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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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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상과 사랑은 자유다

등록 2008-06-13 00:00 수정 2020-05-03 04:25

옥소리씨 제기로 네 번째 헌법재판소 심판받는 간통죄…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위협하는 국가의 침실 간섭

▣ 권혁범 대전대 교수·정치언론홍보학 kwonhb@dju.ac.kr

최근 배우 옥소리씨는 간통죄가 프라이버시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법률 심판을 제기했다. 위헌 논란은 1990년, 1993년, 2001년에 이어 이번이 네 번째다. 과거 세 번 모두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간통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결혼한 사람이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성관계를 가진 경우를 뜻한다. 간통죄는 그 사람과 ‘상간자’를 처벌하기 위한 법이다. 현행 형법 241조에 따르면 “배우자가 있는 자가 간통한 때는 상간한 자와 함께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또한 반드시 배우자의 고소가 있어야 성립하는 친고죄이다. 이혼하거나 이혼소송을 제기한 뒤에야 고소가 가능하다.

도덕적 비난과 형사처벌이 같은가

유림들에게 ‘가정파괴범’으로 몰릴 각오를 하고 얘기한다면, 나는 간통 행위가 법률에 의해 처벌받는 게 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것은 무엇보다 성적 자기결정권을 침해하기 때문이다. 성인이라면 어떤 종류의 섹스와 사랑을 하건, 쌍방이 동의한다면, 그건 개인의 자유 영역에 속하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성인 두 사람이(아니 그 이상일 수도 있겠다) 서로 합의해서 섹스를 하는데 왜 국가까지 나서서 간섭해야 하는가 말이다. 예전에 영국에서는 동성애가, 미국의 어떤 주에서는 ‘오럴 섹스’가 불법인 적도 있었다. 국가가 사적 성행위의 다양한 형태까지 규제했다는 말이다. 사도마조히즘, 오지(orgy), 구강성교, 스와핑, 자위, 간통 등 그 무엇이건 간에 그것은, 어떤 사람에게는 ‘부도덕’할지라도, 개인의 밀실에서 일어나는 일이고 그것을 ‘광장’으로 이끌어내는 것은 당사자의 성적 인권과 존엄성을 해친다(간통죄 소송시 물증을 제출해야 하는데 그것은 가령 모텔 방 등을 ‘습격’해서 정액을 채취하거나 성교 사진을 찍는 경우에만 가능하다. 국가가 사적 공간을 침해하라고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물론 특정한 성행위를 도덕적으로 비난할 수는 있다. 하지만 국가의 개입은 차원이 다르다. 즉, 국가가 사생활의 비밀에 관한 가장 본질적인 부분인 성적 행위 여부와 상대방 결정권을 제한함으로써 개인의 권리를 침해한다. 헌법재판소의 2001년 판결은 ‘행복 추구의 권리’와 ‘신체의 자유’를 얘기하면서 동시에 ‘혼인 및 가족생활 보장 원칙’을 내세운다는 점에서 모순적이다.

중요한 것은 남성보다는 여성의 권리가 더 침해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 사회의 가부장적 문화로 볼 때 여성이 자신의 배우자를 고소하기란, 남성에 비해,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과거에는 중혼 및 첩 제도 등 때문에 남성의 혼외 섹스를 규제하기 위한 간통죄 법률이 여성에게 필요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이제 여성주의자들까지 간통죄 폐지를 요구하고 나섰다. 헌재 판결문에서도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개인의 인격권에는 개인의 자기운명결정권이 전제되는 것이고 이 자기운명결정권에는 성행위 여부 및 그 상대방을 결정할 수 있는 성적 자기결정권이 포함되어 있으며, 간통행위를 처벌하는 형법 제241조의 규정이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을 제한하는 것은 틀림없다”고 밝히고 있지 않은가?

2001년 심판 당시 청구인이 간통죄 폐지의 중요한 논거로 삼은 것은 무엇인가? 우선 간통죄, 특히 ‘남녀평등 쌍벌주의’는 세계적으로 폐지 추세에 있다. 대다수 이슬람 국가, 오스트리아, 스위스 그리고 미국의 몇몇 주에서만 유지되고 있을 뿐이다. 일본, 독일, 프랑스, 심지어 터키까지 이미 오래전에 간통죄를 폐지했다. 한국은 1953년까지 유부녀만 처벌했지만 1954년 법 개정을 통해 유부남도 처벌 대상으로 규정했다. 둘째는 앞서 얘기한 사생활 침해 문제다. 셋째, 대체로 협박을 통해 위자료를 받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된다. 넷째, 수사나 재판 과정에서 대부분 고소 취소돼 국가 형벌로서의 기능이 약화됐다. 다섯째, 억지 효과나 교육적 효과, 가정이나 여성 보호를 위한 실효성도 별로 없다.

