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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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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국경을가다1] 석유의 바다가 쓸쓸하다

등록 2004-03-12 00:00 수정 2020-05-03 04:23

창간 10돌 특집기획 ‘세계의 국경을 가다’ 첫회 - 카스피해 인접 카자흐스탄 아트라우 주민들의 비애

‘반도국가’라는 익숙한 수식어에도 불구하고 대한민국은 휴전선과 3면의 바다로 둘러싸인 ‘섬’이다. 한국인들에게 국경이란 낯선 개념인데 이웃나라와 교류하고 상호작용하는 국경 대신 넘어갈 수 없는 휴전선과 바다만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의 국경에서는 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그것은 ‘공동체’로 나아가는 소통의 지점일 수도 있고, 자원 등을 둘러싼 나라 사이의 격렬한 분쟁의 공간일 수도 있으며, 경제적으로 더 나은 나라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이동하는 거대한 노동력의 통로일 수도 있다. 은 창간 10돌 특집기획 ‘세계의 국경을 가다’에서 세계 국경지대에 대한 생생한 현장 취재를 통해 우리 사회의 현재, 미래와도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세계를 깊이 있게 바라볼 수 있는 그곳 사람들의 삶 속으로 들어가보고자 한다. -편집자



카자흐스탄 아트라우= 글 박민희 기자 minggu@hani.co.kr
사진 박승화 기자 eyeshoot@hani.co.kr

겨울이면 거리는 온통 진흙탕이 되고 흙먼지가 사정없이 얼굴로 달려드는 카자흐스탄의 작은 도시 아트라우의 도심에서는 새로 지은 사무실 건물들과 값비싼 숙박비를 받는 화려한 호텔들, 깔끔한 고급 빌라촌 등이 사치스러운 풍경화를 그리고 있다. 수도 아스타나에서 서쪽으로 3천km 넘게 떨어진 이 ‘시골’의 공항에는 암스테르담이나 프랑크푸르트 등을 오가는 국제선 직항기가 뜨고 내리고, 미국과 유럽인들의 행렬이 늘어서 있다. ‘석유 위에 떠 있는’ 카스피해 근처의 이 도시는 페르시아만에 이어 세계 제2의 유전지대로 떠오른 카스피해 지역의 위상을 온몸으로 보여준다.

유럽 · 아시아 5개국의 유전 각축장

아트라우의 중심을 흐르는 우랄강은 유럽과 아시아를 가르는 경계다. 그래서 이 도시는 우랄강을 경계로 서쪽은 유럽, 동쪽은 아시아이고, 사람들은 출퇴근을 하거나 친지를 만나러 가며 수없이 유럽과 아시아를 오간다. 2월 말 꽁꽁 얼어붙은 강 위에서 사람들이 얼음에 구멍을 뚫고 낚싯줄을 드리운 뒤 발갛게 얼어붙은 맨손으로 계속 물고기를 건져올린다. 다리의 아시아쪽 끝에는 낡은 표지판이 서 있다. ‘1899~1999 아트라우 석유 100주년, 1899년 11월 아트라우의 우랄 엠브 지역에서 시추기계가 40m 깊이에서 하루에 22~25t의 석유를 처음으로 뽑아냈다.” 이미 104년 전부터 석유 매장지로 주목받았던 아트라우의 시립박물관에는 19세기 말 카자흐 전통 의상을 입은 이곳 사람들이 석유를 담은 나무통을 낙타에 실어 얼어붙은 우랄강을 가로지르는 그림이 걸려 있다. 당시 이곳의 석유는 이 지역을 세력권으로 만들기 위해 다투던 영국과 러시아로 실려나갔다.

