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리유어북 | 책을 보내며]
암 수술 받은 20대의 분노와 답답함, 독기를 담은
▣ 임경선/ 두산잡지 마케팅팀장
작가 야마모토 후미오는 그야말로 프롤레타리아적이다. 여분의 1%도 없이 ‘꼭 필요한 말만 솔직하게’ 쓴다. 너무 리얼해서 베일 정도다.
일본의 문학상 ‘나오키상’을 심사위원의 만장일치로 수상한 야마모토 후리모의 (양윤옥 옮김·창해출판사 펴냄)를, 나는 수상 전에 우연히 사서 읽게 되었다. 주인공인 25살짜리 평범한 회사원 하루카는 유방암으로 오른쪽 유방 절제술을 받고, 그 뒤 유방 재건 수술을 받는 힘겨운 세월을 보낸다.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백수로 지내며 한달에 한번 병원 가서 호르몬 주사를 맞고 주 3회 4살 연하 남자친구와 술 마시는 것으로 소일한다. 그리고 그는 점점 무기력하고 씁쓸하고 삐딱한 인간이 되어간다. 연하의 남자친구는 오른쪽 유두가 아직 없는 하루카를 변함없이 사랑하고 챙겨주지만 하루카는 남자친구의 친구들 앞에서 유방암 환자임을 떠벌리는 등 일부러 남자친구를 화나게 하는 행동을 일삼는다. 그런 행동을 해버리는 자신에게 진절머리 치면서.
암환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싶으면서 동시에 자신의 입으로 떠벌리는 모순. 그러면서 남들이 그걸 왈가왈부하거나 동정하면 또 분노하는 모순. 나는 그 가증스러운 심리를 안다. 나 역시 비슷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 무서울 것 없었던 스무살 때 첫 암수술을 받은 뒤, 가족들은 이젠 ‘끝났으니까’ 제발 병에 대해 쉬쉬하라고 했었다. 하지만 나는 보란 듯이 떠벌리고 다녔다. 특히 남자친구들한테는 그것으로 애정을 시험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사람들 얘기처럼 결코 쉽게 ‘끝나지는 않았다’. 병 재발로 인해 수술을 모두 3번 할 쯤 되다 보니 이젠 이 병이 주인공 하루카처럼 나의 정체성 중 하나가 되어버린 것 같았다. 또 대부분의 인간은 크게 한번 아팠다고 해서 생명과 건강,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고 개과천선 따위, 하지 않더라. 다만 좀더 씁쓸해지고 체념이 빨라지는 거라면 모를까.
‘아무리 잘라도 잘라도 다시 살아난다는 플라나리아 같은 생물로 다시 태어난다면 내 가슴도 저절로 쑥쑥 자라겠지’라는 핏기 없는 농담으로 분위기를 곤혹스럽게 했던 하루카를 보노라면 과거 나의 이십대의 알 수 없는 분노와 답답함, 그리고 출구가 안 보이는 터널 같은 막막함이 재생되는 듯하다. 트라우마를 겪은 자의 서글픔과 자의식이 가볍고 경쾌한 문체에 어찌나 독하게 배여 있는지, ‘프리유어북’을 통해 이 책이 더 자유로워져서 그 ‘독기’가 점차 빠져나가기를 바란다. 교훈적이고 아름다운 책들로 마음의 양식을 쌓는 것도 좋지만, 또 반대로 책이란 가끔씩 찌꺼기처럼 끼어 있던 감정들을 빡빡 밀어 없앨 수도 있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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