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묘년을 앞두고 이명박 정부가 마련한 신묘한 대국민 새해 선물은 신규 방송 채널 5개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2010년 12월31일, 종합편성채널(종편) 사업자 4곳, 보도전문채널 사업자 1곳을 선정해 발표했다. 조선일보·중앙일보·동아일보·매일경제가 각각 최대 주주로 참여한 CSTV·jTBC·채널A·MBS 등이 종편 사업권을 얻었다. 종편은 뉴스를 포함해 모든 종류의 프로그램을 제작할 수 있는 방송채널이다. 이번 결정으로 4개의 SBS가 새로 탄생한 셈이다. 연합뉴스가 최대 주주로 참여한 연합뉴스TV는 보도전문 채널로 선정됐다. 3년여에 걸친 종편 논란이 이것으로 끝나는가 싶었다.
1월18일, 212개 시민사회단체가 성명을 발표했다. “‘조·중·동 방송’은 원천무효이며, 앞으로 ‘조·중·동 방송’ 취소운동에 나서겠다”고 선언했다. 이를 위한 상설 연대기구를 구성하고, “종편 안착을 저지하는 장기적이고 끈질긴 실천을 전개”한다고 밝혔다. 끈질긴 실천 가운데는 다가오는 총선·대선 뒤에 신규 종편에 대한 모든 특혜를 아예 취소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끝난 일이 아니었던 것이다. 이들 단체는 “이제부터 진짜 시작”이라는 입장이다. 종편에 관한 한 하나부터 열까지 절대 수용할 수 없다는 태도다.
다 끝난 것처럼 보였던 일을 뒤집어엎겠다는 결심에 부채질을 한 것은 종편 최종 심사였다. 심사의 실체가 뒤늦게 알려지면서 정치논리와 밀실파행으로 점철된 종편 선정의 부당성이 다시 한번 부각됐다. 종편 선정을 위한 심사는 지난해 말, 7박8일 동안 진행됐다. 위원장을 포함한 14명의 심사위원이 참여했다(표1 참조). 심사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도 심사위원 명단은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다. 나중에 공개된 심사위원의 면면은 공정성과는 거리가 있었다.
14명 심사위원 가운데 7명을 방송통신위원회가 추천했는데, 누구를 심사위원으로 선정할 것인지 논의하는 일부터 정부·여당이 독점했다. 야당의 목소리는 반영되지 않았다. 야당 추천 방통위원들이 퇴장한 가운데 여당 추천 방통위원들끼리 심사위원을 선정했기 때문이다. 방통위 추천을 받은 7명 심사위원 가운데 언론 전공자는 김도연 국민대 교수(언론정보학)뿐이다. 김 교수는 보수 언론학자들이 2005년 11월에 만든 ‘공영방송 발전을 위한 시민연대’에 창립 발기인으로 참여한 전력이 있다. 당시 정연주 사장이 이끄는 한국방송을 비판하는 편에 섰던 셈이다. 나머지 6명은 경영학·경제학·법학 등을 전공한 ‘비언론계’ 인물이다.
관련 학회 추천을 받은 위원들의 면면도 기묘하다. 한국방송학회가 추천한 조성호 경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방통위 산하 미디어다양성위원회에서 활동해왔다. 방통위와 맺은 각별한 관계가 심사위원으로 선정된 주된 배경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그나마 언론 전문가는 조 교수뿐이고 경제학회 추천 2명, 경영학회 추천 1명, 공인회계사회 추천 1명,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추천 1명이 심사에 참여했다. 종편에 대한 법적·경제적·기술적 검토가 필요했겠지만, 애초부터 언론의 공정·공익성에 대한 고려는 큰 변수가 아니었음을 방증한다.
