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둘기 날아오릅니다. 킬러 얼굴에 묻은 피가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사이로 비치는 햇살에 반짝입니다. 저우룬파(주윤발)와 리슈셴(이수현)이 서로 권총을 겨눕니다. 그러나 액션은 춤에 가깝습니다. 서로 권총을 얼굴에 겨누는 완벽한 대칭의 액션은, 탱고 댄서 2명이 동시에 어깨에 손을 올리는 것처럼 보입니다. 피가 바닥에 쌓여도 그들은 쓰러지지 않습니다.
야구팬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탄흔
반면 그들 둘의 대결에 피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들은 총알을 쏘는 대신 비둘기처럼 하얀, 지름 7.23cm의 공을 던집니다. 투구 때마다 숨죽이는 관중들은 보이지 않게 피가 흐르는 걸 모릅니다. 29살의 베테랑 최동원과 24살의 선동열은 무표정합니다. 투구 수는 벌써 100개를 넘깁니다. 두 거인의 삼각근 아래 젖산이 쌓인 지 오랩니다. 첩혈쌍웅의 핏빛 물감보다 더 지독한 피가 보이지않게 흐릅니다. 1987년 5월16일의 부산 사직구장. 두 거인은 자존심의 권총을 서로에게 겨눴습니다. 팔꿈치와 손목의 연골이 마찰합니다. 두 거인은 고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연장 15회 2-2 무승부. 비둘기처럼 흰 공은 서로의 가슴에 정확히 같은 양의 자존심의 피를 쏟게 했습니다.
최동원과 선동열, 선동열과 최동원. 이날의 승부는 야구팬의 기억에 지워지지 않는 탄흔을 남겼습니다. 롯데 자이언츠와 해태 타이거즈의 선발로 나온 둘은 연장 15회까지 200개가 넘는 공을 던졌습니다. 최동원은 209개, 선동열은 232개의 공을 던졌습니다. 선동열의 이날 투구 기록은 여전히 깨지지 않은 기록입니다. 이들의 맞대결 성적은 1승1무1패. 두 거인이 흘린 자존심의 피는 같습니다.
두 거인의 선수 이후의 인생은 달랐습니다. 선동열은 일본에서 ‘나고야의 선’으로 불리며 대활약합니다. 고향 광주와 야구 열정은 같지만 정치적 분위기는 정반대인 대구 연고팀에서 감독으로 데뷔합니다. 최동원은 1988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 결성을 주도하다가 실패합니다. ‘괘씸죄’로 그해 11월 삼성으로 트레이드됐습니다. 어깨 부상으로 1990년 은퇴합니다. 1991년 지방의회 선거 때 부산 서구에서 출마한 사실은 유명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당시 몸담았던 꼬마 민주당 간판으로 말입니다. 3당 합당을 심판하겠다고 나섰으나 떨어졌습니다.
감독의 맞대결 꿈꾸던 야구팬의 상처
그러나 2011년 9월14일 영면한 최동원의 자존심이 상처받았다고 생각할 야구팬은 없을 겁니다. 숨지기 전 2군 감독이었던 최동원이 지금 고향팀 감독이 된 선동열보다 뒤진다고 생각할 야구팬도 없을 겁니다. 오히려 상처받은 건 한국 야구의 자존입니다. 최동원 롯데 감독과 선동열 기아 감독의 맞대결을 꿈꾸던 야구팬의 상처가 조금 더 크겠죠. 라이벌을 잃은 선동열 감독의 상심도 클 것 같습니다. 미국 복싱팬이라면 올해 숨진 조 프레이저와 무하마드 알리를 잊을 수 없을 겁니다. 한국 야구팬에게 최동원과 선동열이 그런 존재인 것처럼. 영화 이 보다 두 거인에 대한 훨씬 훌륭한 오마주가 될 것도 자명.
고나무 기자 dokk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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