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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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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하 세계의 비리, 감싸는 자 누구인가



서울메트로 김상돈 전 사장의 광고판 사업권 특혜 제공 등 확인하고도 처리 미뤄온 감사원…

지방선거 영향 등 고려한 ‘윗선’ 압력 의혹 제기돼
등록 2010-11-05 11:19 수정 2020-05-03 04:26
»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내부의 행선안내게시기와 스크린도어.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김상돈 전 사장은 두 시설물의 설치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한겨레21 김정효

»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내부의 행선안내게시기와 스크린도어.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메트로의 김상돈 전 사장은 두 시설물의 설치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특혜를 주도록 지시했다는 의혹에 대해 감사원 감사를 받았다.한겨레21 김정효

10월27일 감사원은 서울 지하철 1~4호선을 운영하는 서울시 산하기관인 서울메트로의 비리를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감사원은 지하철 역사 안 상가를 업자들에게 임대해주면서 금품을 받아챙긴 혐의 등으로 서울메트로 간부·직원 4명과 업체 관계자 9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하고,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과 관련한 수사자료도 검찰에 통보했다. 수사자료 통보는 혐의가 의심되지만 감사만으로는 증거를 확보하기 어려우므로 검찰이 알아서 수사에 참고하라는 의미다.

경쟁입찰보다 200억원 싸게 사업권 넘겨

감사원은 김 전 사장이 2009년 12월 서울역 등 70개 역사의 매장 100개를 한꺼번에 묶어 임대하는 ‘명품 브랜드점 임대사업’을 진행하라고 임원 ㅎ씨에게 지시한 것이 특정 업체에 임대를 몰아주려는 것이었다고 본다. 상가 임대 같은 수익 사업은 ‘지방자치단체를 당사자로 하는 계약에 관한 법’ 등에 따라 경쟁입찰을 통해 최고가를 써낸 입찰자에게 낙찰해야 하는데, 이 사업은 수의계약이나 마찬가지인 ‘협상에 의한 계약’(다수 업체의 입찰 제안서를 평가해 가격 이외의 요소까지 포함해 가장 좋은 조건이라고 판단되는 한 업체와 계약을 맺는 것)으로 체결됐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 사업에 선정된 업체는 입찰이 시작되기 불과 4개월 전에 급조된 회사로, 입찰 조건인 자본금 5억원조차 ‘주금 가장납입’(은행에 예치해야 하는 자본금을 법인 설립등기 뒤 회수하는 것)으로 맞추는 등 부실하기 짝이 없었다. 임대사업에서 가장 중요한 임대조건도 5년 기한에 186억원으로, 감정가의 106%에 불과했다. 최근 3년 동안 서울메트로가 최고가 방식으로 업체를 선정했을 때 받은 낙찰가는 감정가의 256%였다. 100억원 이상 임대료를 깎아줘 특혜를 준 셈이다.

그런데 감사원이 서울메트로와 김 전 사장과 관련해 실시한 감사는 상가 임대사업뿐만이 아니다. 이번 감사는 지난 4월 ‘공공기관 등 고위 공직자 비리점검’이란 이름으로 진행됐고, 같은 시기 ‘공공기관 광고물 수익사업 운영실태’ 감사도 함께 이뤄졌다. 앞서 지난 2월에는 ‘공사·용역 등 취약분야 토착비리 점검’ 감사도 진행됐다. 감사원이 이번에 수사의뢰 등 처분과 함께 감사 결과를 발표한 건 상가 임대사업뿐, 나머지 두 건의 감사 내용에 대해선 여전히 “처리 중”이라는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특히 박영선 민주당 의원이 공개한 감사원 자료를 보면, 전북 진안군과 강원 양양군 등 6개 기관을 상대로 벌인 ‘공사·용역 등 취약분야 토착비리 점검’ 감사의 경우 서울메트로 관련 부분만 빼고 모두 이르게는 3월19일, 늦어도 6월17일 수사 요청 등의 처분을 내렸다. 감사원은 처분을 내리지 않은 두 건의 서울메트로 감사와 관련해 “관련자 등이 연관되어 있어 함께 처리하고 있으며, 11월 중순께 감사위원회 의결을 거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먼저 시작한 감사를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건 단지 “관련자가 연관되어 있어서”일 뿐일까? 2월 감사에서 감사원은 지하철 2호선 행선안내게시기(승강장과 역 구내 등에서 열차 운행 정보를 알려주는 광고판) 설치 사업과 관련한 내용의 조사를 대부분 완료했다. 이 사업은 행선안내게시기 설치 비용을 업체가 부담하는 대신 일정 기간 해당 업체가 광고를 유치해 투자비를 회수하고 이익금을 챙겨가는 조건이었다. 이 사업권을 두고 2008년 6월 경쟁입찰이 진행됐는데, ㅂ사와 ㅇ사가 예정가격인 495억원에 못 미치는 450억원을 써내 유찰됐다. 정상적인 절차대로라면, 이 경우 곧바로 재입찰 공고가 나가야 한다. 그런데 김 전 사장은 두 차례나 재공고를 유보하도록 지시했다. 그는 9개월이 지난 2009년 3월에야 다시 계약 추진을 지시하면서 계약 방법을 ‘협상에 의한 계약’으로 바꿨다. 계약을 맺은 업체는 애초 응찰한 ㅂ사와 ㅇ사의 컨소시엄이었는데, 예정가격은 이들이 처음 써낸 가격보다도 낮은 250억원으로 조정됐다. 무려 200억원 차이다.

