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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동열은 나오고 이재용은 안 나오는 이유

국감 증인 어떻게 채택하나…

여론 시선 끌려고 유명세 탄 인물 부르고 재벌 총수는 여야 합의로 안 불러
등록 2018-10-13 18:21 수정 2020-05-03 04:29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이 10월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이 10월10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정감사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하고 있다. 한겨레 김경호 선임기자

1. 다음 제시된 이름이나 단어들의 공통점은? ‘선동열, 백종원, 벵골 고양이’

2. 다음에 거론된 사람들의 공통점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1번 문제의 답은 10월11일 현재 ‘2018년 국회 국정감사(국감) 회의장에 나온 이들’이다. 2번은 ‘매년 국감 증인으로 자주 거론되나 올해 국감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낮은 인물’이 답이다.

10월10일 막을 올린 올해 국감은 늘 그렇듯 한 해의 주요 현안을 망라한다. 행정부를 감시하고 견제하는 것이 주요 기능인 국회가 국감 회의장에 여러 분야 관계자를 불러 행정부의 잘잘못을 따지기 때문이다. 기관 증인(행정부) 외에 그해 주요 이슈와 관련된 일반 증인과 참고인을 불러 의원들이 국민을 대신해 묻기도 한다. 헌법은 “국회는 국정을 감사하거나 특정한 국정 사안에 대하여 조사할 수 있으며, 이에 필요한 서류의 제출 또는 증인의 출석과 증언이나 의견의 진술을 요구할 수 있다”(제61조)고 명시해 국감의 중요성을 뒷받침한다. 이에 국감 증인·참고인 명단은 그해 이슈가 무엇이고, 국민이 어떤 이들에게 주목했는지 엿볼 수 있는 가늠자이기도 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감 스타’와 ‘갑질’의 경계</font></font>

그렇다면 올해 국감에서 선동열 야구 국가대표팀 전임감독이나 벵골 고양이가 국감장에 나오고, 재벌 기업 회장들은 국감장에 등장할 가능성이 낮은 이유는 무엇일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20일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의원들이 ‘1년 농사’의 결실을 거둬야 하는 국감의 특성을 살펴봐야 한다.

언론과 여론의 주목을 받아야 국감 성과가 두드러지기 때문에 의원들과 보좌진들은 자신들이 준비한 ‘콘텐츠’가 메인 방송 뉴스, 신문 1면, 포털 사이트에 오르내려 ‘국감 스타’로 등극하는 걸 목표로 한다. 하지만 바쁜 증인·참고인을 불러서 호통만 치고 끝날 경우 ‘갑질’로 몰려 역효과가 날 수도 있다. ‘국감 스타’와 ‘갑질’이라는 아슬아슬한 경계에서 선동열 감독과 재벌 기업 회장들의 운명도 엇갈리는 모습이다.

10월10일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장에 선동열 감독이 등장했다. 프로스포츠 현장 지도자의 국감 출석은 처음이다. 2018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 병역 특혜 논란에 대해 선수 선발 과정의 정당성을 묻겠다고 손혜원(더불어민주당)·조경태(자유한국당)·김수민(바른미래당) 의원이 출석을 요구했다. 아시안게임 금메달로 ‘예술·체육요원’에 편입돼 병역 면제 혜택을 받게 된 오지환 선수(LG 트윈스)에 대해 “지금이라도 군대를 가야 한다”, 선동열 감독에 대해 “전임 감독 자리를 내려놓아야 한다”는 인터넷 여론을 의식한 증인 채택이다. 하지만 결과는 의원들이 명투수 출신인 선동열 감독에게 ‘삼진아웃’을 당한 모양새다. 의원들은 “오지환 선수 대표팀 선발 청탁을 받았냐”고 선동열 감독을 몰아세웠지만 “소신껏 뽑았다”는 답변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선동열 감독에게 분노했던 인터넷 여론은 “야알못(야구도 알지 못하는)들이 아무 내용도 없이 사람만 불렀다”며 분노를 국회로 돌렸다. 선수 선발 과정에서 금품이나 압력이 오갔다는 정황을 밝혀내지 못한 이상 국감장에서 행정기관 책임자가 아닌 선동열 감독에게 들을 수 있는 내용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었다.

