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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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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의 모델하우스와 분양된 집이 다르다”

2012년 새누리당 비대위 함께한 이준석씨, “유폐 동안 마음의 빚 진 이들 많아”

“대통령에게 ‘어떻게 당선됐다고 생각하는가’ 물어보고 싶어”
등록 2016-10-25 18:01 수정 2020-05-03 04:28



박근혜  시대를  말한다


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②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
* 링크를 클릭하면 해당 글을 볼 수 있습니다.


10월4일 대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인터뷰했다. 이 전 위원은 현 정부의 인사와 정책, 소통 등 여러 부분에 아쉬움을 표했다. 류우종 기자

10월4일 대구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이준석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과 인터뷰했다. 이 전 위원은 현 정부의 인사와 정책, 소통 등 여러 부분에 아쉬움을 표했다. 류우종 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기업에는 진 빚이 적을지 모른다. 그러나 자신이 ‘유폐’ 생활을 할 때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이 많은 것 같다. 그건 (아무리 갚아도) 상환이 안 되는 부채다.”

이준석(31) 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박근혜 정부의 난맥상을 짚었다. 이 전 위원은 대선을 앞둔 2011년 12월 말 박근혜 위원장이 꾸린 비상대책위원회에 참여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대위 대표와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 등도 함께 참여한 비대위는 경제민주화 공약을 앞세운 중도 좌클릭 노선과 당명 변경을 통해 박근혜 대통령 집권에 주춧돌을 놨다. 당시 27살로 파격 발탁된 이 전 위원은 ‘박근혜 키드’라고 불린다. 지난 4·13 총선에선 서울 노원병에서 안철수 전 국민의당 공동대표에게 패했다.

‘새누리당을 바꾸는 혁신위원회’ 위원장을 지내기도 했던 이 전 위원은 “비대위 당시 국민에게 이야기했던 박근혜 정부의 모델하우스와 지금은 다르다”고 말했다. 자신이 대표로 있는 소외계층 교육나눔 봉사단체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배나사) 활동차 대구에 들른 그를 10월4일 대구에서 만났다. 10월20일 전화 인터뷰를 통해 한 차례 더 보충했다.

“암행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박근혜 대통령의 국정 운영 불통이 가중되고 있다.

정치인은 선거를 앞두고 있는지가 중요한 것 같다. 비상대책위원회 당시 박 대통령은 대선을 앞두고 있어 전향적 자세를 보였다. 지금은 대통령이 됐다. 과거 비대위원장 시절과 견줘 가진 힘의 크기가 다르다. 자신이 관철할 수 있는 사안도 많아졌다.

대통령을 포함해 모든 정치인은 ‘여론을 추종할 것인가, 아니면 여론이 틀렸다는 것을 증명할 것인가’라는 선택지를 받는 것 같다. 지금 청와대는 후자다. 여론이 틀렸다는 걸 입증하려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한두 건이 아니다. 굉장히 습관적이다. 정치적 판단도 마찬가지다.

소통에 관해서도 박 대통령이 ‘암행’이라는 걸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대통령이 지금까지 과연 100명의 일반 시민을 만나봤는지 모르겠다. 자신의 명령권 아래 있는 사람이나 공식 간담회에서 이름표 달고 만나는 사람들 말고. 소통은 누구와 하는지가 중요하다.

과거 비대위 시절과 견줘보면 어떤가.

당시 비대위는 김종인, 이상돈 위원 등 모두 동등한 입장에서 의견을 낼 수 있었다. 결정은 논리 대결에 따라 이뤄졌다. 가끔 박근혜 위원장이 뜻대로 안 되면 불쾌한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박 위원장은 논문 표절과 성추행 의혹이 있던 문대성, 김형태 당선자를 제명, 탈당시키자는 데 강하게 반발했다. 비대위원들이 도덕성에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하게 설득해 관철됐다.

지금은 청와대 안에서 비판적인 토론 환경이 존재하는지 의문이다. 당시를 기억해보면 비대위에서 내린 10가지 결정 가운데 6~7개는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결정이었던 것 같다. 지금은 거의 모든 사안에서 정부 결정이 칭찬을 못 받는 것 같다. 제로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정책 결정이나 사후 관리에서 번번이 실패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한·일 위안부 합의라든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 등이 대표적이다.

각종 의혹 대처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우병우 민정수석 문제에 대해 의혹만으로 사퇴시킬 수 없다는 태도를 보인다. 박 대통령은 이를 대통령의 고유 권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비대위 시절 19대 국회에선 공천 과정에서 의혹만으로 많은 사람을 탈락시켰다. 집권 뒤에는 그런 모습이 안 보인다.

국민은 박 대통령에게 아주 창의적인 일을 할 것이라는 기대보다 원리·원칙에 따라 큰 탈 없이 국정을 운영할 것이라는 신뢰가 있었다. 이런 신뢰도 총선 뒤에 깨졌다. 측근 문제가 불거지면서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대통령이 좀더 전격적이어야 했다.