김 전 사장은 “당시는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금융위기로 사업의 수익성이 낮아졌고, 1차 계약 때와 달리 전동차·터널 내 무선 (열차운행 정보) 전송 시스템 구축이 포함돼 업체의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금융위기와 부가한 시스템을 감안하더라도 협상 방법이나 예정가격을 바꿀 만한 사유가 되지 않는다는 게 감사원 실무진의 판단이다.

» 한 지하철 상가의 모습. 10월27일 감사원은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혜택을 준 것으로 보고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의 수사자료를 검찰에 통보했다. 한겨레21 김정효

» 한 지하철 상가의 모습. 10월27일 감사원은 지하철 상가 임대사업과 관련해 특정 업체에 혜택을 준 것으로 보고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의 수사자료를 검찰에 통보했다. 한겨레21 김정효

 

감사 마무리 단계에서 결재 지연

당시 감사원 실무진은 김 전 사장의 혐의를 확신하고 감사를 마무리지으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여권의 핵심 인사는 “은진수 감사위원이 여러 차례 ‘김 전 사장의 혐의는 확실하다. 검찰에 고발될 것 같다’고 했다”고 전했다. 김 전 사장도 감사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한 쪽으로 나올 것으로 보고, 감사원에서 재입찰 공고 유보 지시 등에 대해 진술한 서울메트로 직원을 시내 모처로 불러 진술을 번복해달라고 부탁했다. “업무상 배임으로 걸릴 것 같다”는 게 김 전 사장의 이야기였다.

그런데 갑자기 제동이 걸렸다. 감사원 실무진이 보고를 해도 ‘윗선’으로 결재가 올라가지 않았다. 한 실무자는 “혐의 내용의 상당 부분을 조사해 확인했다. 그런데 일이 진척되지 않았다. 이것 더 알아봐라, 저것 더 조사하라는 식이었다. 다른 사건 처리와 비교할 때 시간을 지연시킨다는 느낌을 받았고, 외부에서 ‘압력’이 들어온 것 아닌가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박영선 의원도 10월14일 감사원 국정감사에서 “‘청와대 직원이 감사원 관계자를 면담하면서 서울메트로 감사 중단을 요구했다. 그리고 정치인이 적당한 선에서 정리할 것을 부탁했다’는 제보를 받았다”며 외압 의혹을 제기했다.

