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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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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캠페인] 김지태 이장이 경찰서 가던 날

등록 2006-06-16 00:00 수정 2020-05-03 04:24

대학 졸업하고 고향의 들로 돌아온 사내, 양심을 지키려 싸운 농민… 그가 경찰에 자진출두하던 날 대한민국엔 온통 월드컵 열풍만 불었다

▣ 평택=글 길윤형 기자 charisma@hani.co.kr
▣ 사진 류우종 기자 wjryu@hani.co.kr

기자는 지난 5월21일에서 6월6일까지 유럽에 다녀왔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이 코앞에 다가온데다 영국 프리미어리그에 성공적으로 안착한 두 한국인 덕분에 유럽 축구 문화에 대한 한국인들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아진 탓이다. 그곳에서 이영표의 홈구장인 토트넘 홋스퍼의 하트 레인 파크도 구경했고, 2005~2006 시즌 챔피언스리그 우승팀인 FC바르셀로나 구단 관계자도 만났으며, ‘뢰블레’의 캡틴 지단의 은퇴 경기와 한국-노르웨이 평가전도 관람했다. 그러는 동안 한밤중에 걸려온 국제전화를 통해 대추리 주민 이병철 할아버지의 부음을 접했고, 초등학교 건물과 함께 무너져내린 솔부엉이 도서관이 새로 개관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온 대추리 주민들과 활동가들의 목소리에서 설명하기 힘든 조바심이 느껴졌지만, 루브르박물관의 세련된 전시물들과 끝도 없이 펼쳐진 노르웨이 초원의 푸르름에 취해 잠시 평택과 대추리를 잊었던 것 같다.

체포 영장 발부해놓고 대화 제의

서울로 돌아오던 날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경찰에 자진 출두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인천공항에서 보름 만에 켠 휴대전화의 다급한 진동이 그의 출두 사실을 전하고 있었다. 그는 올해 48살로 지방 명문으로 손꼽히는 평택고등학교를 나와 충남대 농대를 졸업했다. 김 이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도시로 가 월급쟁이가 되는 대신 농사로 승부를 보기 위해 고향으로 내려왔다. 그는 2003년 7월 미군기지 확장반대팽성대책위(대책위) 활동이 시작될 때까지 평택에서 논 2만여 평을 일구는 평범한 농민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에서 “농민집회에 나가자”고 하면 거절하는 법은 없었지만, 그렇다고 앞에서 사람들을 이끄는 ‘투사’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지난 3년 남짓한 시간이 그를 투사로 바꿔놓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 ‘평택 평화의 땅 1평 지키기’ 모금운동을 시작하며 기자와 진행한 인터뷰에서 “잘못된 것을 알면서 체념하고 포기하는 것은 양심을 저버리는 행동”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되면 평생 후회하며 살 것 같습니다. 옳지 못한 일을 가만두고 볼 순 없죠.” 그에 앞서 대추리 이장을 지낸 임정석(64)씨는 “젊은 사람이 고집이 세고 너무 곧은 게 단점”이라고 말했다. 아마, 그 말이 틀리지는 않을 것이다.

법원이 그에게 체포 영장을 발부한 것은 지난 4월29일이다. 체포 영장이 발부된 바로 그날 국방부는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이덕우 변호사를 통해 주민들에게 “대화로 문제를 풀자”고 제의했다. 결국 김 이장은 국방부와의 대화 자리에 나갈 수 없었고, 보수 언론들은 약속을 어기고 대화 자리에 나오지 않은 그에게 독설을 퍼부었다. 주민들은 국방부에 “한쪽에서는 대화를 제의하고 한쪽에서 이렇게 뒤통수를 치느냐”고 따졌지만, 국방부는 “우리는 모르는 일”이라고 말했다.

