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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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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이 하면 로맨스, 전교조가 하면 불륜?

전교조 조합원의 정당 가입·후원은 실정법 위반?…
교장·사학법인의 노골적 여권 지지 활동에는 왜 눈감았나
등록 2010-02-11 17:55 수정 2020-05-03 04:26

2008년 4월, 18대 총선을 얼마 앞두고 있을 때의 기억이다. 그때 나는 열아홉 살 고3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요즘 고3 아이들, 겪어보면 알겠지만, 알 거 다 안다. 수업 시간이 좀 지루할라치면 선생을 낚아보겠다고 몇몇 까부는 녀석들이 설치기 시작한다. “쌤, 이번 총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라고 미끼를 던지거나, “한나라당이 과반이 되면 어떻게 되지요?”라며 선생의 승부욕을 자극하는 녀석도 있다. 나는 그때마다 이렇게 답해야 했다. “내년에 대학생 되기 싫으면 계속 질문해라, 이놈들아”라고. 이딴 흰소리로 모면하는 것 말고는 달리 다른 길이 없었다. 수업 시간에 정치 얘기를 하는 건 정치 중립 위반이라고 할 테니 말이다.

지난 2월2일 오후 임춘근 전교조 사무처장(왼쪽)과 김성룡 전공노 부위원장이 민주노동당 가입 등 불법 정치활동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지난 2월2일 오후 임춘근 전교조 사무처장(왼쪽)과 김성룡 전공노 부위원장이 민주노동당 가입 등 불법 정치활동 혐의에 대한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영등포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교사는 절대 금지, 교수는 무제한 허용?

그런데, 그 무렵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보게 되었다. 당시 서울대 교수이자 한나라당 선거대책본부장이던 박세일씨가 선거운동 기간 중에 서울대 1학년을 대상으로 한 교양과목 수업을 했다는 거였다. 뭐지, 이건? 내가 가르치는 고3 학생 중에는 학교를 한 해 쉬어서 우리 나이로 스무 살 되는 아이가 있고, 박세일씨가 가르치는 서울대 1학년 중에는 학교를 한 해 일찍 들어가서 열아홉 살인 아이도 있을 텐데, 그럼 무엇을 기준으로 박세일씨는 정치활동을 겸해도 되고 나는 안 되는 거지?

대학교수인 박세일씨는 정당 가입은 물론 당직을 맡을 수도 있고, 후원금을 낼 수도 받을 수도 있다. 선거에서 떨어져도, 당선돼서 임기를 마치고 나서도 원래 자리로 되돌아올 수 있다. 그러고도 모자라 선거운동 기간 중에 학생들에게 강의까지 한다. 그런데 바로 한 살 아래 아이들을 가르치는 나는 지지하는 정당에 돈 한 푼 내는 일에도 가족의 생계와 내 사회적 삶 전체를 걸어야 하고, 수업 시간엔 정치에 대해 입도 벙긋 못하게 재갈이 물려져 있으니, 이건 대체 뭔가 하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실정법이 그렇다고 하니 그렇게 알고 숨죽이고 살아왔지만, 이런 문제가 공론화될 때 꼭 한번 던지고 싶은 질문만은 품고 있었다. 대체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 뭐냐고 말이다. 교사건 학생이건, 이렇게 입에 재갈을 물리고 나라에서 정해준 것만 가르치고 배우라고 강요하는 것이 정말로 ‘교육의 정치적 중립’을 위한 것인지, 아니면 누구 좋으라고 하는 일인지 묻고 싶었던 것이다.

지금 공권력과 극우언론에 의한 ‘전교조 죽이기’ 4탄이 몰아치고 있다. 1탄은 일제고사 당시의 대량 해직이었다. 물론 법원에서 무리한 징계라고 징계 자체를 무효화했다. 2탄은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 출마한 주경복 후보를 도운 전교조 서울지부 소속 교사들에 대한 검찰 수사와 기소였다. 얼마나 지독하게 전자우편과 계좌를 훑으면서 당사자들을 옥죄었던지 검찰에 출두해서 조사받고 나면 며칠간은 통 기운이 없어 아무 일도 못하고 우울증에 걸릴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는 어느 동료 교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3탄은 지난해 시국선언을 빌미로 한 전교조 지도부 전체에 대한 대량 징계였다. 물론 이에 대해서도 법원은 징계 무효 판결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기서 물러설 저들이 아니다. 마지막 건수가 남았으니, 1~3탄과는 달리 실정법상 명백한 근거가 있는, 전교조 조합원들의 정당 가입 및 후원 문제다. 이미 300명 가까운 조합원에게 소환이 통보됐다.

여러 언론을 통해 보도됐지만, 초·중등 교원의 정치활동 자유는 세계적 대세가 돼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중에서 법적으로 교원의 정치활동을 제한하는 몇 안 되는 나라인 미국에서도 교원노조가 대통령 선거 당시 오바마 후보에게 620억원의 정치헌금을 모금해준 바 있고, 일본 또한 개인 자격으로 하는 정당 가입과 후원까지 막지는 않고 있다. 나머지 나라들은 교사의 정치활동 자유를 폭넓게 허용하고 있거나, 정치활동을 금지하는 법규 자체가 아예 없다. 그래서 그 나라들의 교사는 우리나라 대학교수가 누리는 수준의 정치활동의 자유를 거의 완전하게 보장받고 있다.

