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 15일 오전 경기도 수원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에 출근해 건물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에게 자신이 소유한 안철수연구소 지분의 절반을 기부하기로 한 결심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수원/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역시 2011년의 ‘슈퍼스타’는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이었다. 인터넷 한겨레(hani.co.kr)에서 2011년 12월26일~2012년 1월5일 벌어진 독자와 네티즌 투표에서 안철수 원장이 전체 투표자 8915명 가운데 4258명(48%)의 지지를 얻어 1위를 차지했다. 김진숙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은 2302명(26%), 박원순 서울시장은 1731명(19%), 외부세력은 625명(7%) 지지로 각각 2, 3, 4위를 차지했다. 안철수 열풍이 얼마나 강한지, 실감할 만한 결과다. 투표에 참여한 독자와 네티즌 여러분께 감사드린다. 더불어 ‘나만의 올해의 인물’ 사연을 보내주신 독자의 글을 요약해 싣는다.
*올해의 인물 인터넷 투표 당첨자(괄호 안은 인터넷 한겨레 아이디)
6개월 정기구독권
인터넷 투표- 이상덕(knflhs16), 박혜종(thohomrs), 송석인(songsi7779), 전정욱( chjw510), 장진우(cuoth)
나만의 올해의 인물- 김종옥, 김민하, 오정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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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회 인터뷰 특강을 요약한 책
인터넷 투표- 민희숙(minis603), 김재철(kjc8484), 조경래(ckl77), 이유경(love5513), 김만수(dodoclub), 이인영(liygh), 허호행( heotiger), 강우주(adat00), 김종귀(pointdol), 김성진(creep23)
악마의 계절을 이겨낸 아들
장한 우리 아들, 두말할 것도 없이 올해의 인물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무려 12년 동안 우리 아들은 겪기 힘든 일,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으며 악마의 계절을 넘어섰습니다. 그 기적 같은 생환을 기리며 우리 아들을 ‘나만의 올해의 인물’로 뽑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자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말과 정서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인지 능력은 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익숙한 영역을 확장해가며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 지난한 작업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마주친 세상은 그렇게 예의 바른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어려서 분별력 없는 ‘새끼 악마들’ 속에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필통과 신발주머니와 준비물을 빼앗아 쓰레기통이나 담벼락 밑에 버리고 팽개쳤습니다. 책상 사이를 걸어 나오는 아이의 종아리에 녹슨 대못을 쥔 손을 늘어뜨려 길고 깊은 상처를 냈습니다. 고무줄총을 쏘아댔고, 분필지우개를 머리 위에 털었고, 운동장의 모래를 한 움큼 집어서 아이 머리 위에 뿌리거나 옷을 들춰 등허리에 쑤셔넣었습니다. 작은 악마들은 “얘가 이상해서 괜히 싫어요”라고 했고, 어떤 교사는 “애들 장난이 좀 지나친 감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일기장에 거대한 폭탄을 들고 가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근본적인’ 결심을 썼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힘이 세고 영악해진 소년·소녀 악마들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어눌한 말을 지겹게 따라하거나 뒤에서 목을 낚아채 꺾었습니다. 아이의 필통 속은 매일같이 잘게 부러진 연필과 자, 부서진 볼펜으로 가득 찼습니다. 소심한 분풀이의 잔해입니다. 한번은 보온병을 내리쳐 튕겨진 보온병이 복도 유리창을 깨는 신공을 발휘한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해·공갈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무랐지만, 실은 건성으로 그랬습니다. ‘자식들, 놀랐겠군.’ 속으로는 그런 마음이었으니까요. 아이는 한 학기에 한 번씩은 학교에 있던 온갖 제 물건들을 넣어 터져나갈 듯한 가방을 둘러메고 하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 안에 내동댕이치며 다신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선언하곤 했습니다.
세밑에 들려온 중학생 아이들의 가슴 아픈 소식에 분노로 떨리던 아이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다시는 그곳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에 아이는 하룻밤 새 밤벌레처럼 포동포동 살이 오릅니다. 재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말에 고3을 한 번 더 다니는 줄 알고 사색이 되었다가, 집에서 공부하는 거라는 말에 재수가 아니라 삼수, 사수라도 얼마든지 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녀석, 정말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12년 동안 지옥의 계절을 다 겪어낸 아들, 장한 우리 아들이 올해의 최고 인물입니다.
