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8일 국민권익위원회 김아무개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이하 김 국장)가 세종시 종촌동 한 아파트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 국장이 고위직(3급)인데다 최근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과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 헬기 이송 사건’ 등 민감한 현안들을 다뤘다는 점에서 이 사건에 관심이 집중됐다.
김 국장의 죽음 이후 그가 최근 권익위에서 다룬 사건들의 결정에 대해 부끄럽게 생각했다는 증언들이 잇따라 나왔다. 한 지인은 그와의 통화와 카카오톡 대화 내용을 공개했고, 권익위 전현직 공무원들은 그의 죽음이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의 결정과 깊은 관련이 있다는 의견을 밝혔다. 김건희 여사 명품가방 수수 사건은 언제, 어떻게 일어났고 현재 어떤 상황에 있는지, 왜 권익위에서 이 사건을 다루게 됐고 ‘종결’ 처리했는지, 김 국장은 권익위의 결정에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등을 살펴봤다.
이 사건의 근본 원인이 된 사건은 2022년 9월13일 서울 서초구 아크로비스타의 지하 1층 코바나컨텐츠 사무실에서 일어났다. 이날 재미동포인 최재영 목사는 평소 아는 사이인 김건희 여사를 찾아가 300만원짜리 크리스찬디올의 여성용 파우치(작은 가방)를 선물했다. 김 여사는 “이런 걸 사오지 말라”면서도 그대로 받았다. 앞서 김 여사는 2022년 6월20일 같은 장소에서 179만8천원어치의 샤넬 화장품 세트도 받았다. 최 목사는 2023년 11월27일부터 인터넷 언론사 ‘서울의 소리’를 통해 이런 사실을 폭로했다.
먼저 이 사건을 취재·보도한 서울의 소리는 2023년 12월6일 김 여사와 윤석열 대통령 부부를 청탁금지법 위반과 뇌물수수 혐의로 대검찰청에 고발했다. 이어 12월19일 민생경제연구소는 윤 대통령 부부를 뇌물 수수와 직권 남용, 청탁금지법과 대통령경호법 위반 등 혐의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에 고발했다. 같은 날 참여연대도 윤 대통령 부부를 청탁금지법 위반 혐의로 권익위에 신고했다.
2024년 1월10일 윤 대통령은 자신과 김건희 여사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을 다룰 권익위원장에 유철환 전 부장판사를 임명했다. 유 전 판사는 윤 대통령의 서울대 법학과 동기다. 유 위원장의 임명에 대해선 청탁금지법 사건 처리를 위한 방탄용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유 위원장의 전임은 윤 대통령과 절친한 검사 선배인 김홍일 전 대검 중앙수사부장이었다. 김홍일 위원장은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앞서 2023년 1월27일 윤 대통령은 대학, 검찰 후배인 정승윤 전 검사를 권익위 부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정 부위원장은 윤 대통령 부부의 청탁금지법 위반 사건을 담당하는 부패방지 부위원장이며, 사무처장을 겸임했다. 정 부위원장은 뉴라이트 성향의 잡지 ‘시대정신’ 발행인을 지낸 인물이다.
또한 윤 대통령은 판사 출신의 김태규 부위원장, 서울대 법대 후배인 판사 출신 박종민 부위원장 등을 권익위에 포진시켰다. 김태규 부위원장은 2024년 7월31일 방송통신위원회 상임위원(부위원장 겸임)으로 자리를 옮긴 뒤 현재 방송통신위원장 직무대행을 맡고 있다. 김 직무대행은 김홍일 전 권익위원장, 전 방송통신위원장처럼 윤 대통령의 호위무사로 활동하고 있다. 박종민 부위원장은 8월13일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이 김 국장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사퇴한 다음날인 8월14일 사무처장직을 넘겨받았다.