여론을 의식하고 주목을 받으려는 의원들의 전략에 백종원 대표와 벵골 고양이도 국감장에서 보게 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위)는 10월12일 중소벤처기업부 대상 국감에 백종원 대표를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업종 확장과 방송 출연으로 인한 간접광고 논란을 묻고, 현 정부의 골목상권·자영업자에 대한 지원책의 적절성과 비판을 청취하겠다는 게 이유다. 사안은 중소벤처기업부나 방송통신위원회 등의 기관 증인들에게 물어볼 내용이지만, 백종원 대표의 높은 지명도를 의식해 참고인으로 부른 것으로 보인다. 국회 한 보좌관은 “문제가 있으면 국감에 누구나 부를 수 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이나 백종원 대표는 언론의 주목을 받기 위한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 같다. 열심히 국감을 준비한 대부분의 의원실까지 욕먹을 수 있다”고 꼬집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뱅골 고양이 데려왔다 ‘동물 학대’ 부메랑</font></font>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0월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데려온 벵골 고양이. 연합뉴스

김진태 자유한국당 의원이 10월1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장에 데려온 벵골 고양이. 연합뉴스

김진태 한국당 의원은 10월10일 정무위원회 국감장에 새끼 벵골 고양이를 대동했다. 지난 9월 동물원에서 탈출해 총에 맞아 죽은 퓨마 ‘뽀롱이’와 관련된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 퓨마와 비슷한 고양잇과 동물을 데려왔다는 게 김 의원의 주장이다. 하지만 “고양잇과 동물의 특성을 무시한 동물 학대”라는 비판이 동물단체와 ‘고양이 집사’(반려묘를 키우는 사람들)들로부터 나왔다.

여론의 시선을 끄는 유명인들이나 동물은 국감장에 쉽게 불려나왔지만, 애초 출석이 거론되던 대기업 회장들의 국감 출석은 찾아보기 어렵다. 앞서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삼성전자 기흥공장 이산화탄소 누출 사고), 최태원 SK그룹 회장·장영신 애경그룹 회장(가습기살균제 피해 관련) 등이 신청(이정미 정의당 의원)됐지만 여야 합의에서 빠졌다. 정무위에서도 정의선 현대자동차 부회장(협력업체 불공정 거래 논란)에 대한 증인 신청이 있었지만 채택되지 않았다. 각 상임위원회 증인·참고인 명단을 살펴보면 애초 최고경영자(CEO)에서 임원으로 변경된 경우도 곳곳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국감 때마다 되풀이되는 풍경이다. 증인 채택이 거론되던 대기업 회장들은 여야 합의에서 빠지는 경우가 예사다. 최근 몇 년 사이 소득 불평등, 갑질 논란, 경제민주화 등의 이슈가 떠오르며 국감에서 증인으로 부르는 기업인들의 수는 늘지만, 실제 국감장에 나오는 기업인은 계열사 사장이나 실무자급인 본부장이 주를 이룬다. 국감 기간에 ‘공교롭게’ 해외 출장이 잡힌 CEO도 많다. 올해 국감은 국회가 기업인 ‘망신 주기’를 지양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기업인 증인 채택에 신중한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실무자들을 불러서 물어보고 필요하면 책임자를 부르겠다”는 것이다. 이는 과거 국감에서 의원들이 기업인들을 불러놓고 호통만 치거나, 10시간 이상 대기한 기업인 증인들에게 30초의 시간만 할애하는 모습을 연출하며 여론의 비판을 받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기업의 ‘국회 담당 직원’(대관)들의 ‘활약’도 빼놓을 수 없다. 지난 9월 중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 등이 포함된 국토교통위원회 국감 증인 참고인 명단(여야 합의 전 초안)이 한국당의 한 의원실을 통해 유출돼 논란이 됐다. 해당 증인을 신청한 각 의원실로 대관들의 문의가 쏟아졌다. 현재 국토위는 증인 채택을 두고 여야 합의를 이루지 못한 상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무조건 오너는 막아라’ 기업 대관의 읍소</font></font>

