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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동안 노조만 생각했다”

노조설립 뒤 조장희 부위원장의 해고에도 의연한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 “초미니 노조지만 슈퍼노조가 될 것”
등록 2011-07-29 14:19 수정 2020-05-03 04:26
지난 7월19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 한겨레21 이종찬

지난 7월19일 기자회견에서 발언하는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 한겨레21 이종찬

“축하해.”
지난 7월19일 삼성노조 설립보고 기자회견 현장. 박원우 삼성노조 위원장에게 김영태 삼성노조 회계감사가 다가와 힘껏 안는다. 박 위원장이 활짝 웃는다. 웃음 뒤 상황은 녹록지 않다. 조장희 부위원장이 지난 7월18일 노조 신고필증 발부 1시간 전에 해고됐다. 위기감을 느낄 만하다. 비장한 표정을 지을 법도 하다. 그러나 그런 표정은 찾아보기 힘들다. 그저 대견하다는 듯 서로를 부둥켜안고 다독인다.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조 부위원장 일도 결국 잘 해결될 것”이라며 “이제 시작”이라고 말하는 박 위원장의 표정에는 무노조 삼성이라는 편견을 깨는 상식의 표정이 담겼다. ‘당장 해야 할 일’을 묻자 “의젓하게 버티는 일”이라고 답한다. 조 부위원장을 다분히 의식한 말이다.

조금씩 보이는 변화의 싹

박 위원장은 1999년 에버랜드 리조트사업부 요리사로 입사했다. 말솜씨보다는 빠른 손이 필요한 주방의 생리에 익숙해서인지 말수가 적다. 대포차 문제 등으로 조장희 부위원장이 해고 위기에 몰리자 평소 친분이 있던 4명이 모여 ‘욱해서’ 만든 노조라고 어떤 사람들은 애써 폄훼하지만 박 위원장은 웃어넘긴다. “3년 동안 노조만 생각했다”며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 비자금 폭로가 계기가 돼 처음 보는 두툼한 노동법 책까지 품고 팠다”고 말했다.

김영우 감사가 과묵한 위원장의 인터뷰를 거든다. “형님한테는 미안하죠. 잘나가는 요리사였는데…. 우리랑 어울리지만 않았어도.”

박 위원장의 직급은 주임이다. 원래대로라면 진작 승급돼 대리가 됐어야 할 사람이다. “과장이 됐어도 충분한 사람이죠. 이만큼 사람 좋은 사람이 없어요.” 인터뷰에 끼어든 김 감사의 말이 그치지 않는다. 박 위원장의 주 전공은 양식이지만 한식까지 아우를 정도로 사내에서는 ‘에이스’다. 그런 에이스의 아내도 에버랜드의 사원이다. “커가는 아이를 봐서 반대를 해도 할 말이 없을 것 같은데, 다행히 묵묵히 지켜봐준다”고 한다. 암묵적 지지를 그냥 얻은 것은 아니다. “옳은 길을 갈 테니 조용히 지켜봐달라”는 말을 한 지 1년여 만에 얻은 소득이다. 가족을 설득하는 시간이 그 정도라면 지금 동료들의 관망에 실망하기는 이르다. “생각보다는 침체돼 있다”고 솔직하게 말한다. 그래도 변화의 조짐은 보인다. 3년 전 “아무것도 못하고 쫓겨날 것”이라고 타이르던 동료들의 눈빛이 하루이틀 사이에 미세하게나마 변했다. 사원의 복리후생이 해결 과제의 첫 번째라면 삼성그룹 안에 있는 사원협의회에서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노조를 만든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정상적인 월차나 병가도 못 내는 형편”이라며 “사원협의회는 사실상 이 과정에서 어떤 기능도 맡지 못한다.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할 수 있는 노조가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한다.

회사 이윤 먼저 생각한 사원협의회

실제로 조 부위원장은 사원협의회 위원으로 6년 동안 활동했다. “임금협상이나 휴무를 결정하면서도 동료들의 어려운 현실보다는 회사의 이윤을 먼저 생각하는 동료들이 대부분이었다”며 “누구의 처지에 서느냐를 따지면 노조와는 질적으로 다르다”고 말한다. “4명으로 시작한 초미니 노조지만 우리는 슈퍼노조가 될 것”이라며 객기를 부리듯 목소리를 높인다. 논리도, 결기도 노동조합의 대표 상근자라기보다 요리사에 가깝다. 악수하려고 맞잡은 손이 부드럽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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