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제주에서 가장 바쁜 원희룡 제주도지사를 이 만났다. 그에게 난개발, 주택·토지 가격 폭등, 교통량 폭증, 취업난 등 현안을 묻고 대책을 들었다. 뒤이은 기사에선 ‘낯선 아름다움’의 제주어와 제주의 아픈 역사, 독특한 문화를 다룬 책들을 소개한다.
조선 순조 13년(1813) 음력 10월 그믐날. 백성 30여 명이 제주읍 중면(현재 제주시) 거마촌에 모여들었다. 여러 마을 사람들이 민생에 대해 의견을 모으는 자리였다.
이 모임에서 ‘상찬계(相贊契) 아전들의 민폐’에 대한 백성들의 성토가 이어진다. 이에 풍기를 바로잡고 관리의 정사 청탁을 감찰하는 풍헌을 지낸 제주 토호 ‘양제해’는 “백성들을 위해 한 목숨을 바치겠노라”며 결연히 나설 것을 약조하고 ‘등소’(여러 사람이 연명으로 소장을 작성해 관청에 올리는 하소연)할 것을 결의한다. 이게 제주에서 발생한, 흔히 ‘양제해의 난’으로 알려진 사건이었다.
반란, 유배지, 출륙금지령시쳇말로 공무원들이 하도 주민들을 못살게 구니, 도지사를 찾아가 이의 시정을 요구하자고 논의하고 약조를 했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결국 밀고됐고 양제해와 논의에 참가했던 무리는 역적으로 몰려 ‘모변’(謨變)을 꾀한 대역죄인으로 둔갑됐다.
‘양제해의 난’의 진실이 밝혀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다산 정약용의 제자인 운곡 이강회의 이 2008년에 이르러 세상에 드러난 덕분이다. 역사학자 김정기는 이 사건을 놓고 “음모와 탐욕의 아전집단, 상찬계의 무한질주 궤도에 폭약을 매설하려다 발각된 제주 민중의 만만치 않은 저항운동이었다”고 평했다.
역사는 이긴 자의 기록이고, 힘센 자가 주도하는 기구한 운명이라 했던가. 대한민국 1%의 영역밖에 차지하지 못하는 제주는 막내둥이의 설움을 감내해야 했던 게 그간의 역사였다. 제주의 역사 2천 년을 얘기할 때 흔히 독립국으로서의 탐라 1천 년, 고려 복속 이후 중앙집권하의 1천 년을 일컫는다. 신화나 전설로 남은 탐라 1천 년을 제외하고 한반도 역사에 편입된 이후 제주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더듬어보자. 고려시대에는 양수의 난(1168)·문행노의 난(1267), 조선시대엔 문충기의 난(1601)·강제검의 난(1862)·이재수의 난(1901) 등이 있었다. 일제강점기에도 항일운동 및 해녀항쟁(1932) 등을 떠올릴 수 있다. 이러한 반란과 저항의 근저에는 탐관오리의 횡포와 수탈, 과도한 세금 등으로 옥죄던 질곡의 삶이 있었다. 어디 이뿐이던가. 고려시대 원나라 지배와 목호 토벌, 조선시대 출륙금지령, 유배지로서의 제주였다. 해방되고 나서도 4·3사건(1948)을 거치며 혹독한 시대의 시련과 아픔을 간직한 땅으로 남아 있다.
그러나 이제 제주는 확연히 달라지고 있다. 연간 이주민이 1만 명이 넘고 관광객도 1300만 명에 이른다. 그렇다면 도제 실시 70주년, 특별자치도 출범 10주년을 맞은 올해 ‘국제자유도시’를 지향하는 65만 명 인구의 섬 ‘특별자치도’는 어떤 모습일까. 지난 4·13 총선을 통해 거칠게나마 살펴보자.
4·13 총선. 박근혜 대통령이 30~40%대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었다. 새누리당 원희룡 도지사 체제에선 적어도 제주에 배정된 3개 선거구 국회의원 의석 중 1~2석은 새누리당이 차지할 것이라는 예측이 대세를 이루었다. 그러나 이 예측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제주 의석 3석에는 모두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당선됐다.
