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1월 말 경북 안동에서 처음 발생한 구제역의 공포가 1월 중순까지 잦아들지 않고 있다. 1월12일 현재 구제역 바이러스는 전국 6개 시·도와 50개 시·군으로 퍼졌다. 구제역 사태로 땅에 묻힌 소와 돼지만 해도 벌써 150만 마리에 이른다. 국내에서 사육 중인 소와 돼지는 각각 340만 마리와 990만 마리로, 합치면 1330만 마리다. 대략 10마리 가운데 1마리는 땅에 묻혔다는 이야기다.
줄줄이 구제역 유탄, 간고등어마저 운다
구제역이 가축만 잡은 것은 아니었다. 축산농가와 해당 농가 종사자의 피해는 관련 산업의 동반 몰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안동 지역에서는 전체 17만4천여 마리의 우제류 가운데 85%에 해당하는 14만4800여 마리를 살처분했다. 안동 축산업의 기둥이 송두리째 뽑힌 것이나 마찬가지다. 축산농가는 말할 것도 없고 안동의 사료업체와 도축장, 한우 전문식당이 줄줄이 구제역 유탄을 맞고 있다. 안동을 찾는 방문객의 발걸음이 끊기면서 구제역과 전혀 상관없는 안동사과, 안동 간고등어의 매출까지 크게 떨어졌다.
“이건 재난이 아니라 재앙입니다.” 이재갑 안동시의원은 구제역이 안동을 고립된 도시, 즉 ‘천혜의 고도’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1월11일 구제역 발생지 경북 안동을 찾았다.
이태식씨 농장으로 가는 길은 한산했다. 중앙고속도로 영주인터체인지(IC)를 빠져나와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 있는 이씨의 농장까지 가는 30분 동안 마주친 차량이라고는 한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였다. 차량도 인적도 끊긴 텅 빈 도시 안동에는 기괴한 정적이 흘렀다. “어디 돌아다니지를 못하니까 시간은 오히려 많이 남습니다. 이런저런 모임도 모두 취소되거나 연기되고, 그냥 이렇게 갇혀 지내고 있습니다.” 이씨는 허탈하게 웃었다.
이씨가 키우는 한우 36마리는 이번 구제역 한파 속에서도 살아남았다. 사정에 어두운 사람이라면 이씨에게 축하 인사라도 건넬 법한데, 그의 표정은 어두웠다. 이유를 묻는 기자에게 그가 내민 것은 두 장짜리 호소문이었다. 안동시 도산면장에게 보낸 호소문에서 그는 구제역 백신 접종 대상에서 자신의 한우를 제외해달라고 말했다. 백신이 아니더라도 구제역을 이겨낼 자신이 있었다. 백신 접종에 따른 피해도 걱정스러웠다.
“규모는 크지 않아도 우리 농장은 경북 최초로 유기축산물인증까지 받은 곳입니다. 항생제 등 동물 의약품에 의존하는 다른 소들과 달리 지금까지 깨끗한 환경에서 친환경 농업 부산물만 먹여 키운 덕분에 잔병치레 한 번 없었습니다. 소에게 먹이는 사료도 외부에서 사들이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직접 생산하고 준비해서 먹였다고요.”
이씨가 보여준 것은 깻묵과 쌀겨, 보릿겨 등이었다. 그 밖에도 그는 한우 36마리를 먹이기 위해 안동 시내 건강원을 다니며 직접 얻어온 양파즙과 호박즙 부산물도 내놓았다. 일반 축산농가와 달리 친환경적이면서도 독립적인 사육 기반을 갖추고 있었기에 바이러스를 피해갈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안동시 등은 지난해 12월25일 지역의 모든 한우를 대상으로 백신 접종을 시작했다. 이씨도 이를 피할 수 없었다.
“소 1마리에 들어가는 돈을 따지면 한 달에 50만원은 된다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농가가 구체적인 출하 계획을 세워놓고 사료를 먹이는 거죠. 그런데 이렇게 무조건 백신을 놓으면 도축을 못하니까 농가 부담만 늘어나는 겁니다. 출하할 때가 된 농가는 이미 사망 단계입니다.”
