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조선 1번지. 부산역 뒤편으로 나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 수만t급의 컨테이너선이 머리를 내밀고 있다. 그곳에 영도 조선소가 있다. 1937년 우리나라 첫 조선소가 이곳에 들어섰다. 그리고 처음으로 390t짜리 철강선을 제작했다. 최초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국내 처음으로 수출 철강선을 건조했고, 경비정(군함)을 만든 것도 최초다. 냉동선을 만든 것도, 석유시추선을 만들어 덴마크에 판 것도 영도 조선소가 처음이다.
지난해 12월15일 회사 쪽의 구조조정안이 발표되자 한진중공업 노조는 12월20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1월11일 한진중공업 부산 영도 조선소 85호 크레인 앞을 파업 노동자들이 지키고 있다. 8년 전 이 크레인에서 김주익 노조지회장이 129일 동안의 점거농성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겨레 정용일 기자
지난 1월11일 한진중공업 영도 조선소는 차가웠다. 영하의 날씨보다 더 매서운 것은 바닷바람이었다. 조선소 정문에 들어서자 선박을 만드는 크레인이 보인다. 100t급, 높이 70m짜리 초대형 크레인은 6만t짜리 컨테이너선을 만들고 있어야 했다. 닷새째 이 크레인은 움직이지 않고 있다. 1977년에 세워져 녹슨 태가 여기저기 묻어 있지만, 수십 개의 크레인을 넘어뜨린 태풍 ‘매미’에도 살아남은 녀석이었다. 거대한 움직임을 멈춘 데는 이유가 있다. 쉰 넘은 노동자가 그 안에 웅크리고 있다.
그 사람도 영도 조선소를 닮아 ‘최초’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여자 조선소 용접공이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랫동안 해고자로 지낸 여성 노동자이기도 하다. 그는 영도 조선소에서 용접을 배웠고, 해고됐고, 복직을 위해 싸웠다. 30년의 시간이었다. 민주노총 부산지부 김진숙(52) 지도위원이 35m의 크레인 조정실에 오른 것은 지난 1월6일이었다. 그저 맨몸으로 올랐고 아무도 몰랐다. 그는 400명을 정리해고하겠다는 한진중공업의 결정에 맞서는 고공시위를 벌이고 있다.
“지난 2010년 2월26일 구조조정을 중단하기로 합의한 이후 한진에선 3천 명이 넘는 노동자가 잘렸고, 설계실이 폐쇄됐고, 울산공장이 폐쇄됐고, 다대포도 곧 그럴(폐쇄될) 것이고, 300명이 넘는 노동자가 강제휴직을 당했습니다. 그런데 400명을 또 자르겠답니다. 하청까지 1천 명이 넘게 잘리겠지요.”(김진숙 위원이 남긴 편지글)
크레인에 오르기 전, 자신이 하고 싶은 말 전부라며 후배에게 남긴 편지의 일부다. 그는 이미 오래전 해고의 칼날을 맞았다. 한진중공업 전신인 대한조선공사 시절인 1986년 ‘회사 명예실추, 상사 명령 불복종’이라는 이유로 해고됐다. 이후 복직투쟁을 벌였다. 함께 복직투쟁하던 17명이 모두 회사에 복귀한 2003년에도 그만은 복직되지 않았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보상심의위원회는 2009년 11월 “해고가 부당하다”고 판정했지만, 한진중공업은 그를 복직시키지 않았다. 회사는 복직되지 않은 김 위원을 “제3자”라 부른다. 제3자가 사업장에 들어와 농성하고 있으니 당장 퇴거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35m 높이의 조정실을 아득히 올려보며 김 위원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기자를 향해 천진하게 손을 흔들었다.
크레인 계단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공 크레인은 아래에서 보면 눌리듯 겁나고, 오르다 아래를 보면 떨어질까 무섭다. 떨리는 다리로 예순두 개의 계단을 오르니 갑판처럼 넓은 평지가 나왔다. 더 이상 올라갈 수 없었다. 조정실로 향하는 철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15m 높이를 더 올라가야 조정실이 나온다. 더 오르려면 김 위원이 열어줘야 했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문 앞에는 ‘규찰대’라는 이름의 붉은 모자를 쓴 동료 박성호(51)씨가 있었다. 박씨는 김 위원과 같이 해고됐다가 2003년 복직했다. 그는 “문을 지키는 게 아니라 김 위원의 안전을 지키고 있다”고 했다.
