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6일 오후 경기 평택에서 한겨레신문사의 취재차량은 봉변을 당했다. 쌍용차 노사가 극적인 합의문을 발표하던 순간이었다. 공장 밖에 모여 있던 회사쪽 직원들이 비닐봉지에 오물과 폐유를 담아 던졌다. 그 광경을 지켜본 노조원들은 손수 취재차량을 세차해줬다. 한겨레 취재차량 72허6904는 졸지에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쌍용차의 회사쪽과 노조쪽 임직원들은 지나는 자동차에서 여전히 ‘내 편, 네 편’을 읽는다. 합의는 했으나 갈등은 끝나지 않았다.
강정근 신부는 이날 평택에 들르지 않았다. 경기 안성 미리내 성지에 머물렀다. 그는 미리내 성지 본당 신부다. 적어도 이날만은 평택에서 강 신부가 할 일이 없었다. 원래 그는 ‘인간 방패’를 자처했다. 7월28일부터 일주일 동안 매일 오후 3시 평택 공장 앞에서 미사를 올렸다. 성난 사람들의 가운데서 기도했다. 으르렁대는 사람들을 말렸다. 그 와중에 속도 타고 얼굴도 타버린 강 신부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이제 전쟁은 끝난 것인가.
“노조원들이 많이 양보했지요. 다 죽게 생긴 벼랑 끝에서 선택할 수 있는 건 차선일 수밖에 없잖아요. 끝까지 강경하게 대처해서 생명을 잃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생각했을 겁니다. 매우 불리한 조건인데도 벼랑 끝에 몰려 합의를 본 거지요.”
전쟁터에서도 부상자 치료는 양해하건만강 신부가 공장 정문 앞 천막 아래서 처음 ‘쌍용차 미사’를 집전한 것은 7월24일이다. 7월28일부터는 매일 미사를 올렸다. 농성 중인 조합원들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기도했다. 식수·의약품·식량만이라도 공장에 들여보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77일 동안의 쌍용차 점거 농성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이 여기에 있다. 검경과 회사 쪽은 농성 조합원들을 말리고 굶기고 시름시름 앓게 하여 마침내 제거해버리는 ‘고사 작전’을 펼쳤다.
“어떤 것도 생명과 비교할 수 없잖아요. 회사쪽이나 경찰에서 공장을 봉쇄한 것은 목숨을 끊는 것과 같지요. 하물며 전쟁터에서도 부상자를 치료하도록 서로 양해하는데…. 그런 행동은 정권의 정책기조에서 나왔어요. 경제를 살리는 일에 방해되는 사람은 없애야 한다는…. 그래서 생명조차 하찮게 여기는 거지요.”
정권의 철학이야 그렇다 치고, 노노 갈등으로 불릴 만큼 완강했던 ‘회사쪽’ 직원들의 태도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그들이 때로는 경찰보다 더 강경하게 시민단체와 야당, 취재진을 ‘린치’했던 이유는 무엇일까?
“어제(8월5일) 아침, 공장 앞 천막들을 철거하면서 ‘구사대’가 제 가슴을 빗자루 몽둥이로 찔렀어요. 나중에 어떤 사람이 찾아왔어요. 정말 죄송하다고, 자신도 (가톨릭) 신자인데, 부디 몸 조심 하시라고 하더군요. 그게 그들의 마음이에요. 월급을 받아야 가족을 살릴 수 있는 사람들이죠. 혹시 가족 가운데 병으로 누운 이라도 있다면 어떻게 노조 활동을 계속 할 수 있겠어요. 그걸 회사쪽에서 이용해 분열시킨 거죠. 구사대 사람들 모두 복면 쓰고 다녔어요. 직장 친구였던 이의 부인을 폭행할 때, 얼마나 마음이 힘들었겠어요.”
그런 마음까지 두루 감안해 노조가 보다 원만하게 문제를 풀 수는 없었을까? 처음부터 온건한 방식으로 합의를 끌어낼 수도 있지 않았을까?
등에 총 들이대며 대화하자는 것이 정상인가“합의를 원했다면 노동자들을 옥죄지 말았어야죠. 밤이 되어도 경찰 헬기가 공장 위로 서치라이트를 비추면서 야간 비행을 계속해요. 경찰은 방패로 땅을 찍으면서 함성을 질러요. 노조원들을 자극하고 잠을 재우지 않는거죠. 어제는 헬기에서 떨어뜨리는 최루액 봉지를 헤아려 봤어요. 두 시간 동안 40개를 퍼붓더군요. 노사충돌을 막으려고 평택에 경찰이 온 거라고 했지만, 노사가 충돌하지 않는 동안에도 경찰은 계속 압박했어요. 등에다 총을 들이대고 대화하자는 것이 정상인가요? 그렇게 두들겨패고 공포 분위기를 형성하면 공정한 대화가 되겠어요?”
강 신부는 잠시 숨을 골랐다. 그가 머물고 있는 미리내 성지는 김대건 신부의 묘지가 있는 곳이다. 김 신부는 한국 가톨릭 사상 처음으로 순교한 사제다. 그는 믿음을 설파했을 뿐, 죽음 앞에서도 달리 저항하지 않았다. 농성 노동자들은 새총을 쏘고 파이프를 휘둘렀다. 경찰의 폭력과 노동자의 폭력은 어떻게 구분되는가? 비폭력 저항은 왜 그들의 선택지가 아니었는가?