정말 누군가 김 전 사장의 문제를 덮으려 한 것일까? 몇 가지 정황을 살펴보면, 최소한 “전혀 아니다”라는 답을 내기는 어렵다. 일은 지난 6월 지방선거와 관련된다. 김 전 사장은 감사원 감사가 진행 중이던 3월 초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며 사표를 냈다. 사장직에 연임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이었다. 당시 서울 지역 구청장 후보 영입에 공을 들이던 한나라당은 서울시 쪽에도 추천을 부탁했다. 지역구인 동작구청장 후보를 물색하던 정몽준 전 대표에겐 오 시장이 직접 김 전 사장을 천거했고, 중구청장 후보를 찾던 나경원 의원에겐 오 시장의 측근인 서장은 전 서울시 정무부시장이 김 전 사장의 공천 여부를 타진했다. 충청 출신에 강남구 부구청장, 서울시 1급 공무원까지 지낸 이력 덕분에 양천구(원희룡 의원) 등에서도 김 전 사장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김 전 사장은 이 가운데 중구에 마음을 두고 있었고, 구체적인 영입 절차도 거론됐다. 그러던 중 지방선거기획위원장을 맡은 정두언 의원이 감사원의 감사 진행 사실뿐만 아니라 서울메트로 내부에서 그와 관련된 여러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청와대가 선거 뒤로 미루라고 요구했다”

정 의원은 청와대와 한나라당에 이런 사실을 알리면서 “선거 때 이 사실이 불거지면, 의혹이 사실이 아니거나 오세훈 시장과 무관하더라도 야당에 공격의 빌미를 줄 수 있다. 사실관계를 확인하고 사전에 정리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전 사장 문제가 인사권자인 오 시장한테 불똥이 튈 가능성을 우려한 것이다.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오 시장 쪽에 김 전 사장 감사 내용과 오 시장의 연루 여부를 물었고, 오 시장 쪽은 “전혀 모르는 얘기”라고 답했다. 강철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은 이와 관련해 “시 산하기관은 책임경영제로 운영되기 때문에 무슨 일을 중간에 보고받지 않는다. 우리 쪽에선 감사 사실도, 관련 내용도 전혀 몰랐다”며 “(청와대 등에서 확인 요청이 와서) 김 전 사장에게 사실관계를 물었는데 본인이 (감사를 받고 있지만 내용은)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 감사 결과를 따르겠다고 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이 알려지면서 김 전 사장은 실제 공천을 받지 못했다.

청와대는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선에서 그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의 핵심 당직자는 “감사원이 감사 결과를 선거 전에 발표하면 한나라당엔 악재가 아니냐. 그래서 청와대 고위 인사가 감사원에 ‘결과 발표를 선거 뒤로 넘기라’고 요구했다. 이후 감사원이 다른 기관까지 대상에 넣어서 광고 사업 전반에 관련된 감사 등을 하게 된 건 이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2월 감사 결과 처리를 늦춘 채 4월에 또 다른 감사를 시작한 게 청와대의 압력 때문이었다는 얘기다.

물론 감사원은 이런 주장을 정면으로 반박한다. “광고물 관련 감사는 1월부터 기획한 것이고, 다른 것도 감사를 하다 보니 문제가 드러나 확대한 것이다. 청와대가 시킨다고 없던 감사를 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어쨌거나 ‘추가로’ 실시한 감사에서도 김 전 사장은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 발광다이오드(LED) 광고판 설치 사업 등과 관련해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상자 기사 참조).

» 김상돈 전 사장이 재임 때인 2008년 10월14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 김상돈 전 사장이 재임 때인 2008년 10월14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답변을 하고 있다.한겨레 강창광

 

사건 처리를 비틀어 이익을 얻는 건 누구?

2월 감사와 관련해 제기되는 또 하나의 의문점은 김 전 사장의 사표 수리 과정을 놓고 서울시와 감사원의 말이 엇갈린다는 것이다. 10월14일 감사원 국감에서 김영호 재정경제감사국장(감사 당시 책임자)은 “2월 말 서울시 부시장에게서 (김 전 사장의) 사표를 수리해야 할지 말지 (답변해달라는) 요청이 왔다. 한나라당에서 중구청장 출마를 요청받았다는데, 선거 출마를 위한 공직자 사퇴 시한이 그즈음이었다. 비리 여부가 사실로 확정이 안 된 상황에서 출마를 못하게 하면 그것도 큰 문제라고 생각해 제가 결정해 출마하도록 했다”고 말했다. 서울메트로와 같은 공공기관 임직원이 감사원이나 수사기관 등의 조사·수사를 받을 때는 인사권자가 해당 조사기관에 면직 여부를 문의하는 게 관행이다. 즉 서울시가 김 전 사장 감사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감사원에 문의를 했다는 것으로, 감사 사실을 몰랐다는 강철원 서울시 정무조정실장의 발언과 정반대되는 내용이다. 서장은 전 정무부시장도 “그만둔다고 할 땐 감사를 받고 있는지 몰랐다. 선거 출마 의사를 명확히 밝히지 않아 연임을 시켰는데 갑자기 (선거에) 나간다기에 놀랐지만, 본인 뜻이 그러니 사표를 수리한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감사원 실무진은 이보다 앞서 서울시에 여러 차례 “사표를 수리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강철원 실장은 이와 관련해서도 “그런 요청이 오지 않았다”고 반박했다.