여론이 불신하는 조선일보가 공정성 1위심사위원장을 맡은 이병기 서울대 교수(전기공학부) 역시 통신기술 분야를 전공한 과학자이지 언론 전문가는 아니었다. 이 교수는 원래 민주당 추천으로 방통위원을 맡았던 전력이 있다. 이 교수를 심사위원장에 앉힌 것은 최시중 방통위원장이었다. 최 위원장이 하필 민주당 추천 방통위원을 지낸 인물을 선택한 이유에 잠시 의문이 일었으나 금세 답이 나왔다. 이 교수는 지난해 12월27일 발족한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으로 참여했다. 국가미래연구원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선용 싱크탱크다. 겉으로는 민주당, 속으로는 한나라당인 ‘폴리페서’라는 비난이 이 교수에게 쏟아졌다. 그래도 이 교수는 “(국가미래연구원 참여가) 종편 심사와는 전혀 별개의 문제”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이번 심사 결과에 대해 “‘집단지성’이 만들어낼 수 있는 최적의 결정, 최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심사위원들의 ‘집단지성’에 따르면 가장 공정한 언론은 조선일보였다. 심사위원회가 매긴 배점이 뒤늦게 공개됐는데, 총점 1천 점 가운데 250점을 차지해 비중이 가장 높은 ‘공정·공익성의 실현 가능성’ 분야에서 조선일보의 CSTV가 1등(218.21)을 차지했다. 2등은 중앙일보의 jTBC(215.79)였고, 동아일보의 채널A(212.54)가 3등이었다. 2010년 9월, 국민 1천여 명을 대상으로 한 미디어리서치 조사를 보면 응답자의 27.8%가 ‘가장 불신하는 언론’으로 조선일보를 꼽았다. 동아일보(14.7%)와 중앙일보(13.7%)가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종편 심사위원들의 잣대와 국민 전체의 잣대가 전혀 달랐던 것이다.
종편 심사 공정성 논란은 3년여에 걸친 종편 파행의 또 다른 절정이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 취임 직후인 2008년 2월, 방통법을 개정했다. 독립기구였던 방통위를 대통령 아래 정부 기구로 바꿨다. 이때부터 방송 독립의 큰 길이 뒤틀렸다. 첫 번째 파행이다. 같은 해 3월, 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최시중을 방통위원장에 임명했다. 언론을 정치권력이 직접 장악하겠다는 야심을 그대로 드러냈다. 두 번째 파행이다. 뒤이어 12월에는 신문·방송 겸영을 허용하는 신문법·방송법 등을 한나라당이 국회에 제출했고, 2009년 7월 이윤성 국회부의장이 미디어법을 직권상정해 한나라당 단독으로 날치기 처리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은 공공연하게 재투표·대리투표를 감행했다. 세 번째 파행이다. 민주당 의원들은 심의·표결권이 침해됐다며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심판청구를 냈는데, 2010년 10월 헌재는 “권한 침해가 있었다”고 인정하면서도 법안의 효력에 대해서는 “국회가 알아서 하라”는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네 번째 파행이다. 법률 통과의 절차적 불법성을 지적받았음에도 정부와 한나라당은 “알아서” 바로잡지 않고, “알아서” 밀어붙인 끝에 최종 심사까지도 밀실에 서 결정했다. 다섯 번째 파행이다. 언론 공정성 문제는 둘째 치고 처음부터 끝까지 법적 파행으로 점철했다. 시민사회단체가 ‘원천무효’를 주장하는 이유다.
약탈과 강탈의 욕심은 끝없어파행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1월1일 지면에서 “종편이 시장에 안착하려면 2~3년간 낮은 채널 번호를 확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현재 방통위가 규제 완화를 논의하고 있는 의약·생수 광고의 경우 일정 기간 종편 사업자에만 우선적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했다. 의약 광고 규제를 푸는 것도 엄청난 일인데, 그마저도 자신들에게만 달라는 것이다. 같은 날 동아일보는 “방통위는 새롭게 출범하는 종편 채널들이 자리를 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후속 조치와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고, 중앙일보도 “새 방송사들이 시장에 안정적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제도적 뒷받침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먹고살 방법을 내놓으라고 이들 신문이 득달같이 정부에 달려드는 이유가 있다. 2009년 현재 지상파 방송과 라디오를 더한 방송광고 시장 규모는 1조8490억원이다. 매체별 광고비 점유율 변화를 보면 1999년 전체 광고시장의 32.3%를 차지했던 방송광고가 2001년 36.1%로 정점에 올라선 뒤 2009년 23.0%를 기록해 점차 하락하고 있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광고홍보학)는 “1개 방송사당 4천억~5천억, 4개 종편을 합쳐 1조5천억~2조원 규모의 방송광고 시장 확대가 필요한데, 현재 시장 규모가 2배로 성장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라고 분석한다.