혼란 틈타 보상금 부풀려 받는 이도…정부는 구제역 백신을 접종한 뒤 2주가 경과된 소는 시가대로 사들이겠다고 했다. 백신 접종 이후 4주가 지나면 혈청검사를 통해 이상 유무를 확인한 뒤 출하도 가능하도록 했다. 물론 축산농가에서는 2주든 4주든 늦어질수록 손해다. 소비자로서도 백신을 맞은 쇠고기에 손이 덜 갈 수밖에 없다. 구제역에 걸리면 ‘역병’에 걸린 것이고, 구제역에 걸리지 않았다면 ‘골병’드는 것이 축산농가의 현실이다.
같은 온혜리의 이기환씨는 지난해 12월10일 오후 자식 같던 소 8마리를 땅에 묻었다. 그의 농가에서 북동쪽으로 350m가량 떨어진 이웃 농가에서 구제역 양성 반응이 나왔다. 동네에서 구제역 양성 판정을 받은 소가 나오면 반경 500m 이내의 소와 돼지는 모두 살처분해야 한다.
8마리 가운데 공교롭게도 3마리가 1월 중 출산을 앞둔 암소였다. 저마다 이름도 있었다. 출산 예정 암소 3마리의 이름은 각각 ‘한강이’ ‘행신이’ ‘둘리’였다. ‘한강이’는 서울 한강성당에서, ‘행신이’는 경기 일산 행신동성당에서 ‘자급퇴비를 위한 암송아지 입식지원운동’을 위해 보내줬다. 화학비료 대신 소에서 나온 거름을 이용해 감자와 콩, 옥수수, 기장 등을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하고, 여기서 나온 부산물은 다시 소에게 먹이는 것이 이씨의 농사법이었다. 가톨릭농민회 안동교구 온혜분회 소속인 이씨는 이렇게 키운 소와 농산물을 천주교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 소비자와 직거래해왔다.
“쇠고기 가격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의 생활공동체와 협의해 정합니다. 얼마의 가격이라야 해당 농가가 자녀 교육을 포함해 적정 수준의 생계를 꾸려갈 수 있는지 고려해 값을 매기는 거죠. 일반 쇠고기 가격이 kg당 8천~9천원 정도 한다면, 우리 소는 대개 1만3천원 정도 나간다고 보면 됩니다.”
살처분 이후 이씨는 다른 농가와 마찬가지로 소 1마리당 500만원 안팎의 살처분 보상금만 받아야 했다. 그보다 더 비싸게 거래했더라도 세금계산서 등 증빙자료가 없다면 인정할 수 없다는 것이 안동시의 태도였다.
이씨와 달리 구제역 사태 속에서도 피해를 최소화하거나 오히려 이익을 본 농가가 있었다. 안동시 와룡면의 한 축산업자의 증언이다. “까놓고 말해서 머리가 좀 돌아간다는 사람은 소나 돼지가 입에 거품을 물든 아니든 일단 구제역 의심축 신고부터 했어요. 살처분하면 음성이든 양성이든 시가대로 보상이 나오는데, 무게를 실제로 다는 게 아니잖아요. 주인이 울면서 대충 소 1마리에 ‘몇 킬로’라고 하면 수의사도 이래저래 마음이 아프니까 그대로 적었단 말입니다. 살처분 보상금은 보상금대로 부풀려서 받고, 여기에 생계안정자금까지 따로 받으면 이게 다 남는 거죠.”
권동순 기자는 “살처분 보상 기준을 정할 때 농림수산식품부와 안동시가 가축의 무게를 ‘목측’(눈대중으로 크기나 길이를 재는 것)으로 적절히 매기기로 했다”며 “무게를 후하게 달아주다 보니 많은 농가가 살처분 대상에 포함되기를 원했다”고 말했다.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야”재중동포 황광호(40)씨의 꿈은 고향 땅 중국 옌볜에서 작은 농장을 하나 꾸리는 것이다. 2007년 2월부터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권아무개씨의 양돈농장에서 일하며 처음으로 구체적인 미래를 그려보기 시작했다. 일이 고되고 외로워도 옌볜에 두고 온 아내와 7살짜리 딸아이를 생각하면 한눈을 팔 수 없었다.
“처음에는 140만원을 받았는데 월급이 계속 올라 지금은 한 달에 180만원을 받아요. 설이나 추석에는 50만원씩 보너스도 받았어요. 생활비로 매달 30만원 정도 쓰고 남은 돈은 모두 아내에게 보냈는데, 고향에서 농장이라도 하려면 앞으로 3~4년은 돈을 더 모아야 한다 말입니다. 지금까지는 월급 한 번 밀린 적 없었는데, 병난 뒤에 아직까지 사장님을 한 번도 못 만났어요.”