오랫동안 이 도시를 ‘살찌워온’ 석유는 아트라우 근처 카스피해의 국경을 ‘갈등하는 국경’ ‘유동하는 국경’으로 만들고 있다. 우랄강 하류로 배를 타고 나아가면 나타나는 카스피해는 카자흐스탄, 러시아, 이란, 투르크메니스탄, 아제르바이잔 다섯 나라의 국경이다. 이 나라들의 육지 국경은 정해져 있지만 석유 보고로 알려진 카스피해의 해저와 해수면을 어떻게 나눌 것인지는 10년 넘게 격렬한 논란거리다. 1991년 전까지 카스피해는 소련과 이란만이 국경을 맞댄 곳이었기 때문에 두 나라가 공동으로 관리했지만, 소연방이 해체된 뒤 이곳의 엄청난 석유와 천연가스 등 자원을 둘러싸고 조금이라도 더 많은 수역을 차지하려는 각 나라들의 주장이 맞서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다. 카스피해 인접 면적이 큰 러시아와 카자흐, 아제르바이잔은 2003년 카스피해 북부 수면을 각국 해안선 길이에 비례해 19%, 27%, 18%씩 나누기로 자체 합의했지만, 이란과 투르크메니스탄은 각국이 동일하게 20%씩 나눠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10년 넘게 정해지지 않은 이 국경 지대는 위험한 폭발물이 되기도 한다. 2001년 7월에는 이란이 영유권을 주장하는 수역에서 아제르바이잔을 위해 작업하던 영국석유회사 BP의 탐사선을 이란 함대가 저지해 군사적인 충돌 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이 와중에서도 이곳은 거대 다국적 석유회사들의 각축장이 됐다. 셰브론텍사코, 엑슨모빌, 셸, BP, 아모코, 엘프아키텐, 아집, 스타토일, 루코일, ENI 등이 아트라우에 사무실을 두고 근처의 텡기즈·카샤간·카라차가낙 유전지대에서 원유를 뽑아내고 시추와 탐사 경쟁을 벌인다. 그리고 그것은 당연히 이곳 사람들의 삶을 바꿔놓는다.

이곳에서 태어나 평생을 보냈다는 누르술르 다노바 리사(53·여)는 “98년께 타스마간베도프 시장이 이곳에 와서 외국 회사들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면서 도시가 엄청나게 좋아졌다. 외국인들이 몰려오면서 도시로 돈이 들어오고 건물도 좋아지고 길도 밝아졌다. 지금 공사 중인 곳이 많은데 공사가 끝나면 도심뿐 아니라 외곽까지 점점 좋아질 것”이라고 자랑스레 말했다.

건설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했다는 그는 60년대부터 이 도시 이곳저곳의 공사에 참여했다. “특히 시 외곽은 60년대까지 기차역 정도밖에 없던 시골이었고, 호수를 간척한 지역이어서 지반이 낮아 물이 많이 고이고, 물이 넘친 흙탕물에 모기도 많았지만 이제는 많이 달라졌다.” 그의 남편 누르술 다노프 콜리시바이(60)는 79년부터 2001년까지 국영석유회사에서 일하다 은퇴한 뒤 사업을 하고 있다. “내가 국영석유회사에서 일할 때에 비하면 요즘 카스피해의 석유 생산량은 엄청나게 늘었다. 정부가 외국 기업들을 끌어들인 것에 별로 불만은 없다. 정부에서 돈이 없으니까 이렇게라도 해서 개발해야 하는 것 아니냐. 10년 전에는 지금의 아트라우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주변에 외국계 석유회사에 취직한 이들도 있다”고 거든다.

“러시아어로 물으면 대답 않겠다”

이들처럼 석유와 관련된 일을 했거나 주변 사람들이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특히 개발과 발전에 대해 낙관적이었다. 석유·천연가스 등 자원이 풍부한 카자흐스탄 경제가 개방정책에 힘입어 함께 소연방에서 독립한 중앙아시아 국가 중에서는 가장 좋은 성적을 내고 있기에 자부심도 컸다. 그 자부심은 소련 시절 오랫동안 억눌렸다가 점점 힘을 얻어가는 이 지역의 민족주의와도 연결된다.

아트라우 역사박물관 앞에서 이곳 연구원으로 일하는 지질학자 라쉬다(30·여)를 만났다. 말을 걸자 그는 대뜸 러시아어로 말하면 대답하지 않을 것이고 카자흐어로 묻는다면 이야기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한다. “소련 시절에는 카자흐 역사를 무시하고 러시아 말과 역사만 공부하게 했는데 독립 이후 카자흐 역사에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소련은 카자흐의 역사, 문화, 시인, 왕들을 숨기려 하고 카자흐 역사 박물관을 구닥다리 취급했다. 아직도 젊은이들은 러시아 말을 많이 쓰고 카자흐 말을 잘 쓰려 하지 않지만, 우리가 모국어를 안 쓰면 누가 쓰겠느냐.” 아트라우와 카자흐스탄의 현실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그는 “사회 문제들도 해결되고 있고, 이 지역이 빠르게 발전하기 때문에 불만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렇지만 모든 사람이 그렇게 낙관적인 것은 아니다. 97년부터 택시 운전을 하고 있다는 발로자(36)는 대뜸 “나는 이 도시가 싫다”고 말했다. “저 큰 건물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최대 도시인 알마티에서 온 부자들과 외국인들이다. 아트라우 사람들은 거의 큰 회사들에서 일자리를 얻지 못한다. 그런데도 부자들과 외국인들이 몰려오면서 물가는 카자흐스탄 전체에서 제일 비싸다. 여기가 유전지대고 정유공장들도 있는데 석유값이 알마티보다 더 비싸다. 석유 1ℓ(중질유)에 알마티는 48~50텡게(1텡게는 한국돈 10원 정도)인데, 여기는 53~54텡게다. 여기 회사들이 먼저 석유를 알마티로 실어가기 때문이다. 아트라우가 엄청 발전하고 화려해졌다지만 애초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사는 게 더 힘들다.”

