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송파구 신천동 KTF 본사 건물. 한겨레 자료
‘조영주 후폭풍은 어디까지?’
조영주 전 KTF 사장의 구속이 정치권 수사와 KT·KTF의 인사 및 경영으로 파장을 미치고 있다.
조 전 사장은 8월22일 구속됐다. 납품업체에서 수십억원을 받은 혐의(배임수재)다. KTF에 중계기를 납품해온 전아무개(57·구속)씨한테서 2006년 초부터 지난해 말까지 50여 차례에 걸쳐 25억여원을 건네받았다는 것이다.
생계형 뇌물인가 로비형 뇌물인가조 전 사장은 전씨에게 자신의 누나에게 생활비를 보내주라고 한 뒤 누나 계좌를 통해 모두 4128만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또 전씨에게 자신의 두 처남에게도 돈을 보낼 것을 요구했다. 두 처남은 각각 4억4천만원과 1억8천만원을 받았다. 조 전 사장은 영장실질심사에서 “현금으로 직접 받은 돈은 전씨에게 빌린 것이며 (계좌로) 받은 돈은 생활이 어려운 친인척들을 도왔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조 전 사장이 치부를 위해 뇌물을 받은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가 흘러나온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전씨한테서 받은 자기앞수표 200장을 은행에 입금해놓고 여러 차례 현금으로 인출한 사실을 확인했다. 2천만원 이상 거래 내역은 금융정보분석원에 통보되는 점을 고려해 금액을 쪼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은 조 전 사장이 받은 돈의 대부분을 은행에 입금했다가 추적이 어려운 현금으로 인출해 사용한 점으로 미뤄 이 돈이 정치권에 제공됐는지 여부를 집중 추궁하고 있다. 조 전 사장이 돈을 받은 시기가 여야 각 정당이 대통령 선거 후보 경선을 앞둔 때였던 점을 감안하면 이 돈이 유력 대선 후보 캠프 관계자 등에게 정치 자금으로 제공됐을 가능성도 있다.
참여정부 인사 등 옛 여권에 전달할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비자금을 조성했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측근이자 조 전 사장과 고등학교(대구 계성고) 동문인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의 이름이 수사 과정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검찰이 조 전 사장의 부인이나 처남의 개입 사실까지 공개하는 것도 옛 여권 인사들의 연루설을 확인하기 위한 압박 수단이라는 해석도 있다. 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KTF의 납품 비리 사건이 도마 위에 오를 가능성이 높다.
민영화 뒤에도 계속 정치권 개입설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일까? 우선 KT와 KTF의 기업 성격을 보자. KT와 KTF는 공기업이 아니다. KT는 지난 2002년 5월 완전 민영화됐다. KTF의 최대주주는 54.25%의 지분을 갖고 있는 KT다. 하지만 KT와 KTF는 여전히 정치권의 입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정부의 인허가와 규제가 영업활동에 큰 영향을 미치는 통신업의 특성상 정부의 입김이 크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IMAGE2%%]KT는 민영화 뒤에도 사장 선임 때마다 정치권 개입설이 흘러나오는 등 후유증을 겪었다. 2005년에는 연임을 노리던 이용경 당시 KT 사장이 후보 신청을 갑자기 철회하자 정치권 개입설이 떠돌았다. 또 지난해 말 남중수 KT 사장이 연임된 것을 두고도 복잡한 정치적 배경이 거론된다. 임기가 올 3월까지였고 정관상 임기가 끝나기 2개월 전에만 사장추천위원회를 구성하면 되는데도, 이례적으로 임기 만료 5개월 전인 지난해 11월 사추위가 구성됐고 12월 초 사추위에서 남 사장을 단독 후보로 추대하면서 사실상 연임 작업이 마무리됐다. 당시 KT 안팎에선 대선 뒤 복잡하게 닥칠 정치 외풍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연임 절차를 서두른 것이란 추측이 나돌았고, KT의 이런 행보에 대해 현 정권이 탐탁지 않게 여겼다는 소문도 끊이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KTF노조는 9월26일 성명서를 내어 후임 사장에 대한 기준으로 윤리의식과 주주·직원 사이의 조화로운 균형, 낙하산 인사 반대 등을 천명했다. 노조는 “새로운 사장은 KTF의 자랑스러운 역사가 사장의 납품 비리라는 치욕적 사태로 송두리째 날아갈 위기에 처해 있는 이 상황을 수습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도덕적·윤리적으로 깨끗하지 못한 사장은 철저히 배제돼야 하며, 주주 이익만을 대변하는 사장은 반대하고, 소유주 없는 KT 그룹의 특성과 KTF의 혼란한 상황을 틈타 정치권의 힘을 빌려 사장 자리를 노리는 인사는 KTF 수장의 자격이 없다”고 강조했다.
상법 규정상 대표이사 공석 때는 2주 안에 이사회에서 새로운 대표이사를 선임해야 한다. KTF 등기이사는 조영주 전 사장을 빼면 서정수 KT 부사장, 권행민 KT 전무, 기요히토 나가타 NTT도코모 수석부사장 등 3명이다. 도기권 운화바이오텍 회장, 김영진 서울대 교수, 이재철 법무법인 마당 대표변호사, 황덕남 세계종합법무법인 변호사 등 4명은 사외이사다. KTF 정관 및 이사회 운영 규정에는 등기이사 중 한 명을 이사회의 권한으로 대표이사를 선임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사 과반수 출석과 출석이사 과반수 찬성으로 결의한다.
합병 차질, 아이폰 수입 늦어져KTF는 이사회 멤버 중에서 대표이사를 선출해왔고, 현재의 비상사태를 최소화해야 할 필요가 있는 점에서 이사회 멤버인 서 부사장과 권 전무 중에서 신임 대표이사가 선출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물론 2주 안에 결정짓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KTF는 수석부사장인 김기열 경영지원부문장의 지휘 아래 비상경영 체제를 가동하며 내부 동요를 막는 데 부심하고 있다.
물밑에서 진행해온 KT와 KTF 합병 작업은 당분간 차질을 빚게 될 것으로 보인다. 유선전화 시장과 초고속 인터넷 시장에서 앞서나가는 KT와 이동통신 2위 업체인 KTF의 합병은 SK텔레콤-SK브로드밴드(옛 하나로텔레콤) 연합에 버금가는 통신시장의 대형 이슈다. KT-KTF의 합병 작업은 연말께 공식 발표될 것으로 점쳐졌지만 검찰 수사가 어느 선까지 확대될지 몰라 연내 선언 여부는 불투명해졌다. KTF가 추진해왔던 애플의 휴대전화 ‘아이폰’ 수입도 당분간 힘들 것으로 보인다.
정혁준 기자 ju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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