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성 상관 감싸는 일방적 주장만 담은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 항소이유서… 변호사도 “이런 건 처음”
▣ 이순혁 기자 hyuk@hani.co.kr
“송○○이 업무와 관련해서 간부들에게 하루 5통 정도의 문자를 보냈다고 하면 (한 달에) 150통 정도의 문자는 기본량이라 할 것입니다. 거기에다 피고인의 아침식사를 챙겨주고 점심시간에 밥 먹으라는 문자 등을 보낸 것을 더하면 한 달에 200~300통의 문자를 보낸 것도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중략) 그렇다면 송○○이 피고인에게 보냈던 문자량이 송○○의 피고인에 대한 사랑을 추단할 수 있는 것도 아니며, 그 정도 문자를 받는 것이 피고인의 입장에서 특별히 괴로운 일도 아닐 것으로 보입니다.”
기존 군당국의 조처와도 배치돼
우리 사회에서 남성 상관이 여성 부하에게 원하지 않는 문자메시지를 몇 통 정도 보내면 ‘스토킹’으로 인정될 수 있을까? 적어도 대한민국 육군에서는 한달 200~300통 정도 가지고는 스토킹이라는 말도 꺼내기 어려울 듯하다. 군당국이 스토킹 가해자인 남성 직속상관은 경고만 주고 부하 여군에게는 유죄판결을 내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을 보면 그렇다.
지난 4월1일 군사법원 1심 재판부가 ××사단 군악대장 박아무개(27·여) 대위에게 일부 유죄를 인정해 집행유예(강제전역 대상)형을 내린 데 이어, 군검찰이 무죄 선고된 5개 혐의 가운데 일부를 유죄로 인정해달라며 항소했다. 군검찰이 작성한 항소이유서에는 피고인인 박 대위를 탄핵하는 여러 주장이 담겨 있다.
이 가운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송아무개(37) 소령의 스토킹 사실 자체를 부인하는 대목이다. 특히 군검찰은 “한 달에 200~300통의 문자를 보낸 것은 이상할 게 없다”는 논리를 제시했다.
군검찰은 지난 4월 고등군사법원에 낸 항소이유서에서 “송○○은 피고인을 사랑한다거나 집착을 하여 괴롭힌 사실이 없습니다. 송○○에 대한 내사 기록과 변호인이 제출한 증거를 살펴보아도 송○○의 행위에 이성 간의 사랑으로 추단할 만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라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박 대위 쪽 증인들이 송 소령에게서 받은 문자를 여러 차례 봤다고 진술하면서도 이성으로 사랑한다는 문자는 보지 못했다고 증언한 점 △(직접 대면한 자리에서 말하지 않고) 문자로만 사랑을 고백했다는 점은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는 점 △문자라는 것이 서로 대화하듯이 주고받다 보면 하루에 10건 이상 보내는 일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점 등을 들었다.
하지만 박 대위 쪽에서는 “딱 떨어지게 ‘사랑한다’는 문자는 한 번이었지만 그런 의미를 담은 문자는 수없이 많았고, 이를 본 사람들이 1심 재판에 출석해 박 대위가 이런 문자들로 인해 많이 괴로워한 사실도 이미 증언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박 대위 쪽 반박은 차치하더라도, 군검찰의 주장은 기존 군당국의 조처와도 배치된다. 송 소령과 박 대위가 소속됐던 ××사단에서는 지난해 12월 송 소령에게 ‘품위유지 위반-성적 군기 문란’ 혐의로 경고장을 줬다. 박 대위에게 △사랑한다는 취지의 문자를 전송하고 △‘남자친구와 자봤냐’고 질문하고 △(자리에 함께 있는 친구가 남자인지 여자인지 확인하겠다며) 친구와 찍은 사진을 전송하도록 한 점 등이 인정됐기 때문이다. 또 1심 재판부는 송 소령이 박 대위에게 커플링을 사주려고 한 사실 등을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군검찰 쪽에서는 “송 소령이 박 대위의 사생활에 지나치게 간섭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 간섭이 이성적인 이유에서라기보다는 평소 문제가 많은 박 대위를 제대로 관리하기 위해서였던 것으로 보인다”며 “송 소령의 경고장 혐의가 ‘성적 군기 문란’인 이유는, 징계건명 이름을 따자니 그렇게 된 것”이라고 밝혔다. 결국, 군당국이 스토킹 사실을 일부 확인하고도 가해자에게 경고만 하고 넘어가더니, 이제는 군검찰이 아예 스토킹 자체가 없었다고 주장하고 나선 셈이다.
