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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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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권경찰, 안팎으로 감시한다”

등록 2005-03-30 00:00 수정 2020-05-03 04:24

허준영 경찰청장이 밝히는 구체적인 인권보호 조치…학교폭력은 ‘자수’ 유도한 뒤 일제 단속

▣ 이춘재 기자 cjlee@hani.co.kr

허준영(53) 경찰청장은 조어(造語) 실험 중이다. ‘인권’과 ‘경찰’이라는, 전혀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두 낱말로 ‘인권경찰’이라는 새로운 말을 만들고 있다. 그는 지난 1월19일 치안총수 자리에 오른 뒤 취임 첫말로 ‘인권’을 꺼냈다. 인권을 말한 경찰청장이 이전에도 여럿 있었지만, 이번에는 ‘어감’이 다르다는 게 일선 경찰관들의 얘기다.

실제로 지난 3월4일 전국 233개 경찰서의 현장 지휘관인 수사·형사 과장 330명은 수사 업무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서울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 모여야 했다. 인권 관련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청장이 바뀔 때마다 치러지는 요식행위에 불과할 것이라는 참석자들의 생각은, 강의를 듣고 난 뒤 확 바뀌었다고 한다. 초빙된 강사가 국가인권위원장이었기 때문이다. 참석자들의 얼굴을 화끈거리게 만든 국가인권위원장의 특강은, 앞으로 경찰 업무에서 인권을 우선시하겠다는 허 청장의 의지가 간접적으로 반영된 것이기도 했다. 경찰 역사상 첫 외무고시 출신이라는 특이한 경력을 가진 허 청장을 지난 3월21일 집무실에서 만났다.

인권수호위원회와 시민인권보호단 발족

인권을 유독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가 그동안 결과를 중시하는 관행이 강했는데, 경찰도 이런 관행에 따라 실적을 중요시했다. 좋은 실적을 올리려다 보니 피해자나 피의자의 인권이 침해되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세상이 바뀌었다. 결과도 중요하지만 절차도 결과 못지않게 중요하게 여기는 사회가 됐다. 수사에서 절차를 지키는 것은 피해자와 피의자의 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여기에 최근 외국인 노동자가 급증해 이들과 관련된 범죄도 늘고 있는데, 이들의 인권은 무시되는 일이 많다. 그래서 ‘인류애로서 인권 수호’라는 지휘 지침을 일선 경찰서에 내렸다. 모든 경찰 업무를 인권 중심으로 수행하도록 지시했다.

구체적인 조치로 경찰청에 인권보호센터를 신설하고 전국 경찰서에 인권보호관을 지정했다. 인권보호관들에게는 모든 경찰 업무에서 적법한 절차를 지킬 수 있도록 지도하고 이를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을 주는 한편, 인권 침해가 발생했을 때는 책임도 같이 지도록 했다. 또 민간에 의한 감시가 이뤄질 수 있도록 경찰청에 인권단체 대표와 전문가들로 구성된 ‘인권수호위원회’를 두고 지방경찰청에는 ‘시민인권보호단’을 운영해 경찰의 인권 보호 수준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릴 각오다. 인권수호위원회와 시민인권보호단은 4월 초 발족할 것이다. 그동안 경찰이 인권을 얘기하면 구호는 요란하지만 실천은 미흡했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이번에는 그런 평가가 나오지 않도록 할 것이다.

일선 수사 현장에서 반발은 없나.
현장에서 직접 수사를 하는 경찰관들은 많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사회가 변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인권은 지켜도 그만 안 지켜도 그만인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마땅히 존중돼야 하는 절대적 가치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물론 현장에서 직접 공권력을 집행하다 보면 혼란과 어려움은 있다. 인권 침해 시비 때문에 검문을 느슨하게 해서 정말 검문해야 할 사람을 놓쳐 다른 선량한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면 그것은 또 다른 인권침해다. 두 관점이 잘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지침이 되는 매뉴얼을 만들고 있다. ‘피해자보호 매뉴얼’은 자칫 수사 과정에서 소홀할 수 있는 범죄 피해 회복과 피해자 지원을 위한 지침을 담고, ‘인권수사 매뉴얼’은 수사 단계별·범죄 유형별로 피의자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어떤 언행을 써야 하는지 등 구체적 방법을 담을 예정이다. 유치장 안에서도 인권이 소홀히 취급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다. 현재 한끼당 893원인 급식비 단가를 1100원으로 올리는 것을 추진하고 있고, 여성 피의자와 외국인 피의자 전용 유치실 운영도 추진하고 있다.

