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좀더 근본적으로 생각해달라”는 주문이 있었다. 현재의 학교폭력 문제는 우리 사회의 반영이라는 당연한 논리를 넘어, 철학의 문제이자 인간 본질의 문제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학기 초가 시작되면 서열을 정하는 통과제의를 겪는 아이들은 그 문제에 생존을 건다. 그 눈높이에서 보면 그 세계에서 서열의 엄중함이라는 상수 앞에 폭력은 늘 따를 수 있는 변수일 뿐이다. 그 변수가 눈에 보일 정도냐 아니냐의 차이일 뿐 지역에 따라, 학년에 따라 아이들이 겪는 서열 안에서의 고통의 총량은 다르지 않다. 이런 환경에서 아이들에게 위계질서는 고착화된다. 학력, 완력, 부모의 권력 등 다양한 층위로 나누어져 또래로 꾸려지고 정착된다.
“이번 대책과 같은 외부의 충격(일진경보제, 상담교사 확충 등)은 위계질서를 수평적 구조로 바꾸지는 못하면서 혼란만 가중할 뿐”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현장을 고려하지 않은 대증요법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서열이 명확하지 않으면 불안하다고 느끼는, 아래에 누군가가 있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하는 필연적인 경쟁 구도가 깨져야 한다. 하지만 그것을 만들고 강요한 건 바로 학교폭력 대책을 세운 교육 당국이다.
“방관한 학생도, 묵인한 교사도 가해자”
김경욱(단대부고), 박종철(경기국제통상고), 이혜미(소사초교) 교사. 서울 강남의 일반계고, 지역의 특성화고, 그리고 초등학교라는 다른 울타리에서 일하고 있지만 학교폭력이라는 고민을 함께한다. ‘따돌림사회연구모임’(이하 따사모)을 이끌고 있는 교사 3명을 2월9일 만났다.
이혜미(이하 이) 처음엔 너무 힘들어서 나만 이런가 했다. 애들이랑 소통하기 힘들어도 동료와 말을 못하는 분위기다. 주변에서 무능하다고 인식하고, 그것이 곧 경쟁에서 뒤처지는 일이라고 생각하니까. 교사들도 다르지 않다. 서로 힘들면서도 교사끼리도 소통하지 못한다.
박종철(이하 박) 담임을 맡는 게 어떤 교사에게나 힘든 상황이다. 학생부는 말할 것도 없다. 민주적인 절차를 통해 누가 맡을 것인지를 결정하는 과정을 거칠 수 없을 정도로 교사들에게도 학교는 힘든 공간이 됐다. 교사도 이제 학교폭력의 일방적인 해결사가 아닌 당사자가 됐다.
김경욱(이하 김) 옆자리에 앉은 선생님이 명예퇴직을 하는 날이다. “애들이랑 힘들어서”라고 말했다. 교권침해와 학교폭력은 한 묶음이다. 그 안에서 학생인권도 함께 논의돼야 한다. 교권침해는 대부분 교사에게 자신의 힘을 과시하고 서열을 정리하려는 아이들 내부의 지위 싸움이 끝나지 않은 상황에서 벌어진다. 그런데 모든 게 따로 논의된다. 십수 년 동안 대책이 나왔지만 변한 건 없다.
하어영 기자
김 학교폭력을 두고 예전에도 다 그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예전에는 서열이 매겨지면 아래에 있는 아이들과 위의 아이들이 함께 어울리는 것이 허용됐는데 요즘은 그렇지 않다. 배제는 철저하고 집요하다. 그것이 유달리 폭력적인 집단에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박 나도 10여 년 전 학교 다닐 때 낮은 지위에서 생활했다. 그래도 친구 관계가 파괴되지는 않았다. 심리적 고립감이 없었다. 지금은 폭력의 대상이 된 아이가 있으면 그 아이를 고립시킨다. 주변에 아무도 못 간다. 피해자인 아이는 고립감 속에서 계속 다치게 된다. 그게 예전과 다른 점이다. 그래서 서열이 뒤로 밀릴까 노심초사할 수밖에 없다.
