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초 입주를 시작한 서울 아현동 ㅅ오피스텔. 400여 가구가 사는 이 오피스텔에는 현재 3명의 경비가 3교대로 일하고 있다. 그런데 지난 6월부터 경비를 2명으로 줄이자는 얘기가 오피스텔 입주자 모임인 관리단 회의 자리에서 나왔다. “다른 아파트나 오피스텔 가봐라. 다 2교대로 경비한다”는 논리였다. 이 오피스텔 관리 용역업체 사장인 조아무개(54)씨는 만류하고 나섰다.
“용역비 돈 100만원이면 한 가구당 2500원꼴 아니냐. 나도 경비 아저씨들이 심심풀이로 용돈 벌러 나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그게 아니더라. 생계가 달린 문제더라. 꼭 매정하게 잘라야 하겠느냐.”
그렇지 않아도 인원 감축 문제는 지난해 6월부터 이미 제기된 바 있었다. 논쟁을 거듭한 끝에 올해 2월 투표까지 벌인 마당이었다. 조씨는 그때도 입주자 모임과 마찰을 빚어가며 반대했고, 결국 3명을 그대로 쓰기로 결정이 났다. 그런데 반 년도 채 못 지나 또 같은 문제가 불거진 것이다.
머리를 싸매고 집으로 들어온 조씨에게 경기 분당 영덕여고 2학년에 다니는 딸이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고민을 털어놓으니 딸이 “아빠 감단직 알아?”라고 물으며 기사(725호 인권 OTL ‘감단직 노동 착취 현장, 아파트’)를 펼쳐 보였다. 조씨 본인도 그런 용어가 있는지조차 몰랐다. 감단직은 경비원, 검침원 등과 같은 감시적(監視的) 노동자와 아파트·건물의 전기·냉난방 기술직 등 단속적(斷續的) 노동자를 일컫는데, 이들은 일반 노동자처럼 노동의 강도가 세지 않거나 업무가 연속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최저임금법도 적용받지 못한다.
조씨는 지난 8월 관리단 회의 때 이 기사를 15부 복사해 참가자들에게 모두 돌리며 상황을 설명했다. 조씨는 “한 관리단 위원은 뒤에 내게 전화해 ‘나도 몰랐다. 읽어보고 많은 것을 느꼈다’고 하더라”며 “결국 3명을 그냥 쓰기로 다시 정리가 됐는데, 기사가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고 말했다. 조씨는 회의 자리에서 근로기준법 적용도 못 받는 이들을 배려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말을 했고, 그 말에 호응하는 이들도 많았다고 전했다.
물론 관리 용역업체 사장인 조씨로서는 1명을 더 쓰는 만큼 더 이윤이 남는다. 그러나 매년 혹은 2년마다 계약을 갱신해야 하는 ‘을’의 처지에서 관리단 쪽의 요구에 계속 딴죽을 걸기는 현실적으로 힘든 것도 사실이다. 인천의 한 아파트 관리소장을 맡고 있는 김아무개(50)씨는 “관리 용역업체들마다 저가 입찰 경쟁을 벌이는 마당에, 웬만하면 관리단 쪽의 요구를 수용하게 마련”이라고 말했다. 해당 오피스텔과 내년 2월 재계약을 해야 하는 조씨로선 용기를 내야만 가능한 일이었던 셈이다.
“아버지 말씀에 눈물이 났다”이런 사연을 에 전자우편으로 보내온 조씨의 딸 민희양은 “술을 조금 드시고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께서 3명을 계속 고용하기로 결정했다고 해주신 말씀에 눈물이 났다”며 “요즘같이 돈에 죽고 사는 세상에, 경제 논리와 생존 논리가 맞설 때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배울 수 있었다”고 했다. 학원의 언어 담당 선생님이 “그동안 책을 읽지 않은 세월을 보상하려면 을 보라”고 권유해 지난 5월부터 정기구독하고 있다는 민희양은 “이번에 일어난 일을 친구들에게도 얘기했더니 다들 감동하더라”고 전했다.
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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