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생산 노동자는 디지털 시대에 더 편하다고? 이들의 고된 ‘소비노동’이 안 보이는가
▣ 조계완 기자 kyewan@hani.co.kr
‘핑크칼라’(pink collar jobs)는 종사자의 절반 이상 혹은 대부분이 여성인 직종을 일컫는 말이다. 간호사·전화상담원·타자수·비서·여급·점원·매장 판매원·사무실 청소부·교사 등이 대표적인 여성 직종이다. 넓게는 ‘여성노동(자)’을 일반적으로 ‘핑크칼라’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일터에서 여성이 맡고 있는 보살핌 노동·청소·조리·바느질·간호 등은 여성들이 집에서 하던 일을 직·간접적으로 연장한 것에 불과하다.

비록 임금노동은 아니지만 주부들의 가사노동도 핑크칼라에 해당된다. 한 연구는 2004년 기준으로 국내 전업주부들의 가사노동가치를 국내총생산(GDP)의 28.2%인 219조원(1인당 가사노동가치 월 111만원)으로 추계했다. GDP는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만 집계하기 때문에 미취업 주부가 집안에서 밥 짓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아이 키우는 노동은 제외되고 있다. 주부노동은 ‘비생산적 노동’으로 간주되고 있는 셈이다. 물론 파출부를 쓰고, 옷을 세탁소에 맡기고, 아이를 놀이방에 맡기면 이런 보수노동은 GDP에 포함된다.
주부가 하는 집안일을 고상하게 표현하면 ‘가계생산’(home production)이다. 임노동 취업자는 아니지만 주부도 가계생산 ‘노동자’다. 에렌라이히와 잉글리시가 펴낸 (For Her Own Good)를 보면, 지난 150년간 의사·박사·교수 등 ‘전문가들’은 “가정을 보살피는 일이 생산에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 더 중요하다”고 충고하면서 여성들을 집안에 가둬왔다. 이랜드 매장의 비정규직 아줌마 노동자들이 파업에 돌입할 때 많은 남편들이 집안 문을 걸어잠갔다고 한다. 이길 때까지 집에 들어올 생각을 하지 말라는 뜻이 아니다. “주부가 무슨 놈의 파업이냐? 그깟 일 당장 때려치워라”라는 뜻이다. 역사적으로 여성들은 ‘나약해 어떤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너무 많은 일을 집안에서 하고 있기 때문’에 병약자처럼 가정 안에 묶여 있어야 했다.
산업화 이전에는 가계생산을 주부 혼자 직접 수행했지만, 요즘처럼 날마다 청소하는 것이 아니라 봄청소 등 어쩌다 한 번뿐이었고, 음식 조리도 간단하고 똑같은 음식을 매번 먹었고, 옷 갈아입는 일도 드물었다. 집안일이 그다지 힘들거나 빡빡하지 않았다.
그런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성장하면서 임금노동과 이윤을 위한 상품 생산이 확산되면서 이제는 빵도 상품으로 구입하고 세탁도 바깥에 맡기고 기성복을 사 입게 되는 등 집안일이 줄어들게 됐다. 어떤 의미에서 산업화가 여성의 집안일을 빼앗아간 것인데, 도시 중산층 가정마다 할 일이 없어진 ‘가사 공백’이 생겼다. ‘여성은 이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던져졌다. 20세기 초 미국의 은 “가정이 위험하다. 너무 많은 여성들이 위험스럽게도 할 일 없이 빈둥거린다”라고 진단했다. 여성들은 일자리를 달라고 외쳤으나 여성한테 공장의 문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이때 등장한 게 가정 내 건강이었다. 전문가들은 ‘부엌 병원균으로부터 가정을 지키는’ 새로운 임무를 주부에게 맡겼다. 가정을 위협하는 세균들과의 위생전쟁이 벌어졌다. 가정경제학 교과서는 “세상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것이 여성들에게 주어진 가장 위대한 일”이라고 선포했다. 가사노동에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즉 풀타임 취업자(전업주부)가 돼야 ‘가정 내 공백’ 문제가 해결되고 가정이 행복해진다? 주부들은 매일 집안 구석구석을 청소하고, 항상 옷을 빨아 입히고, 끊임없이 아이들한테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설득당했다. 집안일은 과학화됐다. 최소의 시간과 비용을 들여 쇼핑과 요리를 하고 하루 혹은 주 단위로 정확한 계산에 따라 살림 계획을 짜야 했다. 가정주부는 세균 사냥꾼뿐 아니라 효율적인 생산을 추구하는 가계생산 ‘관리자’가 돼야 했다.
정보기술과 서비스경제로 대표되는 ‘무게 없는 경제’(weightless economy) 주창자들은 디지털 가전기기들이 가사노동의 고통을 덜어준다고 말한다. 과연 광고 카피처럼 여성들은 편안해졌을까? 디지털 가전과 편의식품이 크게 늘었지만 가사노동 시간은 줄지 않고 있다. 집안일이 모두 상품화되고 디지털화되면서 집안일은 줄어들지라도, 주부의 하루는 이제 유치원 시간표, 상점 문 여는 시간표 등 ‘집 바깥’의 시간표에 맞춰 제조업 노동자들보다 더 빠르고 빡빡하게 돌아간다. 디지털이 가사노동을 덜어주는 척하지만, 가사노동에서 해방되기는커녕 더 고된 노동으로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어슐러 휴즈가 쓴 를 보면, 보수 없는 ‘소비노동’이 날로 가정주부들에게 떠넘겨지고 있다. 소비노동도 사실 여성 직종이라고 할 수 있다. 과거에 슈퍼마켓 점원이 하던 물건찾기, 포장하기, 계산대 앞에서 기다리기, 집까지 운반하기 같은 일들을 이제는 소비자가 떠맡는다. 은행 입출금, 주유 서비스 비용도 마찬가지다. 생산성도 낮고 이윤이 나지 않는 일은 소비노동을 책임지는 주부들에게 또 다른 일거리로 넘겨졌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대형 마트에서 물건을 대량 구입해 냉장고에 저장하면 유통업체는 보관 비용을 줄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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