스토킹 사실에 대한 부인과 더불어 항소이유서의 또 다른 한 축을 이루는 내용은 박 대위에 대한 인신공격이다. 군검찰은 “송○○이 피고인에 대한 간섭이 심했던 것은 피고인이 (문제가 있는) 관심간부이고, 평소 행동에 문제가 있고, 주말마다 보고를 안 하고 서울에 가기 때문에 유발된 측면이 큽니다”라거나 “처음 ××사단 군악대장으로 올 때부터 피고인에게 어느 정도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박 대위가 왜 ‘관심간부’인지, 사단 전입 때부터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상세한 설명이 없다.
공소사실이 비슷하니까 다 유죄?
군검찰은 또 “현대에 들어서는 여성이 성희롱을 당했다고 주장만 하면 성희롱이 인정되는 사회 분위기에 편승한 오남용 사례가 늘어가고 있습니다. (중략) 피고인은 송○○이 평정권자이기 때문에 온갖 간섭을 어쩔 수 없이 참았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피고인이 그러한 간섭을 유발한 측면이 크며, 그 정도 간섭도 참을 수 없이 자유분방한 생활을 원했다면 왜 스스로 군대에 온 것인지 묻고 싶습니다”라고 밝혔다.
객관적인 사실관계와 그에 기반한 논리적 주장을 담고 있어야 할 항소이유서에는 걸맞지 않은 내용들이 끼어들고 있는 것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대목은 군대 안 상식과 반하는 내용까지 당연한 듯 서술돼 있다는 점이다. 이는 송 소령이 박 대위 몰래 헌병대에 박 대위와 관련한 제보를 한 사실을 옹호하는 과정에서 나타났다. 군검찰은 “(송 소령이) 사건 조사를 헌병대에 의뢰했다고 하여 그것이 무엇이 문제라는 것인지 불명확합니다. 송○○은 항명 사건에서 명령을 내렸던 상관이며 상관면전모욕에서 모욕을 당한 피해자입니다. 그렇다면 송○○이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언뜻 보기엔 당연한 말 같지만, 실제 군대에서 누군가를 당사자 몰래 헌병대에 제보하는 일은 하급자가 상급자의 비위 사실을 고발하거나 지휘계선과 무관한 누군가의 범죄 혐의를 알게 됐을 경우가 보통이다. 사단급 부대에서 징계 업무를 담당했다는 한 전역병은 “항명과 상관면전모욕을 당한 직속상관이 그 부하 몰래 헌병대에 그 부하를 제보하다니, 그게 어느 나라 군대냐”며 “직속상관이 그런 일을 당했다면 (부하 눈치 볼 일이 없는 만큼) 곧바로 지휘관에게 보고하고 징계위원회를 열거나 공개적으로 형사처벌 절차를 밟는 게 보통”이라고 말했다.
법률가적 상식에 맞지 않는 대목들도 지적됐다. 군검찰은 박 대위가 9월19일과 21일, 27일 세 차례에 걸쳐 ‘군악대장실에서 근무하라’는 송 소령의 명령을 따르지 않았다며 항명 혐의로 기소했는데, 1심 법원은 송 소령 이외의 제3의 증인(본부대 행정장교)이 있는 27일의 항명 혐의만을 유죄로 인정했다. 이에 대해 군검찰은 “송 소령의 증언은 믿을 수 있다”며 “공소사실은 내용적으로 거의 같은 상황이기 때문에 27일의 항명을 유죄로 인정한다면 21일의 항명도 유죄로 인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주장을 폈다. 별개의 공소사실에 대해 각각의 증거를 가지고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공소사실이 비슷하므로 한꺼번에 유죄가 인정돼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항소이유서를 살펴본 김수정 변호사는 “공소사실이 비슷하니까 다 유죄라는 것은 너무 황당한 주장이어서, 그 부분이 가장 먼저 눈에 띄더라”라고 말했다.
혐의 중 2개 제외됐는데 구형량은 똑같아
군검찰의 법률가답지 않은 주장은 또 이어졌다. 헌병대가 박 대위의 각종 비위혐의 30~40여 가지를 조사했지만 거의 전부 무혐의 처분된 점을 언급하는 대목에서다. “피고인의 경우 헌병대에 입건됐던 많은 범행이 법무부에서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그것은 법적으로 공소 유지에 어려움이 있어서 그러한 것이지 입건 자체에 큰 문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오히려 범죄사실 대부분은 사실인 것으로 보입니다.” 군검찰 스스로 기소조차 못한 혐의들을 두고, 항소이유서에서 “기소는 못했지만 모두 사실”이라고 주장한 셈이다. 이밖에도 10여 쪽에 이르는 항소이유서에는 ‘~것으로 보입니다’ ‘~는 느낌이 듭니다’ 등의 표현이 10여 차례 등장했다. 그만큼 증거에 바탕한 논증 보다는 추측과 해설이 많다는 방증이다.