결국 ‘조·중·동 방송’이 택할 수 있는 길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조준상 언론개혁시민연대 사무총장은 지적한다. “국민의 호주머니를 털거나 다른 언론사의 광고수입을 약탈해오는 것”이다. 지역신문·군소신문·케이블방송 등의 광고수입을 빼앗아 종편 채널에 넘겨주는 것이 ‘약탈 방식’이다. 이렇게 되면 ‘조·중·동 방송’을 살리기 위해 수십 개 언론사가 도산하게 될 것이다. 한국방송 수신료를 인상해 한국방송2 텔레비전의 광고를 종편에 내주거나, 전문의약품 광고를 허용하는 것이 ‘국민의 호주머니를 터는 방식’이다. 한국방송 수신료는 세금에 버금가는 성격을 지니므로 국민의 혈세를 더 걷는 효과를 낼 것이고, 의약품 광고는 국민의 의약품 오·남용을 부추겨 건강보험 재정을 악화시키면서 결과적으로 더 많은 보험료 부담을 국민에게 전가할 것이다.
이 가운데서도 최근 논란이 집중되는 것은 전문의약품 광고 허가 문제다. 이미 방송 광고를 하고 있는 기존 기업을 압박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 그동안 아예 광고를 하지 못했던 의약 분야를 공략하겠다는 것이 정부와 ‘조·중·동 방송’의 계산이다. 세계적으로 전문의약품의 방송 광고를 허용하는 나라는 미국과 뉴질랜드뿐이다.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실장은 “건강보험 재정에서 약제비가 차지하는 비중이 30%로 이미 다른 나라의 2배 규모인데, 의약품 광고까지 허용되면 오·남용에 따른 약제비 비중이 커질 것이고, 결국 건강보험 재정이 축나면서 국민의 보험비 부담이 더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 문제가 도드라진 배경에는 주주 구성 문제도 있다. 매일경제의 MBS에는 동광제약이 자본금의 1%를 차지하는 주요 주주로 올라 있다. 연합뉴스TV에는 을지병원이 4.959%를 투자한 주요 주주다. 방통위는 납입자본금의 1% 미만을 투자한 주주 명단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최근 조선일보의 CSTV에 동아제약·녹십자, 중앙일보의 jTBC에 일동제약이 각각 지분 1% 미만의 주주로 참여한 사실이 밝혀졌다. 얼핏 보면 이들의 비중이 크지 않은 듯해도, 모 신문사를 제외한 주요 주주가 얼마 되지 않는 점을 감안하면 의약기업의 비중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2 참조). 처음부터 의약 광고 규제 철폐를 미끼 삼아 투자를 이끌어낸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대목이다. 조준상 언론개혁연대 사무총장은 “조·중·동의 부당한 압력을 받아 투자한 기업이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투자자들이 ‘조·중·동 방송’에 미칠 영향에 대한 우려도 많다. 중앙일보의 jTBC의 2대 주주 디와이에셋은 디스플레이기 제조업체인 SFA의 최대주주인데, SFA는 옛 삼성항공에서 분사한 회사다. SFA의 2대 주주는 삼성전자다. 삼성전자는 “디와이에셋의 한 출자회사에 지분 참여를 한 것은 맞지만 출자자금 흐름이 반대이기 때문에 중앙일보 컨소시엄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이지만, 중앙일보와 삼성의 ‘역사적 관계’ 때문에 의구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jTBC에는 외국자본도 들어와 있다. 텔레비아사히는 일본 자본이고 터너아시아퍼시픽벤쳐는 <cnn> 창업자 터너의 자본이다. 외국자본의 한국 언론 진출이 본격화된 셈이다. 김승수 전북대 교수(신문방송학)는 “이미 방송장비 시장의 85%를 일본에 의존하고 있는데 이제는 기술 종속을 넘어 프로그램 종속, 문화 종속까지 염려되는 상황”이라고 우려한다. 연합뉴스TV에 출자한 을지병원(4.959%)은 적법성 논란이 일고 있다. 의료법상 의료법인이 영리행위를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이다. 조선일보의 CSTV 2대 주주는 투캐피탈(Too Capital)이라는 금융회사인데 국내 기업인지 외국 기업인지조차 알려져 있지 않다.
