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18일 열린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에서 이재명 대표가 압도적 득표율로 당대표 연임에 성공했다. 이 대표가 받은 득표율 85.4%는 민주당 당대표 경선 역사상 최고 기록이다. 당대표 연임은 새정치국민회의(민주당의 전신) 시절 총재를 맡았던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4년 만이다. 이재명 대표 개인적으로는 화려한 성적을 기록했지만 전당대회 자체는 흥행에 실패했다. 시작부터 ‘확대명’(확실히 당대표는 이재명)이었던 탓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당대회 결과는 한국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 현상을 여실히 보여줬다. 이재명 대표에게 지지를 몰아준 당원들의 요구는 한 가지로 수렴된다. ‘윤석열 정권 심판’이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을 바로잡는 것에서 더 나아가 윤 대통령의 조기 퇴진까지 바라는 정서가 이번 전당대회를 뒤흔들었다. 최고위원 선거 초반에 고전하던 전현희 의원이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살인자”라고 지칭한 뒤 득표율이 급상승하며 2위까지 치고 올라간 것은 극단적으로 쪼개진 민심을 대변한다. 최고위 입성에 성공한 김병주 의원도 “정신 나간 국민의힘 의원들”이라고 발언한 덕을 톡톡히 봤다. 이재명 대표는 당선 바로 다음날 “윤석열 정권 폭주를 저지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과제”라며 당원들의 정권 심판 요구에 화답했다.
문제는 이처럼 외부의 적을 처단하기 위해 이재명 대표를 중심으로 똘똘 뭉치는 현상이 당내의 다양한 목소리를 틀어막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이다. 이 대표의 경쟁자로 나선 김두관 전 의원의 득표율은 12.12%에 그쳤다. 이는 2년 전 전당대회에서 비주류 후보로 나섰던 박용진 전 의원이 받았던 22.23%의 절반 수준이다. 김두관 전 의원이 경선 과정에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비판에 치중하는 등 전략을 잘못 세운 것도 낮은 득표율의 이유지만, 근본적으로는 당내 다른 목소리는 인정하지 않겠다는 당원들의 심리가 더 크게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8월18일 전당대회에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영상 축사에 일부 강성 당원들이 야유를 보내는 모습은 씁쓸한 장면이었다.
최고위원 후보였던 정봉주 전 의원이 경선 막판 ‘명팔이’ 논란 속에서 탈락한 것도 당내 다양성 실종의 한 단면이다. 정 전 의원은 과거 ‘발목지뢰 목발 경품’ 발언으로 피해 장병 모욕 논란에 휩싸이며 지난 4·10 총선에서 공천이 취소된 인물이다. 그러나 이번 전당대회에서 정 전 의원이 탈락한 것은 막말 정치인을 걸러내자는 당원들의 집단지성이 발휘된 결과가 아니었다. 정 전 의원은 막말 꼬리표를 달고도 경선 초반 1위를 달리며 선전했다. 하지만 그가 뒤에서 이 대표를 비판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당원들은 급속히 표를 거둬들이며 ‘수박’(겉과 속이 다르다는 의미로 강성 당원들이 비이재명계를 일컫는 멸칭)을 처단했다. ‘수박’이라는 용어를 자신이 만들어냈다고 주장한 정 전 의원은 결국 제 발등을 스스로 찍은 셈이다.
정 전 의원을 6위로 밀어내고 5위로 최고위원 자리를 꿰찬 인물이 다름 아닌 이언주 의원이라는 점도 아이러니하다. 이 의원은 여야를 아우르며 당적을 옮겨다닌 ‘철새 행보’로도 비판받았지만, 학교급식 노동자들을 “그냥 동네 아줌마”라고 지칭하고 문재인 정부 인사들을 향해 “걸신들린 하이에나”라고 하는 등 인신공격성 막말을 한 전력이 있다. 당원들의 선택이 ‘이재명 대표에 무조건적인 지지를 보이면서 윤석열 정부를 향해 강력한 전투력을 발휘할 수 있는 인물’에 집중된 결과다.
애초 당원들에게 다양한 선택지가 없었다는 점도 이번 전당대회의 한계로 지목된다. 이재명 대표에게 도전장을 내민 중량감 있는 정치인은 김두관 전 의원을 제외하고는 전무했다. 많은 이가 당대표 경선 출마를 꺼린 것에는 시작부터 ‘확대명’ 기조가 확연했던 상황이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 한편으로는 이 대표를 유일한 대안으로 보는 강성 지지층의 공격이 두려워서일 수도 있고, 당장 전당대회에서 들러리를 서기보다는 이 대표가 가진 가장 큰 위험요소인 사법리스크의 결과를 지켜보자는 전략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유가 어찌 됐든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우려가 끊임없이 나오는 상황 속에서 움츠린 채 관망만 하던 이들에게도 당내 다양성 실종에 대한 책임은 분명히 존재한다.
총선과 전당대회의 연이은 압승을 통해 이재명 대표는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그러나 야권 지지층의 눈이 이 대표 한 명에게 쏠린 상황에서 앞으로 일어날 상황에 대한 모든 책임도 이 대표 혼자 오롯이 질 수밖에 없다. 전당대회에서 얻은 85.4%라는 득표율이 민주당이라는 우물 속의 숫자가 아니라는 사실 또한 증명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 앞에 놓인 첫 번째 과제는 일극체제에 대한 우려를 잠재우는 것이다. 이 대표는 애초 8월22일 문재인 전 대통령 부부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를 만나 통합 행보를 하려고 했지만, 코로나19 감염으로 일정이 미뤄졌다.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와 관련해 이 대표와 의견 차이를 보인 진성준 정책위의장을 유임한 것도 포용의 이미지를 주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당내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는 행위에 대한 공포 정서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는 숙제로 남아 있다.
정부·여당을 대상으로도 정권 심판과 민생 챙기기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야 한다. 대여투쟁에만 집중하다보면 대통령의 거부권에 막혀 민생 정책 추진이 불가능하고, 협치에 나설 경우 정권 심판을 원하는 지지층의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특히 당장 이 대표 앞에는 ‘채 상병 특검법’을 관철해야 하는 중요한 과제가 놓여 있다. 최근 민주당이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제안한 ‘제3자 추천’ 방식도 수용 가능하다는 뜻을 밝힌 것은 한 대표에 대한 압박이자 특검법 관철을 위한 일종의 유인책이다. 특검법에 강하게 반대하는 친윤계(친윤석열계)를 지나치게 자극하지 않으면서 한 대표의 결단을 끌어내기 위해서는 고도의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이 대표의 미래에 가장 치명적인 것은 사법리스크다. 이르면 10월로 예상되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및 위증교사 혐의 관련 1심 판결에서 어떤 결과가 나오느냐에 따라 당 장악력이 흔들릴 수 있어서다. 둘 중 하나라도 당선 무효형이 나올 경우 대선 가도에 빨간불이 켜진다. 선고 결과에 따라 이 대표를 중심으로 지지층이 똘똘 뭉칠 수도 있지만 대안을 찾는 움직임 또한 가속화할 수 있다. 때마침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복권되면서 또 다른 카드로 부상하고 있다.
송채경화 한겨레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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