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청와대 ‘3시간 은밀한 만남’ 뒤

새누리 김무성 대표를 향한 친박 의원들의 대응이 공세적으로 전환…

자칫 공천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 총선 한 해 앞둔 전략적 포석
등록 2015-01-10 14:19 수정 2020-05-03 04:27

통합진보당이 해산된 2014년 12월19일, 여권에선 내부 갈등을 예고하는 ‘3시간의 청와대 만찬’이 차려졌다. 박근혜 대통령은 서청원 최고위원(7선), 정갑윤 국회부의장(4선), 서상기·유기준 의원(3선) 등 새누리당의 친박근혜계 중진 의원들과 청와대에서 저녁 식사를 함께 했다. 당시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이 기자들에게 “(오늘 청와대 만찬 일정은) 없는 것 같다”고 말하는 등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비공개 모임이었다. 대통령의 당선 두 돌이기도 했던 이날 만찬에 김무성 대표 등 주요 당직자들은 초대받지 못했다. 열흘 뒤에 이 은밀한 만찬 사실이 세상에 알려진 뒤 김 대표는 ‘참석하라는 연락을 받았나, 아니면 모임 자체를 몰랐느냐’는 기자들의 물음에 “몰랐다”고 짧게 대답했다.

12월30일 터져나온 ‘2015 친박의 반격’ 예고편

김 대표를 참석 명단에서 뺀 이유는 만찬에서 오간 대화를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당에서 친박이 비주류가 됐다”거나, “주요 당직이 비박근혜계로 채워져 당·정·청 소통이 안 된다”는 등 김 대표를 겨냥한 듯한 불만이 나왔다고 한다. 김 대표가 참석했다면 음식 맛이 싹 가실 법한 얘기들이다.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의 ‘큰형님’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일어선 사람)이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여의도 음식점에서 열린 친박계 송년모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새누리당 친박근혜계의 ‘큰형님’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일어선 사람)이 지난해 12월30일 서울 여의도 음식점에서 열린 친박계 송년모임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이날 친박 의원들은 김무성 대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한겨레 이정우 선임기자

청와대 만찬 이후 김 대표를 향한 친박 의원들의 대응은 공세적으로 전환됐다. 친박계의 ‘큰형님’ 격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12월22일 당 최고위원회에서 김 대표가 진행하려던 박세일 한반도선진화재단 명예이사장의 여의도연구원(새누리당 싱크탱크) 원장 임명을 반대하고 나섰다. 친박계 내부에선 “김 대표가 청와대가 추천한 인물 대신 박 이사장을 연구원장으로 임명하려 한다”는 불쾌감이 새어나왔고, 김 대표 쪽에선 “원장 임명은 대표의 권한”이라며 불편한 심기를 내비쳤다. 박 이사장은 2005년 3월 행정수도의 충청권 이전을 둘러싸고 당시 당대표이던 박근혜 대통령과 이견을 보이며 의원직을 내놓고 탈당한 전력이 있다. 친박계는 박 이사장이 2012년 4월 총선에서 ‘국민생각’이란 보수정당까지 일시 창당해 당시 새누리당을 지휘한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에게 부담을 줬다며, “박 이사장은 당에 다시 들어올 수 없다”는 반감을 드러내고 있다.

‘12월30일’은 김 대표의 기를 꺾으려는 친박계 의원들의 ‘집단행동의 날’처럼 보였다. 이날 30명이 넘는 친박계 의원들은 송년모임에서 김 대표를 비판했고, 자신들의 날선 발언을 기자들에게 공개하며 지도부를 압박했다. 한 해를 돌아보는 단순한 송년모임이 아니라, ‘2015년 친박의 반격’을 예고하는 모임처럼 보였다는 해석을 불렀다.

앞서 ‘청와대 3시간 만찬’에도 참석했던 유기준 의원은 송년모임에서 “선명하지 못한 당·청 관계, 국민 역량을 분산시키는 개헌 논쟁, 당직 인사권을 사유화하는 모습”이라고 말하며 김 대표를 겨눴다. 모임에선 “지난 전당대회에서 김 대표의 득표율은 29.6%였는데, 지금 당을 운영하는 데 있어 92%의 ‘득템’(얻는다는 의미의 인터넷 용어)을 하고 있다”(윤상현 의원)는 비판도 나왔다. 김 대표는 즉각 “공천권도 (대표가) 행사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무슨 사당화냐”고 반박했지만, ‘친박과 비박의 갈등 양상’이 부각되자 “(친박들의) 그런 말은 충분히 나올 수 있고 오해에서 생긴 이야기”라고 진화에 나섰다. 하지만 여권 내부에선 갈등의 불씨는 오히려 화력을 점점 키워갈 것이라 보는 이가 많다. “김 대표의 당직 운영에 분노가 치민다”(친박계 중진)거나, “자기(친박)들이 뭐 그렇게 대단하다고 이렇게 설쳐대는지 모르겠다”(비박계 재선 의원)는 반응처럼, 양쪽의 갈등이 해소되지 않고 있어서다.