원희룡 프리미엄도 무기력야당의 압승에는 집권여당의 제주홀대론, 특히 이명박·박근혜 정부의 강경 일변도의 제주해군기지 건설 강행에 따른 반감이 있었을 것이다. 또한 4·3사건 68주기를 맞고 있음에도 4·3 희생자 재심의, 대통령의 4·3 추념식 불참 등의 요인도 있었다. 여기에 풀리지 않는 청년 일자리 창출, 꼬이기만 하는 대북관계, 집권여당의 계파별 나누기 정치 불신 등 여러 요인이 작용했으리라는 예측은 어렵지 않다.
제주가 낳은 정치 스타 원희룡 도지사의 프리미엄은 어떻게 작용했을까. 20~30년 동안 번갈아가며 제주 사회를 지배해온 1940년대생 초반의 도지사 3명(우근민·김태환·신구범)을 청산하려는 도민들의 목마름을 해결하겠다며 나선 젊은 기수가 있었다. 변화와 개혁의 주자, 학력고사와 사법고시 수석 합격, 3선 국회의원에 집권여당 사무총장 등 화려한 경력의 원희룡 후보에게 도민들은 60%에 달하는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원 지사는 지난 총선에서 정무부지사, 서울본부장 등으로 휘하에 있던 측근들을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도록 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제주도 내 3개 선거구에서도 어깨동무하는 모습이 담긴 선거홍보용 현수막에 기꺼이 모델이 돼주면서 선거 마케팅을 노렸다. 하지만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켜 모두 낙선하거나 아예 공천에서 탈락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들에게 미더운 박수를 보낸 것만은 아니다. 새로운 정치를 갈망하는 도민들은 신출내기 국민의당 후보에게도 많은 지지를 보내며 정치권의 분발을 촉구하는 수준 높은 한 표씩을 행사했다.
반면 진보정당의 성적은 초라했다. 정의당·녹색당·노동당 비례대표 득표율을 합해도 10%를 넘지 못했다. 불과 몇 년 새 나타난 변화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만 해도 민주노동당·진보신당 등 진보정당 득표율(광역의원 비례대표 기준)은 25%를 넘었다.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정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투쟁, 무상급식·무상의료 등 서민과 노동자를 위한 진보적 어젠다를 선점하고 적극적으로 실천운동을 해나가자, 지식인층과 서민층은 ‘작지만 강한 정당’인 진보정당에 지지를 보냈다.
그러나 2012년 총선, 2014년 지방선거에서 10%대 초반으로 뚝 떨어지더니 이번 선거에선 한 자릿수를 기록했다. 진보정당 분열,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보수정권의 진보정당 죽이기 등 중앙정치에서 진보정당이 고전하는 이유와 비슷하다. 다만 기업 수가 적은 제주에선 진보정당의 중요한 축인 민주노총 사업장이 많지 않다는 특수성이 일부 영향을 미쳤다.
제주는 지금 아우성이다. ‘청정’과 ‘공존’이라는 미래 비전을 설정해놓고 있긴 하다. 하지만 10년 넘게 해결되지 않는 강정 해군기지 문제를 비롯해 새로운 갈등으로 떠오르는 제2공항·신항만 건설, 여기에 1차산업 육성과 FTA 대응, 관광산업 등 신성장 산업 육성, 환경 자산 보전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특히 주거 및 부동산 대책, 농가 부채, 청년 일자리 및 고령화 대책, 도민사회 갈등 해소 등 일상과 직결되는 현안은 당장 소홀히 할 수 없는 문제다.
특별자치도 10년, 도제 70년의 반성이제 누군가는 답해야 한다. 제주가 나아가야 할 지향점이 제주의 고유한 자연환경과 문화를 이용해 사람, 상품, 자본의 이동을 원활하게 하는 ‘국제자유도시’냐고. 효율성과 고도의 자치권을 보장한다는 미명 아래 4개 시군을 없앤 혁신안만이 살아남은 ‘특별자치도’ 10년이 제대로 가고 있는 거냐고.
고 신영복 교수는 광복 70주년의 화려함만이 난무하던 시기에 어느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썼다. “대한민국 70년은 참회록을 써야 한다”고. 현재 제주가 처한 현실도 마찬가지다. 마치 엄청난 효과를 내는 것처럼 홍보하는 특별자치도 출범 10주년도, 관덕정에서 거창하게 준비하는 도제 실시 70주년 행사도 도민들이 외면한다면 말짱 도루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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