이 학생들은 그 구도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피해자가 있다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기도 한다. 상당수는 ‘내가 겪고 이 정도까지 왔으니 너도 당연히 겪어야 한다’는 식으로 생각한다. 학부모들도 대체로 아이들이 서열에서 밀려나 피해자가 될까 두려워할 뿐 다른 것에는 관심이 없다.
박 교사들도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 모든 것이 수치로 계량화되고 서열화되니까 그에 빨리 적응하고 뒤처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사실 폭력 대책에서 일부 학생을 가해자인 양 규정짓는데, 방관자라고 비껴나 있는 학생도 큰 틀에서는 가해자다. 개인별로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심지어 교사도 당사자다, 그 구조를 묵인한.
학교폭력 전담기구도 없는 교과부
이 피라미드를 주고 이름을 쓰라고 하면 다 쓴다. 그만큼 또래들끼리 서열화돼 있다. 그게 초등학교 때부터 훈련돼 있는 거다.
김 피라미드는 아니더라도, 어려서부터 집단별로 나뉘고 그 집단끼리, 또 집단 내부에서 개인끼리 서열이 나뉘어 있고 안정이 될 때까지 싸움을 벌인다. 폭력이 일어나지 않을 수 없다. 교권침해도 그 과정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힘의 우위를 과시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것이다.
이 정도면 동물의 왕국 수준이다. 현장의 얘기를 듣고 싶다는 한마디에 30분이 훌쩍 흘렀다. 학교폭력 대책에 대한 이야기를 물었다. “일진경보제는 현재 교육부가 교육현장을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한다.
김 이번 대책 중 가장 한심한 게 일진 대책이다. 일부 학생을 그런 식으로 배제하면서 일진으로 규정짓고 내쫓는다고 해서 그들이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의 빈자리를 누군가 또 채워야 하는 게 지금 교실의 상황이다. 끊임없이. ‘아, 우리나라에 이렇게 일진이 많았나’ 싶을 정도로 계속 나올 것이다.
박 일진처럼 보이는 가해자가 일진 사이에서는 돈을 뺏기기도 하고 괴롭힘을 당하는 게 지금의 상황이다. 일진 문화라는 것을 조직폭력배처럼 다루지만 그것은 너무 쉬운 접근이다. 아이들이 그럴 필요가 없음을 스스로 인식할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들어주는 게 먼저다. 옆 친구를 지배하고 완력이나 다른 방법으로 앞서지 않아도 하고 싶은 것을 하며 살 수 있다는 걸 어른들이 보여줘야 한다.
이 교사 역량을 확보할 수 있느냐가 그래서 중요하다.
김 지금의 대책에서는 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이 별로 없다. 신고가 권한의 전부다. 교사 역량을 키울 수 있는 내용도 없다. 담임교사를 복수로 둔다고 해서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학교폭력에 대처하는 역량을 키우지 못한다면 교사가 늘어나도 책임만 분산될 뿐이다.
박 이번 대책에서 내놓은 상담교사 확충도 무조건 옳은 것이 아니다. 전체 학생의 개별적인 상황을 상담교사가 일일이 파악하기는 힘들다. 그런 상황에서 상담교사가 할 수 있는 일은 제한적이다. 오히려 담임교사가 해야 할 일이다.
김 담임교사의 역량을 키워 해결하는 것이 가장 근본적인 대책임에도 교육부는 산으로 간다. 진정성이 의심되는 게 사실이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책을 보면 무조건 떠넘기는 식이다. 대책을 내놨으니 학교에서 책임지라는 것 말고 교육부가 하겠다는 게 뭐가 있나. 말만 떠들썩했지 교육부에 학교폭력을 전담하는 기구도 없다. 총리가 나서서 발표하면 뭐하나, 일할 사람도 없는데. 결국 무조건 교사와 학생 탓만 하며 어쩔 수 없는 일로 받아들이고 포기하지 않을까 걱정이다. 교육부의 많은 인력은 뭐하고 있나. 학교를 서열화하고 경쟁하게 만든다. 무엇이 학교폭력을 만드는지에 대한 철학이 없다.
