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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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쇠사슬에 묶여 학대당하는 장애인 시설

강화 선교원 ‘개미굴’서 아파도 아프다고 말 못한 이들의 참혹한 생활
등록 2009-07-24 18:11 수정 2020-05-03 04:25

지난 7월15일 인천 강화군 선원면 금월리, 밭사이 비포장 도로를 따라 한참을 따라가니 외진 곳에 건물이 하나 나타났다. 대문 위쪽에는 ‘신흥난민구제선교원’이란 팻말이 붙어 있다. 초록색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가자 사람만 한 개가 기세 좋게 짖어댔다. 개 짖는 소리를 빼면 사방이 고요했다. 그 곳에는 3채의 건물이 있다.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 1채와 축사 형태의 길쭉한 건물 1채 그리고 지은 지 얼마 안 된 듯한 새 건물 1채가 서 있다. 축사 건물에도 ‘난민구제선교원’이란 간판이 붙어 있다. 겉모습은 시골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농가의 모습이다. 이 곳이 얼마 전 장애인을 쇠사슬로 묶어 학대하고 시설장이 지원금을 횡령해 문제가 된 장애인 시설이라는 사실을 알기 전까지는 그렇다.

‘신흥난민구제선교원’에 수용됐던 이들은 지난 7월15일 인천 강화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만났다.

‘신흥난민구제선교원’에 수용됐던 이들은 지난 7월15일 인천 강화의 한 장애인시설에서 만났다.

축사 건물 문을 열고 들어가니 훅 하고 시큼한 냄새가 밀려왔다. 어둡고 눅눅한 복도를 따라 작은 방이 8개 있는데, 군데군데 벽이 무너진 곳도 보였다. 방마다 얼마 전까지 사람이 살았던 흔적이 남겨져 있다.

잠자는 방에서 용변까지

한 방에 들어가자 바닥 위에 합판으로 만든 침대가 놓여 있고 그 위에는 은박 돗자리 2장이 깔려 있다. 여기에서 장애인 2명이 잤다. 옆방에는 아예 방 안에 양변기가 놓여 있고 그 옆으로는 이불이 어지럽게 널려있다. 용변을 보는 곳과 잠자는 곳이 구분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 축사에서 불과 며칠 전까지 정신·신체 장애인 10명이 생활했다.

새로 지은 건물을 둘러보다 만난 김성대(63·가명·뇌병변 3급)씨는 18년 동안 이곳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그는 이 시설이 폐쇄돼도 여기에 뼈를 묻겠다며 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새 건물 안에 들어서니 아직 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은 듯 흙과 돌이 가득하다. 김씨는 “나를 빼고 다들 여행을 갔다”며 웃었다. 낮 12시가 조금 지난 시각이었지만, 그는 아직 식사 전이라 했다. 그는 “저기 가서 비벼먹으면 된다”고 했다. ‘비벼먹는다’는 것은 푸드뱅크에서 보내온 음식을 길게는 한 달까지 냉장고에 넣어뒀다가 다시 간장 등을 넣어 비벼먹는 것을 의미한다.

강화군청은 지난 7월16일 개인이 운영하는 이 장애인 시설에 폐쇄명령을 내렸다. 정아무개(78) 목사가 18년 동안 운영해온 이 시설에서 장애인 인권 유린이 저질러진 사실은 수용된 장애인들이 열흘 전 직접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이하 연구소)를 찾아가 고발하면서 알려졌다. 그때까지 사람들은 이 허름한 농가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했다.

연구소 활동가들이 지난 7월9일 시설을 찾았을 때 최영태(48·가명)씨는 발목에 쇠사슬이 채워진 채로 누워 있었다. 최씨가 자꾸 동네를 돌아다녀 주민들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쇠사슬에 석달 동안 묶어뒀다는 게 시설 장애인들의 주장이다. 최씨는 식사 시간과 화장실 갈 때만 쇠사슬에서 풀려났다.