우리 경찰관들의 인권 의식은 그동안 많이 향상돼왔다. 내가 서장을 할 때 직원들이 취객들의 횡포에 시달리는 경우가 많았는데, 직원들이 나보다 더 인내심이 많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태도가 많이 바뀌었다. 지난 부안 사태 때 국가인권위원회에서 집회를 막던 부안경찰서 기동대장에게 경고 조치를 내렸는데, 솔직히 국가인권위에서 너무 이상적으로만 생각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인권단체 관계자들이 시위 현장에서 경찰이 어떻게 일을 하는지 체험해볼 필요도 있다.

면직된 일용직, 가산점 우대 고려

학교폭력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임기(2년) 안에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는데.
학교는 일반 현장과 다르다. 학교에서는 교권이 존중돼야 한다. 경찰이 개입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그런데 청장이 되고 보니 여기저기서 학교폭력을 없애달라는 요구가 많아 깜짝 놀랐다. 교사가 학생을 무서워할 지경이니 이 정도면 정말 심각한 것 아닌가. 그래서 경찰이 나서야겠다고 결심했다. 학교폭력을 장악하면 조직폭력배도 막을 수 있다. ‘교폭’이 조폭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지난 3월4일부터 학교폭력 신고를 접수했는데 10일 만에 1천여건이 접수됐다. 보복이 두려워 신고하지 않는 경우도 있는 점을 감안하면 실상은 더욱 심각할 것이다. 4월 말까지 ‘자수’를 접수하고 이 기간이 끝나면 교육인적자원부와 합동으로 일제 단속을 실시해 일진회를 비롯한 폭력서클의 해체를 유도할 생각이다. 또 퇴직 경찰이나 퇴직 교사가 교내에 상주하면서 학교폭력을 예방하는 학교경찰제도(스쿨 폴리스·School Police)를 도입할 계획이다.

‘학교 경찰’은 학생들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5월부터 부산에서 시범 운영을 하는데, 학생들의 인권 침해 등 시범 운영 과정에서 나타나는 문제점을 고쳐서 인권 침해 시비가 없도록 조치할 것이다.

지난해 말 직권 면직된 87명의 경찰청 일용직 직원이 현재 복직을 요구하며 농성 중이다. 인권 수호 차원에서 이들을 구제할 생각은 없나.
가슴 아픈 일이지만 그분들은 정부 방침에 따라 불가피하게 직권 면직된 고용직들이다. 고용직 공무원은 1989년 정부의 폐지 방침에 따라 95년부터 매년 정원을 감축해 지난해 말 완전 폐지됐다. 경찰청에서는 퇴직자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퇴직수당 등으로 자진 퇴직을 유도했는데, 480여명이 이에 응했다. 지금 농성하는 분들은 이를 거부하다 지난해 말 면직됐다. 이분들이 요구하는 것은 올 9월 87명의 기능직 신규 채용 때 자신들에게 먼저 기회를 달라는 것인데, 이는 자진 퇴직한 분들과 형평성에 맞지 않아 받아들이기 어렵다. 그 대신 근무 경력자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우대하는 것은 고려해볼 수 있다. 경찰은 신규 기능직 인원을 더 확보하기 위해 계속 노력할 것이다. 하지만 올해 또 85명을 내보내야 하는 등 상황은 좋지 않다.