그의 말이 과장이 아님은 시내 중심에서 차로 불과 10분밖에 안 떨어진 구시가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아트라우 기차역 앞에는 소련 시대에 지은 험상궂게 낡아버린 5층짜리 아파트들과 시동을 걸 때마다 신음을 토해내는 소련제 볼가 자동차들, 외국인 상대의 화려한 시내 호텔들과는 달리 동유럽을 배경으로 한 60년대 영화에 나올 듯한 서툴게 짓고, 멋없이 낡아버린 여관들이 시내의 화려함과 너무나 대조되는 풍경을 만들어내고 있다.

사방으로 흘러나가는 석유

사할린에서 살던 아버지가 이곳으로 강제 이주된 뒤 아트라우에서 평생을 보냈다는 고려인 리 알프레드(57)는 소련 붕괴 전까지 오랫동안 아트라우 외곽의 화학공장에서 일했다. 소연방이 무너지면서 러시아에서 들여오던 공장의 원료나 기계 부품이 들어오지 않게 되었고 공장이 멈춰섰다. 92년 그도 일자리를 잃었다. 알프레드는 1년쯤 야채 농사를 지었지만 내다팔아도 먹고살기가 쉽지 않아 낡은 소련제 라다 택시를 몰고 운전기사로 나섰다.

애초 석유 산업 외에는 별다른 산업이 없던 이곳에서 그나마 있던 화학 공장들도 다 문을 닫고 나서 많은 남자들이 낡은 소련제 택시를 사 택시기사가 되었다. 이념을 소중하게 여겼던 한국의 젊은이들이 소연방의 붕괴를 아무리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해도, 삶의 온 부분에서 그것을 체험해야 했던 여기 이들의 충격을 감히 가늠할 수 있을까. 카자흐스탄의 석유생산은 92년 2580만t에서 2002년 4720만t으로 늘었지만, 국내 석유소비량은 92년 2030만t에서 2002년 650만t으로 곤두박질쳤다. 그만큼 이 나라 제조업의 상황이 험난하다.

알프레드와 함께 시내에서 카스피해쪽으로 조금 달려나가자 낡고 녹슨 굴뚝들과 공장 건물들이 흩어져 서 있다. 멈춰서 녹슬어버린 화학공장 맞은편에는 2차 세계대전 때 세웠다는 쓸쓸해 보이는 정유공장이 아직도 연기를 토해내고 있었다. 카자흐 석유회사들이 파낸 석유를 이곳에서 정제해 국내에서 쓸 석유를 만들어낸다. 물론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이런 낡은 정유시설을 이용할 리 없다. 다국적 회사들이 퍼낸 석유는 바로 지중해쪽으로 수송돼 그곳에서 정제된다. “석유는 많이 묻혀 있어도 그것을 파내고 운송할 자본이 없었는데 3년 전쯤부터 외국 회사와 자본이 잇따라 들어오면서 이 지역이 진짜 많이 달라졌다. 새로운 유전도 계속 발견된다. 그런데 이곳의 공장이나 정유시설은 너무 옛날식이라 일자리도 별로 안 생기고 어려움이 많다. 지난해에는 일본인들이 정유시설을 현대화한다며 왔다갔다했는데 잘 안 됐다.”

