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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전선’을 만들겠다”

58일째 수배 중인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을 만나다… “곧 공개적인 장소에 나설 계획”
등록 2008-09-23 15:16 수정 2020-05-03 04:25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은 9월19일 현재 58일째 수배 중이다. 7월2일 민주노총이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를 이유로 총파업을 벌인 일 때문이다. 7월24일 경찰은 이 위원장과 진영옥 민주노총 수석부위원장, 이용식 사무총장 등 지도부 3명의 체포영장을 신청했다.
노동계는 경악했다. “지도부 3명에게 동시에 수배령을 내린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라는 것이 노동계의 주장이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이 세 명 외에도 전국금속노조의 정갑득 위원장과 남택규 수석부위원장, 윤해모 현대차 지부장 등에게도 비슷한 혐의로 수배령을 내렸다. 이 위원장과 함께 쫓기던 노동계 인사들은 대부분 체포되거나 구속됐다.
노동계에 대한 이명박 정부의 공세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9월11일 열린 공공기관 최고경영자 연찬회에서 “우리나라 공기업 노조의 70%는 강성”이라고 말했다. 이 장관은 이어 “공직에 있는 신분이라면 노조 활동에도 방향과 규범에 한계가 있어야 하는데, 반정부적인 언동을 하는 노조도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계에서는 이 장관이 공기업 민영화를 앞두고 노동계에 선전포고를 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월18일 이 이석행 위원장을 만났다. 이 자리에서 그는 자신의 거취에 대한 계획과 올 하반기 노동계의 주요 과제에 대해 밝혔다. 이 위원장은 “다음주부터는 위험을 무릅쓰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투쟁의 선봉에 서겠다”고 선언했다.
-수배 생활의 가장 큰 어려움은 뭔가.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이석행 민주노총 위원장

=기륭전자나 KTX, 코스콤 등 장기간 투쟁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들과 함께하지 못하는 것이 괴롭다. 직접 투쟁 현장을 찾아가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투쟁해야 하는데, 수배 때문에 위원장 본연의 임무를 못하고 있다.

-언제까지 피해다닐 것인가. 자진출두 계획은 없나.

=나는 절대 자진출두하지 않는다. 대신 민주노총이 계획했던 하반기 주요 사업과 각 산별투쟁을 지휘하기 위해서는 결단을 내릴 수밖에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민주노총 사무실을 포함한 공개적인 장소에 직접 나서겠다. 다음주(9월22~28일)에는 결단할 것이다.

-경찰에 자진출두한 이용식 민주노총 사무총장이 구속됐다.

=역대 어느 정권도 민주노총 위원장과 부위원장, 사무총장에 대해 동시에 수배령을 내린 적은 없다. 최종 책임은 위원장에게 있기 때문이다. 정권의 의도는 그때부터 분명했다.

-이 위원장을 포함해서 민주노총의 지도부 상당수가 자리를 비운 상태다. 지도부 공백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생각인가.

=내가 구속된다고 해도 민주노총 투쟁은 책임질 것이다. 진영옥 부위원장이 보석으로 나와 있기 때문에 일상적 업무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 비상한 시기인만큼 집단지도 체제 형식을 병행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이 문제 역시 다음주에 정리될 것이다.

-정부가 민주노총에는 공세적이지만 정책연대 파트너인 한국노총에는 여전히 공을 들이는 모습이다.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노동조합은 인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은 그릇된 노동관을 가지고 있다 보니 민주노총이 국민의 건강권과 국민적 이슈에 관심을 가진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노동자는 머슴이기 때문에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주면 주는 대로 받으라는 태도다. 민주노총이 그렇게 따라주지 않자 길들이기 위해 탄압하는 것이다.

-노동계에 대한 현 정부의 태도를 과거와 비교하면 어떤가.