“비폭력 저항은 많은 시간과 인내를 요구하지요. 용산 참사 문제로 시위를 벌이는 시민들이 있어요. 참 기특한 일이지만, 용산 문제가 그들의 생명을 직접 압박하는 것은 아니죠. 시간을 두고 인내를 갖고 주장할 수 있어요. 비폭력 저항을 펼칠 자유가 있는 셈이에요. 쌍용차 노조원들을 보세요. 해고되면 그냥 죽는 겁니다. 가족의 목숨이 걸린 문제 앞에서 비폭력 저항으로 인내할 수 있는 ‘자유’가 그들에게 있었을까요? 노조원들은 도장공장을 농성장으로 택했어요. 그곳에서 일이 생기면 죽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경찰일까요? 아니, 바로 노조원들이에요. 목숨을 지키려고 목숨을 내건 거죠. 그걸 폭력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강 신부에게 쌍용차 사태는 기업이나 경제의 문제가 아니다. 생명의 문제다. 8월6일의 노사 합의로 쌍용차는 다시 회생할 수 있을까? 그럴 수도 아닐 수도 있다. 쌍용차가 회생하면, 자신을 말려 죽이겠다고 달려들던 벌거벗은 공권력을 농성 노동자들은 잊을 수 있을까? 경제보다 더 중요한 가치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신뢰할 수 있을까? 창고에 장판을 깔아 사제관으로 쓰면서도 거리의 생명을 더 걱정하는 강 신부의 기도는 언제쯤 그 응답을 받을 수 있을까?
<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tr><td height="22px"></td></tr><tr><td bgcolor="#E7E7E2" style="padding: 4px;"><table border="0px" cellpadding="0px" cellspacing="0px" width="100%" bgcolor="#F7F6F4"><tr><td class="news_text02" style="padding:10px">‘잃은 게 너무 많은’ 대타협
<font size="3"><font color="#006699">좀더 일찍 회생에 대한 문제의식 공감했더라면</font></font>
지난 8월6일 쌍용자동차 노사가 극적으로 타협하고 파업을 풀었다. 노사는 합의 조인식에서 “정리해고자 974명 가운데 파업을 벌인 조합원 640여 명이 자발적으로 무급휴직, 영업 전직, 분사, 희망퇴직 등을 선택하도록 했다”고 발표했다. 이 가운데 52%는 반드시 회사를 떠나야 한다. 다만 이는 종전의 ‘해고’가 아닌, 희망퇴직의 형식을 따른다. 노조 입장에선 해고 폭을 줄였고 회사 쪽은 회생을 위한 마지막 동아줄을 잡았다.
하지만 ‘대타협’이라고 하기엔 이르다. 노사가 9월15일로 예정된 회생계획안을 어떻게 마련하느냐가 중요하다. 특히 파업 전후와 지금을 견줬을 때 해결된 문제는 하나도 없다. 상처만 깊어졌다. 5월22일 공장점거 뒤 3160억원의 손실을 새로 입었다. 지난 7월 쌍용차는 국내에서 71대를 팔았다. 단적으로 ‘4ㅅ’, 즉 시간, 신뢰, 소비자, 시설을 잃었다.
이종탁 한국비정규노동센터 부소장은 “존속가치를 인정했던 5월에 회생에 대한 문제의식을 노사가 깊이 교감 못한 게 가장 아쉽다”고 말한다. 회사 쪽은 ‘정리해고’, 노조는 ‘완전 고용’이라는 합의될 수 없는 원칙만 고수하며 초장부터 치킨게임처럼 맞달렸다. 김태기 단국대 교수(경제학과)는 “후유증이 너무 커 대타협이라고 부르기엔 쑥스럽다”고 대놓고 말한다.
하지만 77일의 극한 대결 끝에 회사는 “파산은 안 된다”는, 노조는 “일하고 싶다”는 절실함을 아로새겼다. 무엇보다 정부가 철저히 방임한 가운데 극단으로 대립하던 노사가 이렇게 합의에 도달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이종탁 부소장은 “자동차 대기업의 역대 공장 점거 파업 기간만 쳐도 최장일 것”이라고 말한다. 김태기 교수도 이를 두고 “진정성의 차이가 있다”고 말한다. 이 지점에서 회생을 위한 노사 간 노력이 가시화된다면,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 명분도 생긴다는 얘기다.
그렇기에 ‘대타협’이란 수사는 9월15일 이후에 평가가 가능하다. 전문가들은 법원과 채권단에게서 쌍용차의 자구회생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십중팔구 파산할 것으로 본다.
타협 이후 여러 주문이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자동차공학부)는 “노사가 함께 망할 수 있다는 걸 간접학습했다”며 “이제 노사끼리 다툰 공을 국민에게 던져야 한다”고 말한다. 정부의 ‘공적자금 투입’이 생사 기로의 또다른 관건이란 얘기다. 지난 5월 삼일회계법인이 존속가치를 인정했을 때도 ‘자금조달 방안’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 대목에서 “정부가 희망퇴직자 등에 대한 정책적 지원을 제시했다면 조기 타협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이종탁 부소장)거나 “명분이 없어서 정책적으로 방관할 수밖에 없었다”(김태기 교수)라며 찬반이 갈리기도 한다. 이유가 뭐든 정부가 뒷짐만 진 건 명백하다.
임인택 기자 imi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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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글 안수찬 기자 ahn@hani.co.kr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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