도시의 동쪽, 초라해 보이는 아트라우 역에서는 러시아의 모스크바와 아스트라한, 우즈베키스탄의 타슈켄트, 타지키스탄의 두샨베, 투르크멘 공화국의 아슈하바트 등을 오가는 ‘국제선’ 기차들이 달려나간다. 철로 위에는 석유탱크를 실은 기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다국적 석유회사들이 수백만달러를 들여 이곳의 석유를 흑해나 지중해로 뽑아내는 송유관 공사에 한창이지만, 카자흐스탄 국내에는 아직 송유관이 제대로 놓이지 않아 대부분 통에 담아 기차로 실어나른다. 석유 대신 러시아의 아스트라한 등에서 식료품이 이곳으로 실려온다. 아트라우와 그 주변 지역은 기원전부터 스키타이·사르마트 등 여러 기마민족들의 활동무대였고, 13세기에는 몽골제국 칭기즈칸의 손자 바투가 세운 금장한국(알툰 오르두 또는 킵차크 한국)의 수도 사라이가 근처에 세워지는 등 실크로드의 요충지였으며, 현재의 아트라우 역시 1644년부터 교역도시로 크게 발전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제 이곳에선 석유가 사방으로 흘러나간다.

개발독재를 향한 쓴소리들

일요일 아트라우 시내에는 사람이 별로 많지 않다. 카자흐 사람들이 대부분 가족과 함께 집에서 지내며 밀린 집안일을 하는 이 휴일에 작은 식당과 주점들이 있는 거리에서 오전부터 술 한잔씩을 마시고 나오던 세 젊은이를 만났다. 동네 선후배라는 콜랴(19), 데니스(19) 드리샤트(25)다. 드리샤트는 3년 전부터 헝가리계 석유회사에서 전산직원으로 일하고 있고, 콜랴와 데니스는 아트라우에 있는 4개 대학 중 하나인 아트라우 석유가스대학에 다닌다. “아트라우는 카자흐의 ‘석유 수도’”라고 강조하는 드리샤트는 “석유회사에 들어가기가 아주 어렵다”고 자랑한다. 콜랴와 데니스 역시 석유가스대학을 졸업한 뒤 석유회사에서 일하는 게 꿈이다. 콜랴는 “외국 석유회사에 들어가려면 좋은 대학 졸업장, 자격, 지식이 필요하다. 아트라우 사람보다는 알마티에서 온 사람들이 석유회사에서 더 많이 일하는 것이 씁쓸하지만 알마티에 명문대학들이 많고, 그래서 그 사람들이 더 자격이 나으니까 어쩔 수 없다. 이탈리아 석유회사인 아집이 이곳에 새로 정유공장을 짓고 있으니 그곳에 들어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카스피해의 석유를 빼면 해외 언론이 카자흐스탄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부분은 세계적인 갑부로 꼽히며 딸에게 대통령 자리를 세습하려 한다고 의심받고 있는 나자르바예프 대통령의 권위주의적 통치와 부정부패, 뚜렷해지는 빈부격차, 석유에만 의존하는 경제에 대한 쓴소리들이다. 그렇지만 실제 이곳 사람들은 희망이 실망보다 큰 듯했다. 소비에트 붕괴 뒤 험난한 세월을 겪어낸 이들은 ‘이만큼 먹고 사는 일을 해결해준’ 개발독재에 대해 긍적적이다. 이들에게 왜 지금 당장 민주화를 바라지 않느냐고 닦달하는 것은 이들의 ‘상처’에 공감하지 않는 외부인의 오만일 것이다. 그렇지만 시간이 흘러도 이들의 희망은 계속될 것인가. 시간은 길게 흐르고 역사는 예측불허다.

한국의 개발참여, 10년은 늦었다?

