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에서 무서운 장면은 마침내 죽었다 싶은 ‘그놈’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다. 죽여도 죽여도 죽지 않고 살아나는 악마 혹은 악귀. 한국에선 악법이 그렇다. 지겨운 각설이타령, 군가산점 부활이 죽지도 않고 돌아왔다. 강산이 한 번도 더 변했다. 20세기 유물, 군가산점 조항은 1999년 위헌 결정을 받고 세기말에 사라졌다. 그러나 북쪽이 도발하고 남쪽이 응전하는 ‘사태’ 등이 터지면 국민의 불안을 틈타 침투하는 세력이 있다. 죽은 법률을 살리려 애쓰는 분들이다. 국방부가 돌격대를 맡고 한나라당이 법률로 후방을 지원하며 설을 앞두고 ‘억울한 예비역’에게 선물을 주겠다고 나섰다.
위헌도 살리는 위법한 세력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다들 위헌으로 게임이 끝난다고 생각한다. 바위로 계란을 치듯이, 기나긴 논란과 지난한 소송과 격렬한 반발을 뚫고서 어렵게 위헌 결정이 나온다. 그러나 기다림은 오래고 기쁨은 오래지 않는다. 헌법재판소 위헌 결정문의 잉크가 마르기 전에, 소송 당사자의 눈물이 마르기 전에, 헌재의 결정을 ‘재해석’ 하시며 이른바 ‘개정안’을 만드는 이들이 있다. 헌재는 지난해 12월28일 허위 통신을 처벌하도록 규정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1월4일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은 바로 개정안을 내놓았다. 갈수록 속도전의 ‘게이지’가 높아져 이제 일주일도 걸리지 않는다.
헌재는 폐지하라 했는데 그들은 개정한다. 아니 개악한다. ‘공익을 해할 목적’이라는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이 애매하고 모호해 위헌의 근거가 되니 ‘공공복리의 현저한 저해’로 ‘리메이크’ 하고, 반세기 넘은 타령의 후렴구 ‘국가 안전보장’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덧붙였다. 헌재를 향해 ‘표현의 자유 처드삼’ 하는 꼴이다. 삼권분립의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조차 지키지 않는 세력이다. 이렇게 그들은 죽은 게임도 살린다.
공포스러운 그들이 공포를 조장한다. 위헌 결정을 받은 조항이 없으면 인터넷에 거짓말이 난무할 것처럼, 야간 옥외집회 금지 조항이 없어지면 밤마다 전투라도 벌어질 것처럼 말한다. 누군가 허위 사실을 퍼뜨리면 처벌할 명예훼손 관련 법조항이 있고, 국민의 수면권과 시민의 안전을 ‘수호할’ 집시법 조항이 있다는 사실은 말하지 않는다. 야간 옥외집회를 원천 금지한 집시법 10조에 대해서도 그랬다. 2010년 헌재는 집시법 10조에 대해 헌법 불합치 결정을 하면서 2010년 6월까지 국회에 법률 정비를 할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한나라당 의원들은 지난해 내내 옥외집회 금지 조항을 살려내기 위해 무던히도 애썼다. 이런 분들이 정작 병역거부자의 대체복무제를 도입하는 법안을 만들라는 헌재의 권고는 10년째 ‘생까고’ 있다.
이번엔 삼권분립의 또 다른 축인 정부가 나선다. 정부도 국회처럼 헌법은 별로 존중하지 않지만 여론은 지극히 사랑한다. 위헌 조항을 없애지 않고 살리는 근거로 어김없이 여론이 동원된다. 군가산점 부활을 다수가 지지하고, 인터넷 허위 사실 유포 처벌을 과반이 원한단 것이다. 그러나 이들에겐 여론도 듣는 여론과 듣지 않는 여론이 따로 있어서, 야간 옥외집회 금지에 반대하는 여론이 많다는 사실엔 눈감아버린다.
이들의 ‘대체 악법’이 위하는 것은 개인이 아니라 국가, 약자가 아니라 강자다. 원래 위헌 여부를 국민의 투표로 묻지 않는 이유는 다수결로 해결되지 않는 소수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이런 헌법의 취지를 모르는 척 무시한다. 차라리 위헌 결정에 솔직히 “난 반댈세” 하면 좋겠다.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 누군가의 말대로, 만명 앞에서만 법이 평등한 나라다. 만명 가운데 200명은 헌법 위에 있다. 사사건건 대체 악법을 내놓는 한나라당 의원 171명에 사실상 한나라당 의원 30여 명을 더하면 나오는 숫자다. 지금 국회에서 헌법에 반하는 이들이 그 정도는 된다. 이들의 손에서 악법은 죽지 않는다. 다만 부활할 뿐이다. 영화의 속편에 나오는 악마는 전편의 악마보다 끔찍한 법이다. 법이라고 다를쏘냐.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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