=차이가 있다. 물론 과거 어느 정권도 민주노총을 따뜻하게 대해주지 않았다. 다만 내셔널센터로서 민주노총의 존재는 인정해줬고, 기본적 예의를 갖췄다. 파업을 하면 파업의 배경이 무엇인지 청와대 비서관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해 알아보려 하고 대화를 제안했다. 그런데 현 정권은 존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 대화도 하지 않으려 한다. 이는 앞으로 우리나라 경제 발전에도 장애가 될 것이라고 본다. 이미 내가 수배 중인 상황에서 국제 노동자단체 등에서 청와대에 항의 서한을 보냈다. 민주노총에 대한 탄압이 계속되면 우리도 어쩔 수 없이 국제적인 연대를 모색할 수밖에 없다.

-구체적 움직임이 진행되고 있나.

=국제노총과 미국노총, 오스트레일리아노총 등에서 이미 이명박 대통령에게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노동자들의 정당한 권리행사라는 서한을 보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에서 불법 조직도 아닌 합법적 노동자단체의 대표를 이런 일로 수배해서 구속하려는 나라가 어디 있냐는 것이다.

-노동계에 대한 정부의 공세적 태도가 앞으로 바뀔 것으로 보나.

=그렇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이명박 대통령은 대한민국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지 모르지만, 민주노총은 이석행의 것이 아니다. 80만 조합원이 주인이고 전 국민의 것이다. 위원장 하나 어떻게 한다고 해서 흔들리지 않는다.

-8월27일 민주노총 중앙위원회에 전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있었다. 당시 ‘반독재 국민전선’을 제안했는데.

=그게 가능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이 정권은 올 하반기가 문제가 아니라 5년 내내 노동자의 씨를 말리려 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명박 대통령의 노동관이 바뀔 리가 만무하고 이번에 자진출두한 이용식 사무총장을 끝내 구속하는 것만 봐도 그렇다. 이명박 정권이 1%를 위한 국민수탈 정책, 언론 사유화, 공기업 민영화 등을 고집한다면 민주노총은 정권의 폭주에 반대하는 시민사회단체와 노동자, 그리고 모든 개인이 연대하는 ‘거대한 전선’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말이었다. 과거와 달리 이제는 노동자들이 들러리나 지원하는 역할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주체적으로 치고 나가서 책임질 것은 책임질 것이다. 다른 시민사회단체와 호흡을 맞춰 전선을 만들되, 민주노총은 그 안에서 역할과 책임을 다하려고 한다.

-시민사회 진영에서 그 이후 좀더 논의가 오갔나.

=수배 중이기는 하지만 많은 시민사회 관계자들과 만났다. 최상재 언론노조 위원장과도 두 차례 만나서 언론 사유화 저지에 대해 폭넓게 대화하고 고민했다. 다만 시민사회 진영에서 민주노총에 대해 일부 오해가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귀족노조’라는 비판도 있었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싸운다는 지적도 있었다. 우리가 진정성을 갖고 다가가기 위해 좀더 노력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본다. 다음주 공개적 장소에 들어가면 같이 모여서 이야기할 수 있는 기회가 더 많아질 것이다. 좀더 발빠르게 움직일 것이다.

-민주노총 지도부도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다른 시민사회단체에 대해서도 공안정국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공세가 심하다. ‘거대한 전선’을 만들어내는 것이 가능한가.

=오히려 조건이 더 좋아지고 있다. 비장한 기운이 느껴지고 있다. 지금 정권이 시민사회단체와 노동계에 대해 물불을 가리지 않고 구속하고 탄압하고 있는데, 역사적으로도 정권의 그런 탄압이 성공한 사례가 없었다. 1970년대 박정희 유신정권 때 노조를 탄압했지만 여성 노동자들이 YH투쟁을 통해 노동운동의 불씨를 이어왔고, 전두환 정권 초기 노동운동이 초토화되다시피 했지만 1987년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지금의 80만 민주노총 조합원이 생겼다. 지금도 정권의 탄압이 강해지고 있는 만큼 어느 누구도 혼자 힘만으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연대의 강도와 폭도 단단해지고 있다. 그동안 만난 대부분의 시민사회 지도자들이 연대의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고 있다.

글 최성진 기자 csj@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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