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무 평이나 될까. 그와 같은 서울중앙지검 1층 기자실에서 일할 때다. 희미한 기억을 더듬어보니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 세무조사 사건이 한창이었다. 기자들은 방상훈 사장 일가의 검찰 출석을 호위하고, 기자들은 검찰에 소환되는 홍석현 회장에게 ‘힘내세요’라고 응원할 때다. 권력을 누가 잡든지 상관없이 일제강점기부터 기득권을 누려온 재벌언론과 언론재벌은 탈세로 검찰 수사를 받는 신세였다. 하지만 그때조차 그들은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렸고 그 뒤 보복에 나서 자신들을 향해 칼을 겨눴던 국세청 수뇌부들을 시쳇말로 ‘날렸다’. 국경없는기자회가 해마다 내는 언론자유지수 순위에서 우리나라가 180개국 가운데 39위쯤 하던 시절이다. 순위가 높을수록 좋다. 그즈음 언론권력과 재벌, 특히 삼성 이재용 부회장의 변칙상속 문제를 보도하는 이용마 기자의 펜은 매서웠다.
시간은 진보를 뜻하지 않는다. 세월은 흘러도 역사는 퇴행할 수 있다. 어쩌면 역사는 왔다 갔다 하는 진자운동을 하는지 모른다. 2008년 이명박 정부의 등장은 역사를 거슬렀다. 그 역류에 MBC는 좌초했다. 2010년 전국언론노조 한겨레신문 지부장을 맡았을 때다. 수시로 서울 여의도 MBC 앞으로 지원 유세를 나갔다. ‘정권의 MBC 장악 진상 규명’과 ‘김재철 사장 퇴진’을 요구하는 파업은 39일로 끝일 줄 알았다. 파업은 2년 뒤 다시 불붙어 170일을 이어갔다. 그때 이용마는 MBC노동조합 홍보국장이었다. 앞장서 이명박 정부를 향해 ‘공정방송’을 부르짖던 그는 해직됐다. 그는 권력의 눈엣가시였다. 사주를 위해서는 펜을 날리던 조·중·동 기자들은 보고도 침묵했다. 주류 보수 신문들은 이미 ‘종편’(종합편성채널)을 선물로 받았다. 그들은 권력과 ‘공범자’였다. 이명박 정부 때 언론자유지수는 69위까지 내려갔다.
박근혜 정부는 이명박 정부의 시즌2였다. 언론 암흑기의 연장이었다. 기자 이용마는 논문도 쓰고 책도 내고 강연도 했지만, 정작 자신이 있어야 할 MBC로 돌아가지 못했다. 저항했던 동료 기자, 피디, 작가들도 뉴스룸 밖으로 밀려났다. MBC는 권력에 순응했고 빠르게 망가졌다. 박근혜 정부에서 언론자유지수는 한때 70위를 기록했다. 디지털미디어 환경 변화를 빼면 주류 보수 신문과 이들이 세운 종편이 비즈니스하기 좋은 시절이었다. 권력에서 독립한 방송을 해야 한다는 이용마의 외침을, 권력은 여전히 불순히 여겼다. 비선 실세가 움직이던 박근혜 정부가 붕괴하기 시작할 무렵 이용마는 낫기 힘든 병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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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2017년 말, 그가 MBC에 복직했지만 너무 늦었다. 5년 만에 다시 회사에 들어선 그는 마이크를 쥐고 “MBC 뉴스 이용마입니다”라고 말했다. 암 투병 중 휠체어를 타고 온 그가 보여줄 수 있는 건 딱 거기까지였다. 권력의 언론 탄압에 침묵하고 권력과 협력해온 조·중·동이 요즘 민주주의가 위험에 처했다고 소리를 높인다. 그들의 비즈니스가 어려워졌는지 모른다. 아직 부족하지만, 올해 언론자유지수는 41위로 10년 전 수준으로 다시 돌아왔다.
권력이 바뀌자 방송사의 권력도 따라 변했다. 건강한 인물로 많이 채워졌다. 하지만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이른바 ‘언론장악방지법’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언론은 권력의 호의와 선의에만 기댈 수 없다. 지난 10년의 교훈이다. 정치 풍향계가 바뀌면 방송은 다시 이명박·박근혜 정부 때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다. 이용마 기자는 종편의 ‘호의’도 경계했다. ‘리영희상’을 받으며 이렇게 말했다. “일부 사기업 언론의 호의에 공적 기능을 맡기는 것은 ‘도박’이나 다를 바 없다. 국민의 소유인 공영방송을 국민이 제대로 통제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그 시스템이 갖춰지는 것을 보지 못한 채, 그는 8월21일 향년 51살로 영면했다. 제2, 제3의 이용마의 아픔이 반복되지 않길, 역사가 다시 퇴행하지 않길 바란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류이근 편집장 ryuyigeun@hani.co.kr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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