김종옥
우리 엄마, 권상숙씨
2011년 여름, 대학원 과정과 업무를 동시에 하는 버거움 때문이라는 핑계로 백수를 자처했다. 백수 생활은 오랜만에 엄마를 마주하게 해주었다. 엄마가 생각보다 심각한 정도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이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게, 엄마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나의 백수 생활은, ‘엄마를 구하라!’ 이 미션으로 가득 찼다. 그래봤자 내가 한 거라곤,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것 말곤 다른 방법도 없었다.
라테 두 잔을 놓고 모녀가 속내를 털어놓은 서울 선릉역 근처의 그 카페가 시작이 된 것 같다. 중학생의 엄마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온 어두움을 눈물·콧물이랑 같이 쏟아낸 그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 하자 했다. 예술적 감각을 숨기고만 지낸 엄마에게 서예를 다시 하라 했다. 함께 인사동에서 붓 끝을 만져보고, 먹 향도 맡고, 가격도 흥정했다. 다음날부터 붓을 들고 서예학원을 등록하고 매일 두세 시간씩 쓰는데, 아니, 저 실력을 왜 그렇게 아까운 듯 숨겼을까. 변화는 그렇게 생활에서 시작됐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엄마를 돌려줘’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내게, 운명처럼 삼천배가 떠올랐다. 마음에 힘과 살을 붙이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루 3천배를 하든가, 아니면 1천배씩 10일 1만배를 하든가 해봐요.”
엄마는 그게 더 만만했는지 후자를 택했다. 첫날 4시간 동안 1천배를 하고는 집에서 잠만 잤다. 이 아줌마, 하루만 하고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틀, 사흘 몸 아파도 계속 무식하게 하는 것이었다. 온몸의 근육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결국 10일째 2시간30분 기록으로 끝냈다. 엄마를 바꾸고 싶었던 내 마음보다, 암울한 현실과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분의 열망이 숙연해지리만큼 강했다. 9월 중순에 끝난 1천배는, 매일 108배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5개월 만에 우리 집 아줌마는 몸도 마음도 딴사람이 되었다. 웃음소리도 어찌나 경박한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엄마의 5개월에서 딸이 가장 많이 배웠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그 변화를 몸과 마음과 생활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고 나 스스로 꽤 자랑스러워했는데, 아니었다. 순전히 엄마 자신이 변화를 이끌어내고 받아들였다.
지난 30년의 엄마는 사라졌다. 대신 깔때기 여사, 절하는 머신, 긍정의 화신 권상숙씨가 강림했다. 놀라운 아줌마 같으니라고! 엄마, 지난해보다 더 놀라울 2012년, 진심으로 축하해!
김민하
부글부글 김기태 기자
“부글부글….” 무슨 소리일까.
부엌에서 나는 된장찌개 끓이는 소리가 아니다. 김기태 기자가 내 마음속에 전달한 소리다.
을 읽기 시작했을 때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지식은 많지 않아 ‘어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 ‘어렵다’는 느낌을 싹 사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의 고정란인 ‘부글부글’이다. 처음엔 단순히 ‘재미’로 읽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먼저 ‘부글부글’ 페이지를 펴서 읽어보게 됐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김기태 기자가 ‘부글부글’을 쓸 때 독자인 나 역시 ‘부글부글’ 속을 끓이게 됐다. 속 터지는 사안에 대해 극도로 비꼬는 김기태 기자의 문체를 보면 내 속은 끓지만 한쪽 입꼬리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기자’에 대한 꿈을 갖고 대학 3년 내내 학보사 기자 일을 하고 편집국장으로서 오는 2월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확신은 없다. 확신도 없이 단순히 머리와 가슴에 ‘기자’라는 이름을 새기고 살아가던 기자지망생인 나에게 김기태 기자는 가슴까지 와닿는 기사를 전달했다. 감사했다. 기자지망생으로서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기자를 만들어준 김기태 기자에게. 김기태 기자의 ‘부글부글’을 매주 기다린다. 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부글부글’ 페이지를 펴고 기자 이름을 확인한다. “와!”를 외칠 때도 있고 “아…”를 외칠 때도 있다.
내가 기자가 되는 그 순간까지 김기태 기자를 문득문득 떠올리며 의 ‘부글부글’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닿아 에서 김기태 기자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기자님의 부글부글 열혈팬입니다”라고 말하며 인사하고 싶다.
