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가까운 검사 생활을 하며 사회생활의 대부분을 진실게임 속에서 살아온 나는, 사람들의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는 약간의 ‘의심병 환자’다. 여러 상반된 주장과 의견 속에서 실체 관계를 파악해내는 ‘사실인정’이 검사의 임무고, 이것은 법률 적용 이전에 선결돼야 하는 문제다.
하지만 이는 생각보다 훨씬 더 어려운 작업이다. 말을 액면 그대로 믿지 않고 이면에 숨은 의도에 주의하게 되는 이유다. 특히 인간은 워낙 복잡한 존재이기 때문에, 또 사회적으로 많이 알려진 사람은 선의든 악의든 일정 부분 위선의 가면을 쓸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기 때문에, 그런 복잡성을 이해하지 않으면 가장 중요한 사실관계 확인에 실수가 생기게 된다. 이 때문에 갖게 된 원칙을 요약하면 ‘사람은 그 말보다 행동으로 판단하라’, 그리고 ‘주장보다 증거로 판단하라’쯤 되겠다.
20여 년 대중에 노출된 신비주의?
그런 의미에서 오랫동안 안철수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지켜본 나로서는 참으로 그가 특이한 존재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 자신이 한 약속을 액면 그대로 지키는, 교과서에서나 봄직한 사람을 곁에서 보는 느낌. 신선하고 때로는 경이롭기까지 하다. 이런 사람이 그토록 음모와 술수와 경쟁이 춤춘다는 복잡한 기업 생태계에서 살아남아 오벨리스크처럼 우뚝 솟아 있을 수 있다니 하는 느낌 말이다.
최근에 안철수라는 이름에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자, 일부에서는 그에게 이른바 ‘신비주의’라는 꼬리표를 달아줬다. 하지만 나는 동의하기 어렵다. 컴퓨터 바이러스를 퇴치하는 백신 개발자로서 우리 사회에 안철수라는 이름 석 자를 알린 이후 20여 년 동안 그만큼 대중에 노출된 사람이 있을까. 그만큼 여러 책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대중에게 알리고, 그만큼 여러 자리를 통해 검증된 사람이 또 있을까. 아울러 콘서트라는 형식을 통해 대중과 폭넓은 접촉을 하며 그만큼 많이 노출된 사람도 많지
는 않을 듯하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그를 베일에 가려진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걸까. 사회적으로 알려진 인물에 대한 선입견, 즉 적당히 농담도 하고, 말도 좀 바꾸고, 때로는 둘러대기도 해야 되는, 또 필요에 따라서는 냉혹해지고, 성공을 위해서는 어떠한 악행도 불사하는 숨겨진 모습에 대한 왜곡된 기대. 아직 사람들에게 노출되지 않은 부정적인 모습이 반드시 있으리라는 믿음. 좀더 노골적으로 표현하자면, 공인에게 숨겨진 치부를 보고 싶어 하는 대중의 은근한 바람. 한발 더 나아가 그 치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입맛대로 요리하고 싶어 하는 언론과 정치권 또는 대중의 은밀한 욕망이 충족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이런 모습을 은근히 기대하는 사람들에게 안철수 원장은 퍽이나 실망스러운 사람일지 모른다. 이중인격, 위선, 권모술수, 교언영색 등 사회적 인간으로부터 찾아내고자 하는 어두운 이면을 발견하기 무척 어려운 인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본 안 원장은 진정성 있는 사람이다. 그의 책 제목대로 그는 영혼의 승부사다. 자신이 가치 있다고 판단하고 관심을 가지는 모든 일에 혼신을 기울이는 사람이다.
그는 원칙적인 사람이다. 공적인 일이라면. 그것이 사업이든 교육이든 무엇이든 개인적인 이해관계와 감정을 배제하고 원칙대로 행동한다. 일반적인 시각으로 본다면 융통성 없는 사람으로 비칠지도 모른다.
그는 언행일치한 사람이다. 생각한 대로 말하고 말한 대로 행동한다. 앞으로 그의 행동은 사실 그동안 그가 한 말, 그가 쓴 책, 그가 한 강연 등을 통해 거의 99% 이상 예측할 수 있다. 말과 글 속에서 뭔가 ‘숨겨진 구석’을 찾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그를 이해하거나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재미없고 보수적인 사람
그는 동시에 따뜻한 사람이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장 사랑하고, 공동체를 사랑하고, 인간미가 넘친다. 그런 의미에서 그는 보수적인 사람이기도 하다. 휴가 중에 부인과 딸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서 책을 보며 시간을 보내는, 한편으로는 참 재미없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구구한 설명이 무슨 소용 있으랴. 사람을 이해하는 것은 말보다는 행동이라는 것은 누구에게나 적용되는 얘기인데. 나는 안 원장이 한 말보다도, 그가 쓴 책보다도, 누군가가 안 원장의 사회적 기여에 대해 말할 때 붉어지던 안 원장의 수줍은 표정에서, 돌아가신 안철수연구소의 전 최고경영자(CEO)였던 김철수 사장과의 추억을 말할 때 붉어지던 눈시울에서 그의 진심을 좀더 느끼고, 그를 좀더 이해하게 된다.
강인철 변호사
*강인철 변호사는 1986년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20여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다, 지난 9월 순천지청장을 끝으로 검찰을 떠나 12월5일 변호사 개업을 했다. 안철수 원장이 기부한 안철수연구소 주식 지분 절반으로 재단을 만드는 일을 맡아 안 원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졌다.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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