 11기) 서울북부지법원장, 윤인태(54·사법연수원 12기) 창원지법원장 등 법원장 5명이 고등법원 부장판사로 ‘복귀’했다. 앞서 대법원은 전관예우를 줄이겠다며 평생법관제 정착을 위해 ‘법원장 순환보직제’를 시행하기로 한 바 있다. 하지만 법조계 일부에서는 ‘판사 관리를 제대로 못한 이들에 대한 대법원장의 경고’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공교롭게도 ‘가카 빅엿’을 페이스북에 올린 서기호 판사는 서울북부지법, ‘가가새끼 짬뽕’을 올린 이정렬(43·사법연수원 23기) 부장판사는 창원지법 소속이다. 대법원 관계자는 “고법부장으로의 복귀는 사법행정보다는 재판을 맡고 싶어 하는 본인의 희망 등에 따른 것일 뿐”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선 다른 법원장들은 ‘문제 법관’을 수하에 뒀던 이들이 고법부장으로 ‘파기환송’되는 모습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문제 법관이 나오지 않도록 평소 ‘법관 관리’에 더욱 신경 쓰지 않을까.
판사 근무성적 숫자로 가늠 가능할까
법관도 당연히 평가를 받아야 한다. 맞는 말이다. 그렇다고 재판 독립을 해치는 수준까지 가서는 안 된다. 이도 맞는 말이다. 지난해 7월 법원조직법 개정에는 법관 근무평정을 강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무성적을 평정하여 그 결과를 인사관리에 반영시킬 수 있다’에서 ‘대법원장은 판사에 대한 근무성적과 자질을 평정하기 위하여 공정한 평정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근무성적평정에는 사건 처리율과 처리 기간, 상소율, 파기율 및 파기 사유 등이, 자질평정인 경우에는 성실성, 청렴성 및 친절성 등이 포함돼야 한다. 대법원장은 그 결과를 연임, 보직 및 전보 등의 인사관리에 반영한다’로 바뀌었다. 애초 대법원은 △외국에 이런 입법례가 없고 △소송이 최종적으로 끝나는 데 몇 년씩 걸리는데다 △사건의 복잡성 등 내용들이 저마다 다르고 △평가 기준이 알려질 경우 법관들이 이에 맞춰 재판을 진행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퍼센티지(%)’로 근무성적을 평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부정적 관점이었다.
앞으로 1년 뒤에 있을 법관 연임 심사가 벌써부터 시끄럽게 느껴진다.
김남일 기자 namfic@hani.co.kr
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홍장원, 헌재 스크린에 메모 띄워…“윤석열 ‘싹 잡아들여’ 지시” [영상]
15억 인조잔디 5분 만에 쑥대밭 만든 드리프트…돈은 준비됐겠지
윤석열 “간첩 싹 잡아들이라 한 것” 누가 믿을까? [2월5일 뉴스뷰리핑]
트럼프 “미국이 가자지구 소유할 것”…강제 이주 또 주장
[단독] “나경원 해임 기사 보내니 용산 사모님이 좋아하네요”
“급한 일 해결” 이진숙, 방송장악 재개?…MBC 등 재허가 앞둬
“계몽령” 전한길, 윤석열이 띄우는 ‘국민변호인단’ 참여
오요안나 ‘직장 내 괴롭힘’ 사건의 민낯은 ‘비정규 백화점’ 방송사
[영상] 피식, 고개 홱…윤석열, 체포명단 폭로 홍장원 노골적 무시
“희원이 쉬도록 기도해줘” 구준엽이 끝내 놓지 못할 이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