한국은 카스피해의 거대한 ‘석유 파이’ 한 조각을 먹을 수 있을까?
‘석유 한 방울 나지 않는’이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니는 한국은 연간 필요 원유의 70% 이상을 중동 지역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사우디아라비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미국의 이라크 점령 등 들끓는 용암 위에 놓인 듯 불안정한 이 지역의 정세 때문에 에너지 수입원을 다각화해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지고 있다.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추진되고 있는 것이 카스피해 석유 개발 참여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2002년부터 카자흐스탄의 원유 자원 개발 사업 참여를 시도하기 시작했는데, 그해 4월 산업자원부와 석유공사, 대성, LG, 삼성, SK 등 5개 기업의 컨소시엄이 카스피해진출협의회를 구성하고, 11월 카자흐스탄 정부와 자원협력 약정을 맺었다. 또 오는 3월12일에는 한-카자흐스탄 자원협력위원회가 열린다.
그렇지만 이런 노력이 “10년은 늦었다”는 게 전문가들의 솔직한 분석이다. 이미 서방의 석유 메이저 회사들이 유리한 조건으로 카자흐스탄 정부와 수십년씩 계약을 해버린 마당에 비집고 들어갈 틈이 너무 좁기 때문이다. 카자흐스탄 한국대사관의 관계자는 “서방 메이저들이 초기에 엄청나게 좋은 조건으로 계약을 맺었다. 최근 30년 동안 세계적으로 발견된 유전 가운데 최대라는 카샤간 유전에는 카자흐스탄 기업의 지분이 하나도 없을 정도다. 최근 개발을 시작하는 유전에 대해 뒤늦게 50% 정도의 지분을 확보하려 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자흐스탄 독립 초기 대통령의 경제고문을 맡아 민영화를 지휘했고, 현재 카자흐경제경영대학(KIMEP)의 총장이며 유스코 회장인 한국계 미국인 방찬영 박사는 “한국은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으로 너무 고립되고 위축돼 자신감을 잃었다. 1990년대부터 한국의 자원 확보에 대한 해외 전략이 필요하다고 건의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뒤늦게 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다. 카자흐의 자원과 한국의 인터넷 기술을 서로 교환하는 방식으로 국가적인 차원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미국과 러시아의 틈바구니에서 중국과 일본은 일찍이 이 지역의 자원을 향해 한 걸음씩 내딛었다. 중국은 2002년 카샤간 유전 개발 컨소시엄에 참여했던 BP(British petrolium)가 지분을 팔기 위해 내놓자 이를 사려고 했지만 서방 메이저들이 우선 구매권을 행사해 이를 사들여버리는 견제를 당하기도 했다. 그렇지만 중국석유공사는 아뜨라우 북부의 또 다른 유전도시인 악토벤에 1천여명의 직원을 두고 시추 작업을 하고 있다. 일본은 새롭게 개발된 카자흐 지역 최대 유전 중 하나인 카샤간 유전 개발에 이탈리아의 아집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해서 참여해 8%의 지분을 얻어내어 2005년부터 석유를 생산한다.
산자부 자원개발과 관계자는 “한국은 IMF 이전부터 진출하고자 했는데 시기를 놓쳐 사업을 진행하는 데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당연히 미국 등 석유 메이저들의 견재도 있었다. 그렇지만 최근 조금씩 분위기가 좋아지고 있어 결실을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많은 파이프라인이 필요하다”

[인터뷰/ 텡기즈셰브로일(TCO) 알렉산더 코넬리우스 상무이사]