오정인
인터넷 투표- 민희숙(minis603), 김재철(kjc8484), 조경래(ckl77), 이유경(love5513), 김만수(dodoclub), 이인영(liygh), 허호행( heotiger), 강우주(adat00), 김종귀(pointdol), 김성진(creep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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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계절을 이겨낸 아들
장한 우리 아들, 두말할 것도 없이 올해의 인물입니다. 초등학교 6년, 중·고등학교 6년 무려 12년 동안 우리 아들은 겪기 힘든 일, 겪지 말아야 할 일을 겪으며 악마의 계절을 넘어섰습니다. 그 기적 같은 생환을 기리며 우리 아들을 ‘나만의 올해의 인물’로 뽑습니다.
우리 아이는 ‘아스퍼거증후군’이라는 자폐 장애를 갖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표정과 말과 정서를 읽어내는 데 어려움이 있어 사회성이 떨어집니다. 그러나 인지 능력은 떨어지지 않아서, 스스로 익숙한 영역을 확장해가며 세상을 이해하려고 애씁니다. 그 지난한 작업에 경의를 표하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마주친 세상은 그렇게 예의 바른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이가 초등학교 때는, 어려서 분별력 없는 ‘새끼 악마들’ 속에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은 필통과 신발주머니와 준비물을 빼앗아 쓰레기통이나 담벼락 밑에 버리고 팽개쳤습니다. 책상 사이를 걸어 나오는 아이의 종아리에 녹슨 대못을 쥔 손을 늘어뜨려 길고 깊은 상처를 냈습니다. 고무줄총을 쏘아댔고, 분필지우개를 머리 위에 털었고, 운동장의 모래를 한 움큼 집어서 아이 머리 위에 뿌리거나 옷을 들춰 등허리에 쑤셔넣었습니다. 작은 악마들은 “얘가 이상해서 괜히 싫어요”라고 했고, 어떤 교사는 “애들 장난이 좀 지나친 감도 있지만 더 근본적인 문제는 아이가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한다는 겁니다”라고 했습니다. 아이는 일기장에 거대한 폭탄을 들고 가 학교를 폭파하겠다는 ‘근본적인’ 결심을 썼습니다.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는, 힘이 세고 영악해진 소년·소녀 악마들 속에 있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이의 어눌한 말을 지겹게 따라하거나 뒤에서 목을 낚아채 꺾었습니다. 아이의 필통 속은 매일같이 잘게 부러진 연필과 자, 부서진 볼펜으로 가득 찼습니다. 소심한 분풀이의 잔해입니다. 한번은 보온병을 내리쳐 튕겨진 보온병이 복도 유리창을 깨는 신공을 발휘한 적도 있었습니다. 엄마는 자해·공갈은 어리석은 짓이라며 나무랐지만, 실은 건성으로 그랬습니다. ‘자식들, 놀랐겠군.’ 속으로는 그런 마음이었으니까요. 아이는 한 학기에 한 번씩은 학교에 있던 온갖 제 물건들을 넣어 터져나갈 듯한 가방을 둘러메고 하교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집 안에 내동댕이치며 다신 학교에 가지 않겠다며 선언하곤 했습니다.
세밑에 들려온 중학생 아이들의 가슴 아픈 소식에 분노로 떨리던 아이의 눈빛을 보았습니다. 다시는 그곳으로, 그 시절로 돌아가지 않게 되었다는 안도에 아이는 하룻밤 새 밤벌레처럼 포동포동 살이 오릅니다. 재수를 할 수도 있겠다는 말에 고3을 한 번 더 다니는 줄 알고 사색이 되었다가, 집에서 공부하는 거라는 말에 재수가 아니라 삼수, 사수라도 얼마든지 할 것 같은 표정을 짓는 녀석, 정말 얼마나 이쁜지 모릅니다. 12년 동안 지옥의 계절을 다 겪어낸 아들, 장한 우리 아들이 올해의 최고 인물입니다.
김종옥
우리 엄마, 권상숙씨
2011년 여름, 대학원 과정과 업무를 동시에 하는 버거움 때문이라는 핑계로 백수를 자처했다. 백수 생활은 오랜만에 엄마를 마주하게 해주었다. 엄마가 생각보다 심각한 정도로 우울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가족이 모를 수밖에 없었던 게, 엄마는 전혀 티를 내지 않았다. 나의 백수 생활은, ‘엄마를 구하라!’ 이 미션으로 가득 찼다. 그래봤자 내가 한 거라곤, ‘옆에 있어주는 것’뿐이었다. 사실 그것 말곤 다른 방법도 없었다.
