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어부다. 평생 물길 따라 살았다. “조기랑 갈치를 많이 잡았어유. 초등학교도 못 마치고, 배만 탄 것인디… 계속 배만 탔응게요.” 물길 아닌 길은 갈 수 없었다. 아니, 가지 않았다. 그는 어부다.
개야도, 1976년, 반국가, 경찰, 검찰, 판사들…. 어부는 이 낱말들이 끔찍하다. 여태껏 소스라친다. 파국의 시작. 그의 나이 스물여덟, 아버지는 간첩이었다.
개·돼지 취급도 못 받은 간첩의 자식들
그날도 이광열(62)씨는 배를 탔을 뿐이다. “76년도 양력 한 5월 중순경이나 되었을 거예유. 전 배를 탔는데 조금 때라서 귀항을 했어유. 조금 땐 물발이 세지 않아 고기가 없으니까, 그때 돌아왔을 때, 어머니 허시는 말씀이, 너희 아버지 군산경찰서에서 와가지고 잡아갔다, 그래요. 용마루라 그러지유, 경찰들이 지붕 위로다 올라가 그걸 막 뒤집고, 구두 신고 방에 들어가 농이고 뭐고 막 끄집어내고 그런 게….”
개야도(전북 군산시 옥도면)는 뒤척였다. ‘간첩의 섬’이 되었다. 4명이 끌려갔다. 수괴는 어부의 아버지 이길부(1923년생·사망)씨였다. 그해 11월12일 전주지법 군산지원에서 징역 10년을 선고받는다. 항소했다. 광주고등법원은 2년을 더해 12년 징역을 선고했다. ‘간첩’은 상고를 포기했고, 광주교도소에서 1988년까지 만기 복역했다. 서울올림픽은 다른 나라 얘기였다.
취재한 지 10분도 안 돼 ‘간첩의 아들’은 울었다. “섬 주민들한테 개, 돼지 취급도 못 받았응게유.” 사람을 피해 ‘없던 길’만 다닌 모양이다. 그는 웃음과 울음이 분간되지 않는 얼굴을 가졌다.
‘간첩의 며느리’ 유순덕씨가 말했다. “동네에서 간첩 새끼들인게, 우리 아이들 죽인다고, 우리 시아버지가 다른 양반들까지 밀고한 거 아니냐고, 저놈의 종자들 다 없애야 한다고 그러니까요.”
이광열씨의 가족, 형제자매 합쳐 열네 식구가 그해 섬을 떠났다. 군산 시내 2만원짜리 사글세 단칸방으로 들어갔다. 할머니, 어머니가 섬에 남았다. “오죽허면 할아버지 기일이 음력 4월인데 그해 제사도 못 지냈겄어요, 동네에 발붙일 데가 없으니까요.” 유씨도 말한 지 10분이 안 돼 운다.
1심 판결문(재판장 유지원)은 9쪽에 걸쳐 ‘간첩 이길부’의 죄목을 펼쳤다. 1967년 5월28일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다 서북방 군사분계선을 넘어 납북됐다. 넉 달 뒤 풀려났다. 그해는 되레 평온했다. 1968년 9월 반공법 위반 등으로 입건됐으나 기소유예됐다. 이듬해 7월 수산업법 위반과 북한을 “찬양고무했다”는 이유(반공법 위반)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이때부터 이길부는 배를 타지 않았다. 다시는 바다로 나가지 않았다. 섬 농사에 그물이나 꿰맸다. 그사이 이길부는 진짜 ‘간첩’이 돼 있었다.
이길부는 납북돼 북의 세뇌교육을 받고 △귀환 뒤 절친한 계원·친지·친척·노동자·농민·어부 중에서 동지를 규합해 4·19 때와 같은 이른바 ‘결정적 시기’에 ○○○ 정권을 타도하고 미 제국주의자들을 몰아내라고 데모를 하고 폭동을 일으켜 그에 앞장설 수 있는 반국가 단체를 비밀 지하당으로 조직하라 △만나는 사람들에게 북괴의 우월성을 선전하라 △고군산열도 근해의 경비 상황, 검문 상황, 군산비행장용 기름탱크의 위치와 개야도 경비 병력 및 경비 상황 등 국가 기밀을 수집해 보고하라 따위의 특수지령을 받았다. 이길부는 북의 명령을 수신하고, 남파간첩과 접선하고, 재월북해 보고할 수 있는 방법도 익혀 귀환, 잠입했다.
조국에서 초등교육도 받지 못한 간첩 이길부는 1973~76년 개야도 이웃들을 만나 “이북에서 친한 친구로 자네 이름을 적어주고 왔으니 같이 비밀조직을 만들어 4·19 때와 같은 소위 결정적 시기가 오면 폭동을 일으키자”고 말하고, 다반사로 북을 찬양했다. 동네 사람들에게 물어 개야도 지서의 군경·무기 현황을 확인했다.