어찌된 일일까? 감사원 책임자가 국회에서 ‘위증’을 한 것일까, 아니면 오 시장 쪽이 감사 도중 사표를 수리했다는 비난을 피하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 서울메트로의 비리 혐의 자체보다 더 ‘냄새’ 나는 사건 처리 과정이 숨은 배후에 대한 의문을 키우고 있다.

조혜정 기자 zesty@hani.co.kr



스크린도어 설치 사업에도 특혜 의혹
“지하철은 서울 시민의 것인데…”

김상돈 전 서울메트로 사장과 관련해 감사원이 감사를 벌인 또 다른 사업은 종각역 등 25개 역사의 스크린도어 설치 건이다.
스크린도어 사업은 ㅅ산업이 제대로 공사를 진행하지 않는데도 김 전 사장이 선급금을 과도하게 지급하도록 지시해 특혜를 줬다는 의혹이 핵심이다. 서울메트로는 2006년 10월 동대문역 등 5개 역사의 승강장 스크린도어를 2008년 2월까지 설치하도록 계약했다. 서울메트로는 이 업체에 계약금 77억원의 60%에 해당하는 선급금 46억원을 네 차례(2006년 10월, 2007년 3·8·9월)에 나눠 지급했다. 하지만 ㅅ산업은 공사기한을 넘긴 2008년 6월 말이 돼서야 4개 역사의 공사를 마무리했고, 동작역은 설치를 끝내지도 못해 계약 자체가 해지됐다.
서울메트로는 이 공사가 제대로 진척되지 않고 있던 2007년 9월 추가로 20개 역사의 스크린도어를 2009년 3월까지 설치하는 계약을 ㅅ산업과 체결했다. 이 공사 역시 제대로 진행되지 않아 기한을 연장해준 2009년 7월까지도 공정률은 20.4%에 그쳤다. 그런데도 김 전 사장은 공정률이 5.29%(계획상으론 30.24%)에 불과한 2008년 7월 ㅅ산업에 선급금을 지급하라고 지시하는 등 계약금 218억원의 55%에 해당하는 120여억원을 네 차례(2007년 9월, 2008년 7월, 2009년 1·3월)에 걸쳐 지급했다. 지극히 느린 공사 진행 속도에 비해 과도한 선급금을 지급한 셈이다. 특히 1차 계약분인 동작역 공사를 끝내지 못해 2008년 11월 계약이 해지된 뒤에도 2차 계약의 선급금이 나간 것은 선뜻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더구나 ㅅ산업은 결국 부도를 내 스크린도어 공사를 전면 중단했고, 서울메트로는 다른 업체와 새로 계약을 맺었다.
이와 관련해 김 전 사장은 “리먼브러더스 사태로 인한 경기 악화로 ㅅ산업이 자금난에 시달려 하청업체로부터 물건을 못 받고 있었다. 또한 당시는 정부에서도 예산 조기 집행을 독려하던 시기였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리먼브러더스 사태는 김 전 사장이 선급금 지급을 지시한 지 4개월 뒤에 벌어졌다. 또한 예산 조기 집행 지시는 2009년에 예정된 사업을 조기에 발주하라는 것으로 이미 계약된 사업과는 무관하다.
김 전 사장은 지난 10월22일 과 만나 자신이 억울하게 ‘표적 감사’를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내가 단행한 혁신에 저항하는 강성 노조, 인사에 불만을 품고 정권 실세에게 나를 음해해 ‘표적 감사’를 받도록 한 간부는 지하철이 자기들 것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하철은 서울 시민의 것이며, 나는 서울 시민의 지하철을 위해 일했다”는 것이다. 적어도 3분의 1은 맞는 얘기다. 지하철은 서울 시민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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