김 위원이 올라가 있는 85호 크레인은 김주익 전 한진중공업 노조지회장이 129일 동안의 점거농성 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곳이다. 2003년 김 전 지회장의 죽음은 사회적 이슈가 됐다. 한진중공업은 구조조정을 중단했다. 8년이 흘렀지만 비극은 되풀이되고 있다. 당시 650명의 정리해고 방침을 밝힌 것처럼 이번에는 400명의 정리해고 방침을 발표했다. 지난 1월12일, 희망퇴직을 신청한 110명을 제외한 290명에게 해고예고 통지문을 일제히 발송했다. 이제 김 위원은 8년 전 김 전 지회장이 그랬던 것처럼 사쪽의 정리해고를 온몸으로 중단시키려 한다. 김주익의 영령이 깃든 1평 남짓한 공간에는 몸을 편하게 누일 곳이 없다. 문을 걸어잠근 채 외롭고 힘들게 고공농성 중인 김 위원의 안전을 동료들은 많이 걱정하고 있다.
더 접근할 길이 없어 김 위원에게 소리쳐 물었다. 거센 바람이 목소리를 삼켰다. “춥지 않으세요?” “밥은 잘 먹고 있어요.” “필요한 건 없나요?” “우리 조합원.” “네?” “우, 리, 조, 합, 원.” 김 위원은 두꺼운 외투를 겹겹이 입고 있었다. 아래에서 전기장판을 올려 보냈지만 실제로 쓰고 있는지는 확인할 수 없다. 12시가 되자 점심이 올라갔다. 두부 두 모와 생수 한 통이 전부였다. 실상은 밥을 잘 먹지 못하는 상태였다. 아래에 있는 사람들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잘 지내고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는 김 위원의 인사를 뒤로했다. 85호 크레인에는 점거농성을 표시하는 현수막 하나 걸려 있지 않다.
대량 해고에 맞서 85호 크레인에서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이 해맑게 웃고 있다. 김 위원이 올라간 크레인을 지키고 있는 해고 대상자 김경근씨. 그는 인터뷰 도중 ‘김주익’을 부르며 꺼이꺼이 울었다. 85호 크레인에서 바라본 영도 조선소 전경(왼쪽부터).한겨레 정용일 기자
이틀 뒤인 13일, 김진숙 위원과 다시 전화로 인터뷰했다. 전날 밤에는 바람이 많이 불어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살아서 내려갈 것”이라고 그는 말했다. 내려갈 날을 물었다. “(정리해고) 명단이 나오기 전에 그것을 막아보려고 올라왔어요. 명단 나오는 것을 막지 못했네요. 언제 내려갈 수 있을지 이제 잘 모르겠어요.” 김 위원은 농성이 끝나는 날에 대한 가늠보다 정리해고 대상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갈려 노동자끼리 갈등하지 않을까를 더 걱정했다.
지난해 12월15일 구조조정안이 발표되자 노조는 12월20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회사의 입장에는 변함이 없었다. 김 위원이 고공농성을 시작한 지난 1월6일 이후에도 회사의 방침에는 변함이 없었다. 회사는 지난 7일 부산지방법원에 김 위원의 퇴거가처분을 신청했고, 법원은 회사 손을 들어 10일 퇴거단행 및 출입금지 가처분 결정을 내렸다.
김 위원이 오른 크레인 앞을 지키는 파업노동자 가운데에는 김경근(52)씨도 있었다. 굼뜬 행동이 눈에 보일 정도로 목디스크를 앓고 있었다. “제가 해고 1순위”라고 말한다. 그는 산재를 입어 지난 2년 동안 병원에 있었다. 복직한 지 두 달밖에 안 됐다. 그는 우리나라 최초의 잠수함을 만들었다. 전자통신설비 취외취부(설비를 해체하거나 설치하는 일을 일컬음) 파트 일을 20년 동안 해왔다.
그는 눈 감고도 자신이 만든 군함과 잠수함의 구조를 기억한다. 바깥에서는 자신이 군함을 만든다는 얘기를 하지 않고 살았다. 그것은 자부심이기도 했다. 10년 동안 해군 하사관 생활을 하며 우리나라 최초의 구축함이라는 충무함을 탄 적도 있다. 그가 마지막으로 전자통신 장비를 설치한 배가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인 아라온호다. 김씨의 인생은 한국 군함·특수선의 역사다. “해고 대상자인 290명이 대부분 다 그렇다”고 김씨는 말했다.
현재의 상황, 앞으로의 생계 대책을 물었지만 그는 자꾸 과거 이력을 말한다. 5m가 넘는 구조물에 부딪혀 바다로 떨어져 반불구가 된 몸으로 “월급은 적었어도 행복했던 시절”이라며 자신의 노동을 반추했다. 그러다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다.