총선 한 달 뒤인 2024년 5월3일 이원석 검찰총장은 김건희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대한 전담 수사팀 구성을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에게 지시했다. 서울의 소리가 윤 대통령 부부를 고발한 지 5개월 만이었다. 서울중앙지검은 형사1부(김승호 부장검사)에 검사 3명을 추가 투입해 본격 수사에 나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원석 검찰의 뒤늦은 수사 의욕에 대해 윤 대통령은 열흘 만인 5월13일 인사 발령으로 찬물을 끼얹었다. 송경호 서울중앙지검장과 서울중앙지검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1~4차장을 모두 갈아치웠다. 또 이원석 총장의 참모진인 대검 부장도 여섯 자리나 갈아치웠다. 이 총장의 임기가 겨우 넉 달 남은 상황에서 이례적인 인사였다. 인사의 메시지는 명확해 보였다. 김 여사 수사에 의욕을 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윤 대통령의 의중이 잘 전달됐는지 7월21일 일요일 서울중앙지검(이창수 검사장)은 김 여사를 서울 종로구 창성동 경호처 건물로 찾아가 방문 조사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 조작 사건과 명품가방 수수 사건에 대한 조사였다. 이원석 총장에겐 도이치모터스 사건 조사가 끝난 뒤 보고했다. 예상대로 김 여사는 사건 관련 혐의를 모두 부인했다. 다음날인 7월22일 이원석 총장은 “대통령 부인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2023년 12월19일 김 여사의 명품가방 수수 사건을 신고받은 권익위는 60일 안에 이를 처리해야 했으나, 두 차례나 연기했다. 먼저 30일을 연장했고, 다시 두 달 가까이 연장했다. 신고 뒤 6달이 다 돼서야 결정을 내놨다. 이 와중인 2024년 3월8일 김 국장은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 발령을 받았다. 이 사건 처리 과정에서 김 국장은 대통령실 조사에 대한 부담과 권익위 안에서의 이견으로 상당한 정신적 압박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2024년 8월2일 민주당 천준호 의원이 밝힌 내용을 보면, 김 국장이 관할하는 부패방지국 소속 공무원들은 6월7일 명품가방 수수 사건 조사를 위해 용산 대통령실을 방문했다. 이들은 대통령실에 명품가방과 대통령기록물 관리 대장을 보여달라고 요구했으나, 대통령실은 이를 거부했다. “잘 보관하고 있다”고만 답변했다. 이 가방은 김 여사가 검찰 방문 조사를 받은 뒤인 7월26일 검찰에 임의 제출됐다.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사흘 뒤인 6월10일 권익위 전원위원회가 열렸다. 당시 유철환 위원장과 정승윤·김태규·박종민 부위원장 등 15명이 참석했다. 윤 대통령과 여당 쪽에서 임명한 사람이 12명, 야당 쪽에서 임명한 사람이 3명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국장은 담당 국장으로서 ‘공직자(윤석열)와 그 배우자(김건희) 등의 청탁금지법 위반 의혹’ 안건을 설명하고 처리 방안을 결정해달라고 요청했다.
당시 위원들은 명품가방의 선물-뇌물 여부, 대통령기록물 여부, 김 여사와 윤 대통령의 청탁금지법 위반 여부 등에 대해 열띤 토론을 벌였다. 토론은 물론 위원장과 부위원장 등이 주도했다. 1시간40분 동안의 토론을 마치고 거수투표를 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선 종결 8표, (수사기관) 송부 7표였다. 1표 차이였다. 김 여사에 대해선 종결 9표, (수사기관) 이첩 3표, 송부 3표였다. 이첩은 범죄 혐의가 있거나 수사 필요성이 있다고 인정되는 경우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이며, 종결은 법 위반 행위를 확인할 수 없거나 조사가 필요하지 않다고 인정되는 경우 권익위 스스로 조사를 끝내는 것이다. 송부는 이첩이나 종결의 대상인지 명백하지 않은 경우 수사기관에 넘기는 것이다.
이날 회의에 참석한 최정묵 권익위 당시 비상임위원은 “대통령이 명품가방 수수를 언제 알았는지, 어떻게 조처했는지 조사가 필요했다. 직무 관련성이나 뇌물 성격이 있을 수 있었다. 그래서 수사기관으로 이첩이나 송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종결 결정은) 잘못된 결정이었다”고 말했다. 6월19일 최 위원은 이 결정에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권익위를 다루는 국회 정무위원회의 김남근 민주당 의원은 “권익위가 신고자 참여연대에 대한 조사, 대통령기록물 여부 조사, 대통령 직무 관련성 여부 조사 등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제대로 조사한 뒤에 수사기관에 이첩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지문 한국청렴운동본부 이사장은 6월27일 김 국장과 통화했다. 김 국장은 술을 마시다가 이 이사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이 통화에서 김 국장은 “그런 결정(6월10일 전원위 회의)이 나와서 송구스럽다. 권익위 내부 생각이나 내 생각과 다른 결정이었다. 그렇게 결정되면 안 되는데, 양심에 거리낀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이 이사장은 전했다. 이 이사장은 “상황이 힘들 텐데 잘 이겨내야 한다. 그래야 더 중요한 일을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위로했다고 말했다.
