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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간 15돌 기획 ②] 봄은 아직 먼발치에서 아른거린다

창간호부터 753호까지 만들도록 어쩜 그리 그대로인가, 옛 기사에 비친 낯익은 ‘현재’
등록 2009-03-25 14:19 수정 2020-05-03 04:25

은 1994년 3월24일 세상에 나왔다(창간일은 3월16일). 창간호 표지이야기의 주인공은 ‘21세기에 스무 살을 맞는 1981년생들’이었다. ‘꿈의 21세기’에 성년이 될 아이들의 입으로 희망을 말하고 싶었을 터다. 올해 28살이 됐을 그들은 ‘이태백’의 덫을 피할 수 있었을까?
15년, 한 세대가 만들어낸 변화를 창간호 지면 곳곳에서 실감할 수 있다. ‘도전 인터뷰’에 나와 “나는 혁명을 포기했다”고 선언한 깡마른 체구의 ‘노동운동가 김문수(43)씨’. 그 무렵 집권 민주자유당의 경기 부천소사 지구당 위원장으로 갓 정계에 입문했던 그는 15년이 지난 지금 경기지사가 돼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다. ‘월드 & 사이언스’ 꼭지에 실린 ‘컴퓨터 공화국 인터네트’란 제목의 기고문에서 허진호 당시 삼보컴퓨터 차장은 이렇게 말한다. “인터네트라는 말을 들어본 적이 있는지. 아직 들어보지 못하였다면 당신은 세계 약 2천만 명이 영위하고 있는 또 하나의 별세계를 놓치고 있는 셈이다. 그들이나 주위의 사람들은 이를 사이버스페이스(인공두뇌-공간)라고 부른다.”

‘격세지감과 요지부동 사이에서’. 노동운동가 김문수씨는 <한겨레21> 창간호에서 “혁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이 됐다. 사진 한겨레 자료·한겨레 장철규 기자(왼쪽부터)

‘격세지감과 요지부동 사이에서’. 노동운동가 김문수씨는 <한겨레21> 창간호에서 “혁명을 포기했다”고 말했다. 15년이 지난 지금 그는 여당의 유력 대선후보 중 한 명이 됐다. 사진 한겨레 자료·한겨레 장철규 기자(왼쪽부터)

아직도 확고한 삼성 ‘무노조 경영’

지난해 말을 기준으로 지구촌 인터넷 이용자 수는 줄잡아 10억 명을 넘어섰다. 격세지감, 이런 때 쓰라고 나온 말이다. 변하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이 창간 첫해에 내놓은 1~40호를 훑어 내려가다 보면 낯익은 ‘현재’와 마주치게 된다. ‘기시감’은 창간호부터 시작된다.

“노조가 더 싸게 먹힌다.” 지금은 사라진 ‘지성’ 꼭지에서 채창균 당시 한국사회연구소 연구원은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전략이 현명한 것인지를 물었다. 그는 “노조가 있어야 경영에도 좋다”고 강조했지만, 삼성의 무노조 경영 원칙은 지금도 확고하기만 하다. ‘함께하는 삶’ 꼭지에선 ‘외국인 노동자의 벗 김재오 전도사’의 사연이 소개됐다. 김 전도사는 “그들의 잘린 손가락이 한국의 양심을 찌른다”고 말했다. 산업재해를 당하고도 되레 불법 체류자로 쫓기는 이주노동자들의 고단한 삶을 증언한 게다. 유엔 인권위원회 이사국이 된 21세기 대한민국은 이주노동자들에게 얼마나 관대해졌는가.

