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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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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국세청의 신뢰를 떨어뜨렸나”

‘한상률 전 청장 비판글’ 올렸다 파면당한 나주세무서 김동일 계장
“외풍 막으려면 견제와 소통 필요”
등록 2009-06-26 17:12 수정 2020-05-03 04:25

국세청 직원만 보는 인터넷 내부 게시판이 있다. 그 게시판에는 ‘나의 의견’ 난이 마련돼 있다. 직원들끼리 ‘소통’하자는 마당일 터다. 지난 5월28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로 국민들의 추모 열기가 애틋하던 무렵이었다. ‘나의 의견’ 난에 ‘나는 지난여름에 국세청이 한 일을 알고 있다’라는 제목의 글(상자기사 참조)이 올라왔다. 국외 도피 중인 한상률 전 국세청장을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이 글을 근거로 기자가 ‘노 전 대통령 서거 국세청 직원 비판글’이라는 제목의 기사를 썼다. 국세청은 발끈했다. 글을 쓴 나주세무서의 김동일 계장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어 6월8일자로 직위해제했다. 이날부터 김 계장은 가슴에 검은 리본을 달고 검은 넥타이를 맨 채 출근했다. 국세청 수뇌부가 헌법에 보장된 표현의 자유에 사망선고를 내렸다는 생각에서였다.

광주전남진보연대, 한국투명성기구광주전남본부 등 광주 지역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이 6월16일 오후 광주 북구 오룡동 정부합동청사 앞에서 국세청의 김동일 계장 파면 조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세청은 비판 여론에도, 같은 날 김 계장을 검찰에 고소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진 연합

광주전남진보연대, 한국투명성기구광주전남본부 등 광주 지역 시민단체 소속 회원들이 6월16일 오후 광주 북구 오룡동 정부합동청사 앞에서 국세청의 김동일 계장 파면 조치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국세청은 비판 여론에도, 같은 날 김 계장을 검찰에 고소하는 등 강경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사진 연합

잇따른 ‘표적 세무조사’ 의혹들

김동일 계장은 6월18일 과의 전화 통화에서 “사태가 상식적으로 해결되길 바란다”고 말문을 뗐다. 국세청은 김 계장에 대해 6월15일 파면 결정을 내렸다. 퇴직금의 절반을 깎고 5년간 공직 채용을 막는 중징계로, 공무원들에겐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파면 결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들끓었지만, 국세청은 이튿날 그를 검찰에 고소까지 했다. 김 계장은 “파면의 근거는 ‘품위유지 의무’를 적시한 국가공무원법 제63조와 국세청 공무원행동강령 제23조였다”면서 “세무조사를 자신의 출세 수단으로 활용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는 한 전 청장이 품위를 잃었는지, 아니면 그의 잘못을 비판한 사람이 품위를 잃었는지는 국민이 다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김 계장은 “국세청 직원이라면 누구나 박연차 전 회장의 태광실업에 대한 세무조사가 ‘표적 세무조사’라는 의혹을 일정 정도 수긍할 것”이라고 말했다. 심층·기획조사만 하는 서울지방국세청 조사4국이 재계 620위권, 매출 3천억원짜리 중소기업을 조사하기 위해 관할지역도 아닌 경남 김해까지 내려갔기 때문이다. 그는 세무조사 기한이 연장된 것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요즘은 ‘납세자 보호’를 위해 기간 연장을 하지 않는 게 상례이기 때문”이다. 김 계장은 “청와대에서 시켰든 아니면 한 전 청장이 과잉 충성하느라 그랬든 국민적 의혹이 있는 것은 사실 아니냐”고 반문하면서 “돌아보면 친박연대 비례대표 1번이던 양정례 전 의원 가족들에 대한 세무조사나 정연주 사장 시절 한국방송 외주업체들에 대한 세무조사를 벌인 것도 의혹을 살 만한 사례들”이라고 말했다.

