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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론] 농협의 선진화는 시장 경쟁력

등록 2007-11-09 00:00 수정 2020-05-03 04:25

681호 표지이야기 ‘농협의 이중생활’에 대한 농민신문사 논설위원의 반론

제681호 표지이야기인 농협 문제에 대해 권갑하 농민신문사 논설위원이 ‘반론의 글’을 보내왔다. 권 위원은 정부의 농협 통제와 간섭을 비판한 (1999)란 책을 펴낸 바 있으며, 시인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은 농협 개혁을 주제로 한 건강한 토론을 위해 권 위원의 글을 싣는다. 편집자

▣ 권갑하 농민신문사 논설위원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농협에 대한 일부의 인식이 옛날식 사고에 머물러 있음은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 농협은 낙후된 농업 발전의 역할 수행을 위해 관 주도로 만들어졌지만, 1988년 민주농협법 제정으로 진정한 농민의 농협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농민조합원이 조합장을 뽑고, 조합장들이 중앙회장을 직접 선출하는 민주적인 운영체제로 변모한 것이다. 그전에는 정부의 통제 속에 있어서 자율성이 없었고, 협동조합으로서 제 기능도 할 수 없었다. 지금도 개혁의 과제가 없지는 않지만 민주적 운영체제 속에서 중앙회와 지역농협이 상호 협력해 발전해나가고 있다.

금융 부문에 도전하는 선진국 농협

농협을 정부투자기관이나 공공기관으로 인식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아마도 농업 부문의 정부 업무를 대행해온 역사 때문일 것이다. 농협은 정부조직이 아니며 ‘농업계’의 것도 아니다. 정확히 말해 농협은 230만 농민조합원의 사적 소유요, 그들이 출자해 운영하는 자주적 사업조직체다. 농협을 ‘운동체’로 인식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운동체적 성격은 농협 활동의 일부분일 뿐이다.

농협의 운영 형태는 발전 단계에 따라 변화한다. 후진국 농협이 계몽과 계도 중심의 운동체적 활동에 치중한다면 선진화된 농협은 시장 경쟁력을 우선한다. 세계 최초 협동조합인 로치데일 선구자들은 시장가격으로 판매할 것을 규칙에 천명했다. 협동조합이 시장 속의 경제조직체임을 확고히 한 것이다.

미국의 농협 중 1, 2위 규모를 자랑하던 ‘팜랜드 인더스트리스’와 ‘에그웨이’가 몇 해 전 파산했다. 환경 변화에 사업과 조직을 시장지향적으로 전환하지 못한 결과다. 팜랜드를 이끌었던 짐 레이니는 “전략적 경영과 변화관리야말로 농협의 최우선 경영원칙”이라고 강조했다. 100년 전통의 미국 선키스트 농협도 1990년대 중반 시장 변화에 대응하지 못해 존폐의 위기를 경험했다.

이런 경험들로 유럽 농협들은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합병 가속화로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고 능동적인 경영으로 조합원의 이익 극대화를 꾀하고 있다. 자회사 설립을 통한 구조조정도 활발하다. 사업의 자율성을 확보하고 시장 변화에 대한 유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우리나라에도 진출한 엠디푸드(MD Food)는 덴마크 농협의 자회사이며, 네덜란드 항공사 기내식을 공급하는 회사 역시 세베코 농협의 자회사다. 최근에는 유럽연합(EU) 농협 단일화가 추진돼 국경을 초월한 합병도 이뤄지고 있다. 이른바 ‘다국적’ 협동조합이 탄생하고 있는 것이다.

금융 부문의 도약은 더욱 눈부시다. 세계 초우량 협동조합 은행인 프랑스 크레디아그리콜(CA)은 자국 금융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세계 70여 개국에 4천 개의 영업망을 확보하고 있다. 그 결과 그룹 전체 이익의 42%를 해외에서 벌어들인다. 네덜란드 라보뱅크도 43개국에서 그룹 전체이익의 24%를 올리고 있다. 자국의 농업 발전을 위해 해외 금융시장을 누비고 있는 것이다. 몇 해 전에는 벨기에 최대 농협인 세라협동조합은행이 벨기에 3위 규모의 민간은행과 합병하기도 했다.