‘추적’ 꼭지에선 ‘로열 프린스, 김현철은 새 정부 최후의 성역인가’를 따져물었다. 김영삼 정부 시절 막후 권력을 휘두르던 대통령 차남 김현철(현 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부소장)씨에 대한 비판 기사였다. 김씨는 의 잇따른 추적 보도에 고소·고발로 맞섰지만, 2년여 만에 알선수재 및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 수감됐다. 김씨는 당시 ‘소통령’으로 불렸다.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선 ‘만사형통’(萬事兄通)이란 말이 유행하고 있다.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한나라당 최고위원을 통하면 안 되는 게 없다는 말이다. 노무현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형 건평씨가, 김대중 정권에서도 대통령의 아들과 그 측근들이 ‘완장’ 노릇을 했다. 치유되지 않는 한국 정치의 ‘고질’이다.

그해 4월14일 발행된 지령 4호의 표지 모델은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었다. 서울 한남동에 있는 이 회장의 집무실인 ‘승지원’이 김영삼 정부의 ‘신경제호’를 타고 ‘제2의 청와대’로 떠오르면서, 재계가 ‘국가 대리경영’에 나서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였다. 그 무렵 삼성그룹은 이란 ‘임원용 섭외 지침’ 소책자를 펴내 정부의 역할과 과제를 논하고 △국토개조론 △공기업 민영화 △행정 규제 완화 △국제화와 해외 정보력 등에 대한 대정부 ‘홍보’에 적극 나섰다. 은 이를 두고 “삼성이 답안을 내면 정부는 그걸 받아쓴다”고 표현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삼성의 힘은 더욱 막강해졌다. 지난 2007년 10월 김용철 변호사의 양심선언에 뒤이은 검찰과 특검의 수사 과정과 재판 과정은 이를 웅변해주는 장막 행위극이었다.

그렇다. 법원도 달라지지 않은 게다. 은 지령 5호(4월21일 발행)에서 “국회가 아니라 법원이 노동법을 개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당시 논란이 된 단체협약상의 ‘해고 동의(협의) 조항’에 대해 대법원이 “합의라고 단협에 명시됐을 때도 사실상 ‘협의’의 수준을 의미한다고 판단되면, 합의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무방하다”고 판결한 것을 비판한 기사다. 법원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을까. 재계는 이 무렵부터 신종 노동 탄압 도구로 노동조합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남발하기 시작했다. 최근 불거진 신영철 대법관의 ‘촛불 재판’ 개입 논란은 ‘힘’ 앞에 무력한 ‘사법부 독립’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쓸쓸한 초상이다.

검찰도 마찬가지다. 은 지령 6호(4월28일 발행)에서 당시 상무대 이전 공사대금과 정치자금 수수 의혹 관련 수사에서 “검찰이 청와대 눈치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검찰 내부에서조차 “수뇌부의 정치 체질 탓”이란 탄식이 나오던 때다. 한때 대통령과 ‘맞장’을 불사했던 검찰은 이명박 정부 들어 정권의 충실한 사정기관으로 복귀한 모습이다. 법원과 검찰이 법조문에 앞서 ‘나라’와 ‘경제’를 생각하는 버릇이 세월만으론 고쳐지지 않을 모양이다.

김재오 전도사는 “이주노동자의 잘린 손가락이 양심을 찌른다”고 말했다. 한 세대가 흘러도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김명진 기자(왼쪽부터)

김재오 전도사는 “이주노동자의 잘린 손가락이 양심을 찌른다”고 말했다. 한 세대가 흘러도 이주노동자들의 삶은 그리 나아지지 않았다. 사진 한겨레 이정용·김명진 기자(왼쪽부터)

그때부터 법원·검찰은 ‘정치 체질’

창간 무렵인 1994년 3월께부터 여의도 정가에선 국가보안법 폐지론이 고개를 들고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 스스로 집권 전까지 여러 차례 국보법 폐지론을 설파한 바 있다. 청와대나 정치권에도 국보법 위반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 대거 포진한 터였다. 손학규 당시 민자당 부대변인은 과 한 인터뷰에서 “국보법 문제에 대한 접근은 김 대통령의 취임 초 금융실명제를 처리하던 방식을 생각하면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 대통령이 선호하는 ‘깜짝쇼’ 방식으로 국보법 폐지 발표가 임박했다는 암시였다. 세기는 바뀌었다. 구악은 의구하다.

