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위성정당 명분쌓기에 소수정당 이용했나”

비례연합정당 명분 스스로 걷어찬 민주당, 휘청이는 진보정당
등록 2020-03-21 13:26 수정 2020-05-07 10:37
녹색당과 미래당 당원들이 3월17일 국회 정문 앞에서 4·15 총선을 위한 비례대표 정당인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녹색당과 미래당 당원들이 3월17일 국회 정문 앞에서 4·15 총선을 위한 비례대표 정당인 ‘비례연합정당’에 참여할 것을 선언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군소 진보정당들에 총선을 코앞에 둔 2020년 3월은 어떻게 기억될까. 준연동형 비례대표제 도입을 주도하며 최초의 원내교섭단체를 꿈꾸던 정의당, ‘기후 국회’를 만들겠다며 원내 진출의 포부를 밝히던 녹색당, 종북 프레임을 털고 재기를 노리던 민중당 등 진보정당들이 비례연합정당 논란 속에 휘청거리고 있다.

“우리 사회에 함께 살아가는 성소수자들의 삶을 지키는 것이 너무나 소중합니다.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하는 선거연합정당에서 녹색당의 가치를 지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이 들었습니다.”

당원에게 사과한 녹색당

3월18일 이유진 녹색당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비례연합정당 논의 불참을 알리며 녹색당 당원에게 사과의 글(‘선거연합정당 관련 당원님들께 사과드립니다’)을 띄웠다. 이 본부장은 “차별 없는 세상을 위한 녹색당의 가치를 흔들 수 없다”는 말에 민주당과의 선거연합은 사실상 끝났다는 뜻을 담았다. 녹색당이 비례연합정당 논의에서 이탈한 것은, 윤호중 민주당 사무총장이 하루 전인 3월17일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이념 문제라든가 성소수자 문제라든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일으킬 수 있는 정당과 연합하는 데 어려움이 있다고 판단한다”고 말한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날 발언을 뜯어보면 성소수자 발언만 문제가 아니다. 윤 총장은 “(녹색당 등은) 그 부분 이외에 훌륭한 정책을 많이 갖고 있어서 함께할 수 있다. 다만 비례대표 후보 추천에 있어선 좀더 엄밀하게 협의해봐야 할 사안이라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는 여당의 선거 책임자가 당 대 당 연합 테이블에 오른 녹색당의 비례대표 선출 권한을 침해할 여지를 남긴 발언인 셈이다. 이에 대해 이 본부장은 다른 글(‘녹색당은 녹색당의 길을 가겠습니다’)에서 “(민주당은) 녹색당의 비례대표 후보의 성소수자 정체성을 지적하며, 후보자 명부에 대해서도 주도권을 행사하려 했다”며 “후보자 명부 또한 민주당이 도입한 방식에 따라 검증할 것을 주문했다”고 했다. 민주당이 협상 과정에서 어떠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대목이다.

녹색당과 ‘녹색미래 선거동맹’ 결성을 선언하며 비례연합정당 논의에 참여한 미래당도 민주당과 더 이상 논의는 어렵다는 분위기다. 오태양 미래당 대표는 <한겨레21>에 “정치개혁연합이 제안하고 미래당이 함께한 선거연합의 애초 취지는 ‘가치’를 중심으로 한 수평적 연대체였다”며 “(민주당이 ‘시민을위하여’와 함께 추진하는) 더불어시민당은 사실상 민주당의 위성정당이나 다름없다. 현재 상태로는 참가할 수 없다”고 태도를 분명히 했다. 그는 또 “민주당 내 총투표를 할 당시 녹색당과 미래당이 함께한다는 것을 널리 알리면서 명분을 쌓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지금 민주당의 태도는 애초 위성정당 명분 쌓기용으로 시민사회(정치개혁연합)나 소수정당(미래당, 녹색당)을 활용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날을 세웠다.

원래 비례연합정당 논의는 시민사회 쪽 인사가 중심인 정치개혁연합이 만든 틀 안에서 이뤄졌다. 3월3일 창당신고서를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제출한 정치개혁연합은 민주당과 녹색당을 포함해 미래당, 민중당 등에 연합정당 참가를 제안하면서 논의를 주도해갔다. 실제 비례연합정당 참여 여부를 묻는 민주당 전 당원 투표가 진행되던 3월12~13일만 해도 정치개혁연합이 연합정당 구성의 주축이 될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였다. 분위기가 반전된 것은 3월17일 민주당이 여권과 가까운 성향의 시민을위하여와 가자환경당, 기본소득당, 시대전환, 가자!평화인권당 등과 함께 비례연합정당 협약을 맺으면서다.

