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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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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의 청와대에 의한 청와대를 위한

의문은 그대로고 앞뒤도 맞지 않는, 검찰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관련 중간
수사 결과 발표…
응답자의 65%가 검찰 수사 ‘신뢰하지 않는다’
등록 2015-01-14 15:41 수정 2020-05-03 04:27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1월9일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해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조윤선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왼쪽부터)과 논의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오른쪽)이 지난 1월9일 ‘비선 실세의 국정 개입 의혹’과 관련해 열린 국회 운영위원회에서 조윤선 정무수석, 유민봉 국정기획수석(왼쪽부터)과 논의하고 있다. 정용일 기자

1월5일 검찰이 발표한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관련 중간 수사 결과 발표는 청와대의, 청와대에 의한, 청와대를 위한 결론이었다. 이른바 ‘정윤회 문건’에 대한 모든 죄는 조응천 전 청와대 민정수석실 공직기강비서관과 박관천 전 청와대 행정관이 짊어졌다. 검찰은 이들이 작성한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의 내용은 사실이 아니며, 이들이 박근혜 대통령의 동생인 박지만 EG 회장을 이용해 자신들의 입지를 강화하려는 의도로 허위 보고서를 작성한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을 농단했다는 의혹을 받아온 정윤회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이재만 총무비서관, 정호성 제1부속비서관, 안봉근 제2부속비서관)은 ‘억울한 피해자’가 됐다. 그동안 청와대가 주장해왔던 것과 정확히 일치하는 내용이다.

시킨 사람은 무죄, 시킨 대로 한 사람은 유죄

그러나 검찰의 수사 결과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검찰에 의하면 청와대 민정수석실에서 근무하던 비서관과 행정관이 정윤회씨를 비방하는 문건을 허위로 작성해 박지만 회장에게 수차례 전달하면서 정씨와 박 회장 간 경쟁 구도를 만들었다는 것인데, 이들이 왜 굳이 ‘박근혜 정부와 아무 관계도 없는’ 정씨를 끌어들이려 했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었다. 조 전 비서관이 청와대 문고리 3인방과 권력다툼을 벌인 것이 원인이라고 해도 문고리 3인방과 정윤회씨가 실제 아무 관련이 없다면 굳이 허위 보고서를 통해 정씨를 끌어들일 이유가 없다. 검찰 수사 결과대로 정윤회씨가 국정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면 왜 하필 ‘정윤회’씨가 이 사건에 연루됐는지를 쉽게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이상한 부분은 또 있다. 검찰은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이 박지만 회장에게 청와대 문서를 수차례 건넨 것은 대통령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공무상 비밀누설 혐의라며 엄격하게 죄를 물었지만, 이들에게 대통령기록물을 전달받은 박지만 회장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검찰 관계자는 “(박 회장이) 적극적으로 유출에 관여했다면 모르겠으나 소극적이면 처벌하기 힘들다. (소극적이라는 판단 기준은) 별도의 지시가 없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검찰 수사 결과에 의하면 박 회장은 2013년 말 지인으로부터 정윤회씨가 자신을 미행한다는 말을 듣고 측근을 통해 박 전 행정관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시켰다. 이것이 ‘지시에 해당되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대해 검찰은 “알아봐달라는 것은 루머 차단 차원에서 물어본 것이지 다른 정보를 습득해달라고 한 것은 아니다. (사실을 확인시킨 것은) 지시를 한 것이 아니다. 지시는 상하관계(일 때 성립한다)”라고 말했다. 결국 검찰은 조 전 비서관 등으로부터 수차례 정보를 보고받고 특정한 사실을 알아봐달라고까지 한 박 회장은 죄가 없고, 박 회장에게 정보를 건넨 이들만 죄가 있다는 판단을 내린 것이다.

검찰이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 내용이 허위라고 결론 내린 부분에 대해서도 수사가 미흡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조 전 비서관과 박 전 행정관을 상대로는 엄격한 수사를 벌인 반면, 정윤회씨와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에 대해서는 압수수색 등 강제조사를 벌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정호성·안봉근 비서관은 소환조차 하지 않고 서면조사만으로 끝냈다. 또 문건에는 정윤회씨를 포함한 십상시 모임이 2013년 10월부터 이뤄졌다고 돼 있었지만, 검찰은 2013년 12월 초~2014년 11월 말까지의 통신기록을 중심으로 살펴본 뒤 ‘십상시 모임은 없었다’고 결론을 내버렸다.