최근 경찰총수 사상 처음으로 독도를 방문했다. 독도 경비대원들에게 ‘다케시마는 지구상에 없다’고 발언해 화제가 됐는데.
우리 대원들의 경비 상황을 점검하려고 갔는데, 그곳을 지키는 대원들에게 뭔가 힘이 될 수 있는 말을 해주고 싶어서 한참 고민했다. 처음에 대원들을 만나자마자 ‘독도는 외롭지 않다’고 했더니, 대원들이 매우 좋아했다. 다케시마 발언은 대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을 때 한 말이다. 독도 문제로 한-일 관계가 매우 민감한 상태인데, 어떻게 보면 독도를 군대가 아닌 경찰이 지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여러 가지 함축된 의미가 있다. 우리의 주권은 확실하게 행사하면서도 국제적 분쟁에 휘말리지 않도록 하기 위한 고도의 전략이 있는 것이다. 경찰이 이런 숭고한 사명을 수행하게 된 것은 어떻게 보면 영광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 독도 관광이 활성화되면 일반인들이 많이 방문할 텐데 이를 위해 경비 병력을 늘리고 오래된 무기를 신형으로 교체할 계획이다. 또 현재 일반인들이 독도에 오면 경비대가 안내 업무까지 하고 있는데, 앞으로는 경찰은 경비만 하고 안내 업무는 울릉군청에서 할 수 있도록 조치했다.

독도 수호는 경찰의 숭고한 사명

지난 설 연휴 때 독도 방문을 추진했다가 무산됐다. 외교부의 만류가 있었다는데, 일본에 대해 너무 저자세라는 지적이 있었다.
외교부를 탓할 일은 아니다. 설 연휴 때 오지에서 근무하는 경찰관들을 격려하려고 생각했고, 그 중에서도 독도가 좋을 것 같아서 추진했다가 외교부에서 부정적인 견해를 비공식적으로 밝혀왔다. 그래서 민감한 문제를 건드릴 필요가 있나 싶어서 내가 판단해 그만둔 것이다. 독도 방문을 포기하고 대신 마라도, 백령도 등 오지에서 근무하는 대원들에게 격려 전화를 했다. 경찰청장이 독도에 가는 것은 외교부에 물어보고 할 일은 아니다. 경찰 경비대를 격려하기 위한 방문이기 때문에 경찰이 독자적으로 판단해서 할 수 있다. 이번 방문도 내가 판단해서 결정한 것이다.



외시 출신의 ‘뚝심 경찰’

허준영 경찰청장은 외무고시 출신이다. 1980년 외무고시에 합격해 프랑스·영국 대사관 등에서 근무하다 1984년 경정으로 경찰에 입문했다. 그는 경찰 입문 뒤 자신의 전공을 살려 외사 계통에서 경력을 쌓았다. 하지만 수사 분야에서도 능력을 인정받았다는 게 경찰 내부의 평가다.
허 청장은 일선 서장으로 일할 때 뚝심과 소신이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서울 남대문 서장 시절의 일화는 지금도 경찰 내부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1998년 한나라당이 서울역에서 정부 규탄 집회를 열었으나 일부 노숙자의 방해로 집회를 제대로 치르지 못한 일이 있었다. 허 청장은 이 일로 국회 국정감사에 불려나가 한나라당 의원들로부터 ‘경찰의 의도적인 정치 공작’이라고 추궁당했으나, 허 청장은 야당 의원들의 주장을 조목조목 반박하며 한치도 물러서지 않았다. 이 일로 당시 여권 정치인들에게 강한 인상을 남긴 허 청장은 경무관으로 승진한 뒤 참여정부 들어 대통령 비서실 치안비서관(치안감)과 서울경찰청장(치안정감) 등 요직을 거쳐 지난 1월19일 제12대 경찰청장으로 임명됐다. 국회 인사청문회 때는 군 보충역 판정 시비와 부인의 아파트 구입을 둘러싼 투기 의혹 등으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지난 2003년 허 청장의 부인이 대전에 아파트를 산 뒤 1년도 안 돼 처분한 사실에 대해 행정수도 이전에 따른 투기라는 의혹을 받은 것이다. 허 청장은 이에 대해 “동생이 아버지의 노후를 위해 구입했다가 되판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구 출생(53)에 경북고를 졸업한 전형적인 ‘TK’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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