각 의원실은 국감 증인 신청 명단을 작성해 상임위원회 여야 간사와 행정실에 제출하는데, 이 과정에서 해당 명단은 대관들에게 유출되는 경우가 많다. 보좌관 ㄱ씨는 “국감이 되면 대관 직원들이 의원회관에 아침부터 출근한다. 흡연 장소에서 자주 마주친다”고 했다. 모두 국감 증인 채택 여부 ‘첩보’를 파악하기 위해서다. 한 대기업 대관인 ㄴ씨는 “평소 다져진 네트워크로 여기저기 묻고 다닐 수밖에 없다. (오너가) 일단 증인 명단에 오르면 해당 의원실, 여야 간사, 위원장실을 수시로 찾는다”고 말했다. 대관들의 목표는 무조건 ‘오너’나 그 가족이 국감장에 나오는 일을 막는 것이다. 음료수나 빵을 들고 의원회관을 오가는 이들은 보좌진을 상대로 읍소도 하고, “의원님이 오해하고 있다”며 해명 자료를 들이밀기도 한다.

증인 채택의 ‘키’를 쥔 여야 간사 의원실은 집중 마크 대상이다. 개별 의원실에서 증인 채택 의지가 강하면, 상대 당 간사 의원실을 찾아가 증인을 빼달라고 읍소하는 경우도 많다. 회장 대신 사장, 사장 대신 본부장 출석을 의원실에 ‘협상 카드’로 제시하며 밀고 당기기도 한다. 보좌관 ㄱ씨는 “기업에서 어떻게 파악했는지 국감이 되면 ‘아무개(대관 직원)가 내 후배니 한번 만나줘라’고 지인이 전화하는 경우도 있다. 중요성이 큰 증인이 아니면 그런 부탁을 마냥 외면할 수도 없다”고 한다. 대관 담당 ㄴ씨는 “전적으로 대관의 능력에 달렸다. 읍소가 먹히는 의원실도 있고, 그런 걸 싫어하는 의원실도 있다. 그에 맞춰서 대응한다”고 털어놨다.

이 과정에서 의원이 “증인 채택에서 제외하는 조건으로 지역구 민원을 청탁했다”는 확인되지 않는 소문이 돌기도 한다. 전직 보좌관 ㄷ씨는 “오너 가족을 증인으로 신청했는데, 의원이 민원을 청탁했다는 흑색선전이 돌았던 적이 있다”고 했다. 대관 ㄹ씨는 “(증인 제외를 조건으로) 넌지시 지역구 민원을 청탁하거나, 기업이 제출하기 어려운 자료를 요구하는 의원실이 있다”고 주장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기업인 채택 두고 입장 바뀐 두 당</font></font>

지난해 국감은 ‘적폐 청산’을 중심으로 민주당이 이전 정부를 공격하고 한국당이 이를 방어하는 모습을 보였다면, 올해는 기업인 증인 채택을 두고 두 당이 뒤바뀐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산자위·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한국당 의원들이 이재용 부회장을 비롯해 9월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 방문 때 동행했던 재계 인사들을 부르고, 민주당이 이를 막아서는 모습이 연출된 것이다. 과거 민주당이 재벌 회장들의 증인 채택을 주장하고, 새누리당(한국당)이 반대하던 모습이 뒤바뀐 것이다.

증인 채택 여부를 떠나 시민들이 원하는 국감 이슈는 ‘민생’이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10월10일 501명에게 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 ±4.4%포인트)에서 응답자들은 ‘소득주도성장·최저임금 등 경제정책’(26.1%), ‘부동산 대책’(15.9%), ‘판문점선언 국회비준과 평양 공동선언’(14.7%), ‘사법 농단 및 사법개혁’(13.8%) 순으로 국감의 관심 쟁점을 꼽았다.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 선발 및 병역특례’를 꼽은 비율은 1.7%였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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