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1년 11월1일(현지시각) 영국 글래스고에서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린 가운데, 스웨덴의 그레타 툰베리(앞줄 가운데)를 비롯한 세계 청년 기후활동가들이 각국 정상들에게 공언이 아닌 행동을 요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세계 정상들은) 몇십 년 동안 ‘블라블라’(blah blah)하기만 했다. 그 말들이 지금 어디에 있나? 그들은 계속 화석연료 사업을 하고 석유 파이프를 심는다. 최소한의 일도 하지 않는다. 부끄러운 일이다.”
빨간 점퍼를 입고 무대에 오른 그레타 툰베리의 목소리는 우렁찼다. 2021년 11월5일 오전(현지시각) 제26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6)가 열리는 영국 글래스고에서는 세계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이 함께하는 ‘미래를 위한 금요일’(FFF·Fridays For Future)이 주최한 ‘기후파업’이 열렸다. 이들은 2시간30분가량 글래스고 곳곳을 행진한 뒤, FFF 청소년 활동가들의 연설을 이어갔다. 오후 4시께 마지막으로 스웨덴의 기후활동가 툰베리가 발언했다.
시민들이 든 손팻말에는 툰베리가 9월 말 청소년 기후정상회의에서 사용한 ‘더 이상 어쩌고저쩌고하지 말라’(No more blah blah)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시민들은 이 밖에도 ‘지금 당장 행동하라’ ‘우리의 지구는 우리 손에 달렸다’ ‘우리는 녹고 있다’ 등이 쓰인 팻말을 들고 행진했다. 이날 오전 글래스고 켈빈그로브공원과 그 주변 거리가 수만 명(주최 쪽 추산)의 인파로 가득 찼다.
툰베리는 “COP가 실패한 것은 비밀도 아니다. 그동안 해온 똑같은 방법으로는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게 명백하다. 리더들은 아름다운 말을 하고 그럴듯한 약속을 하지만 북반구 사람들은 과감한 기후행동을 하기 위한 어떤 약속도 안 하고 있다. COP는 누군가를 배제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공허한 약속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다”며 “기술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할) 방법이 없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사회를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기성 기후정치를 비판하며 변화를 촉구한 청년은 툰베리만이 아니었다. 검정 모자와 와인색 마스크를 쓴 채 군중의 맨 앞에 서 있던 25살 바네사 나카테. 그는 아프리카 우간다의 수도 캄팔라에서 자랐고 가뭄과 홍수, 허리케인으로 고통받은 기후위기의 피해자다. 전세계를 돌아다니며 우간다의 기후 문제를 알리는 FFF 소속 활동가이기도 하다. 나카테는 “세계 남반구는 기후위기의 최전선에 있지만 우리는 (언론의) 1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선진국 사람들한테 그것은 관심을 거의 끌지 못한다”고 말했다. <에이피>(AP) 통신은 2020년 초 기후활동가들을 인터뷰하면서 활동가 5명 중 가장 끝에 서 있던 나카테를 사진에서 도려냈다가 비판받았다. 나카테는 인종차별, 국내총생산(GDP) 차별과도 맞서야 한다.
나카테가 처음 기후운동에 나선 때는 2019년 1월이다. “하루는 친구와 걷고 있는데 경찰 트럭 뒤에 실려가는 주검을 봤다. 폭우에 휩쓸려간 사람이었는데, 그와 다른 많은 사람이 기후위기의 희생자라고 생각했다.” 나카테는 “기후위기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나라는 가장 가난한 나라들”이라며 “가장 오염을 많이 시키는 나라들과 이러한 파괴로 이득을 본 화석연료 회사가 (기금 비용을) 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COP26에서 개발도상국을 위한 피해기금 설립을 핵심적으로 논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가장 가난한 나라들에 피해 집중돼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COP26 연설을 한 11월8일(현지시각)에도 FFF 등에 속한 청소년 기후활동가들은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오바마 전 대통령은 2009년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개발도상국에 2020년까지 매년 기후대응기금 1천억달러를 지원하는 세계적인 노력에 동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12년이 지난 지금도 목표는 달성되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앞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은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COP15에서 개도국의 기후위기 대응을 돕기 위해 2020년까지 매년 1천억달러의 기금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이날 연설에서 “대부분 국가들이 6년 전 파리협정에서 설정한 행동 계획을 이행하지 못했다. (지금까지의 이행은) 1.5도 이상의 온난화를 막기 위해 실천된 것으로 보기엔 충분하지 않다”며 기후위기를 막으려면 말로 그치는 게 아니라 행동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COP26에 참석하지 않은 중국과 러시아를 겨냥해 “세계 최대 배출국인 이들 정상이 회담에 참석조차 하지 않은 걸 보게 돼 특히 실망스러웠다”고 말했다.
이날 COP26이 열리는 스코티시 이벤트 캠퍼스(SEC) 회의장 주변은 오바마를 보기 위해 몰려든 이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바마는 청년 기후활동가들을 향해 “계속 분노하길 바란다”며 이 분노를 활용해 각국 지도자들이 기후변화에 맞서 더 많은 행동을 하도록 압력을 가해달라고도 당부했다.
그러나 이날 기자회견에 참여한 청소년과 청년들은 오바마를 향해 “우리에게 돈을 달라”(Show Us The Money)고 적힌 펼침막을 들고 있었다. 케냐에서 온 기후운동가 케빈 므타이는 “(개도국 기금을 지원하겠다는) 오바마의 약속은 이행되지 않았다. 이는 우리에게 공허한 약속에 불과하고 이런 일들에 우리는 매우 지쳤다. 오바마가 제발 기후변화로 고통받는 세계 남부 국가들에 재정을 지원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나카테 역시 “오바마를 포함한 세계 지도자들은 2020년까지 기후재정을 지원하기로 약속했지만 2021년인 지금도 여전히 우리는 (약속이 이행되길) 기다리고 있다. 명확히 말해 (매년) 1천억달러 지원은 최소한이고 우리에게는 손실과 피해에 대한 별도의 기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1월10일 유엔기후변화협약 누리집에 COP26 공식 선언문 초안이 공개되자 ‘맹탕’ COP에 대한 비판과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기후변화로 피해를 보는 개발도상국에 대한 지원을 주저하는 등 기후변화 대응 의지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초안에는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탄소배출량을 45% 줄여야 한다는 내용 등이 담겼지만, 이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협의체’(IPCC) 보고서에서 강조한 내용을 반복한 것에 불과하다. 기후단체들은 탄소배출 감축 목표를 높이고 석탄 등 화석연료에 대한 보조금 폐지 등이 분명하게 선언문에 포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툰베리 등 청년 기후활동가들은 유엔에 ‘기후비상사태를 선언해야 한다’고 청원했다. 이들은 “코로나19 때와 마찬가지로 레벨3의 비상사태를 선언하라. 유엔의 자원과 인력을 신속히 배치해 기후재해에 가장 취약한 국가를 원조하고 과학적 전문지식을 가진 이들을 파견하라”고 강조했다.
글래스고(영국)=최우리 기자 ecowoori@hani.co.kr
김민제 기자 summer@hani.co.kr <한겨레> 기후변화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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