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현대사 교과서 지각변동이 일어났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한국 근현대사 과목을 가르치는 전국의 1547개 학교 중 350개 학교가 2009년 1학기부터 교과서를 바꾼다. 교과서를 바꾸는 350개 학교 중 97%에 이르는 339개 학교가 금성교과서에서 나온 를 교재로 사용하던 학교였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의 공격 표적이 됐던 금성교과서의 점유율은 지난해 54.4%에서 32.3%로 20%포인트가량 낮아지게 됐다.
이렇게 교과서를 바꾸는 과정에서 학교들은 관련 규정도 제대로 지키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의원실이 교육과학기술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교과서를 바꾼 350개 학교 중 92.6%에 이르는 324개 학교가 교과서 주문 시한을 지키지 않았다.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치지 않은 학교도 8곳이나 됐다. 교과서를 바꿀 때는 초·중등교육법이 정한 ‘교과용 도서에 관한 규정’에 따라 학교운영위원회 심의를 거쳐야 한다. 또 수업 준비 등을 고려해 학기 시작 6개월 전까지 주문이 완료돼야 한다.
금성교과서 교체율이 가장 높은 지역은 경기도였다. 경기도에서 근현대사 교과서를 사용하는 290개 학교 중 절반에 가까운 134개 학교가 교과서를 바꿨는데, 이 중 133개 학교가 금성교과서를 사용하던 학교였다. 서울·부산 등 10개 시·도는 교과서를 바꾼 학교가 모두 금성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하던 학교들이었다.
지역 교육청들이 교체 독려금성교과서에서 나온 교과서는 지난해 10월30일 교육과학기술부가 55개 항목을 고칠 것을 권고하면서 ‘논란의 핵’이 됐다. 금성교과서 집필진과 역사교사모임 등은 “아무 의미 없는 자구를 고치는 수준”이라며 비판했지만 교과부는 출판사에 강요해 뜻을 관철시켰다. 이에 김한종 한국교원대 교수 등 교과서 저자들은 1월29일 출판사를 상대로 저작권 침해정지 청구소송을 내는 등 교과서 수정과 관련한 논란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학교들이 급하게 교과서를 바꿀 수밖에 없었던 것은 각 지역 교육청의 ‘파행적 독려’ 때문이다. 이미 11월10일 서울시교육청이 각급 학교 교장들을 불러놓고 ‘금성출판사에서 나온 교과서는 좌편향 교과서’라는 내용의 연수를 한 것이 문제로 지적됐지만, 그로부터 한 달 뒤 경기도교육청도 같은 일을 반복했다. 이에 따라 경기도 지역에서는 교과서를 바꾼 134개 학교 중 123개 학교가 12월 이후에 교과서를 재주문했다. 경기 부천시의 부명고등학교도 그중 하나다. 부명고는 학교 규정에서 ‘교과서를 변경할 때는 교과 담당 교사들이 모이는 교과협의회를 거쳐야 한다’고 정하고 있는데도, 이를 지키지 않은 채 교장이 직권으로 12월8일 학교운영위원회를 소집해 교과서를 바꾼 경우다. 박병원 부명고 교사(역사)는 “교사들의 동의를 거치지 않고, 또 해당 교과서를 제대로 검토하지도 않은 채 급하게 교과서를 바꾸는 것은 교사의 교육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종배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아이들의 교과서가 제대로 절차도 지키지 않은 채 눈치 보기에 밀려 바뀌는 일에 대해 역사 교사를 비롯해 사회 전체가 우려를 제기했는데 결국 그대로 되고 말았다”며 “정권이 바뀜에 따라 저자들의 동의도 없이 훼손된 교과서를 아이들이 대면해야 하는 건 명백한 교육권 침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 jin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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