1960년대식 논리로 재단해서야

일본 농협도 사정은 다르지 않다. 일본은 농가 생산 농산물은 모두 농협을 통해 출하하도록 법제화해 1990년대 중반까지는 성장 가도를 달렸다. 그러나 시장개방으로 정부의 보호막이 걷히면서 경제사업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되는 위기를 맞았다. 합병으로 규모화와 전문화를 도모하고 있지만 신용사업의 수익을 경제사업에 지원할 수 없어 개혁이 한계에 부딪쳐 있다. 얼마 전 농협 양재동 하나로클럽을 방문한 일본 전국농협연합회 회장은 한국 농협의 역동적 변화를 부러워하면서 벤치마킹하겠다고 말했다.

이처럼 세계 농협들의 ‘생존’을 위한 몸부림은 눈물겨울 정도다. 그렇다면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한국 농협은 민주농협법 제정 이후 농민이 주인 되는 개혁을 통해 새로운 지평을 열어나가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를 맞아서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으로 재도약의 기틀을 다졌다. 사업 규모와 사회공헌도 등을 고려한 국제협동조합연맹(ICA) 평가에서 세계 4위에 오를 정도로 한국 농협은 세계 협동조합사에 성공 모델로 손꼽히고 있다. 환원사업과 지도사업, 농산물 판매와 금융업무 등 농협의 활동과 역할을 간단히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객관적 수치로 보면, 올해만도 농협은 은행권 사회공헌도에서 1300억원 규모의 환원으로 1위에 올랐고, 예금 증가액에서도 은행권 1위의 성장을 지속하고 있다. 2015년까지 농협은 13조원을 농산물 유통 개혁에 투입해 ‘유통과 금융’ 부문에서 국내 1위로 서겠다는 비전을 제시했다. ‘신용과 경제’라는 종합 시스템이 아니면 감히 엄두도 낼 수 없는 자기혁신 투자다. 그만큼 시장 경쟁력 확보로 국민적 신뢰를 얻어가고 있다는 방증이다.

하지만 농협에 대한 언론 등 일부의 인식은 너무 과거적이고 한쪽으로 경도돼 있다. 농협을 시장경제 속의 사업체로 인식하지 않고 19세기 협동조합 초기의 이념에 사로잡혀 있는 것이다. 학자들마저 세계 협동조합의 변화를 따라잡지 못하고 1960년대식 논리로 농협을 재단하려 한다. 혁명적인 정보통신의 발달과 냉엄한 시장개방의 세계무역기구(WTO) 체제 속에서 이러한 낡은 사고로 어떻게 오늘의 한국 농업 경제를 발전시켜나갈 수 있겠는가.

사기업은 투자자들에게 최대의 금전적 보상을 목적으로 한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다국적기업 론스타는 4년 만에 천문학적 금액인 5조원을 벌어갔다. 만약 민족은행인 농협이 당시 외환은행을 인수했다면 유출시키지 않아도 될 소중한 우리의 국부다. 협동조합은 자주조직이란 점에서 농협에 대한 통제와 간섭은 최소화돼야 한다. 농협 개혁도 조합원에게 이익이 되고 조직 경쟁력을 제고하는 방향으로 스스로 이루어야 함이 마땅하다.

기업처럼 자율화돼야

신용·경제 사업 분리의 폐단은 옛 농협 시절 이미 경험한 바 있다. 현 시점에서 문제는 신·경 분리가 농협과 조합원에게 이익이 된다는 신뢰할 수 있는 연구 결과가 없는 상황에서 막연한 공론의 기대치만으로 도입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일부의 요구는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농민조합원의 이익을 위한 것이라 할 수 없다. 농협 활동도 기업처럼 자율성이 보장돼야 한다. 우리 농산물 애용 활동을 위한 야구단 인수든 해외 금융시장 진출이든 농협에 능력이 있고, 또 한국 농업과 농민조합원을 위한 것이라면 허용돼야 한다. 농협을 의도적으로 무력화하려는 일부의 논리에 넘어가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농협이 시장에서 힘을 잃으면 고통을 겪는 대상은 농민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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