문제가 불거진 뒤 10명 가운데 7명의 장애인은 인근 길상면에 있는 ‘행복이 가득한 집’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 곳에서 만난 피해자 최영태씨는 정신지체 2급이라고 했다. 작은 키에 살집이 있고 눈에는 초점이 없었다. 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그는 상대의 말에 거의 반응하지 않았다. 그의 입을 통해서 그가 어떤 고통을 겪었는지 확인하는 건 불가능했다. 손가락으로 발목을 가리키자 그가 고개를 돌렸다. 같은 장애인인 이정석(45·가명·지체장애 6급)씨는 “이 사람은 아파도 아프다고 못하고 반항도 못한다”며 “그동안 당한 걸 생각하면 속이 쓰리다”고 말했다. 자신도 가해자 중 한 명이라는 죄책감을 느끼는 듯했다. “목사가 시켜서요, 제가 그 사람 발목을 쇠사슬로 묶었어요.” 이정석씨가 고개를 떨궜다. 그에게 시설장인 정 목사의 지시는 법과 같았다고 했다.

시설장인 목사가 시켜 동료들 감시

정 목사는 장애인 시설 내에 ‘그들만의 계급’을 만들었다. 비교적 장애가 경미했던 이정석씨에게 정 목사는 ‘권사’ 지위를 부여해 동료들의 감시와 허드렛일을 맡겼다. 지난해 8월엔 신학대학원에 다니는 김철진(가명·지체장애 3급)씨를 불러들여 ‘전도사’를 시켰다. 두 사람에게는 한 달에 30만~40만원씩 돈도 건넸다. 그리하여 장애인 시설은 정 목사의 말 한마디에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조직’이 됐다. ‘조직’은 쉽게 ‘인권유린 피라미드’가 됐다. 하지만 결국 그 ‘피라미드’는 전도사와 권사가 외부에 제보를 하면서 무너졌다.

이정석씨는 시설에서 ‘밥 담당’이였다. “2~3일에 한 번씩 푸드뱅크에서 음식이 오면 그걸 다 냉장고에 넣어두고 한 달씩도 먹었다”고 했다. 몇 년 전까지는 정 목사가 직접 밥을 퍼줬는데, 너무 적게 줘서 시설 장애인들이 하루 종일 먹을 것을 찾아다녔다는 증언도 나왔다. 정 목사는 장애인들에게 “많이 먹으면 괜히 탈 난다”고 말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같은 동네 주민과 교인들이 장애인들을 위해 간혹 기부한 쌀도 장애인의 몫은 아니었다. 정 목사 부부의 차지였다. 장애인들에겐 오로지 푸드뱅크의 음식만 주어졌다.

신흥난민구제선교원이 얼마전까지 사용했던 건물. 축사를 개조한 이 시설에서 10명의 장애인이 생활했다.

신흥난민구제선교원이 얼마전까지 사용했던 건물. 축사를 개조한 이 시설에서 10명의 장애인이 생활했다.

사건이 불거지자 강화경찰서는 시설 장애인을 쇠사슬로 묶고 학대한 혐의에 대해 정 목사와 이정석·김철진씨를 상대로 수사에 나섰다. 정 목사는 “전도사와 권사가 (안시켰는데도) 스스로 최씨를 묶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정석·김철진씨는 “목사의 지시에 따랐을 뿐”이라고 진술했다. 경찰은 “증거가 없다 보니 진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수급비 가로채 카드대금 지불