시인 서수찬씨는 대추리 마을 담벼락에 써내려간 ‘대추리·도두리 만인보’에서 김지태 이장의 육성을 시로 옮겼다. “보미싼원/ 홍농계/ 황새울/ 너희들에게는 휴지 조각 같은 이름인 줄 모르겠지만/ 그 이름에서 폭격기가 날아간다고 생각하니/ 꿈에서라도 치가 떨린다/ 보미싼원이 날아가/ 아시아 어느 국가를 때리고/ 홍농계가 날아가/ 아랍 국가 어디를 때리고/ 황새울이 날아가 동족의 심장을 때린다고 생각하니/ 우리가 고작/ 우리 마음에서/ 폭격기를 띄우려고/ 맨손으로 들판을 만들었던가.” ‘보미싼원(原)’은 주민들이 봄에 바다를 막아 만든 논이고, ‘홍농계’는 갯벌에 둑을 막는 고단한 작업을 함께 하기 위해 주민들이 만든 계의 이름을 따 붙인 논이다. 그는 올해 1월3일 평화의 트랙터를 끌고 전국을 일주하기 위해 처음 들른 부여에서 “내 땅이 사람을 죽이는 전쟁 기지로 사용되는 것을 용납할 수 없다”고 말했는데, 그 말은 6개월 넘게 평택 캠페인을 계속할 수 있게 기자를 떠받쳐준 버팀목이기도 했다.

구속영장 발부, 문 신부는 단식농성

경찰에 자진 출두하기까지 그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는 알지 못한다. 6월5일 대책위가 보내온 전자우편을 통해 그는 “법의 기준이 모호하고 또한 이를 수행하는 자들의 자의적인 적용 기준은 우리를 분노케 하고 때론 절망케 하지만, 그래도 미군기지 이전만은 꼭 막아야겠다는 일념으로 억울하고 분해도 참고 또 참고 인내해왔다”고 말했다. “어제(6월4일)는 대추리 29회 리민의 날 및 경로잔치의 날이었습니다. 횟수로 29회째이고, 시작된 지도 이미 30년이 훨씬 넘는 유례를 찾기 힘든 마을의 고유행사입니다. 이런 유서 깊은 행사에 마을 이장으로서 참석은 당연한 것이기에 주민들의 행사장에 나타났고, 주민들과 함께 뛰고 마시고 하면서 하루를 같이했습니다. 처음 주민들을 보는 순간 서로 말을 못하고 눈물만 글썽이고 했습니다. 이제 저는 오늘(6월5일) 홀가분한 마음으로 경찰에 자진 출두할 예정입니다. 가서 할 얘기도 하고 아닌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입장을 밝히고 미군기지 이전의 부당성을 말하겠습니다.”

예상대로 평택경찰서는 미군기지 이전사업에 반발해 불법 집회를 주도한 혐의(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 등)를 붙여 그의 구속 영장을 신청했고, 검찰은 이를 받아 그의 영장을 법원에 청구했으며, 법원은 “도주 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문정현 신부가 가난한 몸을 이끌고 평택경찰서 정문 앞에서 무기한 단식농성에 들어갔다. 월드컵 열풍에 휩싸인 대한민국은 이미 평택과 대추리를 잊은 것 같다.



[들이운다] 이장이 무슨 죄 있다고…

우리는 일로다 산 사람이여, 끝을 볼거여

▣ 정덕례(79)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29-11

할머니들이 동산에서 열무를 다듬고 있었다. 노인정에서 함께 먹을 열무김치를 담그려고 동그랗게 둘러앉았다. 연두색 애벌레가 붙은 잎을 뜯어낼 때마다 할머니들은 죄 없이 감옥에 갇힌 이장이 안타까워 한숨을 내쉬었다.



