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3월18일 유튜브 채널 ‘최욱의 매불쇼’에 출연해 ‘에이비시(ABC)론’을 얘기하는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유튜브 갈무리
중대범죄수사청법(중수청법)과 공소청법 제정안이 처리되면서 검찰개혁을 둘러싼 갈등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지만 여진은 계속되고 있다. 검찰개혁을 둘러싸고 드러난 집권세력 내 정치적 대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집권세력 내 검찰개혁 논쟁이 제도에 대한 논의보다는 이를 둘러싼 정치적 동원에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에이비시(ABC)론’은 이 글을 쓰는 시점, 일주일 넘게 시사 방송 프로그램 등의 주요 주제로 다뤄지고 있다. 6·3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 후보 경선이 진행되고 있는데다, 선거 이후 보완수사권 등 검찰개혁 논의가 전당대회 구도 속에서 진행되리라는 전망이 유 전 장관의 영향력과 엮여 폭발력을 갖게 된 것이다. ABC론은 더불어민주당 내부 갈등을 가치지향 그룹인 A와 이익지향 그룹인 B의 충돌, 그리고 그 교집합인 C의 문제로 보는 시선이다.
ABC론을 제대로 다루려면 이게 등장한 정확한 배경과 맥락을 알아야 한다. 유 전 장관의 ABC론은 본질적으로 고전적 ‘충신론’의 변형이다. ‘지금이야 A가 바른말을 하니 거리감이 있을 수 있으나, ‘친명’을 자처하는 B는 실제 간신에 불과하므로 언젠가 자기 이익을 찾아 떠나게 돼 있다. 실제 충신은 A이고 대통령도 이번에 그것을 알아준 것’이라는 게 핵심 논리다. 그럼 C는? 유 전 장관은 이걸 ‘가치와 이익’ 구도로 포장했는데, C는 이를 위한 장치다. 중요치 않은 요소란 거다.
유 전 장관이 고안한 구도는 검찰개혁 강경론이 이재명 대통령의 견해와 배치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주장을 깨기 위한 목적으로 나왔다. 검찰개혁 처리 과정에서 대통령은 이른바 강경파들의 움직임에 제동을 거는 듯한 메시지를 반복해서 냈다. 언론이 붙인 이름인 이른바 ‘명청대전’ 구도는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반복 거론됐는데, 최근에는 조국혁신당과의 합당 논란에 김어준씨 유튜브 채널에서 제기된 ‘공소취소 거래설’까지 더해졌다. 대통령의 메시지가 이 맥락 안에서 해석되자 정청래 민주당 대표,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 김어준씨, 유시민 전 장관 및 검찰개혁 강경파들은 일부 지지층으로부터 ‘역적’ 취급을 받게 됐다.
그런데 대통령이 검찰개혁 강경론자들의 의견을 상당 부분 수용하면서 상황은 달라졌다. 대통령이 애초 메시지와 달리 강경론을 추가 수용(정부는 이미 1차 입법예고안을 수정하는 것으로 여당의 강경론을 수용한 바 있었다)한 것은 지방선거와 이후 전당대회까지 정치 일정이 예고된 가운데 지지층 분열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기 때문일 거다. 가령 ‘공소취소 거래설’은 자칫 잘못하면 이 대통령의 통치 정당성에 상당한 타격을 가할 수 있는 사안이다. 더군다나 중수청 등의 10월 출범 일정을 지키기 위해 국회의 빠른 논의가 필요한 점도 있었다. 따라서 지방선거 이후 보완수사권 등 남은 쟁점을 다시 따지더라도 이 시점에선 강경파에 승리를 안겨줘야 한다는 판단이 있었을 수 있다.