최근 최순실씨 관련 특혜와 미르재단, 케이(K)스포츠재단 의혹이 이어지고 있다. 청와대는 모두 부인하는데.

상황을 정리하고 가야 한다. 직책도 없이 정확히 뭘 하는지 모르는 최순실씨라는 비선 실세가 계속 물의를 일으키고 있다. 참 난감하다. 국민은 최씨가 알려진 것보다 더 큰 힘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새누리당에서 적잖은 의원들도 ‘어떻게 한번 일면식도 없는 최순실이라는 사람이 계속 의혹에 등장하는지 이유를 모르겠다’고 황당해한다. 최씨는 우병우 민정수석과 달리 인사권자가 해임할 수도 없고,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실 등의 감찰 대상도 아니다. 완벽히 감시 사각지대에 있다. 검찰 수사밖에 없다.

전경련(전국경제인연합회)도 의심받을 짓을 했다. 이걸 전경련이 모두 뒤집어쓰고 간다? 나도 사회봉사 활동을 해왔지만 대기업이 몇십억, 몇백억원대 돈을 자발적으로 문화 창달을 위해 내놨다는 이야기는 믿기 어렵다. 재단 목적이 뭔지 명확하지도 않은데 그 정도 금액이 모였다는 것 자체가 의심스럽다. 모금 방식 자체를 보면 힘이 개입했을 수밖에 없다. 왜 그런 재단이 필요한지도 궁금하다. 여러 해명이 납득되지 않는다.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생각”

이준석 전 위원은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던 때 최순실씨 존재를 거의 몰랐다고 했다. 그는 “소문은 많이 들었지만 과연 그런 사람이 있을 수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지금도 그는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궁금하다”고 했다.

비대위 당시 박 대통령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생각은 어느 정도였다고 보는가.

이해까지는 아니더라도 공감은 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 대통령이 되면 뭐라도 바꿀 줄 알았다. 그런데 집권 뒤 기업집단, 재벌의 힘이 작용한 것 같다. 박 대통령이 구조 자체를 해결하지 못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이긴 게 경제민주화 덕이라고 여기지 않는 듯하다. 비대위의 면면 덕에 이긴 거라고도 생각하지 않는 것 같고. 박 대통령은 자신이 잘해서 이겼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대통령이 행한 인사를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경제민주화를 내걸어 대선에서 이겼다고 생각했다면 집권 뒤 이렇게 인사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통령에게 ‘어떻게 당선됐다고 생각하는가’라고 한번 물어보고 싶다.

비대위 당시 이 정도의 변화를 예상했나.

비대위 때와 지금을 견줘보면 ‘(아파트를) 시공한 사람과 분양한 사람이 다르다’는 생각이 든다. 비대위 때 모델하우스를 지어 ‘이런 것이 우리의 비전이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모델하우스를 만든 사람이 따로 있고, 선거를 수행한 사람이 따로 있고, 집권 뒤 누리고 집행하는 사람이 따로 있다. 그러다보니 집 자체가 애초의 모델하우스가 아닌, 다른 게 돼버렸다. 구조며 수도꼭지며 내장재며 이런 것이 다 달라져 있다. 안타깝다.

4월 총선에서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셀프 비례 공천’ 논란에 휘말리지 않았나. 나는 김 전 대표가 2012년 받은 자존심의 상처가 커서 그렇게 했다고 생각한다. 의회 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밖에서 자신이 내세운 경제민주화 정책이 허물어지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안타까움이 컸을 것이다. 이번엔 그러면 안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비대위 때만 해도 박 대통령이 집권하면 김종인 전 대표 같은 경우는 총리가 되거나 최소한 입각하지 않겠는가 생각했다. 김 전 대표는 괴리감이 아직 클 것이다.

박 대통령은 임기가 1년 남짓 남았다. 통일, 외교, 안보, 경제 등의 분야는 성과를 내기 어려운 것 같다. 이 분야는 시간이 없다. 관리만 할 뿐이다. 그러나 노동, 복지 분야는 구조개혁이 가능하다. 그런 부분에 기대를 해본다.

“상환 안 되는 부채”
이준석 전 비대위원(왼쪽)은 2011년 12월 당시 박근혜 전 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젊은 피’로 참여했다. 12월27일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이 전 위원이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이준석 전 비대위원(왼쪽)은 2011년 12월 당시 박근혜 전 대표를 위원장으로 한 비상대책위원회의 ‘젊은 피’로 참여했다. 12월27일 열린 첫 비대위 회의에 참석한 이 전 위원이 회의 참석자들의 발언을 듣고 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지금도 당시 비대위원으로 참여했던 인사들이 삼삼오오 만난다고 한다. 각자 정치적 길이 달라진 그들이다. 비대위 출신 한 인사는 통화에서 “당시 일은 서로 말하기 꺼린다”고 했다. 비대위원들 사이의 실망감이 읽히는 대목이다.