윤 총장이 ‘이념 문제’를 지목한 민중당은 “이렇게 될 줄 알았다”는 분위기다. 3월19일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한겨레21>과 한 통화에서 “비례연합정당 논의에 참여할 즈음 민주당으로부터 정의당 대신 민중당이 들어왔으면 좋겠다는 뜻이 전해졌고, 당내에서 구체적인 논의를 시작했다”며 “윤 총장 발언만으로도 민주당은 당내 의견도 정리하지 않은 채 졸속 추진했다는 게 확인됐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민주당 스스로 종북 프레임, 낡은 색깔론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윤호중 “성소수자 불필요한 소모적인 논쟁”

소수정당 참여라는 비례연합정당의 명분이 흔들리면서 민주당 내 분위기도 혼란스럽다. 먼저 윤 총장의 ‘성소수자’ 발언을 향한 당내 비판이 거세다. 특히 ‘여성·아동·청소년·어르신·장애인·이주민 등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을 존중하고 안전을 보장하며, 어떠한 차이도 차별로 이어지지 않는 사회를 만든다’는 당 강령과도 배치된다는 점에서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민주당 내 성소수자위원회 준비모임에선 논평을 내어 “윤 사무총장은 성소수자 당원과 시민들에게 사과하라”는 입장을 내놓기도 했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이 비례연합정당의 판을 주도했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진 것도 논란을 더한다. 하승수 정치개혁연합 집행위원장은 <한겨레21>에 “김성환 당대표 비서실장과 윤호중 사무총장과 논의를 이어가던 중에 양정철 원장에게서 정치개혁연합이 친여 성향의 시민을위하여와 정해진 시한(17일)까지 통합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며 “그런데 다음날 어떤 논의도 없이 민주당은 시민을위하여와 ‘개문발차’하겠다는 구두 통보를 받았다”고 협상 과정을 전했다. 하 위원장이 문제 삼는 것은 협상 과정에서 보인 민주당과 양 원장의 태도다. 하 위원장은 “양 원장이 전화로 협상권을 위임받았다면서 협상 시한을 정하는 등 일방적인 언행을 보였다”고 했다. 정치개혁연합은 “민주당 지도부가 현재까지의 과정을 진단하고 사과와 함께 개선책을 내놓을 것을 정중히 요청한다”는 제안에 더해 “양정철 원장을 즉시 선거연합정당 협상 대상에서 교체하고 징계하라”고 공식 요구한 상태지만, 민주당에서는 이렇다 할 답을 내놓지 않고 있다.

결국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이 나섰지만 비례연합정당 잡음이 잦아들지는 미지수다. 이 위원장은 3월19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관훈클럽 초청토론회에서 비례연합정당 구성 갈등과 관련해 “현재 전개가 몹시 민망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위원장은 정치개혁연합에 대해 “민주당이 오랫동안 걱정해주고 도와준 시민사회 원로들에게 서운함을 안겨드린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다만 이 위원장은 “저희가 (녹색당, 미래당 등을) 배제한 적이 없고 참여의 문이 열려 있다”면서 더불어시민당(연합정당)의 막판 합류 가능성을 열어뒀다. 하지만 정당 등록 시한 등을 고려할 때 다른 당의 참가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시, 3%를 넘기 위하여

소수 진보정당에 각자도생의 길만 남은 것일까. 현재 여론조사 추세로 볼 때 녹색당, 미래당, 민중당이 원내 의석을 확보하는 3% 이상 득표를 장담하기는 어렵다. 더 근본적인 공조가 물밑에서 추진된다는 게 이들에게는 그나마 남은 희망이다. 이상규 민중당 상임대표는 “애초에 녹색당에 독일의 사회민주당과 녹색당과 같은 적록연합을 표방한 연대를 제안했고, 여전히 이는 유효하다. 여기에 미래당까지 참여해 가치를 중심으로 한 선거연대로 이번 선거에 임하자는 논의를 진행 중이다”라고 했다. 오태양 미래당 대표도 “녹색당과의 선거동맹은 여전히 유효하며 민중당에서의 제안을 포함해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녹색당의 입장은 두 당과 결을 달리한다. 고은영 녹색당 공동선거대책본부장은 3월19일 한겨레TV <하니라이브>에 출연해 “미래당, 민중당과의 선거연합은 현실적으로 어렵지 않을까 한다”며 공조 가능성에 무게를 두지 않았다.

하어영 기자 haha@hani.co.kr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