어쨌든 졸지에 ‘역적’이 된 정청래·조국 대표, 김어준씨, 유시민 전 장관 등의 입장에서 이 상황은 서사를 ‘덮어쓰기’ 할 기회다. 이들이 공통으로 주장하는 것은 그간 검찰 출신 참모와 이들과 결탁한 관료들이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언론에 사실을 왜곡해 전달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검찰개혁 의제는 2025년부터 논의돼온 바이고 그동안 정부 여당 간 논의에서 중요 쟁점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유 전 장관은 유튜브 방송에서 대통령이 다른 일에 바빠 세부 내용을 모르고 있는 틈을 타 대통령 참모가 장난친 거라는 취지의 주장을 했는데, 지금 청와대가 그럴 수 있는 구조이겠는가? 실제 대통령은 막판에 ‘당정이 합의한 2차 정부 입법예고안에 대한 강경파의 반발’을 문제 삼고 ‘숙의’를 언급했다. 대통령이 내용을 잘 파악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왼쪽 넷째)가 2026년 3월23일 경남 김해시 진영읍 강금원기념봉하연수원 강연장에서 열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석자의 발언을 경청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청래 대표는 김어준씨 유튜브에 나가 검찰 출신 참모를 배제하고 대통령과 직접 거래(?)를 통해 강경론을 관철했다고 했다. ‘왜곡설’을 앞세운 것이다. 그런데 그러면 정부의 2차 입법예고안이 당론이 된 과정을 설명할 수 없게 된다. 검찰 출신 인사의 왜곡이 들어간 안인데 왜 당론으로 채택했나? 정청래 대표는 정부가 제출한 것이니 어쩔 수 없이 했다고 했다. 이러면 이번에는 1차 입법예고안을 당론으로 채택하지 않은 이유가 설명되지 않는다. 진실은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 정부가 여당이 요구한 바를 수용했고 이를 2차 입법예고안에 반영하기로 했으므로 여당도 이것의 본회의 통과를 당론으로 결정했다. 정청래 대표의 설명은 그럼에도 강경파가 반발한 이유를 말하지 않고, 대통령과 처음부터 강경파가 일치된 인식을 가졌다는 주장을 하기 위해 고안된 서사다.
조국 대표를 비롯한 조국혁신당 인사 일부 역시 ‘왜곡설’을 주장하며 김민석 국무총리, 봉욱 청와대 민정수석, 정성호 법무부 장관, 윤창렬 국무조정실장 책임론을 제기했다. 정파적 구도로 볼 때 이는 ‘조국혁신당이 검찰개혁에선 원칙적이고 단호하다’란 인식을 심어줘 범여권 지지층 중 검찰개혁 강경론을 지지하는 유권자층 확보를 노리는 전략으로 읽힌다. 이런 전략이 먹히면 지방선거 성적과 더불어 이후 합당 논의에서도 조국혁신당에 유리한 사정으로 작용할 것이다. 여기에 이전에 합당을 추진한 정청래 대표와 일치하는 이해관계가 있다는 것은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정청래 대표와 조국 대표는 중수청·공소청법 제정안 처리 이후 대통령과 주파수를 맞추는 인상을 주기 위해 노력하는 듯하다. 이재명 대통령이 과거 자신을 악마화한 에스비에스(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 방송을 거론하며 사과를 요구한 것에 적극 호응하며 ‘언론개혁’으로 이슈를 전환하려는 듯한 모습이 그렇다. 결국 이심정심-이심조심-이심유심-이심어심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지탱하는 일이 필요하다고 보는 거다.
정치적 판단이야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있지만, 형사사법제도의 일대 변화를 가져오는 제도 개선 논의가 이런 식의 정파적 판단에 종속돼버린 것은 우려스럽다. 문재인 정권 시기 민주당이 정권을 잃은 이유는 집권세력이 중시한 개혁이 유권자에게 이익이 되지 않았다는 인식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윤석열 검찰의 만행과 부동산값 폭등에도 불구하고, 누구에게나 효용을 인정받는 개혁이 있었다면 유권자는 정권 재창출의 필요를 훨씬 더 폭넓게 인정했을 것이다.
그렇게 정권을 잃은 결과가 윤석열의 내란으로 이어졌다는 것은, 지금의 집권세력이 이전보다 훨씬 더 큰 책임의식을 가진 통치세력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게 아닌, ABC론 같은 지지층 동원이나 세계관 ‘덮어쓰기’ 목적의 담론에 기댄 무책임한 정치로 일관한다면, 어느 시점에 ‘(다른 건 다 똑같이 하지만) 계엄 선포만 안 하는 윤석열’이 등장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을까? 사실을 왜곡하고 비트는 정치로 서로 경쟁하는 일은 이제 그만두어야 한다.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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