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3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에 출마한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후보(왼쪽)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 연합뉴스
서울시장 선거 관련 뉴스를 보고 있노라면, 누가 최근까지 시장이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물론 현직 시장은 오세훈 국민의힘 후보다. 그러나 오 후보의 화법을 보고 있으면 현직 서울시장은 여전히 박원순 전 시장인 것 같다.
가령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A 삼성역 구간 철근 누락 문제를 다루는 태도를 보자. 오세훈 후보는 이를 “현대건설의 실수”에 불과한 문제로 표현했고, 이미 해결된 문제를 정원오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가 무리하게 쟁점화하고 있다는 취지로 비판했다. 후보로서는 할 수도 있는 대응이다. 하지만 서울시 유권자는 무엇보다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우선시하는 시장의 모습을 기대할 것이다. 진심 어린 사과가 먼저 있어야 해명에 힘이 실리고, 이게 전제돼야 ‘서울시장으로 다시 선출되면 이 문제를 근본적 차원에서 반드시 해결하겠다’는 방식의 약속에 신뢰가 부여된다. 그런 면에서 오 후보의 화법은 무책임한 시정을 상징하고 예고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오 후보가 이런 상식적 방향으로 가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선거 캠페인 전체가 ‘정원오는 제2의 박원순’이라는, 하나의 프레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도시적 진보의 특성을 지녔던 서울의 유권자 지형은 부동산 가격 상승과 인구 고령화를 거치며 다소 보수화됐다. 민주당에 불리해진 것이다. 이런 지역에서 ‘전형적 민주당 사람’이란 느낌을 주는 후보는 불리하다. 정 후보의 강점은 이런 캐릭터가 아니라는 데 있다. 오세훈 시정의 잘못된 점은 심판해야 하지만 건질 건 건지겠다는 태도를 취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오 후보로서는 이 조건을 뒤집어야 한다.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은 그렇게 고안됐다. ‘박원순’이라는 상징에 ‘민주당’의 부정적 이미지를 모두 몰아넣고 정 후보와 등치시키는 것이다. 오 후보가 앞서 논란에 대해 “그분(정 후보)이 전대협 선전부장을 하셨다고 한다” “젊었을 때 실력 발휘를 지금 하시는 느낌”(채널A 유튜브)이라고 비꼰 것도 이 맥락이다. 정 후보가 운동권 출신이라 선전선동에 능할 것이라는 이미지를 상기해 ‘박원순=민주당=운동권’이라는 도식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과한 해석인가? 오 후보가 직접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보자. 정 후보가 문화방송(MBC) 라디오에 출연해 ‘시장이 된다면 (GTX-A 삼성역 구간) 공사 중지 명령을 내릴 계획인가’란 질문에 “일단 중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고 한 것을 겨냥해 “역시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판박이다”라고 썼다. 박 전 시장이 과거 자신이 추진했던 대심도 빗물 터널, 월드컵대교, 경전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세빛둥둥섬 등의 사업을 중단했는데 정 후보도 똑같은 대응을 하고 있다는 거다. 그러나 이 사업들이 다 하나의 맥락으로 언급될 일은 아닐뿐더러 시민의 생명·안전과 관련됐다면 더 중하게 다뤄야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이걸 굳이 박 전 시장과 엮는 것은 선거공학적 계산이 작용한 것으로 볼 수밖에 없다.
“주폭이라는 부끄러운 과거가 공분의 도마 위에 오르자 괴담으로 덮으려고 한다”는 논리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주폭’이란 1995년 정 후보가 정치적 견해 차이로 논쟁하던 민주자유당 소속 국회의원 보좌관을 폭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사건을 말하는데, 이 사건은 철근 누락 문제와는 아무 관계도 없다. 그런데도 이 사건을 여기에 연결하는 것은 이들이 사건의 원인을 “정 후보 일행이 여종업원에게 외박을 요구”한 것이라고 주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오 후보 쪽이 두 사건을 연결하는 이유가 드러나는데, ‘박원순=성추문=민주당’ 도식을 떠올리게 하려는 것이다. ‘칸쿤 출장 의혹’을 반복 거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원오는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의 최종 기착지는 부동산 문제다. 유권자가 보기에 두 후보는 부동산 대책 철학에서 큰 차이를 드러내는 것 같지는 않다. ‘착착개발’이냐 ‘신통기획’이냐 등의 레토릭, 공공과 민간의 역할 등 세부 정책 차이가 있을 뿐 세금으로 집값 잡는 데 반대하고, 공급 중심 대책을 앞세우며, 1주택자 세부담 완화를 주장하는 방향은 유사하다. 이러면 실행 의지나 실적이 쟁점이 되는 게 당연한데, 이 경우 현직 시장에 아무래도 불리한 논쟁 구도가 형성된다. 직전까지의 시정 평가 위주로 논의가 이뤄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 후보가 “박원순 시장 시절 재개발 재건축 사업 구역 389군데를 해제했다” “박원순 전 시장 시절 부동산 시장이 완전히 빙하기에 접어들었다”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것은 이 구도를 뒤집기 위한 시도다. ‘오세훈 시정’에 대한 평가 구도를 ‘박원순 시정’ 평가로 뒤집어 자신의 위치를 ‘디펜딩 챔피언’(전 대회 우승자)이 아니라 ‘도전자’에 놓이도록 해서 ‘언더도그’(약자) 효과를 노리는 것이다. ‘박원순=운동권=성추문=민주당=부동산 정책 실패’라는, 반대의 대상으로서 개념 사슬은 이를 위해 고안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고 이 사슬이 ‘이재명=문재인 정권’ 프레임과 연결되면 오세훈식 포퓰리즘 동원 논리가 완성된다.
여러 여론조사를 종합해보면 서울에서 보수적 유권자의 결집 흐름은 일부 확인된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선거 때 지지층 결집은 당연한 일이기도 하지만 민주당 일부에선 “예상보다 속도가 빠르다”고 평가한다.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이 일부 효과를 봤을 수 있다. 민주당이 과거 박원순 전 시장 문제를 제대로 정리하고 넘어갔다면 앞서 연속된 사슬을 끊는 일은 좀더 쉬웠을지 모른다. 민주당으로선 뼈아픈 지점이다.
그런 사실을 고려하더라도, 오 후보 쪽 전략은 지방선거의 본질을 크게 흐린다는 점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오 후보는 2021년 4월8일 이후 만 5년 이상을 서울시장으로 재임했다. 그런데도 선거를 이런 식으로 치르겠다는 것은 이 5년에 대한 평가를 거부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오 후보는 무책임한 선거를 치르고 있다.
오 후보의 책사들은 ‘제2의 박원순’ 프레임을 고안한 것에 만족해할지 모르겠지만, 뭘 물어도 박원순, 박원순, 박원순… 만을 반복하는 것은 결국 유권자에게 피로를 안길 가능성이 크다. 정권 반대를 잘 조직해, 사실상 그거 하나만으로 집권에 성공했던 윤석열의 지지율이, 계속되는 ‘전 정권 탓’에 질려버린 유권자들의 이탈로 급전직하했던 경험을 떠올려보라.
정 후보도 제대로 된 전략을 세워 선거에 임해야 한다. 승패를 떠나 이 선거는 ‘오세훈 시정 5년’을 평가하는 기회가 돼야 한다. ‘네거티브’에 ‘네거티브’로 답하라는 뜻이 아니다. 유권자에게 평가의 수단과 기회를 주는 역할을 자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부자 몸조심’ 전략으로는 이런 역할을 하기 쉽지 않다. 도전자는 도전자다워야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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