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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부사 vs 승부사

노무현, 정치적 위기 때마다 정면승부 vs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사표 쓸 각오로 ‘제 식구’ ‘대기업’ 수사
등록 2009-04-15 19:06 수정 2020-05-03 04:25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칼끝이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을 겨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4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오른쪽 사진은 검찰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한겨레 이종근 기자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을 수사하는 검찰의 칼끝이 노무현 전 대통령(왼쪽)을 겨냥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은 4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했다. 오른쪽 사진은 검찰 수사를 지휘하고 있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 사진 청와대사진기자단 제공, 한겨레 이종근 기자

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조사가 임박했다. 노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에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다. 노 전 대통령 조사는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정·관계 로비 의혹 사건의 정점이다. 지난해 말 시작된 검찰 수사가 겉으로는 야당 인사와 여권 실세를 번갈아 지목해왔지만, 최종 목표는 노 전 대통령이 될 것이란 관측이 우세했다.

더 큰 위기 속으로 자신을 내던져

방어하는 처지인 노 전 대통령 쪽과 빈틈을 노려야 하는 검찰 가운데 어느 한쪽은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싸움이다. 어차피 각각 ‘도덕성’과 ‘공정성’은 어느 정도 포기했다. 노 전 대통령은 박연차 회장에게 돈을 받았다고 스스로 시인했다. 검찰은 현 정권에 대한 박 회장의 로비 의혹은 거의 제쳐두고 노 전 대통령 일가를 샅샅이 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자존심이다.

양쪽의 대표주자인 노 전 대통령이나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모두 ‘승부사’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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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전 대통령은 정치적 위기 때마다 번번이 정면승부를 택했다. 막다른 골목에 몰렸을 때 아예 더 큰 위기로 자신을 내몰아 돌파구를 마련했다.

과거 사례가 있다. 2003년 2월 취임한 노 전 대통령은 줄곧 거대 야당의 공세에 시달렸다. 측근과 친·인척 비리 의혹이 거듭 제기됐다. 같은 해 10월 대선자금 비리 의혹도 불거졌다. 그가 던진 승부수는 ‘재신임’ 카드였다. “불법 대선자금 규모가 한나라당의 10분의 1을 넘으면 정계를 은퇴하겠다”는 ‘10분의 1’ 발언이 이때 나왔다. 그는 아예 재신임을 위한 국민투표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해줬다. 결과는 그의 승리였다.

2004년 4월 총선 직전 한나라당 등 야3당이 대통령의 총선 개입 발언 등을 이유로 대통령 탄핵을 추진했다. 3월11일 노 전 대통령이 기자회견을 자청했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드디어 그가 ‘대국민 사과’를 내놓을 것으로 봤다. 결과는 정반대였다. 그는 오히려 야당의 사과 요구를 거부하고 “총선 결과에 상응하는 정치적 결단을 하겠다”며 총선과 재신임을 연계했다. 야3당은 탄핵안을 통과시키고 역풍을 맞았다. 총선은 노 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대승으로 끝났다.

2002년 대선 후보 시절에는 지지율이 계속 추락하자 정몽준 현 한나라당 최고위원과의 ‘후보 단일화’ 카드를 꺼냈고, 대선 후보 경선 때는 장인에 대한 좌익 논쟁이 불거지자 “제게 대통령이 되라고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며 “그 때문에 대통령 하지 말라고 하면 안 하겠다”고 맞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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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전 대통령의 승부수는 자신을 내던지는 방식이었다. 사람들이 그의 진정성을 평가한 지점은 여기였다. 당면한 현실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대신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맞섰던 그에게 열광한 것이다. 반면 그의 벼랑 끝 승부는 상대방에게 엄청난 압박으로 작용했다. 2003년 10월 대선자금 수사 때 그의 ‘10분의 1’ 발언이 나오자 수사팀은 엄청난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박연차 회장 로비 의혹 수사가 자신을 옥죄어오자 그는 어김없이 승부수를 띄웠다. 4월7일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박 회장의 돈을 받았다고 시인하며 ‘법적 평가’를 받겠다고 했다. 이에 대해 한나라당 관계자는 “박연차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 수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이 노 전 대통령과 그의 측근 그룹”이라며 “게다가 전직 대통령인 자신이 이렇게 고백한 만큼 검찰의 수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지켜보겠다는 메시지로 읽힌다”고 말했다.