정치적 문제를 재빨리 법적 문제로

이런 검찰의 짜맞추기식 수사 결과에는 청와대의 ‘적극적인 플레이’가 크게 작용했다. 가 지난해 11월 ‘정윤회 국정개입 보고서’를 보도하자마자 청와대는 즉각 고발 조처에 들어갔다. 정치적으로 책임을 져야 할 문제를 법적 문제로 재빨리 치환해버린 것이다. 이후 청와대는 이 사건 처리의 명줄을 쥐고 있는 검찰에 ‘가이드라인’을 내렸다. 박근혜 대통령은 검찰이 수사에 착수한 지난해 12월1일 “문건 유출은 결코 있을 수 없는 국기문란 행위”라고 서둘러 규정했고, 6일 뒤에는 ‘정윤회 보고서’의 내용을 “찌라시”라고 일축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정윤회씨와 박지만 회장에 대해서는 “정윤회씨는 이미 오래전에 내 옆을 떠나 연락도 없이 끊긴 사람이고, 지만 부부는 청와대에 얼씬도 못하게 하고 있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수사가 진행되는 도중에 대통령이 나서서 수사의 방향과 사건의 성격까지 정리해버린 것이다.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지난 1월5일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 문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유상범 서울중앙지검 3차장이 지난 1월5일 정윤회씨 국정 개입 의혹 문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청와대가 ‘조응천 그룹 7인 모임’의 존재를 언론에 흘린 것도 대표적인 ‘플레이’였다. 당시 언론에는 조응천 그룹이 조 전 비서관을 비롯해 전직 공직기강비서관실 행정관 2명, 검찰 수사관, 전직 국가정보원 고위 간부, 박지만 회장의 측근으로 구성돼 있다는 내용과 함께, 이들이 문고리 3인방을 흔들려는 의도로 문건을 작성하고 외부 유출까지 했다는 내용의 청와대 감찰 보고서가 보도됐다. 이에 대해 조 전 비서관은 “‘7인 모임’ 등은 청와대 시나리오를 뒷받침하기 위해 만들어진 조작물”이라며 크게 반발한 바 있다. 결과적으로 조응천 그룹의 실체는 청와대가 그렇게 폐해를 강조했던 ‘루머와 찌라시’ 수준의 ‘사실무근’인 것으로 정리되고 있으나, 이를 퍼뜨린 청와대는 지금까지 적절한 사과를 내놓지 않았다.

보고서 유출에 연루된 최아무개 경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까지 주장한 ‘청와대 회유설’도 여전히 의혹으로 남아 있다. 최 경위는 목숨을 끊기 전 검찰 조사에서 청와대가 (최 경위와 함께 보고서 유출에 연루된) 한아무개 경위를 회유해 보고서 유출 혐의를 자신에게 씌우려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JTBC도 지난해 12월15일과 지난 1월6일 한 경위와의 인터뷰를 통해 청와대 회유설을 보도했다. 그러나 청와대는 이에 대해서도 “한 경위를 민정수석비서관실의 그 누구도 접촉한 사실이 없고 제안도 없었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

무엇보다 청와대는 정윤회씨 딸 문제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문화체육관광부의 국·과장 인사에 관여했다는 사실이 드러났음에도 상식 이하의 해명만 내놓은 채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서는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당시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직접 인사를 지시한 이유가 “(해당 공무원들의 잘못에 대한) 민정수석실의 보고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했지만, 이는 일개 국·과장급 인사를 매우 이례적으로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것에 대한 해명은 되지 않는다.

실력에 대한 신뢰 떨어졌는데 ‘도덕성 지켰다’

이 모든 법적·정치적 책임에 대해서 청와대는 지난 1월5일 검찰 수사 결과 발표로 ‘면죄부’를 얻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윤두현 청와대 홍보수석은 검찰 발표 뒤 “몇 사람이 개인적 사심으로 인해 나라를 뒤흔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 (문건) 보도 전에 한 번의 사실 확인 과정만 거쳤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텐데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청와대로서는 정윤회씨는 물론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과 문고리 3인방에 대한 ‘억울한 누명’이 벗겨진 것에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전문가들의 판단은 다르다. 청와대가 당장에는 면죄부를 얻은 것처럼 보일지라도 장기적으로는 이번 사태가 결코 그대로 덮어지지는 않을 거라는 것이다. 최근 검찰 수사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65%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것도 이러한 분석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최창렬 용인대 교수는 “검찰 수사 결과는 정말 납득하기 어렵다. 검찰 스스로가 특검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게 아닌가 한다. 국민 상당수가 이 수사 결과를 믿지 않을 것이다. 국민의 지지가 국정을 운영하기 위한 동력인 청와대가 계속해서 국민의 기대에 미흡하게 반응하거나 인적 쇄신 요구 등을 귀담아듣지 않으면 그 정권은 국정 운영에서 상당히 질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도 “이번 사태는 청와대로서는 득보다는 실이 더 크다. 지금은 문제의 청와대 3인방이 대통령의 손발이 돼 실제로 인사 등 국정의 요소요소를 다 관리하고 있다고 본다. 이런 시스템은 책임총리제나 책임장관제를 허물어뜨리는 것이다. 취임 3년차에는 지난 2년을 평가해서 한 단계 업그레이드를 해야 하는 시점인데 그것을 못하고 넘어가면 레임덕이 오는 등 국정 운영에 혼란이 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이사는 “청와대는 지금 ‘실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진 상태다. 그런데 여전히 청와대는 ‘실력’에 대한 인식을 못하고 ‘우린 도덕성을 지켰다’고 얘기하는 거다. 실력에 대한 신뢰 추락으로 앞으로 의제를 추동해나갈 동력이 훨씬 떨어질 것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

당장 새누리당 내부에서도 친이계를 중심으로 청와대가 이번 사태에 대해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는 것에 불만의 목소리가 터져나오고 있다. 이재오 새누리당 의원은 지난 1월7일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서 “청와대에서 문건이 유출돼 정국을 혼란스럽게 만들었으면 최소한 (청와대 내부에서) 정치적·도의적 책임을 지는 사람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든 해당 비서관들이든 비선 실세로 지목된 사람이든,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청와대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조해진 새누리당 의원도 1월8일 “청와대라는 국가 최고기관에서 ‘찌라시’가 만들어지고 그게 시중으로 돌아다녔다는 자체가 (청와대의) 복무 기강이 엉망이란 걸 보여준다. 그런 사태를 초래한 사람들과 이를 방치한 사람들 모두 책임져야 한다”고 비판했다.

송채경화 기자 khso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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