판결문은 “불원간 북괴가 남침하여 대한민국도 공산화될 것이라는 망상하에, 전에 지령받은 대로 국가 기밀을 수집하여 보고함으로써 북괴와 다시 연결을 하려는 기도하에, 1975년 5월4일경, 동월 10일경, 동월 15일경의 3일간 오전과 오후에 동리 뒷산 소재 피고인 소유 밭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개야도 근처 해상을 보고” 경찰·해양경찰대 경비정과 해군 함정의 순찰 상황을 확인했다고 적고 있다.
납북 어부 간첩사건 10%만 규명 신청“그게 말이나 되겄어요? 쬐깐한 섬에서, 섬사람이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들이잖아유. 면회를 가니 우리 아버지가 내사 얼마나 고문을 당하고, 얼마나 죽을까 싶었으면 (간첩이라고 자백하고) 그랬겄냐, 살아나온 것만 해도 진짜… 말로 할수도 없다, 그래요. 너무너무 억울해서 목이라도 매고 죽으려고 했는디….”
며느리가 울었다. “내가, 며느리가 오죽 퍽퍽했으면, 우리도 풍지박살(풍비박산)이 나 죽게 생겼는디 뭔 돈(영치금)을 부치라고 그러시오 그 소리를 혔더니, 몸이 어디 성한 디가 하나 없이 이렇게 생겼는디, 내가 여기서 죽을 수도 있는디, 그 사람들 당한 거 생각하면, 죽어도 살아나가려고, 어떻게든 살아나가보려고 약을 먹는다, 그래요.” 며느리는 통곡했다.
간첩의 아들은 늘 배를 탔다. 바다에서나 밥을 구할 수 있었다. 12년 동안 아버지를 세 차례 면회했다. 이광열씨는 “너무 힘이 들어 정말 자살하려고, 자살하려고 했는데…”라고 말했다. 딸린 식구가 너무 많았다.
‘간첩 이길부’가 되기까지 불법수사가 명백하고, 사건 조작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실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실위)가 2010년 상반기 해당 사건의 진실 규명을 위한 1차 직권조사를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입수한 비공개 사전조사 결과 보고서를 보면 “불법구금 사실이 인정”되고 “고문·가혹행위의 개연성이 인정”되며 “재심 사유가 있다”. 이길부씨의 구속영장이 발부된 1976년 6월17일에 앞서 “1976년 5월2일 이길부가 북한을 찬양하는 것을 듣고 급거 출동, 엄밀 수사하여 피의자들로부터 범행을 자백받았다”는 군산경찰서의 범죄인지보고서(6월5일 작성)나, 5월31일 작성된 이길부의 진술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진실위 보고서는 “1976년 5월31일 이전에 연행되어 최소한 18일 동안 불법구금된 사실이 인정된다”고 밝히고 있다. 게다 이길부씨를 포함한 ‘공동 피고인’들은 당시 공판 중에 “전기고문을 세 번이나 당해서 경찰에서 허위 자백했다”는 등의 주장을 일관되게 했다.
진실위 조사 부서가 이런 내용의 보고서를 2010년 4월 제출했다. 하지만 진실위 상임위는 이를 전원위에 상정하지 않았다. 전원위에서 조사 개시와 재심 개시 권고 여부를 결정하는데 그 기회조차 얻지 못했다. 정승윤 상임위원(한나라당 추천)이 계속 상정을 미루다, 진실위의 조사 실무가 종료된 2010년 6월을 넘긴 탓이다. 진실위는 2010년 12월31일 활동을 끝마쳤다.
만 5년간의 진실위 활동을 통해 국내 납북 어부 간첩만 103건이 확인됐다. 이 가운데 진실규명 신청자는 10건에 불과했다. 모두 조작으로 규명됐다. 직간접 조사가 불가능한 60여 건을 빼고 미신청 25건을 진실위가 직권조사했다. 7건이 조작으로 밝혀졌다. 18건은 조작의 개연성이 높아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이길부씨 사건이 그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진실의 문턱에서 명단은 찢겼다.
진실위의 한 실무자는 “기존 10건과 미신청 25건이 모두 국가 조작으로 결론날 경우, 위원회가 조사한 납북 어부 사건 모두 조작으로 결론나는 것이라 (정치적인) 부담이 컸을 것”이라며 “정 위원이 실제 회의에서 이영조 위원장의 말씀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말까지 했다”고 전했다.
시커먼 맷자국 주검 남기고 떠난 어부진실위 안에선 “우리나라 간첩의 9할은 조작”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납북 어부와 재일동포 간첩이 국내 간첩의 대부분인데, 이들 대부분이 조작이기 때문”이다.
1967년 5월28일 연평도에 그물을 던지던 승룡호엔 이길부씨와 함께 조카 서창덕(63)씨도 있었다. 서씨는 한참 뒤인 1984년 전주 보안대에 끌려간 뒤 간첩이 되었다. 그 또한 광주교도소에서 10년 살았다. 이길부 사건의 숨은 진실은 서씨의 고백으로 미뤄봄직하다.