구제역 사태의 직격탄을 맞은 것은 사실 황씨 같은 이주노동자다. 축산농가에는 살처분 보상금과 생계안정자금, 입식지원자금 제공 등 다양한 지원이 이뤄지지만 노동자에 대한 정부 대책은 전무하다. 대한양돈협회 등에서는 전국 8천여 양돈농가에 종사하는 3만 명가량의 노동자 가운데 절반 이상이 외국인일 것으로 추정한다. 구제역 사태 이후 국내의 수많은 이주노동자가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었다.
황씨의 가장 큰 걱정도 일자리를 잃는 것이다. 황씨가 있던 농장에서는 지난해 12월2일 2800여 마리의 돼지를 모두 살처분했다. 갑자기 황씨의 일이 없어졌다. 그와 함께 고용돼 일하던 한국인 부부는 이미 농장을 떠났다. 농장주 권씨도 농장에 나타나지 않고 있다. 재중동포 황씨 혼자 한 달 넘도록 주인 없는 돈사를 지키고 있는 상황이다.
“어쨌거나 농장 일을 다시 할 수 있으면 하고 그거 하나 바라봐요. 그런데 안동에서 왔다면 다른 농장에서 받아주지 않고, ‘노가다’를 하고 싶어도 동절기라 일자리가 없고 아주 골치 아파요.” 농장주를 기다리다 지친 황씨는 이틀 뒤 일거리를 찾아 대구로 떠났다.
진순희(44)씨는 구제역만 생각하면 속이 상하다 못해 황당하다. 진씨가 와룡면사무소 옆에 소머리곰탕집 문을 연 것은 지난해 11월26일이다. 개업 3일 뒤인 29일, 그는 구제역 사태와 맞닥뜨렸다. 전국에서 구제역이 처음 발생한 곳이 바로 와룡면 서현리였다.
“말도 못하게 속상하죠. 그래도 ‘개업발’이라는 것이 있는데 구제역이 터지면서 손님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봐야죠. 그나마 우리는 면사무소 직원이나 농협 직원 분들이 일부러 힘내라고 많이 와주시는 편이에요. 안동의 다른 한우골목에 있는 한우 전문식당은 문 닫은 집이 굉장히 많아요.”
구제역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안동의 경제적 피해는 구제역 바이러스만큼 빠른 속도로 번졌다. 축산농가의 몰락과 함께 관련 산업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람의 통행이 끊기면서 구제역과 전혀 관련 없는 관광업·요식업까지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안동 지역의 특산물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안동닷컴’의 경우 구제역 사태 직후인 2010년 11월29일부터 12월20일까지의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약 80%나 감소했다. 안동마, 안동 간고등어, 안동사과, 벙어리찰떡, 국화차 등 안동 특산물의 매출이 1년 전에 비해 5분의 1 수준에 불과했다는 이야기다. 관광지인 안동 하회마을의 관광객은 70% 감소했다.
이재갑 안동시의원은 “구제역 사태 이후 안동의 지역경제는 마비된 것이나 마찬가지”라며 “정부는 안동과 안동 주민을 살리기 위해서라도 구제역이 발생한 곳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축산업에 등 돌린 농가, 안동의 미래는?구제역 그 이후는 더 큰 문제다. 사상 최악의 살처분 사태는 심각한 후유증을 남길 전망이다. 안동의 축산업이 다시 제자리를 찾을 수 있을지도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 안동시 와룡면의 ㅎ씨는 지난해 11월29일부터 1박2일간 모두 1800마리의 돼지를 살처분했다. ㅎ씨의 부인은 한 달이 지난 1월 중순까지도 돼지의 ‘꽥꽥’ 울부짖는 소리를 듣고 있다.
“앞으로 축산업을 다시 시작할 생각은 없어요. 살아 있는 짐승을 그렇게 파묻었는데, 그 일을 다시 할 수는 없죠. 안동이 구제역 첫 발생지다 보니 언제 또 병이 돌지 모른다는 공포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구제역 사태가 터진 뒤 농가에 책임을 돌리는 정부 행태를 보니까 아닌 말로 회의도 느껴집니다. 식당을 하든 뭘 하든 다른 길을 찾아보려고 합니다.”
안동=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사진 김정효 기자 hyop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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