그뿐인가. 우리나라만 해도 보수 정치권과 가까운 교사들은 이미 왕성하게 정치적 활동을 하고 있다. 교총과 그 산하 단체 소속 교사들이 국정감사 기간에 한나라당 국회의원들에게 거액의 후원금을 조성해 전달하고, 사립학교법 개정 당시 한국사학법인연합회 소속 교장과 이사장들이 조직적으로 후원금을 모았다. 대통령 선거 당시 교총이 이명박 후보를 초대하는 토론회를 할 때는 아예 출장비를 받은 교총 소속 교장과 교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심지어 사립학교법 논란과 관련해 자신들의 입장에 서 있는 현승일씨를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공천해달라고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에 조직적으로 청원을 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아무런 제재가 가해지지 않았다.

진정한 ‘교육의 정치적 중립’ 지켜지고 있나

그런데 전교조는 문제가 된다. 시국선언을 조사한답시고 전교조 본부의 서버를 통째로 떼어갔다. 민주노동당 당원 명부며, 절대 비밀이 보장된 민주노동당 당원 전자투표 데이터까지 어디서 구한 모양이다. 지금 저들의 몸놀림은 날래고 또한 절박하다. 어딘가를 향해 보여드려야 할 충성의 맹약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건은 서울 영등포경찰서가 맡고 있고, 이를 진두지휘하는 이는 조현오 서울경찰청장이다. 이분 혹시 기억하실지 모르겠다. 지난해 경기 평택 쌍용자동차 파업을 무력으로 진압했고 그 공으로 서울경찰청장으로 영전한 바로 그분이다. 공장을 점거하고 있던 노동자들에게 뿌려대는 최루액에 발암물질이 섞여 있다고 지적하니 “최루액이 향수 뿌리는 거하고는 틀리지 않습니까. (몸에 좋은 거라면) 뭐하러 최루액을 뿌리겠습니까”라고 반문해(YTN ) 우리를 ‘떡실신’시켰던 바로 그분이다. 그는 이번에 위암으로 세상을 떠난 젊은 교사 서현수에게도 소환장을 발부해, 아들의 죽음으로 마음의 지옥을 헤매고 있을 그 어머니를 다시 쓰러지게 만들기도 했다.

얼마 전 타계한 미국의 역사학자 하워드 진이 자신의 인생을 되돌아본 책의 제목으로 달았듯, ‘달리는 기차 위에 중립은 없다’. 교육은 이 사회의 모든 영역과 마찬가지로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공간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지만, 아이들은 미래의 유권자이며, 우리가 해결하지 못하고 떠넘기는 이 사회의 온갖 문제를 풀어가야 할 당사자다.

“교사도 시민이다” 외침이 용기가 된 세상

저들이 금과옥조처럼 들이대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란, 교사와 아이들의 입을 틀어막고 삼권분립이 어떻고 대통령제가 어떻고 1차 개헌부터 9차 개헌까지 핵심 쟁점이 어떻고 하는 지식의 거죽들만 좔좔 외우게 하는 것으로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은 우리 현실에 대한 능동적인 토론과 문제제기, 그리고 실제로 자기 몸을 놀려서 얻어지는 판단과 깨달음을 통해 아이들의 의식 속에서 이룩되는 ‘다차원적이고 능동적인 균형’인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육 현장에서 이 균형추는 얼마나 심각하게 기울어져 있는가.

나는 내 자신이 학창 시절에 그러했듯이 정해진 진도에서 벗어나 ‘삼천포’로 빠져서 정신없이 다도해를 헤매다가 여수나 완도 어드메로 기어 올라오는 수업이 참 좋다. 교사는 그렇게 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그리고 말로써만이 아니라 직접 그 현실 속에 몸을 담고 활동할 자유가 있어야 한다. 정치에 대해, 그리고 세상의 모순에 대해 교사 자신이 느끼고 알고 있는 만큼 가르칠 수 있는 권리는 교사에게 보장돼야 할 극히 당연한 자연권에 해당한다.

자꾸 ‘정치적 중립’ 어쩌고 말하지 말아달라. 한국 교육은 이미 충분히 정치적이다. 보다시피 이렇게 틀어막아놓고선 자신들은 할 거 다 하고, 얻을 거 다 얻고 있다. 더 나아가 저들은 이런 학교 교육을 통해 침묵과 타율, 순종 그리고 정치적 무기력이라는 큰 선물을 얻고 있다. 해방과 전쟁 이후 한국 현대사의 몇십 년간이 대체로 그러했다. 아이들은 거의 60년 만에 처음으로 ‘촛불 항쟁’이라는 예외적인 폭발로 분출했지만, 저들은 지금 이 폭발이 재연될 가능성을 없애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중이다.

교사는 노동자이며, 또한 시민이다. 20년 전, 전교조가 만들어질 당시 전교조 소속 교사였던 시인 안도현은 “목숨을 걸어도 좋을 한마디, 교사는 노동자다”라고 포효했다. 그런데 20년이 지난 지금 나는 “교사는 시민이다”라는 명제 하나를 두고 목을 쓰다듬고 있는 중이다. 역사가 과연 진보하기는 하는 것일까.

이계삼 경남 밀양 밀성고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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