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성공한 여자는 겸손해야 한다?

등록 2008-05-08 00:00 수정 2020-05-02 04:25

엘리트 여성들은 노동·여성운동 덕택에 성공한 반면 대다수는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여성 대통령 후보, 여성 장·차관, 여성 국회의원, 여성 고위직 공무원, 여성 최고경영자(CEO)…. ‘잘나가는 여성’들에 대한 이야기가 흔해빠진 세상이다. 여성 노동시장에서도 전문직·관리직 등 고임금 계층의 성장이 뚜렷하다. CEO로 성장한 극소수 여성들 뒤편에는 수많은 여성들의 희생이 깔려 있다. 일반적인 회사 조직을 보면, 남성들은 공식 결재 라인의 중심이나 인적·물적 자원배분을 담당하는 총무·인사·영업직 등에 배치되는 반면, 여성들은 부서 간 교류도 별로 없고 제한된 영역에서 전문적 지식을 사용하는 스태프·지원부서에 집중 배치되는 게 현실이다. 이런 경력 경로를 밟는 여성이 경영자로 가는 사다리를 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남성들의 전유물로 여겨져온 핵심 부서에 어쩌다가 한 번씩 진입하는 여성들만이 CEO로 성장하는 루트를 밟게 된다.

‘잘나가는 여성들’로 대변되는 극적인 변화의 배경에는, 개별 여성들의 노력과 땀도 투입됐겠지만 집합적으로는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이 있었다. 노동시장에서 여성의 평등한 권리 보장과 관리직 진출,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요구하는 투쟁과 싸움이 오랫동안 전개돼온 것이다. 예컨대 은행권 여성 노동자들은 노동조합 조직을 앞세워 결혼 퇴직·출산 퇴직제 폐지를 요구해 관철했다. 여성운동가들은 공무원 여성할당제 혹은 여성채용 목표제 등을 내세워 제도화했고, 1970년대 ‘공순이’로 불리던 여성노동자들이 똥물을 뒤집어쓰면서까지 싸워가며 여성 고용안정 쟁취를 얻어내기도 했다. 그런데 여성 차별에 맞선 숱한 도전과 강력한 운동의 혜택은 과연 누구한테 돌아간 것일까?

스테파니 루스는 에서 “여성운동이 여성 노동자들에게 실질적인 성과를 가져다준 건 사실이지만, 많은 것을 획득한 여성들이 있는 반면 다른 여성들은 아무것도 얻지 못하는 상황이 전개됐다”며 “노조를 통해 동원능력을 과시하고 변호사·로비스트·유권자를 비롯한 여러 지지자들을 확보해내는 사회적 능력과 힘을 갖고 있던 여성들은 성공한 반면, 자신들을 대변해줄 조직을 갖지 못한 노동계급 내 여성들은 방치된 상태에 놓여 있었다”고 말했다. 더 높은 교육 수준과 능력을 가진 여성들만이 개인적 능력 혹은 집합적 협상력을 동원해 더 나은 직업에 진출하고 더 높은 임금을 받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교육을 많이 받은 여성 노동자들이 인상적인 상향 이동을 거듭하는 동안 내세울 만한 것이 없는 대다수 여성들은 저임금 비정규직으로 떨어졌다. 최근 남녀 간 소득격차가 꾸준히 좁혀지고 있다는 통계가 많이 나오지만, 그 이유는 남성의 임금 하락과 비정규직화가 여성의 임금 하락보다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의 임금이 크게 올라서가 아니다.

교육 수준도 높지 않고 노조도 조직돼 있지 않은, 또 전통적으로 여성이 종사해온 직업 이외에 다른 직업을 구할 능력도 없는 여성들을 보자. 계산원, 할인점 매장 직원, 식당 종업원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언제든 쉽게 다른 노동자로 대체될 수 있는 인력으로 취급된다. 점점 더 많은 여성들이 일터로 나가고 있지만, 전통적인 여성 일자리에 종사해온 노동자는 상점·은행·사무실에 정보기술이 확산되고 자동입출금기가 도입됨에 따라 일자리에서 쫓겨나고 있다. 이들은 집단행동을 조직할 노조도 갖고 있지 않다. 차별과 해고에 맞서는 데 필요한 돈도 세력도 자원도 없다. 조직 노동자들의 투쟁과 성과는 애초 의도야 어찌됐든 주로 ‘엘리트 여성들’을 위한 것으로 귀결됐다. 저임금 비정규 여성들은 주변화된 집단으로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았다. 한국의 여성 노동자는 약 530만 명인데, 이 가운데 비정규직 노동자가 70.9%(379만 명)에 이른다. 극소수 엘리트 여성들은 수많은 다른 여성들의 희생을 딛고 성공한 것일까?

일과 가정 모두를 잘해내려는 여성들 가운데 노동시장에 계속 남아 남성과 경쟁하면서 이긴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세탁기·냉장고가 보급되고 유치원이 확대되면서 여성이 해온 많은 일이 시장에 맡겨졌다 해도, 현실적으로 ‘가족 보살핌 무급노동’은 여전히 일하는 여성들이 보완해야 한다. 이로부터 해방되는 특권을 누린 몇몇 엘리트 여성이 더 많은 돈과 권력을 얻었을지 모르지만, 그 뒤에는 ‘이름을 붙일 수없는 질병’(주부 우울증)에 시달려온 대다수 여성들이 있다. 어떤 의미에서 거대한 주부 우울증에 대한 사회적 보상으로 고위직·관리직 여성 비율이 제도화됐고, 그 혜택을 엘리트 여성들이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성공한 여성들은 모든 여성 노동자들에게 더욱 겸손해야 한다.

한겨레 저널리즘
응원으로 지켜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