물론 반론의 여지가 없지는 않다. 우선 간통이 개인의 선택 문제이지만 행위자의 배우자에게 큰 상처를 준다는 점이다. 그것을 부인할 수는 없다. 하지만 폭력이나 강탈 행위와는 성격이 판이하다. 그건 부부끼리 해결해야 할 사적인 사랑과 섹스에 관한 도덕적 문제다. 그래서 ‘불륜’(不倫)이라고 하지 않는가? 자녀들에 대한 상처도 간통죄 처벌을 통해서 더욱 커질 뿐이다. 또한 간통죄 유지론자들은 ‘무분별한 성문화 유입으로 무너지는 사회 기강’ ‘국민 정서’ ‘시기상조’ ‘사회 안정’ 등을 이유로 내세우지만, 그것은 완고한 집단주의적 압력을 통해 개인의 선택 문제를 국가가 강제하는 데 대한 구실에 불과하며 대체로 일방적인 도덕주의적 입장에 서 있다.

섹스는 처벌, 정신적 사랑엔 침묵?

2001년의 판결을 다시 읽어보자. “우리 사회의 구조와 국민 의식의 커다란 변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 고유의 정절 관념, 특히 혼인한 남녀의 정절 관념은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전래적 전통 윤리로서 여전히 뿌리 깊게 자리잡고 있으며, 일부일처제의 유지와 부부간의 성에 대한 성실 의무는 우리 사회의 도덕 기준으로 정립돼 있어서, 간통은 결국 현재 상황에서는 사회의 질서를 해치고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경우에 해당한다고 보는 우리의 법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고 아니할 수 없다.” 이상하지 않은가? 그것이 ‘전통 윤리’ ‘도덕 기준’의 문제라고 헌법재판소가 스스로 인정하고 있다. 그러면서 ‘법의식’을 얘기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다. “결혼은 성적 욕망을 호혜적으로 충족하기 위한 타협이 아니라 인격의 실존적 통합이기 때문에 어떤 경우에도 간통이나 혼외정사는 도덕적으로 정당화하기 어렵다”는 어떤 폐지반대론자의 주장도 마찬가지다. 여기서도 도덕을 내세우지 법률적 처벌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고 있지 못하다. 도덕과 법을 혼동하고 있는 것이다. 간통은 분명 권장 사항은 아니지만 또한 범죄도 아니다.

더구나 간통죄로 배우자를 고소할 지경에 이르렀다면 이미 그것은 부부로서의 사랑 및 성관계의 성실성이 훼손된 것이라고 봐야 한다. 그런 상황 혹은 실질적 별거 상태에서 배우자가 다른 상대와 연애를 한다면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법적 문제가 깨끗이 정리된 상태에서 다른 상대를 만나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겠지만 어찌 ‘타이밍’ 맞는 사랑과 섹스가 흔하겠는가? 현재의 배우자에게는 이미 마음이 떠났고 새로운 상대가 나타났다면? 새 상대를 물리치거나 법적 정리가 될 때까지 섹스나 사랑을 참아야 하는가? 탐색 기간이 필요하지 않겠는가? 물론 탐색 기간을 인정하면 현재의 배우자에게 거짓말을 하거나 최소한 침묵해야 한다는 딜레마가 있다.

흥미로운 것은 법이 섹스만 처벌하지 정신적 사랑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섹스는 일시적인 바람기일 수 있기 때문에 용서가 가능하지만 사랑에는 어떤 방지책도 무용지물이다. 사랑은 처벌하지 않고 섹스는 처벌한다는 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더구나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유부녀’의 간통은 이미 그가 ‘루비콘강을 건넜다’는 것을 의미한다. 유일하게 소수의견을 낸 권성 재판관의 주장처럼 “애정은 마음의 문제이고 신의는 정신의 문제이므로 형벌로 그 생성과 유지를 강요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재산상의 손해를 수반하지 않는 사인(私人) 간의 배신을 근대 형법이 원칙적으로 처벌하지 않는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결국 유부녀의 간통은 윤리적 비난과 도덕적 회오의 대상이지 형사 처벌의 문제는 아니다.”

부부 강간은 왜 그냥 두나

나는 여기서 한 걸음 나아가 성적 자유 및 쾌락 추구의 권리가 인간의 행복권에 해당된다고 본다. 즉, 성적 쾌락은 인간 본성상 행복에 깊이 연결된 것이며 따라서 ‘비혼자’건 기혼자건 동성애자건 이성애자건 언제든지 새로운 섹스, 사랑, 결혼을 할 자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그것들을 하지 않을 권리도 있다. 또한 이혼을 하지 않고서도, 부부간에 합의가 이뤄진다면, 다른 상대와 다른 형태의 관계를 맺을 수도 있다.