사실 군검찰의 일방적인 ‘가해자 옹호-피해자 비난’은 처음이 아니다. 박 대위가 진정을 제기한 송 소령의 스토킹 혐의에 대해 무혐의 처분한 주체가 바로 해당 부대 군검찰이기 때문이다. 송 소령의 ‘문자 폭탄’은 지난해 3월에 400통을 넘을 정도로 가장 심했지만, 당시 군검찰은 어떤 이유에서인지 9월25일 단 하루 동안 오간 문자와 통화량만 조사하고 송 소령을 무혐의 처분한 바 있다.
박 대위에 대한 군검찰의 강한 반감은 구형량에서도 확인된다. 1심에서 무죄가 난 5개 혐의 가운데 3개만 항소하고 2개는 항소에서 제외됐지만, 군검찰은 1심 때와 마찬가지로 박 대위에게 징역 1년6개월을 선고해달라고 재판부에 요청했다. “피고인은 자신의 잘못을 전혀 인정하지도 않고 오히려 송○○을 성희롱을 저지르는 파렴치범으로 몰고 가고 있습니다. 피고인에게 집행유예의 판결이 선고된다면 수사기관에서부터 법정까지 끝까지 우기니까 좋은 결과가 나오더라는 좋지 못한 선례를 남기게 될 것”이라는 이유에서였다.
그렇다면 군검찰은 왜 박 대위에게 이렇듯 가혹한 잣대를 들이대는 것일까? 그 이유는 군 수뇌부와 군검찰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다만 권정순 변호사는 항소이유서의 전반적인 내용을 검토한 뒤 다음과 같은 평가를 내렸다.
“검사가 객관적인 사실과 법리에 기초해서 원심 판결의 잘잘못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지나친 선입견에 입각해 피의자를 악의적으로 비난만 하고 있는 것 같다. 요새는 변호사라도 이렇게 (상대방에게 불리한) 일방적인 주장만 늘어놓으면 욕을 먹는다. 일반 형사사건을 다뤄봤지만 이런 항소이유서는 본 적이 없다. 군검찰과 군사법원이라는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이것은 법률적으로 좀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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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군 군악대장 스토킹 사건’이 국회 대정부 질문에까지 등장했다. 하지만 답변에 나선 이상희 국방부 장관은 사실과 다른 엉뚱한 답변을 하거나 지극히 원론적인 이야기만 늘어놓는 면피성 태도를 보였다.
김충환 한나라당 의원은 5월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대정부 질문에서 이 장관에게 “상관에게 스토킹당한 여성 장교에게는 집행유예가 선고됐고 가해자는 되레 경고에 그쳤다는데, 이 사실을 알고 있냐”고 물었다. 이에 대해 이 장관은 “그렇다. 현재 항소심 중이다.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사실 여부가 판명될 것이다”라며 “예방 활동을 전개하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이런 답변은 사실과 다르다. 현재 항소심 재판이 진행 중인 사건은 스토킹 자체가 아니라, 스토킹이 계기가 돼 불거진 박○○ 대위(군악대장)의 항명 등 혐의에 대한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2심 재판 결과에 따라 판명될 사실관계는 스토킹에 대한 것이 아니다. 군은 이미 스토킹 혐의를 인정하고 가해자인 송○○ 소령에게 징계라는 솜방망이 처분을 내림으로써 사태를 매듭지은 상태이다.
이날 김 의원은 “장기복무를 빌미로 여군에게 일어난 다양한 성희롱(707호 표지이야기 참조)에 대해 실태조사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는 점도 지적했다. 이 장관은 이에 대해서도 “실태조사는 군 자체에서 하고 있고, 2005년 이후 한국여성개발원과도 함께 실태를 조사해오고 있다”며 “특별 과제로 선정하거나, 필요한 실태조사와 위탁교육도 하고 있다. 앞으로 여성부, 여성단체와 긴밀히 교류를 확대하겠다”라고 말했다. ‘이미 해오고 있으며 앞으로 더 잘하겠다’는 지극히 원론적인 답변인 셈이다.
[한겨레21 관련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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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박 대위님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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