아트라우 중심가에 우뚝 서 있는 텡기즈셰브로일(TCO)은 1993년 다국적 거대 석유기업인 셰브론(현재의 셰브론 텍사코)이 카자흐스탄 정부와 200억달러의 ‘역사적인’ 제휴를 체결하고 세운 합작회사로 카스피해 석유 붐의 상징이다. 다국적 석유기업의 카스피해 석유 산업 진출 1호로 꼽히는 이 회사는 카자흐스탄의 카스피해 연안에서 가장 규모가 큰 텡기즈 유전을 개발해왔다. 텡기즈셰브로일의 알렉산더 코넬리우스 상무이사는 “1993년 처음 시추를 시작해 현재 텡기즈 유전지대의 56개 유전과 코롤레프 유전지대의 3개 유전에서 석유를 생산하고 있다. 아직 정해지지 않은 복잡한 국경선 문제로 해상 유전은 제대로 개발되지 못하고 있으며, 텡기즈 유전은 해안지대에 있는 유전”이라고 말했다.
-소비에트연방 국가였던 옛 공산권인 이곳에 일찌감치 진출하는 데 어려움은 없었나?
=셰브론 같은 다국적 석유기업은 세계 어느 나라의 석유에도 관심이 많다. 카스피해는 오래 전부터 주목하던 지역이었는데 소련이 붕괴되면서 기회가 왔다. 1988년부터 당시 소련 땅이던 아트라우를 방문해 텡기즈 유전의 석유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지를 조사했다. 소련 정부와도 오랫동안 협상을 하다가 소련 붕괴 뒤 카자흐 정부와 좀더 쉽게 계약을 맺었다.
-현재 텡기즈셰브로일의 지분은?
=1993년 처음에는 카자흐스탄 정부와 50:50으로 회사를 세웠지만, 카자흐스탄 정부가 나중에 지분 30%를 매각했다. 현재는 셰브론 텍사코가 50%의 지분을 가지고 엑슨모빌 25%, 카자흐스탄의 국영 석유회사인 카즈무나이가스 20%, 루코일과 BP가 5%의 지분을 가지고 있다. 카자흐스탄 정부와는 1993년부터 40년 기한으로 계약을 맺었는데 계속 연장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카자흐 안에서 외국계 석유회사들이 카자흐스탄 경제에 제대로 기여하지 못한다는 비난이 많은데.
=텡기즈셰브로일의 직접 고용인 3200명 중 카자흐인의 비율은 처음엔 50% 정도였지만 계속 늘어 현재는 80%다. 미국·영국·캐나다·오스트레일리아·포르투갈 등에서 온 전문인력은 350명 정도다. 초기에는 인력·장비·물자 등을 카자흐에서 조달할 수 없어 미국과 유럽 등에서 많이 들여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렇지만 점점 카자흐 인력을 훈련시키고 냉각기 등 일부 장비를 카자흐 기업에 주문해 생산하기 시작했다.
-카스피해의 엄청난 추정 매장량에도 불구하고 아직은 충분한 석유를 생산하지 못하고 있는데 이유는?
=카스피해 석유는 텡기즈 유전 하나만으로 세계 10대 매장지에 속할 정도로 대단하다. 그렇지만 고압의 유독 가스층이 있어 시추공을 뚫기가 대단히 어렵다. 가장 큰 문제는 이 지역이 해외의 주요 시장으로부터 너무 멀다는 것이다. 텡기즈 유전지대에서 파낸 석유는 송유관을 통해 수천km를 운반해야 한다. 2001년에 카자흐스탄에서 러시아의 흑해 항구 노보로시스크를 잇는 CPC(Caspian Pipeline Consortium) 라인이 건설되기 전까지는 모든 석유를 저장탱크에 담아 기차에 실어날랐다. 운송비는 천문학적이었고, 한번에 60t 정도밖에 실을 수 없었다. 지금은 CPC 라인을 통해 흑해와 터키를 거쳐 지중해까지 운반한 다음 세계 시장으로 나간다. 그러나 이 파이프라인 하나만으로는 충분히 석유를 운반할 수 없기 때문에 계속 다른 송유관들을 건설해야 한다. 현재는 러시아 지역을 통과하지만 여러 다른 방향으로 파이프라인을 건설해야 한다.
-러시아 지역을 거치지 않는 BTC(바쿠-트빌리시-세이한) 라인을 선호하는가?
=어떤 라인이 다른 라인보다 더 낫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에게 더 많은 이익을 보장하면서 값싸고 쉽게 수송할 수 있는 라인이 중요하다. 파이프라인이 통과하는 나라는 그만큼의 몫을 원하고, 파이프라인을 컨트롤하면서 이익을 얻고자 한다. 또한 파이프라인을 건설하는 데는 수십억달러가 들고, 파이프라인이 지나가는 나라에 돈을 지불해야 한다. 복잡한 정치적인 문제도 걸려 있다.
-석유를 파낸 뒤 정유는 어디서 하는가?
=카자흐스탄의 정유공장들은 너무 낡아 세계 시장의 수요에 맞는 시설과 시스템이 없다. 우리는 고품질의 제품을 원한다. 그래서 여기서 정제하지 않고 지중해로 모두 수송해서 정제한다. 텡기즈 유전의 시설은 정유시설처럼 보이지만 천연가스와 원유를 분리해 안정화시켜 수출하기 위한 시설이다. 우리가 카스피해 지역에서 파낸 석유는 카자흐스탄의 내수용으로는 쓰이지 않고 100% 수출한다.
-카스피해에서 미국과 러시아, 잠재적으로는 중국의 이해가 충돌할 것이라는 예상도 많은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미국 출신이어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르지만 너무 심한 가설 아닐까?
-그렇지만 2002년 중국석유공사가 카스피해 석유 사업에 참여하려 했지만 기존 서방 회사들이 거부했다는 것은 유명한 사실이다. 또 새로 카스피해 유전 사업에 참여하려는 다른 국가들, 예를 들면 한국의 참여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석유 산업은 위험도가 높다. 시추공 하나를 뚫는 데 수천만달러가 들어가고 파이프라인 건설에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기술적으로도 어렵다. 재정적, 기술적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구성할 때는 그만한 능력이 있는 파트너를 원한다. 당시 꼭 중국의 잠재력을 견제하려 했다기보다는 BP(British petrolium)가 지분을 내놓았을 때 셰브론이나 엑슨 등 기존 참가자들은 그만한 기술과 재정을 가진 투자자가 아니면 기존의 이익을 지키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므로 한국의 컨소시엄도 이미 진행된 프로젝트에 참여하기는 쉽지 않고 기술과 재정을 갖추고 처음 단계부터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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