“느닷없이 잡아다가 캄캄한 여관인가, 보안댄가 모르지, 방 하나에 책상 하나, 이불 하나 있었는디, 셋이 딱 앉아 계속 물어보는디, 이북에 뭘 보내려고 했느냐, 이 새끼야, 두들겨 패는 거여. 아니라 해도, 황천길 가는 줄 알라 하믄서, 너 같은 거 하나 토막내 버려도 속수무책이라고 하믄서, 그렇게 안대 개리고 딴 데로 끌고 가서, 잠 안 재우는 건 일도 아니고, 곤봉으로 패고 야전침대로 두들겨 패지, 목구멍에서 피가 나고, 뒤로 몽둥이를 껴 묶어 이리저리 뒹굴리고, 이래…(좌우로 구르는 시늉을 보인다.) 대롱대롱 막대기에 매달고 패지, 이런 디(허벅지) 이런 디(가슴) 워커발로 차면 피가 퍽퍽 나와요, 팬티 하나만 입히고, 생똥을 다 쌌은게요. 그래도 한번 씻겨주들 않고….(운다. 꺽꺽 운다.) 고모부나 나나 고문이란 게 똑같지. 워커발로 차서 부랄이 이렇게(아름을 그려낸다. 이길부씨의 며느리도 시아버지에 대해 똑같은 증언을 했다.) 됐슨게, 손을 책상 위에다 놓고 몽둥이로 내리쳐서 꼬부러지지도 않고(왼손 휜 마디가 구부려지지 않는다), 퉁퉁 부어 앉지도 못한다니까요. 재판받을 때도 양쪽에서 부축해가지고 받았은게요.”
진실위 재심 개시 권고 뒤 서씨는 2008년 무죄를 받는다. 당사자의 자백, 증인들의 진술 어느 것도 증거능력이 없거나 믿기 어렵다는 게 뼈대다. 지인의 도움으로, 내막도 모른 채 진실위 진실 규명 신청자가 된 지 2년 만의 일이었다. 고문을 당한 지 24년 만의 일이다. 1심으로 끝난 형사재판과 달리, 손해배상을 청구한 민사소송은 국가의 항소와 상고로 대법원까지 가 심리 중이다.
2002년 이길부씨는 세상을 떠났다. 출소 뒤 부르튼 몸으로 개야도 방 안에서 숨만 쉬었다. 아들이 말했다. “온몸(주검)이 구랭이 감아놓은 것맨치로, 시커멓게 맞은 디가 다 나타나요. 여기(허벅지), 여기(몸통), 발바닥… 볼 수가 없어, 말도 못해요.” 며느리가 울며 말했다. “자식이믄 그걸 못 봐요. 지인보고 입관하랄 수 없어 섬 밖에서 사람을 불렀은게요. 이런 몸은 처음 본답디다. 새까맣게 부어갔고.” 서창덕씨가 또 울었다. “안 우는 사람이 없었어요. 나도 죽으면 저렇게 될 텐디….”
에염이 깊으면 살기보다 죽기가 고되는가. 진실위가 활동을 접자 수많은 ‘이길부’와 ‘이길부의 자손’은 “무책임한 국가”를 비판한다. 운 좋은 자는 진정하여 누명을 벗었으나 그렇지 못한 자는 여전히 간첩이다.
피해자를 찾고 재심 변론을 많이 도왔던 ‘진실의 힘’(조작간첩 피해자 주축의 사단법인)의 송소연 이사는 “조작간첩 사건을 통해 사법제도의 문제라든가 고문 후유증을 앓고 있는 분들의 트라우마처럼, 번져나가야 할 이야기가 많다”며 “사법적 진실이 밝혀진 사건들을 사회 공공재로 어떻게 승화할지, 그들을 어떤 사람으로 사회에 복원시켜야 할지 고민하면서 과거 청산의 성과가 사회적·공동체적으로 수렴될 텐데, 재심을 통한 무죄판결이나 손해배상 정도로만 마무리된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는 화해의 손을 내밀었던가무엇보다 진실·화해를 내세운 국가는 ‘화해’에 무감하고 무능했다. 서창덕씨가 말했다. “국가가 나한테 뭐 해줬는디요. 정말 나오면 증언한 사람 모두 칼로 찔러 죽일 마음이었은게….” 한참 뒤 말을 이었다. “언젠가 화해는 헐 겁니다. 하지만 아직도 용서라는 게….”
이광열씨의 첫째아들은 정신장애 4급이다. 이씨는 “멀쩡하던 아이가, 할아버지가 끌려가던 날 경기를 일으킨 뒤 영영 정신이 돌아오지 못했다”고 말했다. 마흔두 살 장애인은 평생 일해본 경험이 없다. 3억원을 빚진 집에서 누워만 있는 장애인은 장애수당은커녕, 장애인 연금도 받아본 적 없다. 대한민국이 삼대를 짓밟았나. 지난 12월18일은 이길부씨의 기일이었다. 물길이 아니면 가지 않던 그들은 그저 어부였다.
군산=글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오승훈 기자 vin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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