반면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은 “외부에서 굳이 승부수라고 해석했을 따름이지 노 전 대통령 본인이 ‘그 이후’를 염두에 둔 적은 없었다”며 “이번에도 돈 받은 사실 자체가 창피하고 부끄러우니까 솔직히 용서를 구한 것”이라고 말했다.

직속상관이던 전 대검 차장 기소

노무현 전 대통령을 상대하는 이인규 대검 중수부장은 뚝심의 승부사로 알려져 있다. 1997년 주미대사관 법무협력관을 거쳐 법무부 검찰 1·2·4과장을 역임했다. 기획통이지만 정작 이름을 날리게 된 것은 특별수사 분야였다. 서울중앙지검 형사9부(현재 금융조사부) 부장 시절 SK그룹 비자금 수사에서 최태원 회장을 구속하며 ‘재계의 저승사자’라는 별명을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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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때의 경험을 바탕으로 이 중수부장은 원주지청장 시절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던 대검 중수부에 파견됐다. 당시 안대희 중수부장은 대선자금 수사가 끝난 뒤 “이인규 지청장은 이번 수사의 일등공신이다. 기업 수사에 대한 노하우는 정말 탄복할 정도였다”고 말했다.

서울중앙지검 3차장으로 재직했던 2006년에는 전·현직 판사와 검사 등이 연루된 ‘김홍수 법조비리’ 사건을 이끌었다. ‘제 식구’가 연루된 만큼 당시 법원과 검찰 상층부의 우려가 있었지만 그는 수사팀을 독려해가며 밀어붙였다. 같은 해 브로커 윤상림씨 사건 수사에서는 김대중 정부 후반기 민정수석을 지낸 김학재 전 대검 차장을 기소했다. 김 전 차장은 이인규 중수부장이 검찰 2·4과장으로 재직할 때 직속상관인 검찰국장이었다. 사건 수사에서는 한때의 상급자라도 가리지 않았던 것이다.

물론 이인규 중수부장에 대한 다른 평가도 있다. 워낙 처세에 능하고 언론 감각이 뛰어나 실제 능력보다 평가가 부풀려졌다는 지적이다. 일례로 그는 서울중앙지검 3차장 시절, 출입기자 등이 함께한 술자리에서 현재 검찰총장인 임채진 당시 서울중앙지검장에게 무릎꿇고 술 따르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윗사람에게 깍듯했다.

그가 처음 이름을 날리게 된 SK 수사의 경우 본인은 “본사 압수수색 들어갈 때 사표 쓸 각오하고 했다. 정권 교체기에나 할 수 있는 수사다. 아니면 못한다”며 뚝심 있게 밀어붙였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당시 검찰 관계자는 “SK 사건 수사는 그의 의지만으로 이뤄진 게 아니라 당시 김각영 검찰총장, 유창종 서울지검장 등의 뜻이 실려 있었다”고 말했다.

걸 수 있는 게 없는 마지막 승부

박연차 회장 로비 의혹 수사에 대해서도 민주당 등 야당에서는 ‘기획 수사’로 보고 있다.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이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의원 등 여권 실세에 구명 로비한 정황이 있는데도 검찰이 모른 척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어쨌든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조사하게 되면 검찰은 반드시 성과를 내야 한다는 부담을 떠안게 된다. 전직 대통령을 소환조사까지 했는데 ‘소득’이 없다면 검찰의 처지가 궁색해진다.

노 전 대통령의 승부수도 전망이 불투명하다. 승부가 펼쳐지게 될 공간이 정치 무대가 아니라 법적 공간이다. 감동과 열정을 조직해야 하는 승부가 아니라 오직 진실 공방과 법리 논쟁이 오갈 뿐이라는 뜻이다. 게다가 신분도 이제 대통령 후보나 대통령이 아니다. 걸 수 있는 게 없다. 이겨도 얻을 게 없다.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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