김 계장은 “현장에서 일하는 2만여 명의 국세청 직원들은 국민의 신뢰를 얻기 위해 투명하게 일한다”면서 “반면 전군표, 이주성, 한상률 등 3명의 전 청장들은 금품수수나 그림로비 의혹 등으로 불명예 퇴진했다”고 꼬집었다. 특히 한 전 청장에 대해서는 “전직 대통령을 벼랑 끝으로 내몰기까지 단초를 제공해 국세청 조직의 신뢰를 완전히 망쳐버렸다”고 평가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김 계장은 국세청장 임명 과정과 권한집중형 국세청 구조가 사단이라고 지목했다. 낙마한 전 청장들은 공교롭게 모두 내부에서 승진한 사람들이었다. 김 계장은 “다른 사람을 떨어뜨리고 올라가려면 정치권에 기웃거릴 수밖에 없고, 청장이 되고 나면 신세진 정치인들이나 청와대의 눈치를 살피게 된다”고 설명했다. 진짜 문제는 “청장이 잘못된 생각을 가지더라도, 이를 조직 내부에서 견제할 방법이 없다는 점”이다. 김 계장은 이런 현실을 바꾸기 위해 “6개 지방청장들에게 권한을 분배하고, 국세청 자체에서 수행하는 감사·감찰도 감사원이 하도록 구조개혁을 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파면 결정을 내린 ‘징계의결 문서’는 김 계장의 글이 에 보도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국세청의 명예가 실추됐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해 김 계장은 “한 전 청장은 지금 국세청 조직원의 신분이 아닐뿐더러, 그에 대한 비판은 국세청이 건전한 자정능력을 가진 집단이란 걸 국민에게 알린 행위였다”면서 “한 전 청장은 지금이라도 국내에 들어와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세무조사 로비 의혹, 태광실업 표적 세무조사 의혹 등을) 조사받아야 한다”고 반박했다. “이런 과정들이 선행돼야 게시글(의 표현)이 심했는지 아닌지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파면 부당” 소청심사·행정소송 방침

김 계장은 정작 이번 파문을 키운 장본인으로 국세청 수뇌부를 지목했다. “우리 헌법이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데도 국세청 직원끼리만 보는 내부 게시판에 글을 올렸다는 이유로 징계를 내렸기 때문”이다. “징계가 말이 안 되기 때문에 언론 보도가 집중됐고, 많은 국민이 국세청의 실상을 알게 됐다”고 그는 주장했다.

징계 파동을 겪으며 애먼 가족들까지 고초를 겪었다. 그의 아내는 징계 결정에 너무 놀랐는지 한밤중 가슴 통증을 호소하곤 한다. 고3과 고1인 아이들이 공부에 집중하지 못할까봐 걱정도 크다. 김 계장은 “그래도 후배들이 용기 내라고 격려하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내주고, 전직 직원들도 전화를 많이 걸어줘 힘이 된다”고 웃으며 말했다. 그는 이번 파면 결정에 대한 소청심사를 요청하고, 여기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행정소송을 제기할 생각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 진영과 전국공무원노조에서도 적극적으로 도와주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그의 바람은 법적 다툼이 아니라, 대화와 소통이다. 처음 게시글을 올리고 조회 수가 6천여 회에 이르자 게시물관리위원회는 자의적 판단에 따라 삭제(비공개)했다. “만일 그때 감사관이 ‘표현이 거치니 일부를 수정해달라’고 요구했다면 쾌히 응했을 것”이라고 김 계장은 말했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글을 지워버려서, 자신도 댓글을 계속 올리며 반발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는 “솔직히 지금은 기댈 대상이 국민밖에 없는 실정”이라며 “부디 국세청 수뇌부가 감정적 대응으로만 치닫지 말고, 파면 조처를 철회하고 징계위원회를 다시 여는 결단을 해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국세청 내부 게시판에 김동일 계장이 올린 글 요약
태광실업 세무조사 전말 밝혀야



김동일 계장

김동일 계장

이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도 측은하기 그지없다. 전직 대통령을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생을 마감하게 내몰기까지 국세청이 그 단초를 제공했기 때문이다.
2009년 5월25일(월요일) 5면에 있는 “촛불에 덴 정권 ‘반전카드’ ‘세무조사 의혹”이라는 제목의 글에서 잘 나타나 있다.
이런 말도 되지 않는 짓거리를 하여 국세청을 위기에 빠뜨리고 국세청의 신뢰를 도저히 회복할 수 없게 만들어놓고 국세청 수장으로 있던 동안에 직원들에게 강연을 하고, 사회공헌이다 뭐다 해서 쇼를 하게 만들었던가!
지금이라도 국세청 수뇌부에서는 왜 태광실업을 조사하게 되었으며, 왜 관할 지방국세청이 아닌 서울청 조사4국에서 조사를 하게 했으며, 왜 대통령에게 직보를 하고, 직보를 한 후에 어떤 조치가 이루어졌는지 밝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책임을 져야 하는 위치에 있었던 모든 사람들은 공직을 떠나야 하고, 국민 앞에 사죄를 해야 마땅할 것입니다.
이것만이 상처를 입은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시가 급합니다. 이 또한 시기를 놓치면 의미가 없습니다.
국세청 수뇌부에서도 고심을 하겠지만 하루빨리 신속하게 결행이 있기를 바랍니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복을 빕니다.

임주환 기자 eyelid@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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