1994년은 ‘색깔론의 해’이기도 했다. 연초 현대사 교과서 서술과 관련해 불거진 ‘마녀사냥’은, 그해 7월 김일성 북한 주석이 급서한 직후 불거진 ‘조문 파동’으로 번져갔다. 당시 서강대 총장이던 박홍 신부는 “주사파 뒤에 사노맹이 있고, 사노맹 뒤에 사로청이 있고, 사로청 뒤에 김정일이 있다”는 ‘용감무쌍한 발언’을 했다. 당국은 기다렸다는 듯 ‘공안 정국’의 망령을 되살려냈다.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보수 언론이다. 는 그해 3월22일치 칼럼에서 교과서 문제와 관련해 “수명을 다해가면서도 여전히 강력한 적성을 내뿜고 있는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보완해주지 못해 거의 안달이 난 무리들과 한국사를 수명이 다한 사회주의적 관점에서 정리해가는 사람들”을 비판했다. 이어 “(이들은) 선배들이 목숨 바쳐 건국한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일방적으로 훼손하면서 북한 정권의 이단성을 정통성으로 둔갑시켜왔다”고 강조했다. 지난해 말 불거진 ‘좌파 교과서’ 논란은 15년 전 광기의 ‘분신’이다. 강준만 전북대 교수는 그해 7월7일치 16호에 기고한 글에서 이렇게 꼬집었다.

“우리의 국가안보를 위협하는 국내 세력 가운데 가장 위험한 집단을 들라면 필자는 서슴지 않고 와 그 ‘전위’라 할 을 들겠다. 왜 그런가? 사람들은 를 가리켜 ‘극우 반동’이라고 한다. 하지만 그것은 옳은 진단이 아니다. 극우 반동 세력은 극우 반동 행위로 돈을 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는 한국의 분단 상황을 악용해 극우 반동적 메시지로 돈을 벌고 있으니, 진정한 의미의 극우 반동은 아닌 것이다. 때문에 굳이 이름을 붙이라 한다면, ‘상업적 극우 반동’이라 하겠다.”

남북관계를 놓고 봐도 2009년 봄은 15년 전 봄과 닮아 있다. 1994년 초 핵협상이 급진전을 보이면서 북-미 관계는 바야흐로 순풍을 맞을 기세였다. 당시 북쪽은 협상 국면에서 ‘기선’을 잡기 위해 온갖 ‘카드’를 휘두르고 있었다. 그해 3월 남북 특사 교환을 위한 8차 실무 접촉에서 나온 이른바 ‘서울 불바다 발언’은 그 절정이었다. 취임사에서 “민족의 이익보다 더 우선되는 것은 없다”고 했던 김영삼 대통령은 집권 5년 내내 대북정책과 관련해 갈지자 행보를 이어가며, 남북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갔다. 이 무렵 유행하던 말이 ‘통미봉남’(미국과 통하고 남쪽은 막는다)이었다.

복고 바람, 통미봉남과 묻지마 개발

버락 오바마 행정부 출범 직후부터 북-미 사이에 다시 훈풍이 불고 있다. ‘인공위성’ 발사를 공언한 북쪽은 서해 북방한계선(NLL), 중부전선 군사분계선(MDL), 동해 비행정보구역(FIR)에서 잇따라 위기감을 키워왔다. 취임 초기부터 강경 일변도였던 이명박 정부의 대북정책은 결국 관계 단절로 이어졌다. 북한은 최근 들어 개성공단 출입구을 가스 밸브처럼 열고 닫기를 반복하며 “기다리는 것도 정책”이라던 남쪽을 비웃고 있다. ‘통미봉남’이 다시 유행어로 떠오르는 이유다.