“김주익을 내가 죽였다 그래요. 내가 죽였다고.” 김씨는 2003년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반대파업 당시에도 지금처럼 85호 크레인 앞에 있었다. 그는 당시 마산의 한진중공업 조선소에서 일했는데, 파업 지원을 위해 부산 사업장으로 왔다. 그러나 경찰의 해산 압박, 회사 쪽의 손배·가압류 협박 때문에 파업 참가 인원이 많지 않았다. 결국 마산 쪽 노동자들은 마산으로 돌아가기로 결정했다. “철수한 다음날 전화를 받았어요. 지회장이 죽었다고.” 자신이 파업 현장을 지켰다면 김 전 지회장이 그런 결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죄책감이 김씨를 괴롭히고 있다. 눈물은 멈추지 않았다. 꺼이꺼이 격하게 우는 이유가 김주익에 대한 미안함인지, 지난날에 대한 회한인지 분명하지 않았다. 그는 지난 12일 해고예보 통지를 받았다.
이들에게 해고는 목숨을 끊어내는 아픔이다. 강성형(가명)씨는 “내가 바로 정리해고된 사람들의 미래”라고 말하는 50대 노동자다. 강씨는 2009년 정리해고 방침이 결정되자 희망퇴직을 신청했다. 통상임금 기준으로 1년치 월급을 한꺼번에 받았지만 1억원이 안 되는 돈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치킨집 할 돈도 되지 않아” 택한 건 “다시 조선소 용접 일”이었다. “20년 넘게 조선소에서 용접하던 사람이 다른 할 일이 뭐가 있겠어요.”
다만 그는 영도에서 가급적 멀리 떨어진 조선소를 찾았다. 취직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큰 배를 만든 노하우가 있었거든요. 용접이 다 똑같다고 생각하지만 그게 아니에요. 배에 들어가는 철판의 두께에 따라, 철판이 배의 어디에 쓰이느냐에 따라 다르거든요.” 그런데 비정규직이었다. 1년 계약을 했다. 월급은 100만원이 채 되지 않았다. 용접을 한 것은 잠깐이었다. 들어간 사업장의 일이 끊기면서 다른 사업장으로 배치된다는 말을 들었다. 그곳은 영도 조선소였다. “정말 돌아오고 싶지는 않았는데….”
청춘을 바친 옛 직장에 1년 만에 돌아왔지만 많은 것이 바뀌어 있었다. 우선 맡은 일이 바뀌었다. 용접이 아니라 자재 나르는 일을 맡았다. 그 일이 아니면 더 이상 일감을 주지 않을 것 같았으므로, 내키지 않는 일을 마다할 순 없었다. 영도 조선소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은 현재 1천여 명으로 정규직 수와 비슷하다. 많을 때는 2천 명을 넘기도 하지만 최근처럼 일감이 줄면 소리 없이 줄어드는 건 비정규직이다. 건설현장과 마찬가지로 공기가 끝나거나 계약된 업무가 종료되면 다른 일감을 찾아 떠나야 한다.
조선소의 비정규직은 그래서 “보따리장수”로 불린다. 출퇴근을 하지만 일용직이나 다름없다. “정년을 맞고 퇴직하는 것 말고 별로 바라는 것은 없었어요.” 오는 5월이면 강씨가 영도 조선소에서 하고 있는 일이 끝난다. 그 뒤로는 인근 조선소의 또 다른 어딘가에서 일할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이다. 강씨의 미래에서 확정적인 것은 아무것도 없다. 젊은 비정규직은 전국을 떠돌기도 하지만 쉰이 넘은 나이에 부산을 뜨기는 어렵다.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텨보라는 말밖에는 더 할 말이 없네요.” 파업 중인 동료들에게 그가 전한 말이다. 버티지 않으면 그들 모두 일용직이 될 것이다.
희망퇴직을 신청했다는 사실 때문에 강씨는 다른 동료들에게 미안한 마음을 품고 있다. 그들의 눈을 피해 전화로 강씨와 대화를 나누는데, 수화기 너머로 경적음이 울린다. 자재를 나르는 중장비를 운전할 시간이다. “다시 전화하지 말아달라”고 그는 부탁했다. 운전을 시작하면 그는 예민해진다. 익숙지 않으니 사고 위험이 있다. 그러나 이것저것 가릴 처지는 아니다. 대학생 아들이 있다. 아직은 더 벌어야 한다. 더 벌어야 하는 늙은 노동자가 영도 조선소에는 많다. 그들은 지금 해고의 칼바람을 맞으며 파업 중이다.
부산=글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사진 정용일 기자 y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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