박근혜 정부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결국 인사다. 박근혜 정부가 동원할 인재풀이 이것밖에 없나, 과연 이게 박 대통령이 동원할 수 있는 최선의 인재인가 하는 데 물음표를 던질 수밖에 없다.

대선 전엔 비대위 등에서 다양한 인재풀을 가동해 집권했는데, 집권 뒤엔 당시 보이지 않던 분들이 나타났다.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이 박 대통령 주변에 15년 동안 권력을 획득하지 못한 친박 세력이 있음을 간과했다. 흔히 박근혜 대통령은 빚진 사람이 적다고 한다. 대기업 등에서 진 빚은 확실히 적을지 모른다. 그래서 롯데나 CJ 등 기업 비리에는 비교적 엄격한 면이 있다.

하지만 박 대통령이 과거 청와대에서 나온 뒤 사실상 유폐 내지 감금 생활을 하는 동안 마음의 빚을 진 사람은 많은 것 같다. 최순실씨도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닌가 싶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이 외로울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 진 마음의 빚이 더 클 수 있다. 기업과의 관계에서는 받은 만큼 돌려주면 된다. 그러나 힘들고 외로울 때 도와준 사람들에게는 받은 만큼만 돌려줄 수 없는 것이다. 상환이 안 되는 부채인 것이다.

새누리당을 강성 친박계가 좌우하고 있다.

이정현 대표가 당선된 지난 8월 전당대회 때 대구를 포함한 여러 지역에서 노골적으로 1, 3, 8이란 이야기가 많았다. 전대 출마 기호순으로 당대표는 이정현, 최고위원은 조원진, 최연혜를 찍자는 말이었다. 당은 전당대회를 통해 강한 친박 분위기로 바뀌었다.

지금 당 정강정책은 김종인 전 비대위원을 비롯한 비대위에서 만들었다. 과연 친박계가 내세우는 말들이 당헌·당규와 정강정책에 부합하는가.

새누리당은 과거 한나라당 시절인 17대 국회까지만 해도 ‘법조인 정당’이라고 욕을 먹었다. 당시엔 그래도 기본 룰과 원칙이 있었다. 이제 새누리당은 국정감사에도 일부 참여하지 않았으니 법치 정당이라고도 할 수 없게 됐다.

보수세력도 당연히 집권 가능성을 눈여겨본다. 지금 강성 친박들이 하는 행동을 지지하는 국민은 20%가 안 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년 대선에서 득표할 수 없다. 확장성이 없는 것이다. 수권 능력을 상실하는 정치세력은 한순간 철저히 외면받는다.

이대로 간다면 한번은 전환기가 올 것이다. 새누리당이 아직 단일 정당으로는 지지도가 높다. 그러나 실책이 이어진다면 대선을 앞두고 당내에서 초조함이 발동될 것이다. 비박계에서 지도부 불신임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이정현 대표의 단식 등 강경 투쟁도 독단으로 빠지는 모양새가 되면서 의원들이 소외됐다. 2011년에도 대선을 앞두고 홍준표 대표 체제가 무너진 바 있다.

“반기문, 친박 주도 판에 오지 않을 것”

홍준표 체제는 2011년 10·26 재·보궐 선거 때 최구식 새누리당 의원의 비서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를 디도스(DDoS·분산서비스거부) 공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출범 5개월 만에 붕괴됐다. 홍 대표는 ‘국기문란’ 논란으로까지 번진 사건을 회피하기에 급급했고 결국 유승민, 남경필, 원희룡 등 최고위원들이 사퇴하자 자신도 사퇴했다. 홍준표 체제 붕괴 뒤 새누리당은 박근혜 비상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새누리당 안에서 대선 주자가 두드러지지 않는데.

정부가 당내 정치인을 안 키웠다. 박근혜 정부에선 다른 의견을 용납할 여지를 두지 않았다. 모든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아논 거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친박계가 장악한 새누리당으로 오게 될까.

그럴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본다. 반 총장이 친박이 주도하는 판에 들어오면 그들이 지닌 부정적인 면을 그대로 계승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은 반기문이라는 사람만 보는 게 아니다. 주변 세력도 본다. 반 총장 외에 눈에 띄는 인물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을 마지막으로 ‘카리스마 리더십’은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반 총장의 외교 활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논란도 있다. 새누리당은 과거 안철수 후보를 비판할 때 정치 현장 경험이 없다고 공격한 바 있다.

박근혜 키드’라고 불리는 이 전 비대위원은 친박인가 비박인가.

많은 사람이 내가 친박계에서 비박계로 갔다고 오해한다. 발탁 자체는 박근혜 대통령이 했지만 내가 던져온 것은 친박 메시지가 아니었다. 그러니 지금껏 내가 살아 있는 것이다. 이전에 안희정 충남지사에게 물어보니 자신이 지닌 ‘친노 타이틀은 극복이 안 된다’고 하더라. 내가 스스로 친박이니 비박이니 해명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논리적 보수’라는 브랜드를 구축하고 싶다.

성연철 기자 sych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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