1994년 7월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은 대대적인 반공집회와 공안정국으로 이어졌다. 15년 뒤 보수단체 집회에선 성조기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진 한겨레 자료·한겨레 김종수 기자(왼쪽부터)

1994년 7월 박홍 당시 서강대 총장의 ‘주사파 발언’은 대대적인 반공집회와 공안정국으로 이어졌다. 15년 뒤 보수단체 집회에선 성조기를 쉽게 만날 수 있게 됐다. 사진 한겨레 자료·한겨레 김종수 기자(왼쪽부터)

15년의 시차를 두고 재현된 것 중에는 ‘평준화 흔들기’도 있다. 1994년 12월 교육부는 서울·부산 등 6대 도시를 포함해 전국에서 고교평준화제도를 전면 해제하기로 내부 방침을 굳히고 여론의 향배를 저울질하고 있었다. 지난 2월18일 안병만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평준화에 개개 학생의 발전을 저해하는 요소가 있을 수 있다”며 “학생을 더 우수하게 만드는 데 평준화 잣대가 오히려 저해 요인이 될 수 있고, 실력이 전혀 못 미치는 학생이 가려져 방치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독재자 박정희의 ‘최대 업적’인 평준화 정책이 그의 후예를 자처하는 정권에서 ‘제도적 몰락’을 앞두고 있는 게다.

1994년 10월21일 아침 7시38분께 어이없이 내려앉은 서울 성수대교는 ‘졸속 성장’이 빚어낸 참극이었다. 은 이를 ‘토건국가’가 만들어낸 “위험사회에 대한 경종”으로 읽었다. 그해 김영삼 정부는 지역균형발전이란 이름으로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개발 경쟁을 유도했고, 그 결과는 ‘묻지마 개발’을 농지로까지 확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윤에 눈먼 개발업자와 투기꾼, 지주가 중심이 돼 타당성 조사조차 생략한 개발 열풍이 온 국토를 뒤흔들었다. 시간이 갈수록 ‘투기의 국민화’가 이뤄졌다. 지난 15년 동안 부동산은 증권과 함께 ‘국민적 게임’으로 성장했다. 투기로 흥청대야 경제가 살아난다는 생각은 신앙으로 바뀌었다. 가난한 이들이기에 더욱 대운하가 약속한 ‘성장의 환상’에 빠져들었다. 그것은 충분히 ‘합리적인 선택’이었다.

투기의 사회화는 학벌의 영속화와 맞물렸다. 학벌은 성공으로 가는 입장권이 됐고, 사교육은 이를 지켜주는 보험이 됐다. 소득이 늘어도 삶의 질은 나아질 줄 몰랐다. 사교육의 함정에 빠져 소비가 왜곡된 탓이다. 토건국가의 악행은 자연 파괴와 예산 낭비에 따른 사회·복지 예산 축소다. 사교육 몰입은 공교육 부실화와 삶의 질 저하로 연결된다. 부패의 음습한 손길이 그 언저리를 배회하기 마련이다. 국제투명성기구(TI)가 지난해 발표한 ‘부패인식지수’(CPI)에서 한국은 10점 만점에 5.6점을 얻어 조사 대상 180개국 중 40위를 차지했다. 이 단체가 지수를 처음 발표했던 1995년 한국은 10점 만점에 4.29점을 얻어 조사 대상 41개국 중 27위를 차지한 바 있다. 창간호를 내면서 김중배 당시 한겨레신문사 대표이사는 이렇게 썼다. 시대를 관통하는 대기자의 혜안이 사무친다.

“봄은 봄이로되 우리의 봄은 아직 먼발치에서 아른거릴 뿐이다. 물이 흐르는 듯한 순리가 숨을 죽이고 있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껍데기 민주주의가 샴페인을 터뜨리는 가운데 한쪽에선 가녀린 소외 그룹의 한숨이 터져나온다. 가치 체계는 곤두박질을 거듭한다. 사회 통합의 끈은 느슨해진다. 부조리의 악순환, 그 모순의 고리를 끊어버리는 일이 우리의 소망이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도움말 주신 분: 김민영 참여연대 사무처장, 김연철 한겨레평화연구소장, 김유진 민주언론운동시민연합 사무총장, 손낙구 노동운동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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