주주 구성에 눈길이 쏠리는 것은 공정 보도의 ‘칸막이’가 붕괴될 것이란 우려와 관련이 있다. 권언유착으로 탄생한 ‘조·중·동 방송’이 주주로 참여한 여러 기업과 다시 유착해 언론의 공정성을 흔들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신태섭 동의대 교수는 “이미 한국 언론은 정부·한나라당·대자본·부유층의 입장과 의견을 과도하게 반영해왔는데, 대기업의 방송 진출로 광고와 기사를 맞바꾸는 일이 빈번해지면서 소수자와 서민의 목소리가 더욱 위축될 것”이라고 염려했다.
‘조·중·동 방송’이 시장 안착에 성공하건 실패하건 그 염려에는 변함이 없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은 “궁극적으로 막아야 할 것은 삼성방송, 현대자동차방송, SK방송”이라고 말했다. 제한된 광고시장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등장한 종편 사업자들이 시장 경쟁 끝에 부실해지면 이들을 인수·합병할 능력이 되는 것은 재벌그룹밖에 없다는 것이다. 시민들로선 ‘조·중·동 방송’이 상업적 성공을 이뤄도 걱정이고, 실패해도 걱정이다.
‘조·중·동 방송’ 탄생의 진짜 이유는 결국 정치적인 데 있다. 지난 1월2일 방송독립포럼은 성명을 통해 “2012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권은 정권 재창출을 위해 언론의 협조를 요구하고, 언론은 보도를 통해 이에 협조하면서 또 다른 특혜를 위해 압력을 넣는 행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개탄했다. 13일 미디어공공성포럼은 “조·중·동 방송으로 국민 여론을 통제하여 장기 집권에 유리한 구도를 만들고 조·중·동에 방송사업 진출의 기회를 주는 것”이 종편 선정의 본질이라며 “앞으로 (민주주의) 광장도 (자본주의) 시장도 아닌 난장판이 예상된다”고 우려했다.
조·중·동 방송 퇴출을 선거 공약으로
시민사회단체들은 ‘조·중·동 방송’의 탄생이 언론계의 ‘4대강 사업’이라고 지적한다. 민주주의·방송산업 등을 한꺼번에 황폐화해 “결국에는 우리 모두를 공멸의 구렁텅이에 몰아넣는 가장 이기적이고 어리석고 위험한 결정”(신태섭 교수)이라는 것이다. 언론단체는 물론 각 분야 시민사회단체 상설 연대기구를 만들어 대응하려는 흐름도 이런 절박함에서 비롯된다. 김유진 민언련 사무총장은 “늦어도 2월 중에 수백여 단체를 망라하는 ‘조·중·동 방송 퇴출’ 기구가 출범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설기구는 종편 선정 과정 전체에 대한 국정조사와 청문회를 추진하고 이를 위한 국민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2012년 총선·대선에 출마하는 정치인·정당이 ‘조·중·동 방송 퇴출’을 선거 공약으로 내걸도록 하는 유권자 운동을 함께 전개한다는 구상이다. 김 사무총장은 “총선·대선에서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을 수 있다면, 종편 사업자에게 주어진 비정상적 혜택을 바로잡을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2000년 총선연대에 버금가는 유권자 운동의 물결이 다시 한번 꿈틀거리고 있다.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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