라테 두 잔을 놓고 모녀가 속내를 털어놓은 서울 선릉역 근처의 그 카페가 시작이 된 것 같다. 중학생의 엄마부터 지금까지 계속돼온 어두움을 눈물·콧물이랑 같이 쏟아낸 그 순간부터. 하고 싶은 것, 해야 하는 것을 지금 이 순간에 하자 했다. 예술적 감각을 숨기고만 지낸 엄마에게 서예를 다시 하라 했다. 함께 인사동에서 붓 끝을 만져보고, 먹 향도 맡고, 가격도 흥정했다. 다음날부터 붓을 들고 서예학원을 등록하고 매일 두세 시간씩 쓰는데, 아니, 저 실력을 왜 그렇게 아까운 듯 숨겼을까. 변화는 그렇게 생활에서 시작됐다.
잠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엄마를 돌려줘’ 프로젝트를 구상하던 내게, 운명처럼 삼천배가 떠올랐다. 마음에 힘과 살을 붙이는 무언가가 필요했다.
“하루 3천배를 하든가, 아니면 1천배씩 10일 1만배를 하든가 해봐요.”
엄마는 그게 더 만만했는지 후자를 택했다. 첫날 4시간 동안 1천배를 하고는 집에서 잠만 잤다. 이 아줌마, 하루만 하고 나가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이틀, 사흘 몸 아파도 계속 무식하게 하는 것이었다. 온몸의 근육이 아파 제대로 걷지도 못하더니 결국 10일째 2시간30분 기록으로 끝냈다. 엄마를 바꾸고 싶었던 내 마음보다, 암울한 현실과 마음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그분의 열망이 숙연해지리만큼 강했다. 9월 중순에 끝난 1천배는, 매일 108배로 지금까지 이어진다.
5개월 만에 우리 집 아줌마는 몸도 마음도 딴사람이 되었다. 웃음소리도 어찌나 경박한지. 가까이에서 지켜본 엄마의 5개월에서 딸이 가장 많이 배웠다. 사람이 마음을 먹으면 얼마나 변할 수 있는지, 그 변화를 몸과 마음과 생활에 어떻게 녹여낼 수 있는지를 보았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마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데 한몫했다고 나 스스로 꽤 자랑스러워했는데, 아니었다. 순전히 엄마 자신이 변화를 이끌어내고 받아들였다.
지난 30년의 엄마는 사라졌다. 대신 깔때기 여사, 절하는 머신, 긍정의 화신 권상숙씨가 강림했다. 놀라운 아줌마 같으니라고! 엄마, 지난해보다 더 놀라울 2012년, 진심으로 축하해!
김민하
부글부글 김기태 기자
“부글부글….” 무슨 소리일까.
부엌에서 나는 된장찌개 끓이는 소리가 아니다. 김기태 기자가 내 마음속에 전달한 소리다.
을 읽기 시작했을 때 사회와 정치에 대해 관심은 있지만 지식은 많지 않아 ‘어렵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많았다. 그 ‘어렵다’는 느낌을 싹 사라지게 만든 것이 바로 의 고정란인 ‘부글부글’이다. 처음엔 단순히 ‘재미’로 읽었는데 시간이 흐를수록 가장 먼저 ‘부글부글’ 페이지를 펴서 읽어보게 됐다. 그중에서 개인적으로 김기태 기자가 ‘부글부글’을 쓸 때 독자인 나 역시 ‘부글부글’ 속을 끓이게 됐다. 속 터지는 사안에 대해 극도로 비꼬는 김기태 기자의 문체를 보면 내 속은 끓지만 한쪽 입꼬리는 어느새 올라가 있었다.
고등학생 때부터 막연히 ‘기자’에 대한 꿈을 갖고 대학 3년 내내 학보사 기자 일을 하고 편집국장으로서 오는 2월 퇴임을 앞두고 있지만 확신은 없다. 확신도 없이 단순히 머리와 가슴에 ‘기자’라는 이름을 새기고 살아가던 기자지망생인 나에게 김기태 기자는 가슴까지 와닿는 기사를 전달했다. 감사했다. 기자지망생으로서 존경하는 혹은 좋아하는 기자를 만들어준 김기태 기자에게. 김기태 기자의 ‘부글부글’을 매주 기다린다. 이 도착하면 가장 먼저 ‘부글부글’ 페이지를 펴고 기자 이름을 확인한다. “와!”를 외칠 때도 있고 “아…”를 외칠 때도 있다.
내가 기자가 되는 그 순간까지 김기태 기자를 문득문득 떠올리며 의 ‘부글부글’을 생각할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기회가 닿아 에서 김기태 기자를 직접 만날 수 있다면, “기자님의 부글부글 열혈팬입니다”라고 말하며 인사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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