이장님 나올 때만 바라보고 있는 거지. 이장이 우리를 지키느라고 이제까지 그렇게 고생했는데. 그거 하나 바라고 있는 겨. 말도 못해. 무슨 죄 있다고 그 고생이여. 죄도 없는 사람, 불쌍해 죽겄다고. 하루라도 빨리 나와야지. 우리 아들 친구라 생각하면 더 눈물이 나.
농사 못 짓게 된 것도 억울한디. 동네 일 보는 사람까지 잡아들이고. 맨날 구덩이만 파고 자나 깨나 개지랄 혀고. 여기 논도 좀 좋아. 농사짓다 안 지니까 애기 젖 먹고 싶어서 우는 거 같아. 딴 사람들은 물이 하나 차서 기계 모 심어 모가 이렇게 일어나는데. 아이구, 대추리도 엊그저께 그랬는데. 지금은 구덩이 파고 천막 치고 경찰들만 수북하니께, 생전 농사 안 진 거 같아. 논바닥 들여다보면 눈물만 나온다니까.
난 열일곱에 결혼했어. 공출해서 일본에 간다고 해서 일찍 한 거여. 철도 없을 때 했지. 김포로 시집갔다가, 땅 3구간 사갖고 여기 이사왔는데. 동백흥농계에 말려서 다 빼앗겼어. 난 논 하나도 없어. 집밖에 없어. 이 집이 어떤 집인데. 엄마가 울면서 움막살이 하며 산 게 한이 맺힌다고 둘째아들이 지어준 거여. 우리 집 양반은 이 집 짓고 6년 살다 돌아가셨어. 그 양반이 담 치는 것도 다 했어. 우리 집 근사하지. 옆에 땅 조금 남겨갖고 시금치, 아욱, 쌈, 감자 우거져갖고 굉장해. 많아. 먹고 남아. 옛날에 얼마나 못살았으면 그 한 때문에 그 집은 안 판다는 거지. 죽을 때까지 산다고 안 나가고 있는 거여. 한이 맺힌 마음이라.
우리 영감은 짚 장사 했어. 소 먹이는 사람들이 다 사갔지. 우리보다 고상 더 한 사람 없어. 밤을 새워서 짚단 다 묶고. 전라도까정 다녔어. 주인네가 자기 차 사가지고 인부를 쓰는 거야. 우리는 품값 받고 머슴같이 일한 거지. 그걸로 자식들 다 가르쳤지.
가마 치고, 명주 베 짜고, 모 심고, 볏단 묶고, 벼 베고. 우리는 일로다 산 사람이여. 배우지는 못했어도 일로다 산 사람이여. 우리는 끝을 볼 거여. 고상한 사연들을 어디다 대고 말을 햐. 내가 입이 맥혀서 말을 못혀. 그래서 내가 말을 않는 거여.




[평택 평화의 땅 1평지키기] 대한민국에 치가 떨립니다


88,636,082원
6월9일 현재 모금액 8863만6082원

김지태 대추리 이장이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는 “할 말은 해야겠다”고 경찰서에 제 발로 걸어가 지금은 차가운 감옥 안에 있습니다. 주민들은 “대화를 하자고 해놓고, 제 발로 찾아간 사람을 이렇게 할 수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주민들도 도 정권의 치졸함과 파렴치함에 이제 할 말을 잃었습니다. 문정현 신부는 늙은 몸을 이끌고 청와대 앞에서 무기한 단식을 벌이기로 했습니다. 김지태 이장에게 죄가 있다면 ‘평화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 타협하지 않은 죄’입니다. 이러고도 대한민국을 문명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계좌이체 농협 205021-56-034281, 예금주 문정현
주관 평택미군기지확장저지 범국민대책위원회,
문의 평택 범대위(031-657-8111), 홈페이지 www.antigizi.or.kr,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 대추리 159-2 마을회관 2층(우편번호 451-802)

권혁 동아대사학과(8만7450원) 소호영 이태숙 권영숙 김영숙 박은정 신명숙 임현재 김민혜(2만원) 양두영(3만원) 이경숙(10만원) 광주건약(20만원) 이경실 학산여중김혜(1만1500원) 바람아래(6만4187원) 현실문화연구(3만원) 양신영(2만원) 임미순(10만원) 힘내요 유형규(10만원) 박주령 류현숙(16만원) 최숙이(3만원) 쭌(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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