아이들이 게임방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
박 게임중독을 예로 들어보겠다. 학교폭력의 본질을 보지 못하는 대표적인 교육부의 시선이다.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이 폭력성이 강화된다니. 그게 문제가 없다는 게 아니다. 아이들이 게임방에 갈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왜 모르냐는 것이다.
김 물론 상담교사와 협의하고 협조하는 시스템은 꼭 필요하다. 그런데 이번 교육부 대책은 사격할 줄 모르는 병사를 전쟁에 보내 최신식 무기를 주겠다는 것이다. 교사에 대한 지원이 우선이다. 지원을 요청해야 할 교사가 상담교사나 스쿨폴리스에게 뭘 어떻게 요청할지 알아야 요청하지 않겠나. 지원하는 사람들도 근본적으로 학생들과 접점을 찾지 못하니까 겉돈다. 지금 현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이 징계위원회로 다 가지고 가라고 하는데, 일상에서 벌어지는 학교폭력을 그 기준도 분명치 않은 상황에서 다 가지고 가면 아이들도 교사들도 버텨내지 못한다. 교육부의 책임이 1차적이지만 전교조, 교총 등 교원단체도 할 말이 없다.
교사 역량을 강화하는 프로그램을 마련해 학교폭력에 교사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방법을 찾자는 게 세 사람의 공통된 판단이었다. 고민은 깊었다.
김 교육부가 학교폭력에 대한 전수조사를 이제야 시작했다. 진작부터 매년 해야 했다. 조사를 바탕으로 연구하고 교사들과 함께 토론해야 한다. 그 안에서 폭력의 기준을 세우고, 합의를 도출해 규제해야 한다. 이제 겨우 시작이다.
박 시작했는데 정작 전담 조직은 없다. 거듭 말하지만 진정성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왜 실수를 반복하느냐. 대책을 만들고 그 결과에 대한 평가를 완전히 독립적인 기관에서 하라는 것이다.
이 이번에도 제대로 된 평가 없이 넘어가면 안 된다. 국민이 모른다고 그냥 넘어가는 건 말이 안 된다.
이들에게 물은 학교폭력 대책에 대한 현장의 반응은 “관심을 가질 상황이 아니다”였다.
김 교육청에는 교육지표라는 게 있다. 사업체로 말하면 일종의 주요 사업 목표로, 사후 평가에서 주요한 기준이다. 그런데 학교폭력이 이렇게 떠들썩하지만 교육지표에 학교폭력 항목은 빠져 있다. 일상 사업으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일선 교사들은 어떻겠나. 학생부나 담임을 맡지 않으면 학교폭력이라는 골치 아픈 주제에서는 빠질 수 있다. 그리고 평가에 주력해 좋은 평점을 받을 수 있다. 누가 학교폭력에 관심을 갖겠나.
이 지금(2월)이 교사들에게는 중요한 시기다. 담임을 맡을지 말지, 학생부를 할지 안 할지 결정되는 시기다.
박 결과적으로 우리 셋 모두 담임을 하거나 학생부를 하겠죠? (모두 웃음)
김 인성교육을 하자는 대책이 얼마나 허무한지는 현장에서 곧바로 확인된다. 일제고사, 수준별 이동수업, (예체능) 집중이수제 등 현장에서 벌어지는 경쟁을 위한 현실적인 제도들이 엄존하는데 아이들에게 무슨 인성교육을 할 수 있나.
박 보충수업을 중단시키지 않고 인성교육을 하라고 하면 인성교육이 되나.
이 짬짬이 하는 무언가가 되면 절대 성공할 수 없다. 이번 대책도 이전 대책과 그런 면에서 달라진 점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세 명의 교사는 따돌림 없는 학교가 아니라 사회를 연구한다. 일상화된 배제와 폭력이 학교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뜻이다. 그리고 “내 탓”이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이 시간에도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고, 마음은 병들어가고 있어요. 예외는 없습니다. 교육의 본질이 손상됐어요. 우리 아이들이 그렇게 크고 있어요. 이렇게 가다간 우리 사회가 암담해집니다. 우리 자신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도 지금이라도 나서야 합니다.”(김경욱 교사)
하어영 기자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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