피해자들 중 자기 의사표현이 가능한 이기현(43·가명·정신지체 3급)씨는 과의 인터뷰에서 “힘들었다”는 한마디만을 남겼다.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었다. 그는 말을 할 수는 있지만 심리적으로 위축돼 좀처럼 말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 나머지 사람들은 의사소통이 불가능하다. ‘행복이 가득한 집’의 김범철 이사장은 “이분들을 처음 봤을 때 상대를 매우 경계하더라”며 “이들이 안정을 찾을 수 있도록 하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인권 유린뿐만 아니라, 정 목사가 장애인들 앞으로 지급된 각종 수당 등을 횡령했다는 의혹도 함께 불거졌다. 난민구제선교원의 실태를 연구소에 제보한 김철진씨는 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정 목사 부부가 별다른 수입이 없는 상태에서 오랜 시간 자연스럽게 장애인들의 기초생활수급비와 장애인 수당 등을 가로채 사용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의 장부와 통장을 모두 확인했다는 그는 “장부에는 들어오는 돈만 기록했고, 통장을 보면 수급비나 지원비를 목사 부부의 병원비나 자신의 딸·아들을 위해 사용한 내역으로 가득하다”고 말했다. 또 연구소 활동가들의 확인 결과 정 목사 부부는 지원금과 수급비를 자신들의 카드대금과 대출이자를 내는 데 쓰기도 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소가 밝힌 ‘난민구제선교원 시설 현황’을 보면, 시설 장애인들에게 지급된 수급비 총액은 2005년 6400여만원, 2006년 7200여만원 등 매년 7천만원 안팎이었다.

정 목사는 비인가로 장애인 시설을 운영해오다가 지난 2005년 보건복지가족부에 신고했다. 이때 그는 개인 운영 장애인 시설의 건물 증·개축을 지원하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조건부 시설 복권기금 기능보강사업’ 대상자로 선정돼 8천만원을 지원받았다. 올해 강화군청은 685만8천원을 난민구제선교원에 지원했다. 김철진씨는 “정 목사가 지원금을 받고도 오래전에 고장난 보일러조차 고쳐주지 않아 한겨울에도 떨어야 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김씨에게 “저 사람들 비바람이나 막아주면 됐지 무슨 보일러냐”고 말했다고 한다.

지자체는 지원금은 주면서도 관리·감독은 허술하게 했다. 강화군청은 지난 5월 난민구제선교원에 시설 점검을 나갔지만 특별한 지적을 하지는 않았다. 후원금 및 보조금 관리 실태는 ‘부적정’하고 시설 기준 준수 여부에도 ‘구비치 못함’이라고 기록했지만, 이와 관련한 후속 조처는 없었다. 결국 피해자들의 제보가 있고 나서야 강화군청은 행동에 나섰다. 박경석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집행위원장은 “보건복지가족부와 지자체가 비인가 시설, 개인신고 시설 등에 대한 관리·감독에 소홀하고 장애인들이 지역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는 환경 조성에 무관심해 수십년째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개인 운영시설 전국에 290곳

난민구제선교원처럼 개인이 운영하는 장애인 시설은 지난 4월 현재 전국에 290곳에 달한다.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염형국 변호사는 “현재 국가는 장애인 복지시설을 운영할 능력도 의지도 없다”면서 “개인에게 공적 역할을 담당하게 하려면 공적 통제 장치도 작동해야 하는데, 그냥 방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7월15일 난민구제선교원에서 만난 정 목사는 “괜히 전도사란 사람을 하나 들였다가 망했다. 꿈인지 생신지 모르겠다”며 자신은 억울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좋은 일 하다가 결말에 가서 이게 뭐냐”고 말했다. 하지만 수급비 횡령을 묻는 질문에는 대답을 피했다. 그는 시설을 큰아들에게 물려줄 계획이었다고 말했다.

이광세 인천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 인권팀장은 “장애인 차별 금지 및 권리 구제 등에 관한 법률은 복지시설에서의 부당한 대우, 일상생활에서의 방치·유기·학대 등을 금하고 있지만, 얼마나 많은 장애인이 학대받고 있는지를 사회는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장애인 시설 신고만 하면 정부는 예산을 지원하면서도 관리 감독을 제대로 하지 않는 지금의 관행이 고쳐지지 않는 한, 개인이 ‘알아서’ 운영하는 장애인 시설 290곳에서 앞으로 또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강화=글 임지선 기자 sun21@hani.co.kr·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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