반대로 부부간에 합의가 없다면 남편의 아내에 대한 강제적인 섹스는 ‘부부강간’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아직 이것은 처벌 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별거 상태에 있는 부부의 경우, 남편이 찾아가서 아내를 성폭행한다면 현행법에서는 처벌할 근거가 없다. 중대한 범죄임이 분명한데 왜 이 경우에 국가는 ‘침실’에 들어가지 않는 것일까?

헌재는 “건전한 성도덕과 일부일처주의 혼인제도의 유지 및 가족생활의 보장을 위하여서나 부부간의 성적 성실의무의 수호를 위하여” 간통죄를 유지할 것을 주장한다. ‘건전한 도덕’은 대중의 통념 혹은 편견일 수도 있다. 그 기준을 과연 누가 정하는 것인가?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할까? 결혼이란 성관계에 대한 배타적 권리인가? ‘성적 성실의무의 수호’를 얘기하면서 사랑은 빼놓고 있다. 부부간에는 성적 의무가 있지만 사랑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다. 정신적 외도에 대해서 법과 국가는 침묵한다. 그렇다면 결혼은 평생 반드시 배우자 한 사람하고만 섹스를 해야 한다는 제도다. 하지만 사랑 없는 섹스야말로 ‘가족생활’에 위협이 되는 것은 아닐까?

또한 헌재에 따르면 “간통으로 인하여 야기되는 배우자와 가족의 유기, 혼외 자녀 문제, 이혼 등 사회적 해악의 사전 예방을 위하여 배우자 있는 자의 간통행위를 규제하는 것은 불가피한 것”이다. 간통죄 처벌이 과연 사회적으로 어떤 긍정적 효과가 있는지는 의문이지만 이혼을 사회적 해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일종의 난센스다. 내가 ‘주례사의 조건’이라는 글에서 밝혔듯이 “부부는 당연히 평생 사랑하고 백년해로할 것을 맹세해야 한다. 그러나 세상일은 모르는 법. 불행한 결혼 생활보다 이혼이 낫다. 이혼을 범죄시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파경이 왔을 때 주먹을 사용해서 희망 없는 관계를 유지하려 애쓰지 말고 재산 및 양육 문제를 공평하게 해결하며 깨끗이 헤어질 것을 맹세해야 한다.”

만약 폐지반대론자의 주장이 옳다면 동거율, 이혼율이 높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사회적으로 큰 혼란이 일어나거나 가정이 무너져버렸어야 한다. 되레 간통을 처벌하는 한국에서 성폭력, 성범죄, 부부강간은 더 빈번하게 일어난다.

왜 국가는 개인의 섹스에 대해 이렇게 간섭하려 할까? 그것은 산업 노동력의 재생산에 이해관계를 갖고 있는 국가가 그 재생산의 주요 장소인 ‘가정’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가정 밖으로 나가려는 이탈적 섹스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가의 제재는 노동력을 ‘생산’하는 여성의 이탈에 대해서 훨씬 더 억압적이다. 국가는 성매매금지법이 통과되기 전까지는 남자들의 성 매입 행위에 대해서 완전히 손을 놓고 있지 않았던가. 성매매야말로 ‘일부일처제’에 위배되는 행위인데 말이다.

대한민국 헌법은 인간의 존엄과 가치가 불가침의 기본적 인권임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것은 인간이 어떤 목적을 위한 수단적 가치가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라는 칸트적 인권 이론에 기초한다. 여기서 인권은 집단적 귀속에서 벗어나는 개인의 권리를 뜻한다. 따라서 어떤 집단, 특히 가정 및 사회라는 집단적 단위를 위해 이 권리가 제약된다는 것은 이미 기본권의 본질적 부분을 침해한 것이다. 헌법 제37조 2항에 따르면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 안전 보장, 질서 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제한할 수 있으며 제한하는 경우에도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침해할 수 없다.” 나는 ‘질서 유지’나 ‘공공복리’가 간통과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잘 모르겠지만 설사 그것이 연관된다 하더라도 분명히 헌법은 자유와 권리의 본질적인 내용을 다른 것들의 상위에 놓고 있다.

이제 헌재는 헌법을 제대로 해석해야 하지 않겠는가? 전망은 비관적이지만, 이번 심의에서는 ‘위헌’ 판결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국가보안법이 개인의 표현 및 사상의 자유를 침해하고 있듯이 간통법도 개인의 기본적인 인권, 즉 자기운명결정권을 빼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간통을 ‘죄’로 규정하는 법률은 국가보안법만큼 저급하고 반인간적이다. 사상과 사랑은 자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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