박 대통령이 실패하면 친박은 생존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선 당의 재정과 조직 관리를 책임지는 사무총장·사무부총장 등 주요 당직에 친박계가 배제됐다는 불만이 친박의 집단행동을 자아낸 근본적 원인이라고 보지 않는다. ‘공천 학살’의 무서운 추억이 친박의 심리적 위기감을 부추겼고, 2016년 총선 한 해 전인 2015년부터 친박의 ‘방어적 반격’이 시작됐다는 시각이 많다.

2008년 총선 때 친이명박계가 주도한 ‘공천권의 칼’에 쓰러진 친박계 인사들은 탈당해 ‘친박연대’를 일시적으로 만들어 생환(당선)한 기억이 있다. 반대로 2012년 총선에서는 친박계가 친이계를 공천에서 탈락시켜 공천 보복 논란을 일으켰다. 당 내부의 주류 세력이 비주류를 희생시키는 공천 학살이 4년 주기로 반복된 것이다.

현재 당내 세력이 위축된 친박은 2016년 총선에서 자칫 공천 학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지난해 5월 집권여당 몫인 국회의장 선거에서 친박의 지원을 받은 황우여 의원(현 교육부총리)이 패했고, 그해 7월 전당대회에선 친박계 서청원 의원이 득표율 8.1%포인트 차로 김무성 의원한테 지는 수모를 당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불통 정치에 대한 비판이 높아지면서 당내에서도 친박에 대한 견제 심리가 커진 결과다. 김 대표가 지역(당협)위원장도 100% 여론조사 방식으로 뽑고, 2016년 총선 후보도 국민이 직접 선출하는 오픈프라이머리(완전국민경선제) 제도를 도입하는 등 지도부의 공천권을 내려놓겠다고 밝혔지만, 친박의 의구심은 가라앉지 않는다. 김 대표가 당의 여론조사를 주도하는 여의도연구원장에 친박계가 거부하는 박세일 이사장을 앉히려 한 조처를 예사롭지 않게 본 것이다. 공천 학살의 트라우마가 워낙 짙기 때문에 ‘정치적 생존’을 위협할 장애 요소를 지금부터 걷어나가겠다는 게 친박의 의도 중 하나로 보인다.

당에선 집권 3년차를 맞은 박 대통령에게 힘을 싣기 위해 친박계가 김 대표의 세력 확장을 누르려는 것 아니냐고 보는 시각도 있다. 당대표가 된 뒤 차기 대선주자로 격상돼 ‘미래 권력’을 넘보는 김 대표가 ‘현재 권력’(대통령)에 목소리를 내는 사태가 언제든 돌출될 수 있다는 ‘친박의 우려’가 작용했다는 것이다. 냉정하게 말해, 박 대통령이 실패하면 친박의 정치적 생존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참여정부(노무현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적 여론이 한때 친노무현계 정치 인사들을 폐족에 가깝게 몰아간 전례도 있다. 지난해 12월19일 박 대통령이 친박 중진과 청와대 만찬을 한 것도, 친박이 당 내부의 주도권에서 밀리지 않도록 힘을 실어준 것이란 풀이가 있다.

비교적 중립 성향이라고 밝힌 새누리당의 한 의원은 “양쪽(친박과 비박)의 갈등은 잠시 잠복해 있다가도 폭발할 가능성이 있을 만큼 휘발성이 강하다”고 내다봤다.

5월 원내대표, 이주영이냐 유승민이냐

양쪽의 갈등은 오는 4월 재·보궐 선거와 5월 당내 원내대표 선거에서 불씨를 키울 가능성이 있다. 3곳(광주, 경기 성남 중원, 서울 관악)에서 치러지는 4월 재보선에서 새누리당이 1석도 못 건져 박 대통령에게 부담을 줄 경우 친박 내부에서 ‘김 대표 책임론’이 터져나올 수 있다. 국무총리 차출설이 나오는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임기를 끝까지 채울 경우 5월에 원내대표 선거가 실시되는데, ‘원내 수장’ 자리를 잡기 위한 친박의 대응도 주목된다. 당에선 친박계인 이주영 전 해양수산부 장관과, 박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었지만 요즘 거리가 다소 벌어졌다는 유승민 의원의 양강 대결을 점친다. 원내대표가 누가 되느냐에 따라 친박의 세력 결집과 새누리당 주도권 싸움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송호진 기자 dmzsong@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