8월6일엔 이 이사장이 먼저 카톡을 보냈다. 8월5일 자신이 경향신문에 쓴 ‘국회의원은 대한민국 공직자가 아닌가?’라는 기고문을 김 국장에게 보낸 것이었다. 김 국장은 기고문에 대해 “교수님. 내용 좋아요”라고 덕담했다. 그러더니 “최근 저희가 실망을 드리는 것 같아서 송구한 맘입니다. 참 어렵네요”라고 말했다.
이 이사장이 “무엇보다도 건강 챙기시공…”이라고 위로하자 김 국장은 “네 감사합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힘드네요. 교수님이 겪으셨던 것보단 쉽다고 생각하며 위안을 찾고 있습니다”라고 답변했다. 짧은 카톡 대화에서 “송구하다” “어렵다” “힘들다” “위안을 찾고 있다”는 하소연이 쏟아졌다.
이 이사장은 8월8일 낮 ‘권익위 고위 인사, 자택서 숨진 채 발견’이란 긴급 기사를 접한 뒤 김 국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김 국장에게 변고가 생겼다고는 생각지 않았고, 누구에게 변고가 생겼는지 물어보려던 참이었다. 그러나 김 국장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다시 권익위의 다른 간부에게 전화했고, 그에게서 김 국장의 소식을 들었다. 이 이사장은 “유철환 위원장, 정승윤 부위원장 같은 윤석열 대통령 쪽 사람들이 무리하게 종결 결정을 한 일이 원인이었던 것 같다. 김 국장으로서는 사표 던지고 나가는 방법밖에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국회 정무위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말하지 못해서 답답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8월8~10일 김 국장의 장례 기간에 이상한 일도 있었다. 8일 저녁과 밤, 9일 아침까지 권익위 공무원들이 거의 문상을 오지 않았다. 화환도 8일 밤까지 단 하나만 왔다. 9일 낮부터 권익위 공무원들이 문상을 오기 시작했는데, 김 국장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조심스러워했다. 쉬쉬하는 분위기였다. 김 국장의 작은아버지인 김두익씨는 “나중에 이야기를 들으니 권익위에서 문상을 제한한다고 공무원들에게 통보한 것 같았다. 상주들은 문상을 안 받을 생각이 없는데, 권익위가 문상을 제한한다는 게 말이 되나. 문상 온 공무원들도 자신이 누구인지 명함도 주려고 하지 않았다. 어떻게 이런 경우가 있을 수 있느냐”고 말했다.
일부 전현직 공무원은 한겨레에 김 국장의 죽음에 대해 속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권익위의 전 간부는 “(김 국장의 죽음이) 명품백 사건 관련 압력 때문이라는 건 권익위 선후배들 사이에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말했다. 권익위의 한 관계자는 “고인이 힘들어했다는 건 동료들도 다 알았다”고 전했다. 권익위의 다른 관계자는 “김 국장이 힘들어서 그만두려 했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다”고 말했다.
국회 정무위의 신장식 조국혁신당 의원은 “권익위의 종결 결정 과정에 직권남용이 있었다고 보인다. 김 국장은 이첩을 주장한 것으로 보이는데, 직속 상관들이 이것을 찍어누른 것 같다. 정승윤 등 권익위 책임자들에 대한 공수처의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사건의 가장 큰 책임자로 알려진 정승윤 부위원장 겸 사무처장은 8월13일 사퇴했다. 권익위는 김 국장의 순직이 인정되도록 노력하고, 큰 충격과 슬픔에 빠진 유가족과 권익위 공무원들을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런 사후약방문식 대응보단 이번 사건의 구조적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이번 사건을 권익위에 신고한 참여연대의 장동엽 선임간사의 지적이다. “이 사건의 실제 책임자인 김 여사와 윤 대통령에 대한 제대로 된 조사가 필요하다. 최 목사의 청탁에 대해 김 여사가 관련 기관을 연결해줬다면 청탁금지법 위반을 넘어 알선수재 혐의로도 처벌할 수 있다. 윤 대통령에 대해서는 임기 뒤에 처벌하기 위해서라도 언제 명품가방 수수를 알았는지, 신고는 했는지 등을 조사해야 한다. 검경이 이를 수사하기 어렵다면 특검으로 넘겨야 한다.”
김규원 선임기자 ch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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